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05 알바니아 오흐리드 호수

좀좀이 2011. 12.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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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나타난 광경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어요.


호수다!


호수가 웃어 넘길 호수가 아니었어요. 완전 바다 수준의 호수였어요.


티라나 근처에 호수 없어...시계는 조금 있으면 3시야...지금부터 티라나로 달려가야 겨우 3시 도착을 맞출 수 있어...


너무 당황해서 옆 사람에게 안 되는 알바니아어로 물어보았어요.


"키 어슈트 에메르 이...(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킴)"

"미ㅏㅓㄹ;ㅁ냐ㅐㅔㅇ러"


순간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어요. 알바니아에는 정말 유명한 호수가 있어요. 무조건 봐야만 해요. 이건 무조건 보고 시작해야만 해요. 그것은 바로...


오흐리드 호수!


"오흐리드?"

"뽀!"


뽀(Po)는 알바니아어로 '예'에요. 오흐리드 호수가 맞았어요.


오흐리드 호수는 티라나 가는 길과 전혀 관계없어...


아무리 아무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났다지만 알바니아에 대해서는 약간 알고 있어요. 대학교 4학년때 발칸 유럽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제가 알바니아를 발표했거든요. 발표하는 사람은 A+이 거의 확정이라는 말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지만 저는 알바니아가 유독 좋았고, 그래서 가장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가위바위보를 바닥-주먹-가위 콤비네이션으로 이겨서 발표했어요.


그래서 대충 알바니아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알바니아를 설명하면서 오흐리드 호수도 설명했거든요. 문제는 코르차에서 티라나 가는 길과는 전혀 상관 없다는 것. 오흐리드 호수는 마케도니아와 양분되어 있어요. 그래서 마케도니아에서 오흐리드 호수로 갈 수 있고, 알바니아에서도 오흐리드 호수로 갈 수 있어요. 마케도니아에서 오흐리드 호수에 있는 국경을 통해 알바니아로 넘어올 수도 있구요. 마케도니아-알바니아 국경검문소가 오흐리드 호수에도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알바니아 입장에서 오흐리드 호수는 남서쪽에 있고 티라나는 거의 중앙에 있다는 것.


버스는 사란다로 넘어왔어요. 거기에서 코르차로 왔어요. 그래서 동쪽 국경선을 타고 올라간다고? 베라트로 바로 가면 되는데? 더욱이 중간 경유지가 처음에는 코르차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러면 반드시 베라트로 바로 올라가야 해요. 그런데 나와서는 안 될 오흐리드 호수가 나온 거에요.



이왕 나온 거 구경이나 하자는 심산이었어요.


"이런 망할!"

산을 넘어 오흐리드 호수로 내려가는데 전경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어요. 문제는 제가 앉은 차량 오른쪽은 계속 산, 맞은편 후배가 앉은 차량 왼쪽은 계속 호수였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전경은 이거 한 장 건졌어요.



호숫가로 내려가는 길에 이렇게 휴게소도 있었어요.



오흐리드 호수 근처의 마을.



차가 호숫가로 내려가는 듯 하더니 호수와 멀어졌어요.


"차가 제 길로 들어가는구나."


안심했어요. 차는 어느 마을로 들어갔어요. 마을에서 본 성당. 이슬람 국가라고 하는데 성당이 모스크보다 많이 보이는 거 같았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모스크는 사실 거의 보지 못했어요. 성당은 몇 개 보았지만 모스크는 고사하고 미나렛(첨탑)조차 보지 못했어요. 이것은 멀리 있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하여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유럽의 대표적 이슬람 국가라고 하는데 사원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어요. 엔베르 호자가 무종교 국가를 선포하면서 모스크만 다 때려부수었나? 참고로 공산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는 세계 최초로 전 국민이 무신론자라고 공식 선포해요. 이것은 소련조차 감히 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안심했어요...아니, 방심했어요. 마을 하나를 돌아 다시 호숫가로 돌아왔어요.



가까이에서 보이는 호수에요. 아름답기는 해요. 단지 차가 너무 빠르고 날이 안 좋아서 셔터 스피드가 도저히 안 따라준다는 것, 더욱이 유리창이 더러운데 김까지 자꾸 서린다는 것. 참 눈물날 일이었어요. 잠깐이라도 세워주고 사진 찍을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세워달라는 알바니아어도 모르고 모두 알바니아인. 더욱이 이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차를 세워달라고 말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정말 아름다운 오흐리드 호수.



역시 오흐리드 호수에도 벙커가 있었어요. 이것은 아마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겨냥한 것 같아요. 발칸의 맹주 유고슬라비아 연방과도 용감하게 사이가 안 좋았던 알바니아. 정말 이 나라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모든 강국과 사이가 안 좋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에요. 정말 자원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 나라인데요.



벙커와 호수와 산. 아마 저 산은 마케도니아일 거에요. 아니면 우리가 버스로 타고 넘어온 산이거나요. 어쨌든 한 쪽은 비자 문제로 절대 들어가기 싫은 마케도니아.



아주 호수 바짝 차가 갔어요. 호수 순환도로 정도 되는 것 같았어요. 가까이서 보니 바다였어요. 빠지면 많이 추울 거 같았어요. 말이 봄이지 날씨 거지같은 겨울이었어요.



호수 근처 민가. 사람이 안 사는 것 같았어요. 낡아도 너무 낡았어요.



호숫가. 그냥 말이 필요없어요. 무지 크고 아름다워요.



이건 무엇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차는 다시 산으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올라가면서 호수가 다시 시원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역시 여기도 양이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제대로 나타난 오흐리드 호수의 아름다운 모습. 여기에서 하루 정도 푹 쉬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날이 따뜻하다면요. 당장 내려서 쉬라고 하면 아마 추워서 재미없었을 거에요.



나중에 후배가 알려주셨는데 뒤에서 저와 후배가 사진 찍고 있으니 천천히 가라고 한 승객이 기사와 차장에게 주문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마구 달리던 차가 여기에서 갑자기 약간 속도를 줄였어요. 길이 안 좋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더라구요. 어쨌든 사람들이 무뚝뚝해 보였지만 일단 말을 걸면 반응이 좋았던 알바니아행 버스라고 우기는 15인승 승합차 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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