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02 그리스

좀좀이 2011. 12. 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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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2


국경심사 받을 때까지 자지 않고 있었어요. 국경심사를 받고 나서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어요. 제가 일정을 짜고 총괄하는 여행은 처음인데다 옆에는 여자 후배가 있었어요. 07학번 후배인데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다고 해서 지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을 자지 못했어요. 그러나 피곤한 것은 저도 마찬가지. 터키로 나오기 전에 술 먹고 숙면을 취한 것이 아니라 술 먹고 속이 계속 안 좋아서 깊게 잠을 자지 못했어요. 더욱이 해외에서 일하는 동안 계속 방에서 꼼짝하지 않다가 밖에 기어나와 하루종일 있었더니 너무 피곤했어요. 얼마나 운동을 안 했는지 잠시 외출 한 번 해도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결국 국경심사 받고 잠들었어요.


"오빠, 일어나세요. 테살로니카 도착했어요."

기억의 끝은 어느 한 그리스 도시에 버스가 들어갔다는 거에요. 새벽에 버스가 그리스 도시에 들어갔으니 거리에 사람이 있을리 만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글자들이 그리스어 글자로 변해 아무 것도 알아볼 수 없다는 것과 왠지 너무 낡아 보인다는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어요. 그렇게 도시들을 보다 잠시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보니 테살로니카였어요.


버스에서 잠이 덜 깬 상태로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왔어요. 추운 날씨에 잠도 덜 깨서 나오자마자 엄청난 추위를 느꼈어요.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고 버스정거장 역할도 함께 하는 작은 카페 하나만 있었어요. 생긴 것은 꼭 달동네 입구처럼 생겨서 주변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좀 고지대에 집들이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티라나 가는 버스 탈 수 있나요?"

"ㅏㄴ멀;ㄴ먕ㄹ;ㅁㄶㅁ;냐ㅓ"

영어로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어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어요. 못하는 영어 하나 믿고 있었는데 그 영어를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일단 시간이 새벽이다보니, 그리고 잠도 덜 깨고 추워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정신을 차리기로 했어요. 커피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하고 알바니아 티라나행 버스를 알아보았어요. 말하는 것을 전혀 못 알아들었지만 대충 '여기에서는 없고 기차역에 가면 있다'는 것 같았어요.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알려준대로 가보니 화장실이 없었어요. 할 일 없이 커피 마시고 담배만 태우다가 일단 급한 것이 글자를 읽는 것이라 그리스 문자 몇 개를 익히기로 했어요.


"저거...ㅣ;ㅁ랴ㅓ?"
"?"
무작정 간판을 가리키며 키릴문자 비슷하게 생긴 것을 읽으며 맞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런 식으로 글자 몇 개를 배우고 시간을 보내다 밖으로 나왔어요.


밖에서 일단 큰길로 나가 가판대 점원에게 알바니아행 버스는 어디에서 타는지 물어보았어요.

"역 쪽으로 가세요."

그래서 기차역으로 갔어요.



기차역에 들어갔더니 인터레일 패스도 팔고 있었어요. 인터레일만 있으면 유럽여행은 기차로 느긋하게 다녀도 되요. 그래서 구입할까 하다가 유로도 없고 귀찮아서 일단 밖으로 나왔어요.



이것이 테살로니카 역 앞 거리에요. 별로 볼 건 없어요.



아무리 봐도 터키와 별 차이 없어보이는 후즐근함...유럽이라고 해서 무언가 삐까뻔쩍함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어요. 그냥 후즐근하고 공사중이 많아서 다니기 나빴어요.


역에서 나오자마자 대각선으로 앞에 무언가 보였어요.

- Alba Trans

알바 트랜스? 아르바이트생 전용 기차? 그 아래 '티라나, 두러스, 코르차' 등등 알바니아 도시들이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일단 갔어요.
"알바니아 가나요?"

"알바니아 어디요?"

"티라나요."

"지금 타시면 되요."

상황의 급전개


"언제 티라나 도착하나요?"

"오후 3시면 도착해요."

오후 3시 도착이라면 나쁘지 않아요. 이때에만 해도 1박하고 다른 도시 떠난다는 기본적이고 정상적인 여행계획이 머리 속에 있었어요. 3시에 도착하면 느긋하게 숙소 찾고 저녁 먹고 밖에 조금 돌아다니다 9시쯤 잠을 자면 전날 버스 이동의 여독을 다 풀고도 남겠다고 생각했어요.


"표 2장 주세요."

후배가 테살로니카는 터키 국부 아타튀르크의 고향이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후배는 테살로니카를 그냥 떠나는 것을 약간 아쉬워 하셨어요. 하지만 어차피 알바니아 티라나 갔다가 여기로 나올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때 와서 보자고 했어요. 후배와는 티라나만 갔다 돌아 나올 계획이었어요.


"따라오세요."

따라오라고 해서 가는데 으슥한 뒷골목 비슷한 길로 들어갔어요. 순간 속은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버스 회사라고 보기엔 너무나 허름하고 작은 사무실. 표는 정상적으로 생겼어요. 하지만 전혀 믿음이 안 갔어요. 그래도 티라나까지 가는 방법이 이것 외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탄 것은...



15인승 승합차!!!!!

승합차도 자리가 별로 없었어요. 일단 날이 추웠기 때문에 제일 뒷자리 구석에 들어갔어요. 좋은 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다 앉아 있었어요. 차가 막 떠나려고 하는데 사무실 직원이 전화로 급히 연락하고 가려는 차를 세워서 우리를 태운 것이었어요.



좁디 좁은 승합차라 해도 오후 3시 도착이라면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승합차라 더 빨리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것은 그리스 테살로니카 도착하자마자 2시간만에 테살로니카를 떠난다는 것이었어요. 7시 전에 도착해 8시까지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담배 태우며 시간 보내다가 길 찾아 나오자마자 알바니아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알바니아행 버스에 올라탄 시각은 오전 8시 45분. 불과 2시간 정도 체류했어요.


승합차는 그리스의 한 도시에 도착했어요. 정거장에는 알바트랜스 광고 포스터가 붙어있었어요.

"저건 개사기야!!!!!"

광고 포스터에는 멀쩡한 버스가 그려져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타고 가는 것은 15인승 승합차. 저런 버스에 타고 갔으면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가지, 승합차라 다리를 펴고 말고는 둘째치고 팔을 뻗을 공간조차 제대로 없었어요. 완전 화물처럼 빡빡 우겨넣은 듯한 분위기였어요. 더욱이 어떻게 된 것인지 만석이었어요. 테살로니카에서 티라나 가는 사람이 15명은 되었어요. 정말 놀라운 사실. 제 예상으로는 10명이나 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2배는 더 되는 사람이 탔어요.



알 수 없는 해괴한 그림. 애들 둘이 달리는 것이야 학교 표시 쯤 되는 것 같은데 뒤에 두 알 수 없는 이상한 것들은 뭐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해 불능의 그림.



밖에 보이는 그리스의 모습은 제가 졸업한 대학교 옆 달동네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날도 흐리고 컴컴해서 그저 우울암담 뿐이었어요.


차에서 알바니아어 교재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데 저와 후배를 제외한 15명의 알바니아인 (승객13명+기사, 차장)이 모두 알바니아어를 아는 분들. 사실 알바니아어 네이티브 스피커였어요. 저와 후배는 글로벌 레벨로 해도 한국어 네이티브 스피커. 그래서 그분들께 알바니아어 읽는 법을 여쭈어보았어요. 그분들은 신기해 하시더니 친절히 알려주시고 '물'이라는 럭셔리 음료수까지 주셨어요. 알바니아어를 공부하며 재미있게 길을 갔어요. 한참 가자 어떤 산길로 들어갔어요.


"휴게소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내려서 화장실에 갔다 오는 길에 찍은 우리가 실려 알바니아로 흘러가는 승합차. 저기에 15명을 다 우겨넣었다니...


3시 티라나 도착인데 차는 가는 것 같기는 한데 느긋느긋하게 가고 있는 거 같았어요. 아무리 가도 국경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리스-알바니아 국경에서 티라나까지는 거리가 꽤 되어요. 슬슬 조바심이 났지만 주변에 영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딱 한 명 있었지만 그 사람도 영어를 거의 못 했어요.


그렇게 차에서 속으로는 긴장했어요. 더욱이 날씨는 눈까지 내리고 있었어요. 차는 자꾸 산으로 들어가는데 눈은 오고 날씨는 추웠어요. 더욱이 차는 체인이 없었어요. 이러다 하루 노숙하고 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어요.


그래도 나는 용자. 역전의 용사. 끝나지 않는 설사 속에서 모로코 여행을 완수하며 '어떻게든 돼' 정신을 키워왔어요. 오늘 도착 못하면 내일 도착하는 거에요. 저야 여행 기간이 총 34박 35일. 옆에 후배야 일정이 늦어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저야 어떻게 해도 돼. 늦으면 늦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


노래를 들으며 흘러흘러 가다가 드디어 12시가 되어서 국경에 도착했어요. 그리스 국경심사는 아주 간단히 받았어요. 그리스 국경심사를 받고 차에 올라타자 눈 앞에 드디어 알바니아 국경검문소가 나타났어요. 저 관문만 넘으면 그렇게 꿈꾸던 꿈의 알바니아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이스마일 카다레, 부서진 4월, 엔베르 호자, 피라미드 사건, 스칸데르베그, 유럽의 무슬림 국가...외부와 교류가 정말 적기로 유명한 알바니아가 저 문 하나만 넘으면 시작되는 것이었어요.



저 뿌옇게 보이는 산은 알바니아. 처음 가보는 옛 공산국가. 가슴이 떨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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