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25 중국 카스 중앙아시아 국제 무역 바자르

좀좀이 2016. 8.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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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카스. 기차에서 내려서 위구르인 여자들과 연락처를 교환했어요. 위구르인 여자들과는 가는 길이 달랐어요. 이들은 카슈가르 인근 마을로 간다고 했고, 저와 친구는 카슈가르 시내로 들어가야 했어요. 위구르인 여자들은 먼저 역에서 나갔고, 저와 친구는 햇살이 내리쬐는 카슈가르 기차역을 바라보았어요.



이거 할 만하지 않은데?


17시간의 중국 기차 좌석칸 이동. 이제 기차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이 몰려왔어요. 왜 내가 멀쩡한 내 돈 내고 감방 같은 기차에 17시간이나 갇혀 있어야 했지? 장거리 기차 여행의 로망? 개나 주라고 하세요. 이따위 경험은 한 번 해보는 것으로 충분했어요? 그냥 이런 경험은 안 하는 것이 좋은 것이었어요. 위구르인 친구를 만난 좋은 시간이 아니라 그나마라도 없었으면 생지옥이었을 거에요. 기억 보정이 10년간 진행되어도 이 17시간 이동에 대해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가장 먼저 '쓰레기 같았지'라는 말이 나올 거에요. 그 뒤에 커다란 샴푸통에 붙어 있는 조그만 샘플 1개처럼 '위구르인 친구를 만난 것은 좋았어'라고 하겠지요.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공안과 무장경찰이었어요. 도처에 깔려 있어서 기차역 정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우루무치만큼 역 앞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것은 아니라 곳곳에 배치된 공안과 무장경찰이 더욱 눈에 잘 띄었어요. 땡볕이 내리쬐는 한산한 기차역 앞. 그리고 무장경찰과 공안. 기차에서 내렸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여기 또한 감시 받고 있는 지역이라는 기분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어요.


친구와 매표소로 갔어요. 매표소 역시 짐검사를 받아야 했어요. 짐검사 받기 귀찮아서 제가 밖에서 짐을 보고 있기로 했어요. 친구는 가방을 풀러 바닥에 내려놓았고, 저는 친구에게 저와 친구의 여권을 건네주었어요. 친구가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자 계단 구석으로 가서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옆쪽에는 식당이 있는 것 같았어요. 음식 냄새가 매표소 쪽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어요. 신발과 양말을 벗어서 햇볕에 말렸어요. 발도 햇볕에 말렸어요.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일단 조금 드러눕고 싶었어요. 그래도 양심적으로 드러눕지는 않았어요.


카슈가르. 중국어로는 카스 喀什 Kāshí.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국의 서쪽 끝. 실크로드의 도시. 이곳을 보기 위해 멀리 상하이에서부터 달려왔어요. 호탄을 못 가기 때문에 여기가 이번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요. 여기에서 아는 것이라고는 구시가지가 있고, 이드카 모스크와 향비묘를 보아야 한다는 것 뿐이었어요. 그 이전에 오늘 과연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기차역 앞에서 느낀 첫 인상은 여기도 텐트 치고 자기가 쉬운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이었거든요. 어쨌든 오늘은 무조건 텐트를 치고 자야 했어요. 아직 한 번도 텐트를 치고 자지 않았으니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한 번은 해보아야 했어요.


친구가 기차표를 끊고 나오자 버스 정거장으로 갔어요.


"우리 뭐라도 마실까?"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햇볕이 무자비하게 쏟아져내리고 있었어요. 일단 뭐라도 마시고 정신을 차려야 했어요. 친구와 사이좋게 버스정거장 옆 가게로 갔어요.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다 기차에서 위구르인 여자들이 마시던 Abida 라는 음료수가 떠올라 그것을 마셨어요.


"이거 탄산수 맞아?"


달았어요. 이건 탄산수가 아니라 음료수였어요. 지금 마시고 싶은 것은 탄산수였어요. 타는 듯한 더위에는 탄산수가 시원하거든요. 사실 같은 물이기는 하지만, 탄산수는 청량감이 있어서 더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물론 맛은 맹물보다 없지만요. 덥고 피곤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탄산수를 마시고 싶었는데, 탄산수가 아니라 탄산 음료수였어요. 색깔만 투명한 물 색깔이었어요. 당연히 마시면서 갈증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지 않았어요.


'오늘은 제대로 고생해야겠네.'


돈 내고 스스로 고문당하는 의자에서 17시간.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노숙. 백주대낮에 텐트를 치고 누울 수는 없었어요. 아무리 텐트 치기 좋은 자리라 해도 낮에 쳤다가 한 번 쫓겨나면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우니까요. 게다가 오늘은 오늘 해야할 일이 있었어요. 쿠처 가는 기차가 밤에 있으니 카슈가르에서의 일정은 실상 3일. 그러나 마지막 날은 또 거지 같은 좌석칸 야간 이동이니 열심히 돌아다닐 수 없었어요. 몸이 찌뿌둥하고 계속 짐을 다 짊어매고 돌아다녀야 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절반은 보아야 했어요.


야간 이동으로 피곤한데도 이렇게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제일 힘든 구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6월 4일 저녁에 기차를 타고 6월 5일 새벽에 쿠처 도착해서 바로 모든 짐을 짊어지고 쿠처 구경하고, 그날 또 야간 이동을 해서 6월 6일 저녁에 류원에 도착할 예정이었어요. 이것이 상당한 부담이었어요. 기차 두 번 모두 17시간 타며 욕한 그 좌석칸이었어요. 그래서 쉴 수 있을 때 미리 푹 쉬어놓아야 했어요. 그 쉴 수 있을 때가 바로 다음날이었구요.


일단 버스를 탔어요. 창밖으로 기차역이 보였어요.


카슈가르 기차역


공안들 배치된 모습을 보니 정상적으로 사진을 찍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버스에서 기차역 사진을 찍었어요. 괜히 사진 찍다가 잡혀서 사진 확인 당하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얼마나 근성을 가지고 카메라 메모리 속 사진을 뒤져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우루무치에서 찍은 사진 중 몇몇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어요. 사실 유독 종교 탄압 관련된 사진을 많이 찍은 것이 껄쩍지근했구요. 그 이전에 쓸 데 없이 카메라 배터리를 소비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어요. 친구의 호언장담과 달리 좌석칸에는 콘센트가 없었어요. 카슈가르 마지막 날인 6월 4일부터 6월 6일 밤 둔황 숙소 도착까지 충전 문제가 계속 따라다닐 것이었어요. 당장 이날도 충전 문제가 있었구요.


카슈가르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20번 버스 안은 한산했어요.


카스 버스


창밖으로 내다본 카슈가르 풍경은 한산했어요.


중국 카스



kashgar


kashi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중국답게 오토바이가 많이 보였어요.


카스 오토바이


대체 어디에서 내려야하지?


저와 친구 모두 사이좋게 아는 것이 없었어요.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드카 모스크와 향비묘, 구시가지 뿐. 친구가 아는 것은 없었어요. 아무리 바이두 지도를 본다고 해서 답이 나올 것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향비묘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하필 이때 이드카 모스크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이드카 모스크로 가면 뭔가 될 거 같기는 한데 정작 그 모스크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으니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어요. 모스크는 많아서 '모스크 어디에요?'라고 물어본다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될 확률이 너무 높았거든요.


일단 구시가지로 가야할 것 같은데 그게 어디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어요. 시내 가는 버스라고 해서 20번 버스를 물어보고 타기는 했지만, 정작 어디에서 내려야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저 '시내에서 내리려면 어디에서 내려야 해요?' 라고 물어보고 있었어요. 이 시내가 정확히 저와 친구가 찾아가야하는 방향이 맞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였어요. 막연히 '시내 가면 어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버스를 탔지만, 정작 '시내'가 어디인지도 몰랐어요.


"우리 슬슬 내려야하는 거 아닌가?"


과일 시장을 지나가자 큰 시장이 하나 나왔어요. 여기가 따바자 - 즉 '큰 시장'이 맞냐고 물어보았어요. 사람들이 맞다고 했어요. 그래서 일단 버스에서 내렸어요.


카슈가르 거리


"저기로 가면 되지 않을 건가?"

"어디?"


아...친구 시력 별로 안 좋다...


멀리 높은 건물들이 보였어요. 그쪽으로 가면 저와 친구가 찾던 시내가 있을 것 같았어요. 친구에게 저 앞쪽에 큰 건물들이 어렴풋 보이니 거기로 가면 되지 않겠냐고 말하려고 하다가 순간 친구의 시력이 좋지 않다는 것이 생각났어요.


"저 앞에 높은 건물들 있으니 그쪽으로 가면 될 거 닮아."


일단 거리를 둘러보며 앞으고 걸어갔어요.


중앙아시아 카페트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카페트가 유명한 곳이 아니기는 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 카페트는 상당히 널리 사용하는 물건이에요. 그러다보니 카페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워들을 때도 가끔 있어요. 그리고 외국인이 너무 낡고 헤져서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카페트를 보더니 열광하며 엄청난 돈을 주고 사갔다는 횡재 이야기도 들어보았구요. 진짜 좋은 카페트도 아니었는데요. 좋은 카페트를 이 사람이 못 알아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그 카페트가 오래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좋은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단지 험하게 사용해서 낡고 헤진 것이라고 말했거든요.



여기도 거리에서 난을 팔고 있었어요.


"저건 뭐지? 희안하게 생긴 음식이네."


위구르 전통음식


조그만 난 위에 고기와 야채가 올라가 있었어요.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는데 점원이 나왔어요.


"이거 뭐에요?"

"카슈칸 카밥이요."

"얼마에요?"

"20콰이요."


한 끼에 20콰이라...절대 저렴한 한 끼가 아니었어요. 친구를 바라보았어요.


"우리 이것으로 점심 먹을까?"


이미 3시였어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액체만 계속 마셨어요. 고체는 뱃속에 들어간 것이 없었어요. 친구가 예전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배고픔을 잘 견디어내는 것이 신기했어요. 예전 같았으면 훨씬 전에 배고프다고 난리를 부려야 했거든요. 친구가 배고픔을 잘 참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 무언가 먹어야했어요. 지금 안 먹으면 저녁 먹을 시간이 또 한참 늦어질 것이었어요.


"조금 더 다녀보자."

"그러자."


길을 가는데 저 카슈칸 케밥 파는 곳이 상당히 많이 보였어요. 시내 들어가는 것이 금방 될 일도 아니고, 시내 들어가서 또 마음에 드는 식당이 바로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일단 먹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위구르어


"카슈칸 케밥 2개 주세요."


폴로도 시킬까 했지만, 폴로는 15위안이었어요. 다른 지역에서 20위안에 팔던 것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지만, 음식 하나를 10위안으로 생각하던 저와 친구에게는 절대 저렴해 보이지 않았어요. 이것이 점심이기는 했지만, 반드시 배부르게 먹어야할 이유는 또 없었어요. 그냥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어요. 적든 많든 일단 점심을 먹고, 그 다음에 배고프면 또 무언가를 사먹으면 되니까요.


탁자 구석에는 스테인레스로 된 꽃병 비슷하게 생긴 통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저 통이 무엇인가 하며 바라만 보았어요. 주변을 보니 다른 테이블에서 차가 나오자 찻잔에 차를 조금 부어서 찻잔 안을 씻어낸 뒤 그 물을 저 통에 부어 버리는 것이 보였어요. 중앙아시아에서 차를 시키면 주전자로 주는데, 찻잔에 차를 조금 따라 찻잔 안을 씻고 물을 바닥에 버려요. 거리 노천 식당에서는 그냥 바닥에 휙 버리는데 여기는 바닥에 버리지 말라고 저렇게 통이 마련되어 있었어요.


드디어 카슈칸 케밥이 나왔어요.


위구르 음식 카슈칸 케밥


얼핏 보면 '위구르 피자'라고 해도 믿게 생긴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일단 치즈가 올라가있지 않았어요. 위구르인들의 빵인 난 위에 고기, 야채, 콩 등을 올리고 쪄낸 음식이었어요. 그래서 국물과 육즙이 빵 위에 흥건히 고여 있었어요.


'이거 육즙부터 빨아먹고 먹어야 하나?'


무려 20위안짜리 음식. 볶음밥 2그릇 가격이었어요. 절대 저렴한 음식은 아니었어요. 육즙을 버린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아까웠어요. 이 육즙이야말로 어찌 보면 진국이었어요. 맛이 우러나온 육즙을 버린다는 것은 진한 맛은 버리고 물 빠진 것만 먹겠다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일단 먹기는 해야 했기 때문에 빵을 뜯어서 고기와 먹었어요.


"어? 이거 괜찮은데?"


흥건한 육즙이 접시로 흘러내리더니 빵으로 흡수되었어요. 제 우려는 기우였어요. 육즙을 따로 떠먹거나 다 먹고 접시를 들어 들이마셔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접시로 육즙이 흘러내리기는 했지만 거의 다 빵으로 흡수되었거든요. 빵은 육즙에 젖어 촉촉해졌어요. 훨씬 부드러워졌고 먹기 좋아졌어요. 게다가 육즙에 젖어서 빵이 더욱 맛있어졌어요. 다 먹었을 때, 버려진 육즙은 거의 없었어요. 소스를 박박 긁어먹은 접시 수준이었어요.


"이거 이름이 뭐에요?"

"카슈칸 케밥이요."


다시 한 번 우즈베크어로 물어보자 역시나 카슈칸 케밥이라고 알려주었어요.


"저쪽으로 가면 구시가지인가요?"

"예. 그런데 어떻게 우리말 알아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베크어 공부했었어요. 저희는 한국에서 왔어요."


제가 한국에서 왔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베크어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우즈베크어를 안다고 하자 분위기가 매우 좋아졌어요. 식당 주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 한국인인데 우리말 알아!' 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주변 사람들 모두 신기하게 쳐다보았어요. 게다가 주변은 전부 위구르인들. 제가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해할 것은 없을 것 같았어요. 물론 위구르어를 잘 알아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그럭저럭 되고 있었거든요.


"저거 뭐지? 뭔가 있어보이는데?"

"한 번 가보자."


喀什中西亚国际贸易市场


친구와 넙적한 호빵 같이 생긴 돔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여기 따바자에요?"

"응. 따바자야."


뭔가 갸우뚱하는 반응이었지만, 어쨌든 맞다고 알려주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시장의 정식 명칭은 중앙아시아 국제 무역 바자르 喀什中西亚国际贸易市场 central asia international grand bazaar at kashgar 였어요. 어쨌든 카슈가르에서 상당히 큰 시장이니 '큰 시장'이라는 중국어인 '따바자'라고 하니 맞다고 대답해준 것이었어요. 당연히 이때는 이것이 카슈가르 중앙아시아 국제 무역 바자르 (캐쉬캐르 옷투라 게르비 아시야 켈크아라 소다 바즈르) 라는 정식 명칭을 몰랐어요.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무조건 숙소부터 갔을 거에요. 왜냐하면 친구나 저나 모든 짐을 짊어매고 있었기 때문에 짐을 풀고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았거든요. 그러나 이날은 텐트치고 노숙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단 뭐든 나오면 들어가서 보기로 했어요. 왔던 길을 다시 오지 않도록요.


카스 중앙아시아 국제 무역 바자르


시장 입구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잡상인도 많고, 그냥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여기 왜 이렇게 한산하지? 다 낮잠자러 갔나?"

"그러게. 진짜 한산하네."


시장 안에 사람이 적어서 짐 메고 돌아다니기는 편했어요. 그러나 사람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지금 시장 하는 거 맞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상인들도 물건을 파는데 그렇게 크게 의욕을 보이지 않았어요.


위구르 전통 현악기


"이거 여기 기타냐?"

"응. 이쪽 전통 현악기."

"저거 진짜 사고 싶은데?"

"너 기타 칠 줄 알아?"

"예전에 조금 쳤었지."


친구는 위구르 전통 현악기를 보자 갑자기 관심을 보였어요. 물론 부피가 크기 때문에 구입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귀국한 다음 얼마 후 친구도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거든요. 저 정도 크기 악기라면 항공권을 하나 더 사든가 해야 했어요. 화물로 부쳤다가는 목이 꺾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기내 수하물로 들고 타기에는 너무 길었구요. 일단 친구가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한 번 구경이나 하고 가자는 생각으로 가게로 갔어요.



무언가 화려하고 특이하기는 한데 확 끌리는 것이 없었어요. 딱 보자마자 '나는 중국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입니다' 느낌이 확 들었어요. 중국에서 중국제 물건 사는 것이니 정품을 사는 것이기는 했지만,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어요. 저런 것은 이제 너무 많이 보았거든요. 옛날 - 2000년대 초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저런 물건들도 우리나라 어디선가 판매할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끔 저런 것 비슷한 것들이 팔리고 있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러니 더더욱 흥미가 생기지 않았어요.


uyghur instrument


제가 멍하니 시선을 장식품에 고정시켜놓은 동안, 친구는 장식용으로 나온 작은 위구르 현악기를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직접 제대로 연주가 될 수 있나 현을 튕겨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어요. 친구 또한 여기에서 의사소통에 별 문제는 없었어요. 예전 카슈가르 다녀온 사람들 여행기 보면 이쪽에서 중국어가 안 통한다는 말이 많았는데, 얼마나 심도있는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가 중국어로 물어보는 말에 사람들이 중국어로 대답을 잘 해주고 있었어요.


"가자."


친구가 시장에서 나가자고 했어요. 우루무치의 신장 국제 대바자르처럼 사람들도 북적이고 상인들이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해야 시장 구경이 흥이 나는데, 여기는 사람도 별로 없고 상인들도 의욕적으로 팔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시장을 돌아다닐수록 이 사람들 쉬는 것을 우리가 방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만 강해질 뿐이었어요. 상품 자체는 거의 다 우루무치에 있는 신장 국제 대바자르에서 보았던 것이었기 때문에 오래 살펴볼 것이 없었어요. 게다가 친구가 원하는 옥팔찌도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여기에 당장 내일 떠날 카슈가르도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아무리 사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필수품이 아닌 이상 가격만 알아보면 되었어요. 이틀간 돌아다니다 여기를 떠나야하는 6월 4일에 가장 괜찮은 가게로 가서 구입하면 될 일이었으니까요.


central asia international grand bazaar at kashgar


시장을 나와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어요.



저 멀리 짝퉁 남산타워 같이 생긴 탑이 아무리 보아도 우리가 가야할 방향 같았어요. 단지 직진을 하느냐, 도중에 방향을 틀어서 가느냐의 차이였어요. 일단은 길 잃어버리면 찾기나 쉽게 직진으로 가자고 했어요.




길을 따라 쭉 가는데 음식 노점 거리가 나왔어요.


카슈가르 길거리 식당


"이거 폴로인데? 이거나 한 그릇 먹고 갈까?"

"나는 별로."


카슈가르에 왔으니 카슈가르 폴로를 한 번 맛봐야지. 그런데 친구는 자기는 아까 카슈칸 케밥을 먹어서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polo


"이거 얼마에요?"

"5콰이."

"5콰이요?"


지금까지 10위안에 파는 폴로도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한 그릇에 5위안. 이건 무조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나 이거 한 그릇 먹어야겠다. 너는 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쉬어."


저는 이것을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친구에게는 휴식이 조금 필요했어요. 어차피 이거 한 그릇 먹는 데에 시간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고, 제대로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앞으로 없을 확률이 더 높았어요. 아무 데나 바닥에 널부러저 주저앉아 쉬지나 않는 이상 마땅히 쉴 만한 공간이 아마 거의 없을 거라고 추측했어요.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여행 경험을 떠올려보면 찻집이라고 적힌 곳은 거의 다 식당이었어요. 차는 많이 마시는데, 차 한 잔만 파는 가게가 의외로 참 없었어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중앙아시아에서 차는 물처럼 마시거든요.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우리나라 상황에 비유하자면, 중국집의 자스민차, 식당의 보리차 같은 존재에요. 가끔 홍차를 따로 파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곳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지금 당장 공원에 갈 수도 없었고, 계속 걸어야 했어요. 벤치가 있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어요. 공식 시간으로는 오후 4시. 신장 시각으로는 오후 2시. 카슈가르에서 거리상으로 그렇게 멀지 않은 키르기스스탄은 오후 1시, 타지키스탄은 정오였어요. 그늘 아래 벤치를 과연 찾기 쉬울지 그 자체가 의문인 상황이었어요. 즉 이렇게라도 해서 친구는 쉬어야했어요.


한 그릇 달라고 했어요.


"이거 제대로인데?"


메추리알이 올라가 있었고, 밥 속에 초록빛 건포도가 들어가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찾던 폴로였어요. 이것이 5위안! 정말 제대로 횡재했어요. 지금껏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먹어온 폴로 가운데에서 가장 저렴했지만, 맛은 가장 좋았어요. 이것은 혼자 먹기 너무 아까웠어요. 평범한 맛이면 그냥 저 혼자 먹고 끝냈을 거에요. 그러나 이것은 꼭 친구에게 맛보라고 하고 싶었어요.


"이거 진짜야! 진짜 맛있어."

"진짜?"


친구가 관심을 보였어요.


"야, 진짜로 맛있다니까? 이거 봐. 건포도 들었잖아. 이게 진짜야. 게다가 5위안이라니까?"


5위안. 맑고 고운 친구의 마음을 흔드는 소리. 맑은 소리, 고운 소리, 불과 5위안. 음료수 한 통도 가게에 따라 5위안이 넘어가는데 밥 한 그릇이 5위안. 다른 곳에서는 20위안 불러대던 것이 1/4 가격. 카슈칸 케밥이 칼로리야 높겠지만 양 자체가 아주 푸지게 많은 것은 아니었어요. 친구는 그냥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지,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친구도 한 그릇 시켰어요.


"정말로 맛있네."

"내가 맛있다고 했잖아."


5위안짜리 폴로까지 잘 먹고나자 배가 기분좋게 찼다는 느낌이 전해졌어요. 폴로 2그릇 값으로 10위안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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