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돌아오자마자 호텔 카운터로 가서 50달러를 환전했어요.
"얘, 뭐 그렇게 많이 환전하니?"
"그렇게 환전 많이 하면 어떻하려고 그래? 너 그 돈 다 쓸 수 있겠어?"
가족들은 제가 50달러를 환전하는 것을 보더니 모두 한결같이 여행 일정 이제 고작 하루 남았는데 왜 그렇게 돈을 많이 환전하냐고 했어요.
"이 정도는 더 필요할 거에요."
이렇게 대답한 이유의 50%는 그냥 직감, 50%는 지금까지 여행을 다녀본 경험에 의한 것이었어요. 아직 그 어떤 선물도 기념품도 사지 않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마땅히 기념품과 선물을 살 만한 코스도 없었어요. 다음날 일정은 지우펀, 예류, 시먼딩 거리를 구경하고 자오시로 넘어기는 일정이었는데, 이 코스에서 기념품과 선물을 사지 않으면 더 이상 기념품과 선물을 살 곳도 실상 없었어요. 게다가 인터넷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자오시가 밤에 돌아다니며 놀기에는 나름 괜찮은 곳이었어요. 아직 돈을 제대로 쓸 곳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첫날 환전한 돈은 이래저래 간식 사먹다보니 바닥을 슬슬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것으로 미루어보아 최소한 50달러는 더 환전을 해야 다음날 일정을 그럭저럭 보낼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어요.
"이제부터 네가 타이완 돈 다 맡아라."
응?
가족들은 제게 모든 타이완 현지화를 몰아주고는 타이완 현지화로 계산해야 할 때는 제가 알아서 전부 계산하라고 했어요.
"저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께요."
"이 밤에 또 어디를 나가?"
"그냥 주변이나 둘러보고 오려구요."
제가 잠깐 나갔다온다고 하자 가족들이 제가 야심한 밤에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했어요. 그래서 절대 먼 곳 안 가고, 호텔 주변이나 좀 둘러보고 오겠다고 안심시켜드렸어요. 가족들이 방에 들어간 후 호텔 밖으로 나가려는데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도 제게 어디 가냐고 물어보셨어요.
"편의점 좀 다녀오려구요."
"에이...아까 진작 기차역에서 필요한 것 있으면 사라고 했잖아요."
저도 알고,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도 알고 계셨어요. 이 주변은 아무리 관광객을 풀어놓아봐야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요. 호텔 주변에 갈 곳이라고 해봐야 고작 편의점 뿐. 저 역시 화리엔 가기 전에 잠깐 돌아다녀보았기 때문에 이 근처에 갈 곳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게다가 말이 아예 안 통하는 데다 지도도 없다는 한계도 있었구요. 저 스스로도 야시장이 매우 멀리 있다는 것을 버스를 타고 오며 보았기 때문에 목적은 오직 하나였어요.
남양대교를 건너보자.
남양대교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너무 궁금했어요. 화리엔 가기 전에 큰 길을 따라서 올라가고 남양대교도 건너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되지 않아서 남양대교는 건너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남양대교를 건너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두 번째 목적은 캔맥주 하나 사서 다리 위에서 마셔보는 것이었어요.
남양대교 한가운데에 올라간 순간...
왜 조지아 트빌리시 여행할 때가 생각날까? 남양대교를 건너니 평범한 주택가가 나왔어요. 이것도 트빌리시 여행할 때랑 비슷했어요. 고향도, 서울도, 일본도 모자라서 이제는 트빌리시까지! 이제는 이 기분을 대체 뭐라고 말해야할지 포기해야할 상황. 밤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너무 깜깜해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다리를 건너서 조금 더 가자 편의점이 하나 나왔어요. 편의점의 좋은 점이라면 말을 몰라도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 맥주 한 캔을 구입해서 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마시기 시작했어요.
"정말 좋구나."
이렇게 한가하게 밤공기를 쐬며 다리 위에서 홀로 캔맥주를 홀짝였던 적이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맥주를 마시며 서 있었어요. 이제 여행을 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제, 오늘 가족들과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첫 가족 여행인데다 피곤한 것도 있어서 얼떨떨한 기분 속에서 돌아다녔어요. 더욱이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왔으니 더욱 정신이 없었어요. 그렇게 얼떨떨한 상태에서 너무나 즐겁게 이틀을 보낸 후, 다리 위에서 홀로 맥주를 마신 후에야 드디어 제가 지금 여행중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어요.
'저쪽 편의점도 가볼까?'
그냥 들어가기는 아쉽고 갔던 편의점을 또 가는 것은 왠지 재미 없어서 큰 길가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어요.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를 가지고 계산대로 갔어요. 점원은 쭈뼛쭈뼛 거리더니 더듬더듬 영어로 가격을 말했어요.
아무도 없는 편의점. 직원의 눈빛을 보니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나는 왜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고 왔단 말인가!
"굿 바이."
"굿 바이."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제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어요.
"이런 망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드문데!"
이건 말 그대로 온갖 다양한 기회들이 제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제가 주워먹을 능력이 없어서 몽땅 쏟아버리고 흘려버리고 있는 상황의 연속. 역대 최강으로 재미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저를 껴안으려고 발악하는데 제가 걷어차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보나마나 이 갑갑하고 한심한 모습은 내일도 이어질 것이고, 귀국하는 모레도 이어지겠지.
커피를 홀짝이며 호텔로 돌아왔어요.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로비 직원에게 와이파이를 쓸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제 폰을 내밀고 패스워드 좀 찍어달라고 했어요. 로비 직원은 패스워드를 말하다가 제가 그냥 핸드폰을 건네주자 알아서 비번을 입력해 주었어요.
인터넷이 된다.
카카오톡으로 대만에서 일본어가 그럭저럭 통한다고 말했던 형에게 말을 걸어보았어요. 형이 대답했어요.
"형, 여기서 일본어 안 통하잖아요. 어디서 약을 팔아요?"
"그래? 미안해."
"형, '이거 주세요'가 중국어로 뭐였죠?"
"그게 '게이 워 이거'잖아."
"아! 1,2,3,4는요?"
"이, 얼, 싼, 쓰."
제가 랴오허제 야시장에서 겪었던 일, 편의점에서 직원과 잡담을 나누며 놀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일 등을 이야기해주자 너무 웃겨서 깔깔 웃어대는 것이 채팅창 너머로 보였어요.
"내일이야말로 승부의 날이다!"
니하오, 셰셰, 게이 워 이거, 뚸샤오첸.
나는 분명히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내일 이 네 마디는 반드시 하고야 만다!
다음날 아침.
2014년 2월 23일이 찾아왔어요. 조식 부페에서 베이컨을 두둑히 먹은 후, 올라와서 재빨리 씻고 짐을 정리한 후 잠시 호텔 밖으로 나왔어요. 호텔 밖으로 달려나온 이유는 남양대교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남양대교 옆에 있는 도교 사원.
한 번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시간도 부족했고, 문이 닫힌 것 같았어요.
이렇게 타이베이의 아침이 찾아오는구나. 어젯밤 이 풍경을 보며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지. 평범하기 그지없고, 무언가 많이 낯익은 풍경이지만 그래서 너무나 인상 깊은 풍경. 이 풍경, 정말 못 잊을 거야.
"자, 오늘 갈 곳은 먼저 지우펀이에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지우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셨어요. 여기는 원래 아홉 가구만 있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일제 시절 금광 개발 덕분에 꽤 커진 곳이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금광이 시들해지면서 이곳도 덩달아 시들해졌고, 한동안 잊혀지다시피 했대요. 그러다 타이완 젊은이들 사이에서 오토바이 여행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을 때, 몇몇 청년이 이곳을 방문하고는 너무 좋아서 서로서로 알음알음으로 가서 주말을 보내며 놀고 오기 시작했대요. 1989년, 허우샤오셴 감독이 '비정성시'라는 영화를 찍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정말 옛날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와본 곳이 바로 이 지우펀이고, 비정성시 덕택에 이 도시는 유명한 관광도시가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원래 작은 촌동네였기 때문에 몰려드는 관광객 인파에 빠르게 상업화되어버렸고, 후일 허우샤오셴 감독이 자신의 영화 '바정성시' 때문에 좋은 곳을 망쳐버렸다고 후회의 말을 남겼다는 말이 있대요.
"제가 가이드를 한 지 오래되었지만, 지우펀에 갈 때 만큼은 항상 긴장이 되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셨어요. 가이드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휴일의 지우펀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 헬게이트 그 자체. 좁은 골목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보는 곳이라 사람이 조금만 와도 길이 복작복작 해지는데, 휴일에는 단체 관광객에다 현지인들까지 몰려와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도 없고 그냥 쓸려다니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게다가 타이완 사람들은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서 여기로 쉬고 놀러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인파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여기는 주말만 되면 미어터지는 곳이라고 하셨어요. 여기에 관광버스가 지우펀 입구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덤. 즉, 툭하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고, 일정을 종종 어그러뜨리는 곳이라서 지우펀 관광이 들어간 날 일정은 지우펀 관광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그날 하루 일정이 좌지우지된다는 말이었어요.
이번에도 역시나 오른쪽 좌석에 앉았는데, 지우펀 올라가는 길 풍경을 볼 때에는 꽝이었어요. 지우펀 올라가는 길에 보면 앞으로 기울은 듯한 도교 사원이 보이는데, 이것을 잘 보려면 역시 올라갈 때 왼쪽 좌석에 앉아야 해요. 왼쪽은 시원하게 바다도 보고 산과 숲도 보며 올라가는데, 제가 앉은 오른쪽은 오직 나무, 나무, 나무.
지우펀은 관광버스로 한 번에 올라갈 수 없고, 올라가는 길 중턱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서 일반 버스로 갈아타야 했어요.
버스를 갈아타고 올라가는데, 역시나 앉은 자리는 꽝이었어요. 이번 타이완 여행은 정말 좌석운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따라주지 않았어요.
버스를 타고 드디어 지우펀 입구에 도착했어요.
"풍경 멋지다!"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원래 지우펀을 탐방하는 루트가 있기는 하지만, 그쪽은 사람들이 툭하면 밀리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길을 통해 가기로 했어요. 원래 코스는 지산제로 올라가서 수치루로 내려오는 길인데, 골목을 통해 돌아가서 수치루로 올라가 지산제로 내려오는 길로 가는 것이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이렇게 하면 북적거리는 주펀을 그나마 인파에 덜 치이며 편하고 잘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쪽으로 들어가서 오른편 골목으로 꺾어들어갔어요.
무언가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평범한 동네 풍경이었어요. 왠지 서울에서 본 것 같기는 한데, 그것과는 다른 분위기와 모습이 있었어요.
가끔 중국집에서 보았던 홍등이 눈에 잘 띄인다는 것도 매우 놀라웠어요.
정말로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너무나 평화롭고 한적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의 말씀이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예전 이른 아침 카메라 하나 들고 이문동 달동네를 돌아다니던 그때가 생각났어요. 그때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가끔 개 짖는 소리와 사람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었는데, 여기는 그나마도 없었어요. 정말로 모두가 아직 아침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어요.
여기도 이제 슬슬 하루가 시작되고 있는 중이었어요.
고양이가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어요.
"어이구...오늘도 관광객이 오는구나."
고양이 표정을 보니 어렸을 적 하루에도 몇 번씩 보던 관광버스와 거기에 탄 관광객들이 떠올랐어요. 그들을 보았을 때 저도 저 표정 비슷했거든요. 권태가 느껴질 때 그 장면을 보면 좋고 싫고 없이 그저 '오늘도 또 이렇구나'라는 생각이 가끔 들고는 했었죠. '이곳에 볼 게 뭐 있다고 여기 오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곳을 여행하고 싶어했었는데, 지금은 제가 그 관광객 무리 중 하나였어요.
동네 이발소도 있었어요.
내부를 들여다보니 제가 어렸을 적 머리를 깎으러 가던 이발소와 별 차이 없어 보였어요. 어렸을 적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으면 머리를 다 깎고 마지막으로 머리 주변에 거품을 바르고 면도날로 머리 끝부분을 정리해주었지요. 일단 거품이 목에 닿을 때 차가워서 움찔했고, 면도날로 삭삭 긁을 때에는 그 느낌이 참 묘했어요. 요즘은 당연히 느낄 수 없는 느낌이지요.
그런데 이발소 간판 캐릭터는 아무리 보아도 일본 캐릭터를 가지고 온 것 같았어요. 아무리 보아도 일본 NHK 마스코트인 도모쿤 (ど もくん)이었어요.
그리고 성핑시위안이 나왔어요.
이곳은 1914년에 개장한 극장으로, 당시 타이완 북부 최대 극장이었다고 해요. 위의 포스터 오른편 인물은 딱 보아도 일본인. 타이완이 일본 지배를 받았고, 독립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하는데 타이완을 둘러볼 수록 그 말이 맞다는 느낌이 뚜렷해졌어요.
여기에서 조금 더 걸어가자 드디어 수치루 竪崎路가 나왔어요.
아까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개였어요.
역시나 표정은 무덤덤했어요. 하도 관광객을 많이 봐서 이제는 관광객을 지나가는 풍경으로 보는 듯한 눈빛이었어요.
다행히 아직 아침이라 관광객은 별로 없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관광객들이 하나 둘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이렇게 느긋하게 사진을 찍을 여유가 있었어요.
과거 금광이 있었던 것을 알려주는 동상도 있었어요.
계단을 다 올라가서 이제 지산제 基山街 로 내려갈 일만 남았어요.
"비온다!"
수치루 올라갈 때 하늘이 흐린 것이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았어요. 일단 수치루와 지산제가 만나는 지점까지 올라올 때에는 그냥 흐리기만 했는데, 지산제로 내려갈 때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빗방울이 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신경쓰이는 크기였어요.
"이제 지산제 구경하시면서 아래로 내려가세요."
수치루와 지산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기 시작하자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내려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수치루를 올라가는 쪽으로 섰을 때 왼쪽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어요.
지산제는 이제 본격적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어요. 가게들은 문을 열었고, 열심히 장사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죠.
"여기는 정말 사람 많잖아!"
길은 좁은데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고, 길은 사람들로 꽉 들어찼어요.
"어? 오렌지 주스 판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내려가는 길에 오렌지를 직접 짜서 주스로 만들어 파는 가게를 발견했어요. 가족들은 저보다 조금 앞에서 걸어 내려가고 있는 중.
나 이제 '게이 워 이거' 도 알고 '이, 얼, 싼, 쓰'도 아는 남자!
이제 중국어로 '네 개 주세요' 까지는 말할 수 있어요. 전날 밤 다 공부하고 숙지했어요. 이제 '두 개 주세요' 따위는 문제 없어요. 가족들이 인파 때문에 빠르게 내려가지는 못하니까 후딱 오렌지 주스 2개를 사서 가족들 뒤를 쫓아가면 되겠구나.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100% 오렌지 과즙 주스는 못 드셔보았을 테니 꼭 사드려야지! 더욱이 타이완 현지화는 전부 제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제가 챙기지 않으면 우리 가족 아무도 사먹을 수가 없어.
가게 직원 앞에 섰어요.
"니 하오."
가게 직원이 인사를 받아주었어요.
"게이 워 얼거."
"???????"
가게 직원은 제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어요. 분명 어제 성조까지 완벽히 따라하며 익혔는데? 분명 중국어로 '2' 는 '얼' 맞는데? 푹 떨어지는 4성도 제대로 발음했는데?
"게이 워 얼거."
"????????"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오렌지만 짜서 주스로 만들어 파는 가게였어요. 게다가 혹시 몰라서 손가락으로 정확히 오렌지 주스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하지만 역시나 가게 직원은 알아듣지 못했어요.
"얼거!"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어요.
"량거!"
"아...량거!"
2개면 '얼거' 아니었어? 이건 타이완 방언인가? 어쨌든 '얼거'가 아니라 '량거'라고 말해야 2개로 알아듣는다는 것은 알게 되었어요. 직원은 오렌지 주스 두 컵을 짜 주었고, 이것을 들고 길을 계속 갔어요. 가족들이 보일 줄 알았는데 가족들은 대체 얼마나 갔는지 길을 따라 계속 가는데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길을 쭉 따라가면 될 것 같아서 별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2개 주세요'를 말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아니었어요.
"너 어디 갔었어? 지금 시간 늦었잖아!"
어머니께서 뒤로 돌아와서 저를 찾고 계셨어요.
"오렌지 주스 사왔어요."
"지금 늦었어. 빨리 와!"
주펀 입구로 내려왔는데 아직 안 내려온 관광객들도 있었어요. 가족들과 전망대에 올라가 오렌지 주스를 나누어마셨어요. 확실히 맛은 좋았어요.
"가족들이랑 먹으려고 오렌지 주스 사는데, 그 잠깐 사이에 저 버리고 쭐쭐쭐 내려가셨어요?"
왠지 어머니께서 혼자 딴 짓 하고 꾸물대며 늦게 내려왔다고 한 소리 하실 것 같아서 먼저 장난식으로 말했어요. 가족들 모두 오렌지 주스에 만족해했어요. 가족들과 돌아가며 주스를 쭉쭉 빨아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일반 버스를 타고 관광버스가 주차해 있는 정거장까지 내려갔어요. 정거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주펀으로 올라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버스에 탑승하기 전, 주변에 혹시 사진 찍을 만한 것이 있나 둘러보았어요. 길 건너 한쪽에는 오래된 버스 정거장이 있었어요.
지산제에서 사람도 북적이고 비까지 내려서 정신없이 내려왔는데, 다 내려오니 하늘은 다시 맑아졌어요.
'이번에는 내 자리에서 앞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던 도교 사원을 볼 수 있구나!'
보기는 봤어요.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사진이라고는 겨우 이거 한 장 건졌을 뿐이지만요. 그래도 화리엔 타이루거 공원 입구와 달리 이것은 사진을 한 장이라도 건져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