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로 돌아가는 길. 하늘은 다시 맑게 개고 있었어요.
'타이베이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중정기념당과 시먼딩 거리를 구경하면 이제 타이베이는 끝이에요. 저녁은 타이베이에서 먹고, 그 후에 자오시로 이동해서 거기에서 잠을 잔 후, 다음날 아침 귀국하는 일정이었거든요.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 아쉬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분명 지금까지의 일정 모든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계속 타이베이에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아쉬움은 커져만 가고 있었어요.
중정기념당은 대만민주기념당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장화민국 초대 총통인 장제스를 기리기 위해 1980년에 설립했다고 해요. 중정기념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이곳에 있는 6.3m 높이의 장제스 동상이에요. 이 동상을 제작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많이 퍼져 있는 화교들이 십시일반 기부금을 타이완으로 보내었다고 해요.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며 가이드 아주머니 뒤를 따라서 중정기념당으로 들어갔어요.
내부는 매우 넓었지만 의외로 사진을 찍으려니 어둡다고 나왔어요. 일단 위의 두 사진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중정기념당 모형이에요. 여기에서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국민당 당사가 이 중정기념당과 관련하여 풍수적으로 나빠지게 되자 아예 건물을 옮겨버렸다고 말씀해주시며, 이렇게 중국인들에게 풍수는 오늘날까지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이것은 장제스의 전용 차량이었다고 해요.
이 차는 특별 제작된 차량으로, 장제스 총통 사망 후 제작사에서 이 차를 천문학적인 돈에 매각하라고 제의했지만 거절하고 중정기념당에 전시중이라고 했어요. 롤스로이드였던가 그랬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자동차에 관심이 없다보니 차량 사진을 보아도 어디에서 제작한지 도저히 떠오르지도 않구요.
그리고 여기는 장제스 총통 집무실 모형. 실제 이렇게 생겼다고 해요. 가이드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장제스는 매우 청렴했다고 해요. 하지만 매우 엄격해서 대만 사람들에게 장제스는 무서운 사람으로 느껴졌다고 했어요. 장제스 사후 정권을 잡은 장징궈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펼쳤고, 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타이완 사람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에 대만 사람들은 장제스보다 장징궈를 더 많이 좋아했다고 했어요. 실제로 역사를 보면 중국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패배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국민당의 부정부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제스가 부정부패에 찌들어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역사를 보면 장제스는 국민당이 부정부패에 어느 정도 찌들어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이 사실을 타이완으로 후퇴한 후에야 알아차렸다는 쪽이 더 근거가 있어요. 타이완에서 대륙수복을 꾀하던 장제스는 엉망진창인 당시 타이완 사정을 보고 나서야 부정부패 때문에 자신이 패배했음을 인지하고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매우 엄격하고 강압적 통치를 실시했어요.
그리고 장제스의 부인인 쑹메이링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해주셨어요. 장제스 사후 이복아들인 장징궈가 정권을 물려받는 데에 방해를 하지 않고, 오히려 본인이 장징궈의 통치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미국으로 넘어가 거기에서 타이완과 미국 관계를 위해 노력하며 장징궈를 도와주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쑹메이링의 이와 같은 처세로 타이완은 정치적으로 큰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있었고, 장징궈도 쑹메이링에 대해 깍듯이 어머니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고 해요.
이것이 바로 6.3m 높이의 장제스 총통 동상. 놀라운 것은 중국인들도 여기 많이 와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이 사람들, 여기 방문해도 되는 건가?'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제가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중국과 대만은 워낙 국가 규모에서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양쪽 다 그냥 신경쓰지 않는 것인가?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견원지간이었는데...
중정기념당에서 나왔어요.
중정기념당 주변에는 작은 시장이 열려 있었어요.
중정기념당 관람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어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무언가 아쉬움은 대체 무엇일까.'
버스에 올라타서 다시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이 계속 느껴지는 아쉬움. 그리고 그 아쉬움 때문에 느껴지는 부끄러움.
'나는 여기 와서 무엇을 배웠지?'
지금까지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가이드 아주머니께 맡기고 있었어요. 이 여행을 올 때 그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았고, 여행 내내 무언가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머리를 텅 비우고 가이드 아주머니의 말씀만 잘 듣고 있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노련하게 일정을 잘 관리하셨고, 설명도 잘 해 주셨지만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제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이 별 것 있을 리 없었어요.
'지금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이란...'
학원 강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수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예습, 복습 철저. 아무리 예수님, 부처님이라 해도 예습도 안 하고, 수업 시간에는 딴 짓만 하고, 복습도 안 하다가 시험때 되어서 '이해가 안 되요'라고 말하며 배째라 드러누워버리면 인내심이 끊어질 거에요. 처음에는 열정으로 참지만, 꾸준히 당하면 인내심이 끊어지거나 넋이 나가버려요.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복습을 안 해 기억하는 것은 없으면서 '이해가 안 되어서 못 외우겠어요'라는 무한 루프만 타고 있는 학생을 보면 저도 사람인지라 진지하게 고뇌에 빠질 수 밖에 없어요. 확실히 아이들을 가르쳐보니 예습을 철저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예습을 대충이라도 하는 학생이 결국은 널널하게 적당히 수업 들으면서 공부도 잘 하는 학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미리 알고 있는 양 만큼 배워간달까요.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어떤 것도 알아보고 오지 않았어.
결국 예습은 하나도 하지 않고 왔다는 것. 상황을 생각해보자. 지금 앞에 계신 가이드 아주머니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고의 대만 관련 선생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대만에 대해 궁금한 것, 물어보고 싶은 것 다 물어봐도 된다. 이렇게 축복받은 기회와 함께 했던 여행이 그동안 있었던가?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제외하면 지금까지의 외국 여행 중 단 한 번도 언어의 장벽에 시달려보지 않은 적이 없어.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대답을 들을 현지어 능력이 부족해서 결국은 영어를 아는 현지인에게 정보를 얻는 수 밖에 없었지. 현지 가서 새로이 배워오는 것은 항상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 여행 전에 공부하고 준비해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들어서 배워온 적이 있던가? 어쩌면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올 때 항상 진한 아쉬움이 따랐던 것일지도 몰라. 결국 현지인들의 생생한 모습에 대해서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제대로 배워온 적이 없으니까.
지금 내 꼬라지를 보자. 예습은 하나도 안 해왔다. 가이드 아주머니의 설명은 열심히 듣고 있지만 필기구를 하나도 안 가져와서 기록도 하고 있지 않아. 지금 내 모습은...예습도 안 하고 선생님 말만 듣고 뒤돌아서서 모든 것을 새까맣게 까먹어버리는 학생과 똑같네. 내 자신이 아주 안 좋은 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을 거의 완벽히 따라하고 있잖아! 싱크로율 99.99% 찍을 기세야!
가이드가 대동하는 여행이 어떤 여행인지 그동안 아무 것도 몰랐어요. 그저 막연히 알아서 다 해주니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다녀오면 되는 여행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어떤 여행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배낭여행이라고 찬양해야 할 이유도 없고, 가이드가 대동하는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라고 비하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하지만 여행을 통해 다른 나라에 대해 배우고 싶어하면서 아무 준비도 해 오지 않고, 아무 기록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저의 여행 태도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었어요.
다른 나라에 대해 배우고 싶어하는데 앞에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계셨어요. 한두 해 이 일을 해보신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지내신 적도 있으셨고, 지금은 대만에서 살고 계셨어요. 한국어는 아주 유창하셨어요. 여행 다니며 이런 기회를 만나는 것은 정말 흔치 않아요. 설령 설명이 가능한 사람을 만난다 쳐도 한국 사정과 비교해서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백사장에서 다이아몬드 찾기에요. 그런데 이번 여행 내내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어요. 이건 완전 타이완 쪽집게 집중 몰입 과외도 가능한 상황.
뭘 알아야 질문하지...
후회가 밀려왔어요. 만약 오기 전에 공부 좀 하고, 처음부터 이것저것 기록하고 했다면 가이드 아주머니께 무수히 많은 것을 여쭈어보았을 것이고, 비록 며칠 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을 구해서 왔을 거에요. 현지인으로부터 듣는 현지 생활 이야기라면 이건 그야말로 보석 중 보석.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8번째 외국 여행이에요. 지금까지 외국 여행기를 쓴 것만 7개. 제 경험에 의하면 여행기 중 가장 좋은 소재는 바로 현지인들로부터 들은 현지인들의 생활 이야기와 실수담들이에요. 이런 건 절대 여행 가이드에 나와 있지도 않고, 모두가 궁금해하고 재미있어하는 부분이니까요. 생각해보면 '나는 이렇게 멍청한 짓을 했으니 여러분은 절대 이런 멍청한 짓 하지 마세요'가 모두가 재미있어하고 모두가 필요로 하는 정보이지요. 그래요. 하나 건졌네요. 가이드 대동하는 패키지 여행을 갈 때는 꼭 필기구를 준비하고 미리 공부를 조금 해서 물어보고 싶은 질문 몇 개 뽑아가세요.
여행기를 쓰자. 반드시 여행기를 쓰자.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에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반성문. 처음 해보는 가이드 대동 패키지 여행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성의하게 준비하고 덜렁덜렁 온 것은 잘못이었어요. 연륜이 쌓여서 특별히 준비를 해오지 않아도 질문거리 술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가이드 아주머니의 많은 설명을 모두 그대로 통째로 기억할 수 있는 레코더 두뇌를 가진 것도 아니었어요. 변명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제가 잘못한 것이니까요. 잘못을 했으면 반성을 하고 앞으로 그런 잘못을 안 하면 되는 것이고, 말로만 반성하는 게 아니라 여행기를 쓰면 보나마나 엄청나게 괴로울 테니 그 고통을 느끼며 계속 반성하면 되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아무 것도 기록해놓은 것이 없었고, 사진도 그렇게 신경써서 많이 찍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행기를 쓸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어요. 사진을 무수히 많이 찍고 기록을 아주 꼼꼼하게 해도 막상 여행기 쓰려고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몇 날 며칠 머리 쥐어뜯어야 하는데, 사진도 많이 안 찍어놓았고 기록해놓은 것도 없으니 두뇌를 빨래 짜듯 꽉 쥐어짜야할 것은 뻔한 이야기.
"타이완에서는 학생들 학원 많이 다니나요?"
한국인과 여러 번 접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학원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학생들 중 학원을 단 한 번도 다녀보지 않은 학생이 오히려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인과 접하다보면 학원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어서겠죠. 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은 사람 사는 곳이라서 교육에 관심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과외와 학원이 있어요.
"예, 타이완에서도 학생들이 학원을 많이 다녀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타이완에서도 학생들이 학원에 많이 다닌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타이완도 입시가 매우 치열하다고 말씀하셨어요.
"한국에서는 방학때가 되면 아이들 학원에 많이 맡기지요? 타이완도 마찬가지에요. 타이완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방학때가 되면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서 힘들어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요."
가이드 아주머니의 설명에 버스에 탄 모든 성인들이 웃었어요. 우리와 너무 똑같았거든요. 일반적으로 학원을 공부 안 하는 애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공부 못 하는 애들을 공부 잘 하게 만들고, 좋은 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보내기 위해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학원에 있어보면 의외로 일종의 보육원처럼 학원을 이용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물론 '공부' 라는 목적과 상관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학원을 일종의 보육원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이런 점이 타이완도 마찬가지라 모두가 재미있어했어요.
반성하는 자세로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드디어 창밖 풍경을 열심히 찍기 시작했어요.
이 가로수는 줄기에서 뿌리 같은 것이 아래로 축축 늘어지며 자라서 신기했어요.
드디어 타이페이의 명동이라는 서문정 거리에 도착했어요.
"여기에서 망고 빙수 드시고, 자유시간 드릴께요."
가게 입구에는 여주처럼 생긴 과일이 잔뜩 놓여 있었어요.
지하로 내려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드디어 타이완의 명물인 망고 빙수가 나왔어요.
"이거 잘못 나온 것 아니야?"
사진으로는 크기가 와닿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카페나 빙수 전문점에서 커플끼리 나누어먹으라고 나오는 사이즈만큼 했어요. 즉, 한국에서 작은 2인분이라고 해도 될 크기였어요. 그런데 그게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나오자 모두가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모두가 당황해해서 일단 나온 빙수를 잠시 기다리라고 했어요. 이건 너무 많았거든요.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올께요."
가이드 아주머니께 빙수 한 사람당 하나씩이냐고 물어보았어요. 아무리 보아도 한 사람당 하나라고 하기에는 많았거든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제가 올라온 것을 보고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를 채고 내려오셨어요.
"빙수 한 사람당 하나 맞아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모두가 먹기 시작했어요.
"맛있다!"
달콤한 망고, 부드럽게 입에서 사라지는 우유 얼음. 하늘하늘거리는 얇은 비단이 혀 위에 닿자 녹는 맛이었어요.
"진짜 망고 빙수는 유명할만 하구나!"
망고 빙수를 싹싹 비운 후 밖으로 나왔어요.
가게 입구에 메뉴가 있었는데 빙수 종류가 꽤 다양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모두 한 번씩은 먹어보고 싶었어요.
평범한 광고 간판이었지만 뭔가 인상적이었어요.
타이페이의 KFC.
일단 시먼딩 거리 끝까지 걸어보았어요.
거리에서 자선 모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모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영수증이었어요. 타이완에서는 영수증을 가지고 무슨 추첨을 하는데, 여기에서 당첨된 것을 가지고 불우이웃을 돕는 데에 사용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냥 휙 버려버리는 영수증이 꽤 많은데 이렇게 영수증을 거두어서 추첨에서 당첨된 것을 가지고 불우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누나 말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영수증을 가지고 추첨하는 것이 있다고 했어요.
타이완의 영화관.
타이완의 버블티인 쩐주나이차 珍珠奶茶 를 파는 가게가 보였어요.
'여기 와서 쩐주나이차를 안 마실 수는 없다!'
자오시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나마 알고 있던 몇 가지는 전부 여기에서 먹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족들 모두 이제 조금 후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안 마시겠다고 해서 저 혼자 쩐주나이차를 사러 갔어요.
"게이워 쩐주나이차."
얼마인지는 적혀 있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저 중국어로 '쩐주나이차 주세요'라고만 말하면 되었어요. '~주세요' 라는 의미인 '게이워'를 아니 이제 아주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어요. 적토마에 올라탄 여포처럼 물건 구입하는 것은 막힘이 없었어요. 얼마인지 알아들을 필요는 없었어요. 가격이 적혀 있으면 적혀 있는 대로 돈을 내면 되고, 적혀 있지 않다면 그냥 적당히 찍어서 지폐 한 장 내면 되요. 적으면 더 내라고 할 것이고, 많으면 거슬러줄테니까요. 게다가 '이것'이 '저거'라는 것도 아니 물건 사는 데에 막힐 것이 없었어요. 갯수가 문제가 될 수 있기는 한데, 이얼싼쓰는 알았어요. 5부터는 일단 '게이워' 말하고 손가락으로 제 손바닥에 한자로 적어보이면 되는 문제. 필담은 불가능하지만 1부터 99999까지는 한자로 쓸 줄 알았거든요.
이것은 그저 그렇다...
너무 기대해서 그런 것인지 쩐주나이차는 그저 그랬어요.
시먼딩 거리를 돌아다니며 흥미로웠던 것은 2층까지 가게로 쓰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는 것이었어요. 이 점이 우리나라 명동과의 큰 차이점이었어요.
"저거 일본 캐릭터 아니야?"
아무리 보아도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생긴 캐릭터였어요. 서문정 거리를 상징하는 캐릭터라는데 전혀 중국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나중에 타이완을 잘 아는 친한 동생이 타이완은 일본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시먼딩 거리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일본 영향을 크게 받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로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서문정 거리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가 저녁식사를 할 식당으로 가는 동안 타이페이에서 유명한 곳 몇 곳을 지나쳤어요. 그때마다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어떤 곳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어요. 하지만 제가 앉은 자리 반대쪽에 있어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데다, 기록할 것이 없어서 제대로 기록해놓지도 못했어요.
저녁은 샤브샤브였어요. 양도 푸짐하고 맛도 괜찮았어요.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