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우루무치 남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버스에서 내렸어요.
'이제 우루무치를 떠나는구나.'
아쉬운 마음은 없었어요. 우루무치에서 미라를 못 보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재미있게 시간을 잘 보냈어요. 이것저것 본 것도 많았고, 친구와 모처럼 재미있게 잘 놀았어요. 특별히 위험한 일을 겪지도 않았어요. 카자흐인이 친구에게 갑자기 시비를 걸었던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냥 하나의 해프닝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었어요. 예약한 숙소가 제멋대로 예약취소되어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 그보다 더 저렴한 숙소를 찾아서 예약했어요. 특별히 굶주리며 다니지도 않았어요. 특별히 불만을 가질 부분이 하나도 없었어요.
"오늘부터 진짜 고난의 시작이야."
"그래도 앉아서 가는데 뭐 힘들다구."
"어디 한 번 중국의 기차를 경험해봐. 너 이따 분명히 멘탈 붕괴된다."
"뭐가 또 멘탈이 붕괴가 돼?"
친구는 각오 단단히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어요. 분명히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린 사치인 상하이발 투르판행 침대칸이 너무나 그리워질 거라고 했어요. 친구가 대체 왜 이렇게 자꾸 고작 기차 타고 야간 이동하는 것 가지고 각오 단단히 하라고 경고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기차를 탈 때 뛰어야하는 것이 맞기는 했지만, 그 외에 친구가 말한 아수라장의 기차 모습은 침대칸에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중국은 좌석이랑 입석 가격 똑같아. 표 일찍 끊으면 좌석으로 가는 거고, 늦게 끊으면 입석으로 가는 거야."
"그래? 둘이 진짜 가격 차이 없어?"
"응. 없어."
친구와 기차 이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차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어요.
"여기 사람 뭐 이렇게 많냐?"
"그러게. 일찍 안 왔으면 골치아플 뻔 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아닌데..."
기차역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검색대에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 있었어요. 무슨 명절인가? 라마단은 멀었고...단오도 아직 멀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어요. 만약 딱 시간 맞추어서 30분 전에 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 기차의 문제점 중 하나는 조발이에요. 노선이 길어서 아예 미리 출발해버리는 것이에요. 이런 조발 문제 때문에 30분 전에는 기차역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 있다면 30분 일찍 왔어도 기차역 들어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꽤 걸려요.
드디어 역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보안검색을 받았어요. 역무원이 제 가방을 엑스레이로 돌려보더니 제게 와서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어요.
왜 안 걸리나 했다.
제 가방 속에는 친구가 맡긴 휴대용 버너 가스가 들어 있었어요. 친구가 텐트를 치고 잘 때 버너를 가지고 라면이라도 끓여먹자고 조그만 휴대용 버너와 가스를 챙겨왔어요. 친구가 버너와 가스만 덜렁 들고 온 것을 보고 코펠도 없이 이것만 가지고 어떻게 요리를 해먹냐고 하자 코펠은 가서 구입하면 된다고 했었어요. 아직 버너를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코펠 구입은 계속 미루고 있었고, 오직 버너와 가스만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투르판에서 친구가 맥가이버칼을 압수당하는 것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어요. 맥가이버칼은 압수하면서 제 가방 속에 있는 휴대용 가스는 그냥 넘어갔거든요. 이때만 해도 일단 안 잡혔으니 도검류만 잡고, 가스는 그냥 놔주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어요. 투르판 북역에서는 제 가방 속에 들어 있던 가스가 그냥 넘어갔던 것이었고, 원래는 휴대용 가스도 들고 타면 안 되는 물품이었어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친구가 걸렸을 때 어떻게 하는지 보았기 때문에 별로 긴장하지는 않았어요. 가방을 열어보이자 역무원이 가스를 찾아서 압수했어요. 그리고 신분증을 달라고 했어요. 여권을 건네주자 서류에 이름을 적었어요. 제 짐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가스 뿐이었어요. 비행기와는 다르게 물이나 음료 같은 것은 들고 탈 수 있었거든요. 간단한 절차가 끝난 후 가방을 닫고 검색대에서 빠져나왔어요.
"이제 너나 나나 사이좋게 이름 한 번씩 올렸네."
친구를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어요.
"아, 짜증나! 가스는 또 왜 빼았는데?"
"그 째깐한 칼도 빼앗는데 가스가 통과될 리가 있겠냐?"
친구는 휴대용 가스도 빼앗겼다고 짜증을 내었어요. 휴대용 가스가 없으니 휴대용 버너도 이제 소용이 없었어요. 저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코펠도 없이 버너만 덜렁 들고 와서 코펠을 구입하면 그것도 일이고 짐이었거든요. 게다가 단순히 텐트를 치고 하룻밤 보내는 것과 텐트를 치고 버너로 무언가를 조리해 먹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였어요. 불을 피우는 것을 곱게 보고 넘어가줄 지도 의문이었고, 설령 무언가 조리를 해먹는다 해도 뒷처리가 문제였어요. 코펠을 설거지해야 하니까요. 이러려면 물이 있어야 했어요. 단순히 텐트를 치고 잘만한 공터를 찾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닌데, 수돗가까지 있는 공터를 찾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어요.
친구에게 짜증을 내지 말라고 한 후, 대합실로 갔어요.
대합실에는 위구르인들도 많이 있었고, 한족도 많이 있었어요.
"오늘도 달려야겠지?"
"당연하지."
대합실에 콘센트가 있나 찾아보았어요. 그러나 콘센트는 보이지 않았어요. 식당에서 친구 스마트폰을 조금이라도 충전해오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는 기차를 타면 기차 안에 콘센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어요. 침대칸의 경우에는 친구 말대로 콘센트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번에 타고 가는 기차는 침대칸이 아니라 좌석 열차였어요. 여기도 과연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을까? 중국 기차가 그렇게 좋을까? 중국에서 오래 지낸 친구가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지만 계속 의구심이 들었어요.
제가 타고 갈 기차는 21시 16분 우루무치 남역에서 카슈가르로 가는 기차였어요.
"이제 슬슬 줄 서자."
8시 20분.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친구가 슬슬 줄을 서자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플랫폼으로 가는 입구는 3개. 무난하게 가운데 입구에 줄을 섰어요. 역시나 시간이 가까워지자 아주 중국스럽게 사람들이 앞으로 몰려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상하이역보다는 상황이 나았어요. 친구와 일찍 줄을 섰기 때문에 앞쪽에 있었거든요. 게다가 의자 사이로 통하는 통로가 한참 뒤에 있다보니 그렇게 쉽게 새치기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역무원 나온다!"
역무원이 나와서 밍기적거리기 시작했어요. 이제 슬슬 개찰구 문이 열릴 때가 가까워졌어요. 역무원은 문을 열어줄 듯 말 듯 사람들 마음을 흥분시켰다 실망시켰다를 반복했어요. 그러다 드디어 개찰구 문을 열어주었어요. 이번에는 제일 오른쪽부터 열어주었어요.
"여기는 안 열어?"
"지금 뭐 하는 거지?"
제일 오른쪽 줄이 거의 빠지자 그제서야 저와 친구가 줄을 선 가운데 개찰구 문을 열어주었어요. 개찰구 문이 열리자 친구와 또 달렸어요.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달려야 했어요. 굳이 탁자를 점령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친구가 달리라고 했으니 친구 말을 듣기로 했어요. 다행히 저와 친구의 좌석에는 아무도 와 있지 않았어요. 느긋하게 탁자를 점령하고 짐을 위로 올렸어요. 저는 복도쪽 좌석이었고, 친구는 가운데 좌석이었어요.
'이번에는 우리랑 누가 같이 앉아서 가게 될 건가?'
3명이 앉는 의자 2개가 마주보게 되어 있었어요. 이왕이면 좀 괜찮은 사람, 특히 위구르인이 앉기를 바랬어요. 친구는 창가쪽 의자에 앉았어요.
잠시 후. 위구르 아가씨 두 명이 저와 친구 맞은편에 앉았어요. 그 다음에는 한족 청년이 왔어요. 청년은 친구에게 창가쪽 좌석이 자기 자리이니 나오라고 했고, 친구는 자리를 비켜주어서 제 바로 옆쪽으로 왔어요.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어요.
이제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도시락 먹자."
기차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도시락을 먹자고 했어요. 그래서 바로 도시락을 먹었어요.
"수박 먹을래?"
"아니."
친구는 수박 몇 조각을 집어먹었어요.
"왜 그것만 먹냐? 너 수박 엄청 잘 먹잖아."
"이따 먹으려구."
"오늘 푹 자야겠지? 내일 노숙하려면 말이야."
"우리 노숙이라고 하지 말고 캠핑이라고 하자."
친구에게 내일 노숙해야 하니 오늘은 일찍 자야하지 않겠냐고 말하자 친구는 '노숙'이라는 말 대신 '캠핑'이라는 말을 쓰자고 했어요. '노숙'이라고 하면 우리의 여행이 너무 비참해보인다는 이유였어요. 사실 말이 좋아 캠핑이지 노숙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일단 목적 자체가 여행 경비 절약하려고 숙소에서 자지 않고 텐트에서 자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친구가 그렇게 원하니 그렇게 말하기로 했어요.
"너 쟤들이랑 이야기할 거야?"
"아니. 그냥 일찍 자려구."
"나 기차 좀 둘러보고 올께. 화장실도 가보고."
친구에게 짐을 봐달라고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객차를 돌아다녀보았어요. 여기저기에서 위구르어가 들렸어요. 위구르인 대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어요. 그리고 민족 여부를 떠나 모두가 해바라기씨를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탁자마다 배치된 쓰레기통에는 이미 과자 껍질과 해바라기씨 껍질이 쌓여있었어요. 객차와 객차 사이에서는 사람들이 열심히 담배를 태우고 있었어요. 세면대도 입석인 사람들에게 점령당한 상태. 입석으로 탄 사람들이 객차와 객차 사이를 완벽히 점령해 버렸어요.
'이거 장난 아니겠는데?'
자리로 돌아와보니 친구는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어요.
"야, 사람들이랑 말 안 하고 일찍 잔대메?"
"쟤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어."
위구르인 처녀 둘이 제게 중국어로 뭐라고 물어보았어요.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외모, 복장 모두 위구르인이었기 때문에 우즈베크어로 혹시 우즈베크어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어머! 이 사람 우리말 알아!"
갑자기 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어느 나라 사람으로 보여?"
친구가 중국어로 위구르인 처녀 둘에게 물어보았어요.
"이 오빠는 한국인이고, 오빠는 중국인 같아요."
푸하하하! 오빠 라이러!
위구르인 처녀 둘은 저는 한국인 같고, 친구는 중국인 같다고 대답했어요. 친구는 순간 시무룩해졌고, 제가 깔깔 웃자 제 팔을 가볍게 한 대 툭 쳤어요. 그래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어찌 할 수가 없었어요. 위구르인 처녀 둘은 저와 친구의 반응을 보더니 친구에게도 '오빠도 한국인' 이라고 말했어요.
위구르인 처녀 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었지만 기차 자체 소음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어요. 게다가 위구르어와 우즈베크어의 차이를 아직 확실히 감을 잡지 못했어요. 걔들이 왜 계속 과거로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더욱이 위구르어는 우즈베크어보다 원래 말이 빠른 편인데, 얘들은 위구르인들 가운데에서도 말이 상당히 빠른 편이었어요. 우리와 이야기하다가 가끔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채팅을 하는데, 그때 위구르어를 들어보면 속사포 랩을 쏟아내는 것 같았어요.
한족 청년까지 대화에 끼어들어서 대화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가 되었어요. 저는 중국어를 몰랐기 때문에 그동안 위구르어나 조금 공부하자는 심산으로 핸드폰을 켰어요. 한국에서 올 때 위구르어 교재 파일을 구해왔거든요. 어차피 우즈베크어와 비슷한 언어이니 대충 한 번 쭉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 싶었어요. 위구르어를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서로 대충 말이 통하고 있었으니까요.
"어? 교재 어디갔지?"
핸드폰에 위구르어 교재가 없었어요. 급히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켜고 위구르어 교재 파일을 찾아보았어요. 역시나 없었어요.
"아...내가 N드라이브에 저장해놓고 그냥 왔구나!"
이때까지 핸드폰과 노트북에 위구르어 교재 파일을 저장해놓았다고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어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위구르어 교재 파일을 구한 후, N드라이브에 저장해놓고 그 파일을 지워버렸어요. 핸드폰에도, 노트북에도 위구르어 교재 파일은 저장해 놓지 않았어요.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이니 교재를 N드라이브에서 다운받을 방법이 없었어요.
더욱이 기차에는 친구의 호언장담과 달리 콘센트가 없었어요. 친구도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핸드폰을 껐어요. 친구에게 위구르어 교재를 다운로드하기 위해 핫스팟을 켜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어요. 배터리 문제도 있고, 그 교재 파일 용량이 적지 않아서 데이터 사용량에도 문제를 줄 수 있었거든요. 얘들이 왜 자꾸 과거로 이야기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천상 숙소에 들어가서 와이파이를 이용해 위구르어 교재를 다운로드해 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얘들이 카나스 좋다고 꼭 가보라는데?"
"이번 우리 여행 동선하고 안 맞잖아. 돈도 없고. 나중에 다시 오게 되면 가자."
친구는 꾸준히 저를 챙겨주었어요. 서로 중국어로 이야기하면서 중요한 내용은 제게 한국어로 이야기해주었어요. 위구르인 여자 둘은 저와 친구가 내리는 곳과 똑같은 이 기차의 종점인 카슈가르역에서 내릴 예정이었고, 한족 청년은 아크수에서 내릴 예정이었어요.
'책이나 읽어야겠다.'
카슈가르에서 무엇을 꼭 먹어야하는지 골라내기 위해 투르판에서 구입한 위구르 요리책을 꺼내었어요. 책을 천천히 읽는데 복도 건너 앞자리에 앉은 한족 아저씨가 저를 불렀어요. 뭐라고 말했어요. 당연히 못 알아들었어요. 그러자 큰 소리로, 그리고 천천히 제가 또 말했어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아듣냐?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당하면 황당한 중국인들의 습관. 중국인들은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상대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떠나서 무조건 천천히, 그리고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해요.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더 천천히,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해요. 중국에 소수민족이 많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라고 봐요. 중국이 아닌 나라에서 영어를 못하는 중국인들은 무조건 이렇게 하거든요. 그냥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중국어를 모른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맞을 거에요.
"저 사람 뭐라고 하는 거? 나한테 중어로 뭐라고 한다."
친구에게 중국인 아저씨가 자꾸 제게 뭐라고 한다고 말했어요. 친구가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었어요. 별 것 아니었어요. 제가 위구르인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위구르어로 된 책을 보고 있으니 매우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위구르어를 아냐고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아저씨는 제게 책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어요. 아저씨께 책을 건네었어요. 이 한족 아저씨는 당연히 위구르어를 몰랐어요. 그래도 책에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아저씨는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어요. 책장을 몇 장 넘기더니 제게 돌려주었어요. 이번에는 위구르인 여자들이 제게 책을 읽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제가 읽을 수 있다고 하자 매우 놀라며 한 번 소리내서 읽어볼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어요. 위구르어 적힌 것을 읽는 것이라 어려울 것은 없었어요. 소리내어서 적힌 것을 그대로 읽어주자 위구르인 여자 둘과 한족 청년은 매우 놀라워했어요.
"야, 나 위구르어 좀 알려주라."
친구는 제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어요. 친구가 중국어를 하는 것에 대한 반응보다 제가 우즈베크어를 몇 마디 하고 위구르어를 읽는 것에 대한 반응이 훨씬 좋았어요. 친구에게 간단히 인사말을 알려주었어요. 친구가 위구르인 여자들에게 우즈베크어로 인사를 하자 위구르인 여자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친구가 위구르어에 관심을 가지자 위구르인 여자들이 숫자 세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하며 제게 숫자 한 번 세어보라고 했어요. 우즈베크어로 숫자를 세자 제게 자기들 말을 매우 잘 한다며 매우 좋아했어요.
위구르인 여자들이 이번에는 위구르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틀어주기 시작했어요.
"이거 우즈베키스탄 노래야."
"이 노래 알아?"
"응! 나, 이 노래 매우 좋아해!"
이 노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우즈베키스탄 노래 중 하나였어요. 어느 정도였냐 하면 이 노래를 처음 듣고 우즈베키스탄과 우즈베크어에 반해서 우즈베크어를 공부하기 위해 1년간 우즈베키스탄으로 어학연수 가기로 마음먹을 정도였어요. 이 노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정말 유명한 가수인 Shahzoda 가 부른 'Assalamu Alaykum'이라는 노래였어요. 노래 가사 내용은 신께 기도드리는 기도문이에요. 중앙아시아의 신비로운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리는 노래에요. 그런 노래를 제가 잊어버렸을 리가 없었어요.
(샤흐조다 - Assalamu Alaykum 은 예전에 블로그에 쓴 적이 있어요 http://zomzom.tistory.com/582)
"한 번 불러볼래?"
"아냐. 가사는 몰라."
여자 노래인데 제게 불러보라고 했어요. 얘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어요.
기차가 역을 통과할 때마다 사람들이 계속 올라탔어요.
"야, 봐봐. 내 말이 맞지?"
"헉...진짜네."
기차 내부 상황을 사진으로 찍고 싶었지만 너무 눈치보여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친구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기차 내부를 사진으로 찍었어요.
"명절 때에는 이거보다 더 심해. 사람들 너무 많아서 짐칸에 올라가서 드러누워서 간다니까? 그때는 워낙 많이 타서 승무원도 그냥 눈감아줘."
기차 내부 상황은 딱 친구가 말한 그런 상황이었어요. 사람들이 의자 밑에 기어들어가 눕고, 객차 사이에 쭈그려서 자고 있었어요. 객차 사이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엄청 태워대어서 객차 전체에 담배 냄새가 흘러다니고 있었어요. 노래 부르는 소리, 해바라기씨 하는 소리가 진동했어요. 세면대 위에 앉아서 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당연히 안에서 신발을 벗은 사람들도 많았어요. 발냄새에 담배 냄새가 양념이 되었어요. 여기에 중국 라면 냄새. 썩은 빙초산 같은 중국 특유의 식초냄새도 어우러졌어요. 실제 기차 안 상황은 저 사진보다 더 열악했어요. 일단 저 사진보다 더 붐볐고, 사진에서 그 악취는 뿜어져나오지 않으니까요.
친구는 계속 잡담을 나누었고, 저는 잠이 들었어요.
"허리 엄청 아프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깨어났어요. 이것은 허리가 안 좋아서 고통을 느낀 것이 아니었어요. 중국 기차 좌석이 정말 형편없었기 때문에 깨어난 것이었어요.
위의 사진을 보면 중국 기차 좌석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어요. 실제로는 좌석과 등받이가 거의 90도에요. 그리고 최대한 기차 안에 사람들을 많이 우겨넣기 위해 의자 등받이가 1개이고, 이 등받이 하나를 놓고 앞뒤로 두 명이 기대어 앉게 되어 있어요. 의자 등받이가 낮은 것도 아니다보니 척추와 목은 일직선이 되어버렸어요. 허리를 뒤로 젖히지도 못하고 90도로 세워서 앉는데, 여기에 척추와 목이 일직선. 우리나라 지하철 의자는 이 중국 기차 좌석에 비하면 푹신한 침대였어요. 목을 뒤로 젖힐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지 깨달았어요. 목을 뒤로 10도만 젖혀도 살 것 같겠는데, 그게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 머리가 앞으로 쏠렸어요. 의자가 푹신했냐면 그것도 아니었어요. 의자는 딱딱했어요. 아무리 목을 젖혀보기 위해 힘을 주어봤자 의자가 뒤로 푹 들어가지 않았어요. 여기에 좌석은 하필 마주보는 좌석인데, 이 간격도 좁았어요. 편안함이고 나발이고 그딴 거 없었어요. 앞으로 상체가 쏠리면 상체가 바로 무릎까지 굽혀지고, 맞은편 앞좌석과의 간격이 좁으니 엉덩이를 쭉 뺄 수도 없었어요. 게다가 한 의자에 3명이 앉게 되어서 실상 다닥다닥 붙어서 가야 했어요. 옆으로 쓰러져 잘 수도 없었어요.
왜 창가쪽 좌석이 좋은지 알게 되었어요. 탁자에 엎드려 자면 그나마 편하게 잘 수 있었거든요. 중국의 기차 좌석은 가히 쓰레기였어요. 그냥 기차 안에 최대한 의자 많이 우겨넣으려고 인체 공학 따위는 분서갱유시켜버렸어요. 목베개 따위 소용없었어요. 머리가 자연스럽게 앞쪽으로 쏠리게 된 구조라 목베개가 도움이 될 상황이 아니었어요. 앞사람과 다리를 교차하며 다리를 쭉 펴고 엉덩이를 잡아빼었지만, 목이 앞으로 쏠리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못했어요.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면 벽에 기대어 앉아 잠을 자보시면 되요.
'확 바닥에 누워서 갈까?'
기차, 버스에서 잠을 자고 야간 이동을 한 경험이 상당히 많은데, 중국의 기차 좌석은 차원이 달랐어요. 입석으로 기차를 타서 바닥에 드러누워 자는 사람들이 안 되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보다 더 편하게 자고 있었어요.
창밖 하늘은 뿌옜어요.
사막에서 토사가 휘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보였어요.
아침 8시 9분. 한족 청년이 내릴 역인 아크수에 도착했어요. 중국어로는 '아커쑤' 阿克苏 라고 하는 곳이에요. '아크수'의 뜻은 '맑은 물'이라는 뜻이에요.
"나는 내려서 바람 좀 쐬어야겠다. 허리 끊어지겠네."
"나도 같이 내릴래."
"그럼 귀중품 잘 챙겨."
제가 기차에서 잠깐 내리겠다고 하자 친구도 따라서 내리겠다고 했어요.
기차에서 내려서 스트레칭을 했어요. 우리가 이제 용감한 사람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돈을 절약하기 위해 기차표를 전부 좌석칸으로 구입했는데, 이 말은 지금 느끼는 고통을 앞으로 계속 느껴야한다는 것이었어요.
"어때? 힘들지?"
"의자가 왜 저따위냐? 아...이거 장난 아니네."
"시안에서 상해로 돌아갈 때는 침대칸 탈까?"
"아니. 돈 많이 남으면."
친구가 제가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푸는 것을 보더니 중국 기차를 만만히 보지 말라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주었어요. 하지만 이것은 선택이 아니었어요. 침대칸과 좌석칸의 요금 차이는 상당했어요. 여행 경비를 상당히 적게 잡았기 때문에 이 고통을 무조건 감내해야만 했어요. 친구나 저나 여행 경비 중 제일 아까운 것은 바로 숙박비였어요.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좌석칸 야간이동을 해야만 했어요.
"가다가 너무 힘들면 그때 침대칸으로 바꿔도 돼."
"아니. 그래도 할 만 하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냥 상당히 많이 불편했을 뿐이었어요. 조금 많이 상당히 불편하기는 했지만, 견딜 수 있었어요. 의자에 오래 앉아서 허리 아픈 것보다 사실 자세가 불편해 자꾸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문제였어요.
아크수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렸고, 많이 올라탔어요.
기차를 다시 탔어요.
"우리 옆에 제발 사람 좀 안 왔으면 좋겠다."
"그러게. 그러면 좀 더 넓게 앉아서 갈 텐데."
서로 다닥다닥 붙어서 앉으니 더웠어요. 우리가 앉은 의자 창가에 아무도 안 앉는다면 최소한 저와 친구가 떨어져 앉을 수는 있었어요.
친구와 좌석에 앉아서 아무도 오지 말라고 비는데 한족 아저씨가 자기 자리라고 앉겠다고 왔어요. 어디서 얻어터진 고양이 얼굴에 찌푸린 표정이었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뭐라고 계속 궁시렁거리더니 갑자기 친구와 소리지르며 말싸움하기 시작했어요. 친구와 말싸움하다 갑자기 저와 눈이 마주쳤어요. 한족 아저씨는 저를 노려보았어요.
이거 미친 놈일세?
중국어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일단 한족 아저씨가 친구에게 시비를 건 것은 맞았어요. 친구는 가만히 앉아 있었고, 한족 아저씨가 자리에 앉아서 뭐라고 계속 궁시렁대며 입을 나불대며 시끄럽게 굴다가 친구와 말다툼이 붙은 것이었거든요. 친구는 가만히 앉아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어요. 그리고 친구와 말싸움하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저 역시 눈동자를 정면으로 똑바로 노려보았어요. 한족 아저씨는 바로 눈을 깔고 창가 구석에 기대었어요.
"이래서 중국어 알아듣는 것이 다 좋지는 않아."
"갑자기 왜?"
친구 말에 의하면 한족 아저씨가 자리에 앉더니 탁자가 왜 이렇게 더럽냐고 계속 궁시렁대었대요. 친구가 더 화가 난 것은 자기들도 똑같이 탁자 어지럽히고 독점하는 주제에 자기가 물건 놓을 공간이 없으니 계속 이기적이네 어쩌네 신경 긁는 소리를 했다는 것이었어요. 저라면 설령 알아듣더라도 '나 외국인, 한국어로 지껄여주시기 바람' 이러면서 무시해버릴텐데 친구는 참 친절하게 중국어로 그 한족 아저씨와 말다툼을 해주었어요. 한족 아저씨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자 친구가 화가 나서 억울하면 역무원 불러오라고, 역무원이 치우라고 하면 치워주겠다고 소리쳤대요. 당연히 역무원에게 탁자에 자기 물건 놓을 공간 없다고 하소연하러 가면 그야말로 멍청한 중국인 인증. 외국인이 역무원에게 그렇게 하소연한다면 중국에 대해 모르니까 그런다고 생각하겠지만, 중국인이 역무원에게 가서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많이 모자란 사람으로 비추어질 것이 뻔했어요. 친구가 그렇게 외치자 할 말이 없어져서 불만 가득한 얼굴로 구석에 짜그라져 앉게 되었대요.
"곱게 말해주면 당연히 치워주지. 그런데 그렇게 개같이 말해주면 내가 뭐가 좋아서 치워주겠냐?"
친구가 화가 나서 이야기했어요.
이 한족 아저씨 때문에 앞좌석 위구르 여자들과의 대화는 아예 없어져버렸어요. 커다란 오물 덩어리 앞에 앉은 것처럼 표정이 딱 굳어버렸고, 아예 말을 하려 하지 않았어요.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투르판에서 화염산을 가보지 못했어요. 그러나 창밖으로 보이는 산은 사진으로 본 화염산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한족 아저씨는 다리를 쫙 벌렸어요. 그 좁은 좌석에서 일부러 친구에게 몸을 밀착해 친구를 밀어내고 다리를 최대한 쫙 벌리려 노력하고 있었어요.
"자리 좀 바꿔주면 안 돼? 너무 불편하다."
"알았어."
한족 아저씨는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리를 90도까지 벌렸어요. 당연히 가운데 자리를 많이 침범했어요. 친구가 복도로 나간 후 제가 가운데 자리로 옮기자 다리를 살짝 안쪽으로 모았어요. 그러나 역시나 제 자리에 다리가 넘어와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친구에게 했던 것처럼 저를 밀어내려고 했어요.
'뭐 이따위 잡것이 다 있어?'
이 한족 아저씨가 친구에게 시비를 걸어서 분위기 삭막해진 것도 짜증나는 판에 친구에게 했던 것처럼 저도 옆으로 계속 밀어내려고 발악했어요. 하지만 저는 친구처럼 착하고 너그럽지는 못했어요. 제 쪽으로 몸을 붙이고 다리를 벌리려고 하자 다리로 아저씨 다리를 확 접어버리고 몸으로 확 밀어버렸어요. 계속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시비를 걸려고 하니 똑같이 답해주었어요. 구석에 직각 인간으로 짜그라져서 앉아있게 만들어 버렸어요. 계속 시비를 걸던 한족 아저씨는 군대에서 신병이 각잡고 앉듯 앉았고, 친구는 보다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게 되었어요.
모두가 아무 말 없었어요. 위구르 여자들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친구는 계속 졸았고, 저는 창밖만 계속 바라보았어요. 한동안 그렇게 구석에서 직각 인간으로 앉아 있게 하다가 딱 제 자리까지 돌아왔어요. 아저씨는 직각 형태에서 풀려났어요.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무언가 쓰기 시작했어요. 무엇을 쓰는지 보니 옥 장삿꾼이었어요.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계속 무언가를 계산해가며 여러 가지 옥의 수량과 가격을 적고 있었어요.
사막이 끝나고 포도밭이 나왔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사막이 나왔어요.
한족 아저씨는 더 이상 저와 친구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어요. 그러나 삭막해진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어요. 앞좌석 위구르인 여자들에게 우즈베크어로 말을 걸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단답형 대답 뿐이었어요. 한족 아저씨는 카슈가르 바로 전 역인 Atushi 역에서 내렸어요. 그러나 어색하고 삭막한 분위기는 전혀 가시지 않았어요. 그 아저씨는 저와 친구가 갖고 있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긍정적인 한족 이미지를 상당히 망쳐놓는 데에 성공했어요.
2016년 6월 2일 오후 2시. 드디어 카슈가르역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