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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하는 태양. 길은 외줄기. 그냥 앞으로 걸어갔어요.



그래, 너희도 더운데 욕 본다.


못 걸을 정도로 덥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더웠어요. 저도, 친구도 외국에서 끔찍한 더위를 겪어본 경험이 있었지만 더운 것은 더운 것이었어요. 저 석상이 얼마나 뜨겁게 달구어져 있을까? 특별히 신기하거나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보다는 저 석상이 어마어마하게 뜨겁게 달구어져 있을 거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저 석상은 다리 입구에 서 있었어요. 구시가지가 가까워져 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stream in kashgar


"우리 여기에서 잘까?"

"우리 모기한테 죽게 뜯길 걸? 이제 말라리아 걸리겠다."

"여기도 말라리아 있어?"

"그건 모르겠다. 그런데 모기는 엄청 많을 거야."


제가 말라리아 이야기를 하자 친구가 순간 놀랐어요. 이곳에 말라리아가 있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모기는 엄청나게 많게 생겼어요. 수풀 속에 숨어서 하룻밤 보내면 사람들 눈에 안 띄니 조용히 잘 수는 있겠지만, 대신 모기들 눈에 보일 것이었어요. 게다가 텐트를 치고 잔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어요. 바닥이 조금만 기울어져 있어도 몸이 쏠려서 상당히 불편하고, 바닥에 돌이라도 하나 있으면 그 자리에 눕는 순간 엄청 아파요. 최대한 수평이고 평평한 곳을 찾아서 텐트를 쳐야 했어요. 여기는 최소한 그 기준에는 전혀 맞지 않는 곳이었어요.



멀리 모스크가 보였어요. 큰 의미는 없었어요. 그냥 모스크가 눈에 들어왔어요.


핍박받는 위구르인


"정 안 되면 저기에 텐트치고 자자."

"어디?"



다리를 건너니 무너져가는 흙집들 앞에 넓은 공터가 있었어요. 흙집들을 보니 예전 이문동 달동네가 생각났어요. 거기도 돌아다니다보면 흙으로 지은 집을 볼 수 있었거든요. 페인트를 칠해놓아서 얼핏 보면 잘 알 수 없지만, 페인트가 깨져나간 곳을 보면 흙으로 지은 집인 곳이 여럿 있었어요.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고 처음 제대로 출사를 갔던 곳이 바로 이문동 달동네였고, 그때도 이 친구와 함께였어요.


공터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저 흙집 마을이 과연 치안이 안전한지 알 수 없었어요. 공터에 텐트를 치면 어디서는 너무나 눈에 잘 띄일 것이 뻔했어요. 그러나 길 위에 텐트를 칠 수는 없는 노릇. 바닥을 보니 여기에 텐트를 치면 그래도 잠은 잘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날이 어두워졌을 때 텐트를 치고 눈만 붙이고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텐트를 접고 철수하면 되지 않을까? 다음날은 숙소에 들어가서 쉬는 날이니 아침 일찍 가서 짐이라도 던져놓으면 체력 부담은 줄일 수 있었어요.



그 마을 속에도 모스크가 있었어요. 모스크는 곳곳에 있었고, 상당히 눈에 잘 들어왔어요.



"저게 구시가지인가보다."


꽃밭 너머 성곽이 보였어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었어요. 저것이 바로 카슈가르 구시가지 입구였어요.



"가자!"


마라톤 선수가 결승선에 들어가는 것처럼 힘차게 힘을 내어 앞으로 걸어갔어요. 맨 위에 위구르어로 적힌 것은 '캐슈캐르 캐디미 섀흐리'. 그 아래 중국어로 뭐라 적혀 있었고, 맨 아래에는 영어로 Kashgar Old City 라고 적혀 있었어요.



성벽을 보는 순간 느낌이 딱 왔어요. 중국하면 짝퉁, 짝퉁하면 중국. 정말 질리게 들었던 '이거 중국이랑 비슷하네, 중국에 가면 다 있어' 라는 말. 이 성벽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기하고 실크로드의 감동이 느껴진다고 눈물 질질 흘릴 수도 있겠지만, 제게 그런 감흥은 오지 않았어요. 나 이거랑 진짜 닮은 거 본 적이 있어. 이것을 보자마자 바로 확 떠오른 것이 있었거든요.


우즈베키스탄 히바


우즈베키스탄 히바!


우즈베키스탄 히바는 내성과 외성이 있는데, 내성은 그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심지어는 내성 안에 있는 건물들조차 그 옛날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카슈가르의 성벽이 단순히 보수만 한 것인지, 중국 특유의 짝퉁 감성으로 복원을 해놓은 것인지까지는 잘 몰라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 눈에 그렇게 크게 인상적이지는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이 올드타운의 기본 구조는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는 것이 바로 계산되었어요. 그래서 큰 감흥은 없었지만, 일단 이런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을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약간 흥분되었어요. 우즈베키스탄 히바와 비슷한 형태이기는 했지만 이것은 이것 나름 인상적이기도 했구요. 과일은 과일 나름의 맛이 있는 것이고, 과일 주스는 과일 주스 나름의 맛이 있는 것처럼요.



뒤돌아보니 흙빛 건물들과 무슨 타워가 보였어요. 이렇게 여기 주변을 정비해나간다면 여기도 나름 괜찮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쨌든 도시란 결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자연스럽게 변화해나간다면 그것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중국의 한족들 머리로 그게 가능하냐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게다가 중국 정부의 민족말살 및 한족화를 위한 책동을 보면 사실 답은 나와 있어요. 얘들에게 바랄 걸 바래야지. 잠깐 허튼 기대를 5초간 했다가 그것이 실현될 리가 없음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으로 들어가자 모스크가 보였어요. 모스크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그냥 지나갔어요.


카스


카슈가르 거리


"여기 완전 그냥 중국이 아닌데?"


친구가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친구가 의욕적으로 주변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자 저도 흥이 나기 시작했어요. 만약 저 혼자 여기를 왔다면 그렇게 신나거나 재미는 없었을 거에요. 아무리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비교가 되고 있었거든요. 누가 우수하고 열등하냐는 것이 아니라 이 풍경들 그 자체가 그냥 익숙했어요. 처음 접하는 문화에 짜릿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친구가 아주 새로운 나라에 온 것처럼 흥분하자 저도 거기에 같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너 오늘 교과서 살 거지?"

"응. 여기 서점 있겠지?"

"알았어. 여기 둘러보고 서점 가자."


친구는 제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저를 위해 위구르어 교과서를 사러 가자고 제안했어요. 친구는 제가 위구르어 교과서를 정말로 갖고 싶어한다는 것을 계속 잊지 않고 있었어요. 친구가 제가 책을 사야한다는 것을 계속 기억해주고 먼저 신경써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어요. 중국어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혼자 다 해결해야 해서 그것만으로도 짜증이 날 텐데 이렇게 계속 제가 원하는 것을 위해 챙겨주고 있었어요.


카슈가르 지도


카스 지도가 보였어요. 길을 보니 이드카 모스크까지 그냥 큰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되었어요. 이상한 골목으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이드카 모스크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구조였어요. 이드카 모스크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인들을 대표하는 건물. 위구르 자료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건축물이 바로 이드카 모스크에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드카 모스크만은 꼭 보아야 했어요.


喀什



قەشقەر


계단을 보니 한 번 올라가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올라가지 않았어요. 짐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고 싶지 않았거든요. 다음날 이곳을 떠날 것이라면 어떻게든 기를 쓰고 올라갔겠지만, 다음날도 여기에 머무를 예정이었어요. 다음날 꼭 가야 하는 곳이라고는 향비묘 밖에 없었어요. 향비묘 또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딱 입구 가서 건물만 보고 돌아올 것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할 것이 전혀 없는 일정이었어요. 그 다음에 할 거라고는 다시 이곳으로 와서 적당히 쉬엄쉬엄 돌아다니는 것 뿐이었어요. 그러므로 괜히 벌써부터 욕심부릴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uyghur style door


위구르 대문


이런 문양을 사진으로 찍는 것을 좋아해요.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다닐 때 이런 문양도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좋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을 깨달은 순간 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돌아다니며 이렇게 문양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후회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조금이라도 괜찮아보이는 문양이 보이면 일단 사진으로 찍고나서 살릴지 지울지 결정하고 있어요.


카슈가르 금속 가내수공업


가게를 찾는 사람은 없었어요. 안에서는 위구르인 아저씨들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어요.



거리는 정말로 한산했어요. 거리를 보며 친구에게 '우리 지금 왜 걸어다니냐?' 라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쩌면 친구도 저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둘 다 사진 찍고 거리 구경하며 열심히 걸어가고는 있는데, '뭘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빠져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햇볕은 신나게 내리쬐고 있었고, 피부는 까맣게 탔어요. 둘 다 흰 피부는 아니라 원래 누런데, 타오르는 직사광선을 맞으며 비타민D가 마구 생성되어 없던 구루병도 완치되는 기분이었어요. 일광건조되어 씻지 않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오히려 더욱 깨끗하고 건강한 신체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아무리 옷이 땀에 절어도 자외선 왕창 쬐어서 세균이 다 죽어버리는 느낌이었어요. 우루무치에서 미라 보겠다고 하다가 미라가 되어 가는 기분을 느꼈는데, 여기에서는 탄화되어 가는 과정을 느껴가고 있었어요.




멈추고 싶은데 멈출 수가 없었어요. 이게 무슨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다는 프링글스도 아니고, 친구도 쉬고 싶고 저도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었어요.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걷는 것을 멈출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앉을 자리가 없었거든요.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할 거 같지?


건조기후이니 그늘로 들어가면 양달보다는 확실히 시원해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늘이 에어컨 18도로 빵빵 틀어대고 문 활짝 열고 장사하는 가게 앞처럼 시원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죽게 뜨겁지 않고 적당히 뜨거운 정도지요. 양달이 불싸질러 태워버리는 거라면 응달은 약한 불로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가는 정도. 그냥 불지옥에서 불가마로 이동해서 살만한 것이에요. 응달이라 해도 당연히 더웠고, 그나마 응달에 있는 벤치는 사람들이 죄다 앉아서 쉬고 있었기 때문에 앉아서 쉴 수도 없었어요.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가 있기는 했어요. 양달에 있는 벤치. 앉으면 그 즉시 괄약근이 수축되는 건강에 좋은 의자 뿐이었어요. 친구나 저나 그 벤치에 앉을 생각만큼은 하지 않았어요. 둘 다 더워서 힘들 뿐이었거든요. 걸으면 몸이 전체적으로 천천히 구워지지만, 앉으면 몸통은 걸을 때와 똑같이 구워지는데 엉덩이만 특제 바베큐로 구워질 것이었어요. 차라리 응달 바닥에 주저앉았으면 주저앉았지 그 뜨겁게 달구어진 벤치에 앉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우리 뭣 좀 마시자."


가게가 보이자 음료수를 사서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텐트를 칠 수 있게 생긴 곳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 상태로는 꿈도 희망도 없었어요. 텐트를 칠만한 곳이라고는 그 허허벌판 뿐이었어요. 이곳에는 도저히 텐트를 칠 수가 없었어요. 머리 속이 상당히 복잡해졌어요. 공터가 텐트 치기는 좋겠지만, 사방팔방에서 다 보이는 곳이었어요. 여기는 딱 보아도 텐트를 치게 생기지 않았어요. 길에다 텐트를 치고 잘 수는 없었어요. 이 정도로 중국 15억 인민의 바이두 스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공안이 뭐하는 거냐고 하며 쫓아낼 수는 있었어요. 텐트칠 자리가 계속 나타나지 않으니 마음이 점점 더 갑갑해져갔어요. 그것은 친구도 마찬가지였어요. 친구도 제게 쉬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쉴 만한 곳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제가 쉬지 말고 계속 걷자고 한 것도 아니고 저 역시 쉴 수 있는 곳이 보이면 쉬자고 하고 있었어요.



Kashgar


이 시각에 길을 걷는 사람은 진짜 우리 밖에 없는 것 같아. 꼭 우리만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짐을 짊어메고 돌아다니는 것은 우리 뿐이지.



uyghur souvenir


또 계속 걸어갔어요. 그래도 탈진할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그냥 더워서 힘들 뿐. 딱 그거 뿐이었어요. 친구와 사진 찍고 주변 구경하며 잘 걸어가고 있었어요.



모스크가 보였어요.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쉬는 것보다는 모스크 안에 들어가서 쉬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혹시 들어갈 수 있나 쳐다보았어요. 문은 잠겨 있었어요.


위구르인 양고기


이 더운 백주대낮에 양을 해체하는 위구르인이 보였어요. 아래에 양가죽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도살 및 피 빼는 작업은 다른 곳에서 하고 가져온 것이었어요.



대장장이 동상이 나왔어요.



그리고 이렇게 망치와 모루 조각도 보였어요.





위구르 전통 빵인 '난'을 만드는 빵집이 나왔어요.


uyghur bread


위구르인 빵집


진짜 대단하다!


그냥 있어도 더운 날인데 안에서는 화덕 안에 밀가루 반죽을 붙이고 있었어요. 이렇게 더운 날 빵을 만드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한여름에도 그 뜨거운 화덕 앞에서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인 논 non 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감탄했어요. 이것이 우리나라의 밥 같은 것이다보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만들거든요. 이 사람들의 작업은 거의 새벽 3시쯤부터 시작되요. 얼추 새벽 3~4시부터 전통 빵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해서 이른 저녁에 문을 닫는 것이에요. 날이 덥든 춥든 상관없이요. 친구와 저는 지금 더워서 헥헥대고 있는데, 저 사람은 훨씬 더운 안쪽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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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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