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첫 걸음 (2007)

첫 걸음 - 09 모로코

좀좀이 2011. 12. 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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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피도 눈물도 없이


01.29 전반부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멀리 말리키 학파 양식의 첨탑이 보였습니다. 호텔은 안 옮기는 것으로 결정했고 오전 10시 30분까지는 얌전히 혼자 호텔에서 쉬고 있으라는 일행의 지시로 인해 혼자 방에서 뒹굴거리며 놀았습니다. 아침을 거의 끝나기 직전에 가서 대충 먹고 방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습니다.



어제는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일단 비행기를 타고 1개 국가를 경유해 다른 국가로 왔고, 지중해를 두 번이나 건넜어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짐을 모두 들고 이동할 때는 남의 짐을 슬쩍하는 사람들로 인해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소매치기는 너무 유명해서 말할 필요도 없어요. 모로코는 유럽에 소매치기와 강도를 수출한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에요. 나중에 다시 나오겠지만 스페인에서 소매치기와 강도짓을 하는 애들의 대부분이 모로코 아니면 동유럽 애들입니다. 그래서 호텔에 들어올 때까지 정신없이 환승과 이동, 그리고 짐을 지킨 것 외에 특별히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없었어요. 기차는 칸으로 된 곳에 탔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사진을 찍은 것이고, 그 외에는 밀라노 화장실의 감동 외에 남아있는 감정이라고는 정신없음과 긴장 뿐이었습니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거의 달려나가다시피 호텔을 빠져나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기 때문에 라바트 시내를 조금이라도 둘러보려면 뭐든지 빨리빨리 해서 시간을 아껴야만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택시를 타서 라바트 시내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카사블랑카 공항에서 라바트로 오고, 라바트 시내를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와 잠을 잘 때까지 제가 보고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차가 좋다.


모로코의 기차는 튀니지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튀니지의 기차 좌석은 정말 안 좋았습니다. 앉아서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고 하면 미끄러지는 엉덩이와 함께 시트가 함께 따라올 정도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가 기차 시트를 부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그렇더군요. 그러나 모로코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일단 기차 가운데 한 량은 방으로 되어 있어서 8명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등석은 6명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방으로 되어 있는 객실은 처음 타 보았습니다. 그리고 창가 쪽에는 조그만 탁자가 있고 쓰레기통도 있어서 탁자에 무엇을 올려놓고 자잘한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 객실로 된 기차의 안 좋은 점이라면 복도가 무지 좁다는 것이었습니다. 복도가 너무 좁다보니 짐을 들지 않은 두 사람이 한 번에 지나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짐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우리 일행은 더욱 이 복도를 지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모로코 사람들은 객실 안에서 흡연을 하지는 않더군요. 우리나라의 예전 기차처럼 열차와 열차의 연결부분에서만 담배를 태웠습니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일행분들은 담배 냄새가 객실로 다 들어온다고 짜증을 내셨지만 흡연자인 저로써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튀니지처럼 사람이 많지 않으면 객실 내부에서 담배를 태우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열차 전체적인 시설은 튀니지보다 훨씬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기차의 화장실만큼은 앉을 엄두가 선뜻 나지 않더군요. 워낙 더럽다보니 변기에 앉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2. 담배피는 사람이 튀니지보다 적다.


튀니지에서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굴뚝 하나씩이었습니다. 정말 쉬지않고 담배를 태워대더군요. 공기중의 산소만큼 담배연기를 흡수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를 가도 담배 태우는 사람 한 명은 꼭 있었어요. 전차와 버스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곳에서도 흡연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로코에서 길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태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튀니지의 거리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않고 걷는 것이 무안할 지경이었습니다. 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걷는 것이 훨씬 현지인다워 보인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모로코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걷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저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입에 담배를 물고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거리의 사람들이 워낙 담배를 태우지 않아서 약간 눈치가 보일 정도였습니다. '모로코 사람들은 담배를 별로 태우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도시의 풍경이나 사람들은 튀니지보다 훨씬 못 사는 국가처럼 보였지만 담배 태우는 것만 보면 모로코가 튀니지보다 때와 장소를 더 구분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리에서 담배 태우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3. 거지가 정말 많다.


라바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정말 경악했던 것은 거지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로코에 대해 잘 아시는 일행분께 모로코 거지에 대한 경고를 듣기는 했지만 정말 그토록 거지가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모로코 거지에 대해 들은 주의사항은 절대 상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진지하게 이야기하다가 돈을 달라고 하는 고수 거지부터 처음부터 대놓고 돈을 달라고 하는 평범한 거지까지 거지가 판치는 데에다 거지에게 불쌍하다고 돈을 주면 돈을 받은 거지가 다른 거지들을 불러서 거지들이 우루루 몰려온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차마 할 용기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생존을 위해 거지들이 달려드는 상상을 하니 정말 끔찍하더군요. 생존을 위해 달려드는 거지에게 포위된 후에는 곱게 수중의 돈 전부를 강탈당하느냐 신체에 손상을 입고 수중의 돈 전부를 강탈당하느냐 둘 중에서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실제 거리를 다녀보니 거지가 정말 많더군요. 자식을 동원해서 구걸을 하는-좋게 말하면 거지 가족, 보통으로 말하면 떼거지도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인 가운데 누가 거지이고 누가 일반인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튀니지도 거지는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지들 대부분이 한 자리를 잡고 질펀하게 꾸준히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대부분 장애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쉽게쉽게 말을 걸 수가 있었고 비록 딱 한 번이기는 하지만 돈을 주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로코는 달랐습니다. 워낙 거지가 많고 튀니지처럼 보면 대충 구분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진짜 거리의 사람들 모두 평범한 행인처럼 보였고, 거리의 사람들 모두 거지로 보였습니다. 길가를 걸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향해 돌진해 온다는 상상을 하니 끔찍하더군요. 거지들이 일반인들만큼 깨끗한 것인지 일반인들이 거지만큼 구질구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섣불리 누구에게 말을 물어보는 것이 꺼려졌습니다.


4. 아랍어가 거의 없다.


거리의 간판이 전부 불어였습니다. 아랍어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튀니지에는 거리의 간판들 가운데 아랍어로 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로코는 진짜 거의 전부 다 불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외국인이어서 그런 것인지 다시 물어보면 바로 불어로 튀어나오더군요. 튀니지에서는 최소한 거리의 간판을 보면 '여기가 아랍 물이 많이 남아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로코의 거리에서 간판만 보면 '여기도 아랍국가이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건물들 가운데 아랍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는 오래된 성벽 뿐이었습니다. 새로 짓는 건물도 오래된 건물도 전부 유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거리 간판과 건물만 보아서는 절대 아랍이라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5. 일방통행이 대부분인데다 길도 매우 복잡하다.


모로코의 길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광장이나 로타리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방사성 도로이기 때문에 정말 길이 헷갈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5거리도 보기 힘든데 모로코는 5거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뻗어나가는 도로가 너무 적은 편에 속해서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광장이나 로타리는 보통 6거리 이상이었습니다. 여기에다 모로코의 도로 대부분이 일방통행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일방통행을 많이 설정해서 교통혼잡을 방지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차는 튀니지보다 덜 막히더군요. 도로도 튀니지보다 한산하구요.


그런데 이 일방통행이 거대한 방사성 도로와 만나니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더군요. 방사성 도로이기 때문에 길을 한 번 잘못 들어가면 원래 가야할 곳에서 점점 더 멀어집니다. 삼각형을 그리고 세 꼭지점에 A, B, C라고 쓰세요. 그리고 A에서 B지점으로 간다고 합시다.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최단거리는 변AB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수로 변AC를 타고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변AC가 일방통행일 확률은 거의 90% 입니다. 그 정도로 일방통행 투성이에요. 우리나라 2차선 정도는 무조건 일방통행이고 4차선 정도 되는 길도 일방통행인 곳이 많아요. 차를 탄 상태에서 실수로 변AC로 들어갔다면 절대 되돌아나올 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지나가지 않아도 될 변BC까지 지나가야만 목적지인 B지점에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택시기사들이 이 도로구조를 곧잘 악용하더군요. 도로가 저런 구조여서 악용하기도 쉬워요. 손님이 내려달라고 한 지점만 어물쩍 지나가버리면 택시기사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주 크게 한 바퀴 돌아버리는 것이죠. 이건 지리를 잘 모를 것 같은 손님이 타면 일부러 먼 길로 뱅글뱅글 돌아서 내려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거에요. 일방통행 투성이이기 때문에 손님이 내려달라고 한 지점을 너무 늦게 지적해서 지나가버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정말 반박을 절대 할 수 없는 이유로 크게 돕니다.


이렇게 일방통행이다보니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더군요. 모르는 먼 길을 갈 때 처음은 보통 택시나 버스가 가는 길을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택시나 버스로 갔던 길을 기준으로 삼아서 도보로 가까운 길을 찾죠. 그러나 일방통행 투성이라서 바로 코앞의 지점도 차로는 뱅글뱅글 돌아서 가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택시나 버스로 갔던 길을 따라가면 엄청나게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길을 잘 모르는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정말 치명적인 문제이더군요. 방사성 도로 투성이라서 자신이 엉뚱한 길로 들어갔다는 것을 눈치채기도 쉽지 않습니다. 4거리라면 좌, 우, 직진만 계산하면 되지만 6거리 7거리 되는 길에서는 정말로 햇갈립니다. 여러가지 선택에서 맞는 길 하나를 찾아내야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도 있지만, 꺾어지는 각도도 매우 완만해서 방향을 제대로 잡아도 엉뚱한 길로 들어가기 딱 좋습니다. 솔직히 걸을 때는 잘 모릅니다. 한참 가서야 '아이쿠, 엉뚱한 길로 들어왔구나'라고 알아차리지요. 길이 직각, 또는 직각과 가까운 각도로 꺾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은 직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향을 틀어서 걸어가고 있는 꼴이 되는 길이 많습니다. 게다가 택시나 버스로 갔던 길은 도보로 갈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기준을 잡을만한 건물들이 많은 것도 아니에요. 정말 길 잃어버리기 좋게 생겼더군요. 만약 저 혼자 라바트 시내를 돌아다녔다면 택시비가 꽤 많이 나왔을 것입니다.


6. 차량은 신호를 피도 눈물도 없이 지킨다.


모로코의 차량은 신호를 정말 '피도 눈물도 없이' 지키더군요. 라바트 중심가에서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비교하면 정말 많은 수준이었지만 이미 튀니스를 보았기 때문에 모로코에는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라바트 중심가에서는 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다니는 사람들만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이것은 튀니스 중심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튀니스 중심가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않고 거리를 걷는 사람 찾기가 힘들었고 라바트에서는 담배를 태우며 거리를 걷는 사람 찾기가 힘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차는 자기 신호를 받아도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속도를 줄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치었을 때에 자신이 받아야하는 벌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고 무단횡단하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어요.


튀니스의 차는 자기 신호를 받지 않아도 그냥 달립니다.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사고가 나게 생긴 지점이 아닌 이상 신호를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기 때문에 차량이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위해 속력을 줄이는 경우도 많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무단횡단하면서 차를 충분히 조심할 수 있는 속도로 달렸습니다. 도로 한쪽 끝에서 맞은 편 끝까지 한번에 멈추고 갈 수는 없지만 차선 하나씩 차근차근 지나가면 나름대로 안전하게 무단횡단할 수 있었어요. 차의 꽁무니에 옷이 스친다는 기분으로 지나가면 차량 두 대가 너무 빠르거나 붙어서 달리지 않는 한 안심하고 무단횡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다고 어기적 어기적 기어가도 된다는 것은 아니에요. 무단횡단하는 순간만큼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건너가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런다고 달렸다가는 큰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로코는 우리나라나 튀니스와는 또 다르더군요. 교통신호는 정말 철저하게 지킵니다. 자기 신호를 받았을 때만 가고 자기 신호를 받지 않았을 때는 절대 안 가요. 물론 한밤중이어서 인적이 거의 끊긴 거리라면 그네들도 신호 어기겠죠. 그러나 낮에는 신호를 정말 칼같이 잘 지킵니다. 문제는 너무 칼같이 지켜서 자기 신호를 받으면 절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있어도 양보 따위는 절대 안 하더군요. 제 속도 다 내고, 제 속도에 못 미쳤으면 제 속도를 누리기 위해 악셀까지 밟더군요. 모로코에서 장기체류했던 사람들로부터 모로코 운전자들이 이렇게 운전하는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번째, 모로코 사람들은 자기가 신호를 받았을 때 자기가 규정속도로 달리는 것은 자신들의 권리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모로코 사람들은 평소에는 괜찮은데 운전대만 잡으면 일종의 특권의식을 느껴 매우 난폭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서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로코 운전자들은 자기가 신호를 받았을 때 자기가 규정속도로 달리는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인데다 자신들은 도보로 가는 사람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리를 눈꼽만큼도 양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없어도 가차없이 달려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튀니스, 라바트의 무단횡단 난이도를 평가하자면 


우리나라 ㅣ넘을 수 없는 차원ㅣ 라바트 - [거대한 벽] - 튀니스


순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우리나라는 2차선이나 중요도가 매우 떨어지는 4차선에서는 무단횡단이 가능해요. 이 정도 수준의 도로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가 라바트나 튀니스보다 훨씬 무단횡단하기 쉬워요. 그러나 문제는 중요도가 있는 4차선부터는 교통경찰이 잡는다는 것이죠. 교통경찰이 잡기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하기 힘들어요. 시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라바트, 튀니지와 차원이 다릅니다. 라바트나 튀니지나 교통경찰이 교통정리 하고 있어도 무단횡단해도 되요.


라바트는 차가 절대 무단횡단자를 보고 속도를 줄여주지 않기 때문에 튀니스와 비교할 수도 없이 무단횡단하기 힘듭니다. 라바트보다 더욱 큰 도시인 카사블랑카에 갔을 때는 작은 도로 외에는 무단횡단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생명이 걸린 문제이더군요. 조금만 차가 많아도 진짜 무단횡단할 생각이 전혀 안 듭니다. 경적을 울리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마구 달려요. 피도 눈물도 없이 달려요. 차라리 경적이라도 울리고 제 속도 다 누리며 달리면 덜 무서운데 무단횡단자 뻔히 보면서 경적조차 울리지 않고 제 속도 다 내서 달리는 거 보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보듯이 한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 당시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자면 무단횡단하면서 차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리는 것 같다고까지 생각했어요. 하여간 무단횡단할 때 엄청 긴장되었어요.


튀니지는 진짜 무단횡단의 천국이었습니다. 튀니스 시내에서 유일하게 교통순경이 교통정리를 하는 '스몰벤'에서, 그것도 교통경찰이 뻔히 보고 있는데 무단횡단을 했습니다. 저 말고도 튀니지 사람들 여럿이 무단횡단을 하더군요. 거기에서 교통경찰이 저를 향해 호각을 한 번 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무단횡단을 해서가 아니라 제가 차도 한 가운데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튀니지는 무단횡단하기 쉬워요. 확실히 쉬워요. 처음 할 때는 매우 어렵게 느껴졌지만 불과 하루만에 튀니지에서 무단횡단하는 법을 완벽히 익혀서 이튿날부터는 모든 차도를 횡단보도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다녔습니다.


7. 밤 8시가 되면 거리에 사람이 없다.


모로코는 밤 8시가 되면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더군요. 버스는 끊기고 택시는 이 시각부터 야간할증요금을 받았습니다. 이 시각이 되면 거리에 문이 열린 상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신 식당은 이 시각 즈음부터 문을 열더군요. 그러나 식당이 많이 있는 편이 아니라서 정말 스산한 거리에 어쩌다가 불빛 하나 있는 정도였습니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어느 청년이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한참을 헤매다 오밤중이 되어서 깊은 숲 속의 불 켜진 오두막을 발견했어요'라는 내용이 많이 나와요. 모로코에서 밤에 걷는다는 것은 정말 저 내용의 도시 버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가로등빛, 가끔 보이는 차량 뿐이었습니다.


8. 판자촌도 접시 안테나를 달아놓았다.


이것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모로코는 유럽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유럽으로의 밀입국 관문이고,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모로코는 튀니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접시 안테나를 많이 설치해 놓았습니다. 튀니지도 우리나라보다는 접시 안테나를 많이 설치해 놓았지만 그래도 특별하다고 생각될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많을 뿐이었지 우리의 상식선에서 달려있을만한 곳에만 달려있었으니까요. 도시의 다세대 주택에 몇 개 달려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정말 거의 안 보였구요.


그런데 모로코는 접시 안테나 투성이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멀리서 보면 건물 옥상 담을 영화에서 보던 성채 벽처럼 요철 모양으로 올록볼록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시골은 물론이고 다 쓰러져가게 생긴 판자촌 집에도 접시 안테나가 우루루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은 7번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10시 30분에 격식을 차려야하는 자리에 가서 차를 마시고, 12시부터 3시 30분까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야기하자면 정말 최악의 식사였습니다. 일단 격식을 차려야하는 자리이다보니 재미가 없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부자들이 값비싼 요리를 시키고 지지리 재미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회는 어쩌구 경제는 어쩌구 시장동향이 어쩌니 주식은 어쩌구 재태크는 어쩌구 하는 하품만 찍찍 나오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그 장면을 저는 눈꼽만큼도 동경하지 않아요. 그런 장면만 보면 거부반응이 밀려와요. 그런 자리는 정말 가능한 한 최대한 피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자리였습니다. 상황을 즐겨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에게 재미없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어요. 여행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여행이라고 하면 먹고 싶은 음식을 자기가 원하는 만큼 먹으며 즐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여행은 거리를 걸으며 일반인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고 안 듣는 척 하면서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 거에요. 말을 못 알아들어도 좋아요. 그렇게 사람들 구경하다가 눈썰미로 그네들이 많이 태우는 담배를 찾아내서 구입해 태워보고 그네들이 자주 가는 평범한 식당 가서 식사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러나 이건 아니잖아요. 저의 재미와는 정말 거리가 멀어요. 허름한 식당에서 그네들이 먹는 음식을 먹으며 '이거 맛은 왜이리 쓰레기같아! 두뇌가 코로 흘러나오는 느낌인걸?'이라고 말하며 '이 나라 사람들, 진짜 이상한 거 좋아하네'라고 크게 웃고 싶어요.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웃음 따위도 없어요. 유쾌한 잡담도 없어요. 오로지 경청과 호응 없는 호응만 할 뿐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로코에 대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끝없이 시간만 확인했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그 지역의 음식이라고 먹어본 음식들...정말 무난했어요. '이거 맛은 왜이리 쓰레기같아! 두뇌가 코로 흘러나온느 느낌인걸?' 정도로 맛이 독특하고 맛없는 음식은 없었습니다. 제가 원하던 것은 스푼이나 포크로 두 번째 음식을 들어올렸을 때 토하느냐 먹지 않느냐의 선택을 하다가 '내가 너만은 못 먹겠다'라고 외치는 음식이었어요. 그러나 그런 것은 못 먹어보았습니다. 아랍의 향신료 냄새가 맛있는 냄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카레를 먹을 수 있다면 삼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냥 삼킬 수 있어요. 음식의 맛을 '중독이다-맛있다-맛없다-토할 것 같다-쓰레기다-독약이다'로 구분한다면 맛있다와 맛없다 사이에 아랍음식들이 분포해요. 그래서 음식에서는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밀라노의 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냐하면 빵 남은 것을 싸서 비행기 탈 때 정말 그 빵들 버리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 꼴도 보기 싫었어요. 싫어하는 사람의 입에 썩은 고등어맛 피자를 한가득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 충격을 원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여행에서 맛보는 특별한 음식이라면 밀라노 빵 정도의 충격은 남겨야 해요.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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