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2011. 12. 2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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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입국이 어떻게 될 지 확실히 아는 것이 없었어요. 분명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고는 했는데 입국이 가능할지 불확실했어요.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여기를 갔다 온 사람들이 많지 않고 무슨 카드를 작성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안 되면 알바니아로 돌아가면 되죠."


심각하게 걱정하는 후배에게 간단히 말했어요. 안 된다고 하면 알바니아로 돌아가서 마케도니아로 들아갈 생각이었어요. 마케도니아도 무비자. 알바니아에서 마케도니아로 나가는 것이 문제였기는 했어요. 티라나에 버스 터미널이 제대로 있는 게 아니라서 보나마나 물어물어 나가야 할텐데 영어가 전혀 안 통하다보니 물어보며 찾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최후의 보루인 그리스가 있었어요. 티라나에서 그리스로 나가는 방법은 확실히 알고 있었어요. 어떤 곳이든 수도 티라나까지는 연결될테고, 그러면 티라나로 돌아가서 그리스로 나가는 방법도 있었어요.


사실 마케도니아가 무비자이기는 했는데 국경심사에서 여행자 보헙 가입 여부를 따진다고 했어요. 무비자로 마케도니아 입국하려면 여행자 보험이 필수라고 했어요. 그러나 저는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어요.


'긴 밤이 되겠군.'


우리가 탄 버스는 마케도니아 국경을 통과해 코소보로 들어가는 버스였어요. 어두운 창밖.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버스는 두러스를 들려 열심히 달렸어요.


'국경심사 잘 통과해야 할텐데...'

버스는 오흐리드 호수로 갔어요. 이 버스가 넘은 국경은 오흐리드 호수에 있는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국경. 국경심사를 받기 위해 버스에서 내릴 필요도 없었어요. 버스기사가 여권을 싹 걷어가더니 잠시 후 여권을 돌려 주었어요. 여권에는 마케도니아 입국 도장이 찍혀 있었어요.


'일단 마케도니아는 들어왔고 이제 코소보 남았구나.'


일단 마케도니아는 들어왔어요. 코소보 입국이 거부되더라도 마케도니아에서 이동하면 되요. 알바니아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 같았어요. 더욱이 마케도니아어는 불가리아어와 거의 비슷하다고 했어요. 아주 오래 전, 불가리아어를 공부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간단한 말을 한 마디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어요.


국경심사가 끝나자 저와 후배 모두 정신없이 잤어요. 버스 안이 시끄러워져서 눈을 떠 보았더니 휴게소에 도착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내려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야식으로 조각 케이크 한 개를 사 먹었어요. 다행히 현지화 외에 유로도 받아주었어요.


배를 채우고 버스로 돌아가려다 후배가 계속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생각났어요. 왠지 후배가 배가 고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각 케이크를 하나 사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포장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빈 손으로 다시 버스로 돌아갔어요.


"일어나요. 휴게소에요."

후배가 일어났어요. 후배를 데리고 가서 조각 케이크 하나를 사 주었어요. 후배가 조각 케이크를 다 먹자 나와서 담배를 한 대 다시 태우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다시 잤어요. 열심히 잠을 자지 않으면 밤을 새야 했어요. 오늘은 야간이동. 내일도 야간이동이었어요. 여행을 35일 동안 할 건데 숙소에서 잘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계획은 매일 버스로 야간 이동하기. 한때 집에서 학교까지 매일 버스로 통학했어요. 이때는 하루에 버스를 4~5시간씩 탔어요. 그래서 버스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일어나요! 프리슈티나 다 왔어요!"

"응? 프리슈티나라구요?"


국경심사 받으라고 깨운 줄 알았는데 프리슈티나라고 했어요. 후배는 화가 나 있었어요.


"믿기는 뭘 믿으라는 거에요? 아주 무서워서 혼났는데요. 깨워도 일어나지도 않구."


후배 말로는 마케도니아 - 코소보 국경 심사 때문에 저를 깨웠대요. 그런데 제가 일어나지 않아서 제 여권을 꺼내 자기가 버스 기사에게 여권을 전해 주었대요. 무슨 일이 있었는제 제대로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입국심사가 엄청나게 까다로워서 후배 혼자 속으로 '혹시 여기서 입국거부당하고 추방당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엄청 걱정했대요.


"어쨌든 잘 왔잖아요. 그러면 되었죠."

화가 난 후배에게 말했어요. 어쨌든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프리슈티나. 시각은 새벽 5시. 버스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안 보였어요. 우리와 같이 버스를 탄 사람들은 모두 자기 갈 길을 가 버렸어요. 일단 버스 시각을 확인했어요.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가는 버스가 오전 10시 30분에 있었어요. 이스탄불 직행 버스는 없었어요.


"10시 30분 마케도니아 스코페 버스를 타야겠는데요? 이스탄불행 버스는 없네요."

겨우 고생 끝에 코소보로 나왔는데 이스탄불행 버스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단 스코페로 다시 나가야 했어요.


프리슈티나에 왔기 떄문에 구경이나 조금 하다 가기로 했어요.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들어갔어요.



코소보 프리슈티나 시내. 수도라는 인상은 없었어요. 사진 속 어느 사람의 초상화와 'Bac, u kry!'라고 적힌 간판은 정말 많이 보였어요. 아직 너무 이른 새벽이라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어떤 사람의 동상인지 알 수는 없었어요.



아무도 없는 거리. 정말 너무 황량했어요. 거리는 깨끗했지만 뭔가 우울함이 느껴졌어요.



테레사 수녀의 동상.



스칸데르베그의 동상.


알바니아인들의 나라라는 것은 언어 외에도 테레사 수녀의 동상과 스칸데르베그의 동상을 보고 알 수 있었어요. 알바니아인들에게 테레사 수녀와 스칸데르베그는 매우 중요한 위인이에요.



날이 슬슬 밝아오는데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어요. 알바니아 티라나에 있을 때에는 날이 따스했는데 여기는 밤새 비가 내려서 스산했어요.



전쟁의 희생자들. 여기는 지독한 전쟁 끝에 독립한 나라에요. 우리나라는 독립 국가로 인정했지만, 아직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서 국제적으로 완벽히 독립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했어요. 이 나라의 알바니아인들은 독립을 위해 세르비아와 전쟁을 벌였어요. 그러나 말이 좋아 전쟁이지 실제로는 세르비아의 무차별 학살. 나토와 미국의 폭격으로 겨우 독립을 얻어내었어요. 세르비아인들에게는 자신들 민족주의의 뿌리라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땅이지만 지금은 알바니아인들의 엄연한 독립국가. 거리에서 직접적인 전쟁의 흔적을 볼 수는 없었어요. 폭격 자국이나 총탄, 포탄 자국 같은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전쟁의 희생자 사진들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볼 수 있었어요.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매우 중요해 보이는 것들.



프리슈티나 거리 대부분은 이렇게 후줄근한 건물들이었어요.


코소보에서 그나마 토요일 새벽부터 돌아다니기 편했던 이유는 여기에서는 유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프리슈티나 시내 버스 내부. 여기는 유로를 사용해서 티라나보다는 물가가 더 비싼 것 같았어요.


버스를 탄 이유는 코소보 우표를 사러 우체국에 가기 위해서였어요. 프리슈티나에서는 영어가 꽤 잘 통했어요. 그 이유는 아마 UN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닌가 싶었어요. 코소보의 독립은 전적으로 미국과 NATO의 작품이에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때 코소보는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코소보 자치주였어요. 문제는 이 지역이 유고슬라비아 연방 전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는 것. 더욱이 여기 주민들은 알바이나인들이어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와의 충돌이 계속 있었어요.


1989년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밀로셰비치가 코소보 자치주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인들을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어요. 유고슬라비아가 내전에 돌입하자 코소보도 독립 준비를 하려 했지만 코소보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던 공화국 지위도 아니었던데다 상대가 세르비아였어요. 유고 내전 중 세르비아 본토는 단 한 번도 공격받지 않았어요. 그저 세르비아가 다른 유고슬라비아 연방 구성 공화국 군대를 쓸고 다녔을 뿐.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코소보 해방군과 세르비아군의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당연히 이건 게임도 안 되는 전쟁. 이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었어요. 세르비아군이 인종 청소를 시작하자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었고 미국과 나토는 정말 개입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어요.


(왜 미국과 나토가 개입하고 싶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No man's land'라는 영화를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과거 유고 내전에 개입했다가 무력하고 무능한 모습만 잔뜩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 지역 문제에 개입할 마음이 없었어요. 더욱이 상대는 아무리 힘이 빠졌어도 발칸의 맹주이자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세르비아.)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폭격. 78일동안 지속되었어요. 이때 미국은 F-117A 스텔스 폭격기 격추당하고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폭격해서 아주 망신을 당했어요. 그래도 이 덕분에 세르비아군은 코소보에서 철수했고, 2008년 2월 17일 코소보는 독립을 선언했어요.


제가 갔을 때, 코소보에는 UN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었어요. 미국이 독립시켜 주었고, UN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영어를 매우 잘 하는 것 같았어요.



우체국에 가서 코소보 우표를 산 후,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이제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야할 시간.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마케도니아 스코페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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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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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ㅎㅎ 저도 따라갔다가 온듯한 느낌이 듭니다.

    2013.10.06 01:43 [ ADDR : EDIT/ DEL : REPLY ]
    • 저곳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저도 궁금해요. 제가 갔을 때에는 꽤 삭막하고 스산했거든요 ㅎㅎ;

      2013.10.07 03:27 신고 [ ADDR : EDIT/ DEL ]
  2. 거리가 좀 삭막해보여요~~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요..
    그래도 부럽네요..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이후 못갔어요~ㅋ

    2013.10.06 23: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날씨 탓도 있고, 역사적 이유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갔을 때에는 삭막, 스산, 황량한 느낌이었답니다. 당연히 코소보 여행 정보도 없고 여행 홍보도 없어서 코소보 전체를 돌아다닐 생각은 하지를 못했어요 ㅎㅎ;;;

      2013.10.07 03:32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