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억을 되짚어 (2014)

기억을 되짚어 02 - 남해군의 밤

좀좀이 2014. 9. 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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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24시간 하는 사우나나 찜질방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터미널 3층에 24시간 사우나가 있다고 했어요.


"우리 저 사우나에서 자자. 눈만 붙였다가 최대한 일찍 나와야 하잖아."

"혹시 모르니까 다른 곳 찾아보자."


친구가 사우나에서 자는 게 영 못마땅한지 다른 곳에 가서 잠을 청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어요.


"야, 돼지국밥집 문 열었다! 저기서 밥 좀 먹고 가자."

"나 지금 별로. 차에서 멀미해서 속 안 좋아."


이 녀석이 먹을 것을 거부할 때도 있네? 멀미 때문에 별로 먹기 싫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 읍내 나가서 숙소 찾고 식사 할 수 있으면 먹고 잠을 청하자고 제안했어요. 친구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돌아다니면 된다고 했지만, 제 기억에 의하면 차가 없다면 남해군은 그렇게 널널하게 다닐만한 곳은 아니었어요. 대중교통편이 불편해서 혼났던 기억이 있거든요. 더욱이 남해군은 지도를 보면 대충 제주도의 1/2~1/3 정도 크기이고, 볼 것은 전부 해안가에 있는데, 이것을 고려해보면 널널하게 걸어서 다닐 곳은 아니었어요. 이런 곳을 여행할 때에는 일단 밤 늦게 뭔가 배를 채우고 잠을 청한 후 아침에 바로 나가서 구경하고 늦은 아침을 먹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


"어? 모텔이 다 불 꺼져 있는데?"


친구가 주위를 둘러보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어요. 저 역시 지금 뭔가 상황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불경기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불을 켜놓은 모텔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상했거든요. 불이 켜져 있는 모텔도 없고, 문이 열려 있는 식당도 없었어요.


읍내로 들어가서 보니 술집 외에는 문을 열어놓은 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문이 열려 있는 슈퍼가 하나 보이자 친구는 목이 말라서 음료수를 사먹어야겠다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주머니, 이 근처에 찜질방 없나요?"

"찜질방은 읍내 쪽에 몇 개 있어요.

"아, 그리고 다랭이 마을 가려면 버스 어디에서 타나요?"

"다랭이 마을? 그거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타면 되요."

"금산은요?"

"그런 곳 가는 버스 전부 시외버스터미널 가면 있어요."

"감사합니다."


친구가 음료수를 고르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께 찜질방의 위치 및 버스 타는 곳을 여쭈어보았어요.


"그거 내가 찾아봤어. 우리 남해 군청에서 타면 돼."


친구는 자기가 버스편은 다 찾아봤다고 하며 숙소나 잡으러 돌아다니자고 했어요.


읍내를 돌아다니는데 남해전통시장이 나왔어요.


"시장 구경이나 조금 할까?"

"그러자."



시장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낮에는 여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겠지만 지금은 이것들도 휴식중.



무생물도 모두 잠을 자고 있었어요.




해산물들도 조용히 잠 자고 있는 밤.




시장에서는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 모두가 잠든 남해군 읍내였어요. 확실히 시골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빨리 찾아와요. 그런데 여기 오늘 관광객 별로 안 왔나? 왜 이렇게 모든 곳이 불이 꺼져 있지? 다음날은 일요일도, 월요일도 아니었어요. 다음날은 토요일.


읍내를 돌아다녔지만 숙소를 찾지 못했어요.


"야, 돼지국밥이나 먹고 사우나 가서 눈이나 붙이자."


더 돌아다녀보아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친구에게 아까 문을 열었던 돼지국밥집에 가서 돼지국밥 한 그릇씩 먹고 터미널 3층에 있는 사우나에 가서 눈 좀 붙이고 핸드폰 충전을 조금 한 후 아침 일찍 여행을 시작하자고 했어요. 오늘 사우나에서 대충 쉬는 대신 다음날 밤에는 제대로 숙소 구해서 푹 쉬구요. 친구도 더 돌아다녀 보아야 소용이 없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터미널 쪽으로 걸어갔어요.


"돼지 국밥집 불 켜져 있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 돼지국밥집이 아직 불이 켜져 있었어요. 읍내에서도 불이 켜져 있는 식당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갈증에 시달리다 수돗가를 찾아낸 기분이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지금 장사 하나요?"

"에이...문 닫은 지가 언제인데요. 아까는 그냥 동네 사람들이랑 놀려고 불 켜놨던 거에요."


아...밥은 대체 어디에서 먹어야 하나...


편의점도 읍내에나 나가야 있었어요. 삼각김밥이라도 사먹으려면 결국 읍내로 돌아가야 했어요. 친구와 여행을 떠나며 버스에서 절대 김밥천국만은 가지 말자고 함께 다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김밥천국이 그리웠어요. 김밥천국이 문은 열려 있었는데, 문제는 그게 읍내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바다나 가자. 바다 멀지 않지?"


친구가 밤바다나 보자고 했어요. 지도를 보니 밤바다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많이 잡아야 30분이면 충분해 보였어요. 그래서 터미널에서 읍내 방향의 반대쪽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터미널 뒤편 큰 도로는 길을 건널 수 없었어요. 가드레일도 높게 설치되어 있었고, 차도 빠르게 달리고 있었어요. 꼭 건너려면 건너가기야 하겠지만 이런 길에서 무단횡단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더욱이 친구가 밤눈이 안 좋아서 친구를 이끌고 무단횡단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어요.


가다보면 횡단보도 하나 나오겠지.


보건소 가는 길이라고 나와 있는 길에도 횡단보도는 없었어요. 횡단보도는 남해병원까지 가서야 나왔어요.


"바다 야경 괜찮다!"


불빛이 거의 없는 바다 너머로 어슴푸레 보이는 산들. 적당히 구름도 껴서 묽게 희석한 먹물을 쏟아버린 수묵 풍경화 같았어요. 어두컴컴한 바다였지만 이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어요.


"어떻게 할래?"


친구에게 물어보았어요. 바다를 가려면 터미널에서 남해병원까지 걸어온 길보다 더 먼 길을 또 걸어가야 했어요.


"그냥 돌아가자."


숙소도 못 찾고 식당도 못 찾고 바다도 못 간 밤. 남은 선택지는 오직 둘 중 하나였어요. 읍내에 있는 김밥천국 가서 밥을 먹고 터미널에 있는 사우나로 가느냐, 아니면 바로 터미널에 있는 사우나로 가느냐. 둘 다 사우나에서는 그냥 눈이나 잠깐 붙일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읍내가 이런데 다랭이 마을에서는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라는 계산이 섰어요. 사우나에서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할 것은 뻔하니까, 그렇다면 첫 차를 타고 다랭이 마을에 가야 하는데, 첫 차를 타고 다랭이 마을에 도착하면 이른 아침일 테니 이렇게 간다면 결국 아침을 먹기 전에 구경부터 해야 했어요. 지금은 친구가 괜찮다고 하지만, 분명히 오늘 밤에 아무 것도 안 먹고 내일 구경 시작하면 친구는 시작하자마자 배고프다고 징징댈 거야. 이 친구와 돌아다녀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이건 추측이 아니라 법칙에 따른 계산 결과. 도시 안에서 돌아다닌다면 상관은 없어요.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이라도 하나 사먹고 오라고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른 아침 시골 마을에서 배고프다고 징징대면 답이 없어요. 이것은 이번 여행 전체를 좌지우지할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었어요. 어쨌든 이번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만 무난히 잘 넘기면 이번 여행은 아주 재미있고 즐겁게 다닐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를 제대로 잘 보내지 못한다면 이 녀석은 아침의 시작을 배고프다는 징징이로 시작할 테고, 나의 짜증은 해가 뜸과 동시에 극도에 달하겠지. 10시였어요. 내일 아침 10시까지만 버티면 되었어요. 10시면 식당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니까. 사실 그래서 친구가 싫다고 하면 강제로 김밥천국으로 데려갈 생각이었어요. 다행히 친구도 멀미가 풀렸는지 가서 대충 배를 채우고 터미널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다시 읍내로 돌아와서 김밥천국으로 갔어요. 김밥과 제육덮밥을 시킨 후 아주머니께 여쭈어보았어요.


"여기 찜질방 없나요?"

"예. 없어요."

"여기 관광객들 별로 안 왔어요? 거리에 사람이 없네요. 모텔들 불도 다 꺼져 있구요..."

"관광객들이 안 오다니요. 관광객들 엄청 많이 왔어요. 모텔들 불 꺼진 거 다 사람 꽉 차서 끈 거에요. 사람 없으면 3시고 4시고 불 켜놔요. 그런데 이번에 비가 내려서 관광객들이 조금 덜 오기는 했어요."


김밥을 먹고 음료수를 구입하러 편의점에 갔어요. 편의점 주변에 사람들이 있기에 마지막으로 찜질방이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찜질방은 없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러면서 터미널에 있는 사우나도 문을 닫았을 거라고 이야기하셨어요.


'헉...그 사우나마저 문을 닫으면 정말 답이 없는데...'


모텔은 전부 만실이라 불이 꺼졌고, 찜질방은 없었어요. 만약 터미널 3층에 있는 사우나마저 문을 닫아버린 상태라면...노숙 당첨! 우리나라 여행을 하면서 밤에 노숙을 해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어요. 우리나라 여행에서의 숙소 등급을 대충 '제대로 된 숙소 - 찜질방 - 24시간 사우나 - 건물 안에서 노숙 - 건물 밖에서 노숙' 이렇게 나누면...국내 여행에서는 찜질방까지만 경험해 보았는데 단박에 최소 2단계 아래까지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절대 반갑지 않은 기회.


터미널에 도착해서 3층으로 올라갔어요.


"한다!"


다행히 사우나는 운영하고 있었어요. 숙박은 1만원, 목욕은 5천원이었는데 수면실은 이미 자리가 다 찼고, 이불과 매트도 다 떨어졌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5천원 내고 열쇠와 수건 두 장을 받은 후 목욕탕으로 들어갔어요. 늦은 밤이라 목욕탕 안에는 깨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깨어 있는 사람이 아예 없었어요. 핸드폰을 플러그에 꼽고 평상에 드러누웠어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데 친구가 계속 핸드폰이 신경쓰인다고 해서 친구와 누워서 계속 이런 저런 잡담을 했어요. 버스는 6시 20분에 있다고 했기 때문에 5시가 되자 일어나서 다시 사우나로 들어갔어요. 역시나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온탕에 들어갔는데 물이 미지근함과 차가움의 중간 정도에 있었어요. 목을 욕조 벽에 대고 허리에 두 손을 대고 드러눕듯 몸을 쭉 펴자 몸이 둥실둥실 떠올랐어요. 친구가 계속 탕에서 자면 죽는다고 자지 말라고 했지만 물 온도는 잠을 청하기 딱이었어요. 그렇게 물 속에 둥실둥실 떠서 30분 정도 눈을 붙였어요.


눈을 뜨고 일어나 벽 꼭대기에 달린 창으로 밖을 내다 보니 창밖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니 6시였어요. 전혀 급할 것이 없었어요. 3층에서 1층으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노숙하지 않은 것이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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