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깊게 잘 자고 일어났어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일어나서 씻은 후 호텔 1층에 가서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어요. 아직 10시까지 시간이 그럭저럭 남아 있었어요. 짐을 꾸릴 것은 없었어요. 전날 이미 짐을 깨끗하게 다 꾸려놓았거든요. 들고온 짐도 얼마 없었고, 자오시 와서 꺼낸 짐도 얼마 없었어요. 여기 와서 꺼낸 짐이라고 해봐야 세면도구와 잠옷으로 입을 옷이 전부.
"아버지, 저 잠깐 나갔다 올께요."
"어디 가려구? 이제 곧 떠날 시간인데."
"아...그냥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려구요."
"늦지 않게 와라."
"예, 9시 반까지 돌아올께요. 짐은 제가 돌아와서 들고 내려갈테니 아버지께서는 어디 가실 거 아니시면 그냥 방에 계세요."
너무 아쉬워서 방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이제 타이완이 좋아졌는데...이제 생존 중국어 몇 마디 할 수 있게 되었는데...이런 것이 옷깃을 스쳐지나간 사랑이란 말인가. 머리 속은 온통 후회, 그리고 전날 밤 신나는 느낌 뿐이었어요.
전날 밤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어요.
타이완도 시래기를 먹는가 보네? 말리고 있는 것은 왠지 시래기 같아 보였어요. 야채를 저렇게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매달리는 장면을 보니 무언가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어요.
2014년 2월 24일 월요일 아침. 전날 밤 거리가 매우 북적였던 것과 반대로 거리는 너무나 한산했어요. 과연 그런 밤이 있었는지 그 자체에 의심을 품게 만들 정도로요. 과연 나는 어젯밤 환상을 본 건가? 아무리 보아도 그 왁자지껄 북적거림은 없었어요. 이렇게 보면 그냥 평범한 읍내.
전날 매우 인상적이었던 노천 온천 공원으로 걸어갔어요. 이왕 이렇게 나온 것, 아침에 한 번 더 발을 담가보고 싶었어요.
"어? 온천에 물이 왜 없지?"
노천 온천은 청소중이었어요. 매일 아침 하는 것인지, 아니면 월요일 아침이라 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청소중. 노천 온천을 이렇게 관리하는 모습을 보자 어젯밤 발을 담그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온천 공원에서 물을 전부 빼내고 바닥까지 청소하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분수 물을 모두 빼내고 바닥까지 깨끗하게 청소하는 장면은 잘 보지 못했거든요.
온천 물이 다 빠져나간 온천 공원도 나름 매력이 있었어요.
왼편이 바로 어제 쇠고기 꼬치를 사먹었던 노점상이에요. 문을 열었다면 가서 한국 돌아간다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열지 않았어요.
아침부터 문을 연 노점상이 한 곳 있었어요. 사먹어볼지 말지 전혀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주머니에 이제 남아 있는 대만 위안 NTD가 아예 없었거든요.
어차피 호텔 근처를 돌아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조금 더 돌아다녀 보았어요.
아침에 둘러본 자오시는 그냥 사람 사는 동네였어요. 이곳은 온천 도시이고, 가이드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단체 여행객들 중 타이페이에서 숙소 잡기 어려워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왠지 저녁때까지는 매우 한가할 것 같았어요. 저녁때 슬슬 관광객들이 숙소를 찾아 모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번화해지기 시작하고, 밤이 되면 지금 이 장면들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겠죠. 타이완 사람들은 밤에 그냥 사람 구경도 하고 간식도 사먹으러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밤에는 세일러문 변신하듯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거에요. 전날 밤 제가 보았던 그 장면처럼요.
호텔로 바로 돌아가려다 일부러 다시 큰 길로 나갔어요.
자오시에도 스타벅스가 있었잖아! 이런 도시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어요.
늦지 않게 호텔로 돌아왔어요. 짐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가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이제 남은 것은 쑹산공항 가는 것 뿐.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긴 행렬을 보았어요. 상당히 요란해서 눈길을 확 잡아당겼어요.
"저거 무슨 행렬이에요? 무슨 축제인가요?"
"저거 타이완의 장례식 행렬이에요."
버스를 타고 가며 마지막으로 타이완 모습을 하나라도 더 사진으로 담기 위해 계속 셔터를 눌렀어요.
버스는 결국 쑹산공항에 도착했어요.
공항에 들어가서 표를 받고 짐을 부치고 나니 시간이 조금 남았어요. 생각해보니 입국할 때에는 공항을 돌아다녀보지 못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공항 내부를 돌아다녀보기로 했어요.
"어! 여기 중국 맞구나!"
공항 내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는 아저씨를 보자 여기가 타이완이라는 느낌이 확 와닿았어요. 무언가 큰 문화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이 아저씨 뒤편에는 패밀리마트가 있었어요.
타이완 편의점에 가면 우리나라 편의점과 달리 묘한 냄새가 나요. 그 이유는 바로 이런 음식들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편의점 안에서는 겨울이라 해도 가게 안에서 오뎅탕을 파는 일이 없는데 타이완에서는 이렇게 조리된 음식을 가게 안에서 팔고 있어요.
공항 내부를 계속 돌아다녔어요.
"음수대다!"
타이완 입국할 때에도 저것과 똑같은 것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목을 축이고 입국심사를 받으러 갔어요. 그때 음수대 사진을 제대로 못 찍은 것이 꽤 아쉬웠는데 공항 한켠 구석에 음수대가 있었어요. 목이 마르지 않아서 물을 직접 마시지는 않았지만 이것을 다시 보니 기억에 남기고 싶었는데 남기지 못했던 것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어요.
드디어 출국장으로 들어가야할 시간. 출국장을 향해 가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어요.
이런 건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나는 거니?
가뜩이나 며칠 더 타이완을 자세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이런 예쁜 지도가 이제서야 앞에 나타났어요. 나중에 귀국해서 알아보니 저 지도 속 캐릭터는 open將 이라는 캐릭터였어요. 타이완에서 만든 캐릭터로, 타이완 관광 소개할 때 등장하는 캐릭터였어요. 왜 기념품점은 이곳저곳 종종 들렀는데 저 캐릭터가 그려진 엽서나 마그네틱은 한 번도 구경을 못 했지? 다 팔려서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 거기까지는 만들지 않은 것일까?
출국 심사를 받고 면세점도 구경하고 여기저기 왔다갔다 돌아다녔어요. 출국장 한쪽 구석에는 서점이 있었어요.
'혹시 타이완 국어 교과서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타이완판 팔고 있을까?'
서점 점원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점원은 영어를 몰랐어요. 일단 국어책은 한자로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써가며 물어보았어요. 직원은 교과서는 없다고 대답했어요. 문제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타이완판. 이건 애초에 구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다행히 공항 내부에서 약하기는 하지만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고 있었어요. 와이파이를 이용해 검색을 해 보았어요. 미세한 신호로 느린 와이파이를 이용해 위키피디아에 접속해서 영어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찾은 후, 중국어로 바꾸어서 직원에게 보여주었어요.
"메이여우."
없구나...그러고보니 여기 와서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툭하면 '메이여우'를 말씀하셔서 제가 '메이여우'가 뭐냐고 물어보았었어요. 그때 아주머니께서는 '없다'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셨어요. 메이여우...沒有...타이완 와서 처음 배운 중국어였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이 말을 듣고 바로 이해했어요.
하지만 의외로 시간이 잘 가지 않아서 어머니, 누나와 같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씩 마셨어요. 계산은 누나가 카드로 결제했어요.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탑승구로 가는데...
"내 핸드폰!"
누나가 급히 카페로 달려갔어요. 다행히 핸드폰은 그 자리에 잘 있었어요.
여담이지만 해외여행을 가면 절대 분실하면 안 되는 것이 있어요. 바로 여권이에요. 여권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어떻게든 다 되요. 반대로 여권을 잃어버리면 어떻게든 다 엉망이 되어버려요.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는 국가라면 대사관으로 가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되기는 해요. 국경을 넘어야 하는 상황인데 다음 방문 국가가 여행증명서는 인정하지 않거나 이미 비자를 받아놓은 상태라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도 국경을 넘을 수 없지만요. 그리고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기 때문에 해외여행 가서 핸드폰을 꺼내는 일이 많아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는 로밍이나 하지 않는다면 외국 나가서 한국에서 사용하던 핸드폰을 꺼낼 일이 없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외국이든 어디든 일단 와이파이만 되면 스마트폰 대부분 기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로밍 여부와 관계 없이, 현지 심카드 구입여부와 관게 없이 핸드폰을 많이 꺼내는 편이에요. 문제는 여권에 신경쓰다 핸드폰 분실하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이에요. 여권은 하도 그 중요성을 사방팔방에서 세뇌시키기 때문에 오히려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이에요. 게다가 여권은 꺼낼 일이 많지도 않으며, 꼭 여권을 꺼내야할 상황이 아니라면 여권 사본을 제시하지요. 그러나 핸드폰은 그렇지 않아요. 와이파이만 되면 꺼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꺼내게 되고,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자기가 카페 같은 곳에 놓고 나오는 등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고, 자꾸 꺼내기 때문에 꺼내기 쉬운 곳에 넣었다가 소매치기 당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것은 비단 해외여행에서만의 경우가 아니에요. 당장 우리들 자신과 주변을 보면,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을까요,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을까요? 그러므로 해외여행 나갈 때 핸드폰 안에 개인정보는 최소한으로 넣고 가세요. 여권 사본 파일 같은 것은 절대 넣어두지 마시구요. 여권 사본 파일 및 각종 예약 번호 같은 것은 스마트폰에 저장하지 마시고 자신의 이메일로 메일로 보내놓으세요.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안녕...타이완...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했어요. 저는 의정부로 바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김포공항에서 가족들과 헤어져서 김포공항 국내선으로 향했어요.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의정부까지 가는 공항버스를 탔어요. 일산을 거쳐 의정부로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었어요.
"가자!"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부모님께 방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린 후 지하철역으로 갔어요. 1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으로 간 후, 5호선으로 환승해 광화문역에서 내렸어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바로 집에서 나와 광화문역으로 간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타이완 여행 가이드북을 사기 위해서였어요. 여행 끝나고 여행 가이드북을 사는 이 행동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동. 하지만 이미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어요.
반드시 타이완 다시 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