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첫 걸음 (2007)

첫 걸음 - 07 튀니지 함마메트

좀좀이 2011. 12. 5.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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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2% 부족할 때


01.27


1월 27일. 오늘은 튀니지의 마지막날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6시 비행기로 밀라노를 경유해 모로코로 들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튀니지에서의 마지막 날...무엇을 하면서 보내야 할까?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 튀니지에서 멋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은 일행분들 전체와 함께 움직이는 날이었습니다. 일행분들은 시디 부 사이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먼저 시디 부 사이드로 갔습니다. 시디 부 사이드로 가기 전, 저에게 한 가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바로 '길 안내'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행 가운데 튀니지를 가장 많이 돌아다녀보고 현지인들과 말이 통하는 인물이 바로 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일행 한 분은 저와 똑같이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현지인들과 대화가 안 통했기 때문에 졸지에 제가 길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튀니스에서 시디 부 사이드로 가는 전차역을 찾는 것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기억이 맞는지 가물가물하더군요. 튀니스의 시계탑을 지나서부터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일행분들은 저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방법은 하나.


방법이란 바로 일행과의 거리를 조금씩 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식하게 멀리 가서 일행을 따돌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만약 길을 정말 헤매게 되었을 경우, 현지인을 잡고 길을 물어볼 시간만큼의 거리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행이 제게 현지인과 무슨 대화를 했냐고 물어보면 '현지인이 담배 한 대 빌려달라고 했어요.'라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머리 속으로 그리던 상황은 닥치지 않았습니다. 대충 감으로 찍은 길이 전차역으로 가는 맞은 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튀니지에서의 마지막날...하늘은 마지막이라고 엄청나게 푸르고 맑더군요. 시디 부 사이드 자체가 눈이 아프게 하얀 칠을 한 동네인데다 햇살마저 강하니 눈을 어디 두어야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와도 아름다워요, 시디 부 사이드. 어제보다 더 아름다워요, 시디 부 사이드.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산까지 보였습니다.



사실 시디 부 사이드에 와서 특별한 감정은 없었습니다. 단지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결정적 이유라면 전날 저는 시디 부 사이드를 갔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틀 연속 같은 곳에 왔으니 특별한 감정이 있을 리 없었죠. 그래도 전날보다는 전체적으로 더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전날 왔을 때는 여기저기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처럼 공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제는 길에 트럭도 다니고 곳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숨쉬는 작업의 현장은 그다지 눈에 많이 띄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긴장되었던 점이라면 저와 같이 갔던 일행 한 분이 튀니지에서 한국으로 우편물을 부치게 되어서 제가 길안내를 해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혼자 또는 책임자로써 어제 시디 부 사이드를 돌아다녔다면 길 안내 정도는 매우 쉬워요. 그러나 문제는 어제 시디 부 사이드 안내를 해 주신 일행분이 한국으로 우편물을 부치러 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낭패가...완벽한 하나의 동선으로 머리 속에 길이 그려지지 않더군요. 어제 사진을 찍을 때 '여기는 정말 아름답다'라고 생각한 지점들은 생각이 났지만, 점A에서 점B로 가는 여러가지 길 가운데 가장 괜찮은 길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시디 부 사이드의 요트정박장. 멀리 대통령궁도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안내는 60점 수준이었습니다. 정말 꼭 가야하는 A+급 장소는 거의 다 안내했지만, 나머지 A0~B0급 장소는 거의 전부 빠트렸습니다. 전날 자아정체성을 상실하고 짖어대던 고양이가 있는 지점은 찾았지만 그 자리에 자아정체성을 상실하고 짖어대던 고양이는 없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자아정체성을 찾았거나 증상이 더 악화되어서 산으로 기어올라가 달밤에 '우워워'하고 울어대나 봅니다.


저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뿐이었습니다. 제가 안내해야하는 길은 튀니스에서 시디 부 사이드를 갔다가 카르타즈를 거쳐 튀니스역(기차역)에서 하마마트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머리 속이 온통 그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디 부 사이드에서의 구경은 크게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시디 부 사이드 구경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 튀니지의 어린이들이 차가 지나갈 때 오렌지를 던지고 차가 오렌지를 밟아서 오렌지가 퍽 터지면 재미있어서 깔깔 웃더군요.


튀니지나 나중에 나올 모로코나 거리에 오렌지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은행나무와 달리 튀니지와 모로코의 거리에 심어진 오렌지 나무의 오렌지는 식용 오렌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너무 시다 못해서 써서 먹지 못한다네요. 가로수로 심어진 오렌지 나무의 오렌지는 올리브유를 짤 때 사용된다고 합니다.


저 놀이 사실 엄청나게 재미있어. 나도 해 보고 싶어.


제가 어린이였다면 한 번 따라서 해 보았을 것입니다. 정말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저도 잘 알아요.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유 급식이 나오면 꼭 하루에 몇 개씩은 안 먹은 사람들로 인해 남았고, 남은 우유들은 쌓여서 썩기 마련이었습니다. 썩은 우유는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복도에 놓인 화분의 식물에게 밥으로 주었습니다. 그래서 날이 더워지면 복도에서 우유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썩은 우유를, 그 가끔 중에 정말 가끔은 우유가 먹기 싫어서 우유를 들고 집에 가다가 애들과 장난으로 지나가는 차의 바퀴를 향해 던졌습니다. 차가 우유를 밟으면 퍽 터졌고, 우리는 그것을 보며 재미있어서 깔깔 웃었습니다. 그 놀이를 다시 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먹을 수 있는 우유를 던지는 것은 이제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로수의 오렌지는 어차피 먹지도 못하는 오렌지. 던져도 죄책감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놀이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커 버렸어.


그렇습니다. 그 놀이를 하기에는 제가 너무 커 버렸습니다. 만약 제가 오렌지를 하나 따서 차 바퀴를 향해 던진다면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저에게 덤벼들겠죠. 경찰서에 가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장난이 너무 하고 싶지만 나이를 먹어서 할 수 없다는 것에서 밀려오는 슬픔.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디 부 사이드로 들어가는 길에서 한 입 먹고 버린 오렌지와 입에서 씹은 오렌지 조각 몇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관광객들이 모르고 오렌지를 따먹어 보았겠죠. 참 맛이 있었을 겁니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그 맛에 감동해서 한 입 먹고 바로 뱉어버렸겠습니까.


물론 '튀니지와 모로코에서 가로수로 심어진 오렌지 나무의 오렌지는 정말 뭐같이 맛없어. 진짜 토나와.'라는 말을 여행 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도 좋아요. 사람들이 원하는 여행의 이야기란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감탄과 외국문화의 훌륭함에 대한 칭송보다는 여행자의 무지로 인해 당한 봉변들이니까요. 그러나 알면서 일부러 '튀니지와 모로코에서 가로수로 심어진 오렌지 나무의 오렌지는 정말 뭐같이 맛없어. 진짜 토나와'라고 말하기 위해 먹어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일부러 바보짓을 찾아서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미 알게 모르게 튀니지에서 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행동을 많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가로수의 오렌지 시식'이라는 너무나 뻔한 바보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시디 부 사이드에서 전차를 타고 카르타고의 유적이 있는 카르타즈로 갔습니다.



카르타즈로 가는 전차 안의 '전차가 정지하기 전에 문을 열지 마시오' 경고판. 옆에 뒤로 자빠져 떨어지는 사람의 그림이 정말 와닿아. 문의 고무가 다 찢어져서 바람이 술술 들어오고 손을 그 사이로 집어넣어도 괜찮은 것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시디 부 사이드에서 몇 정거장 지나자 장난기 많은 남자애들이 전차에 탔습니다. 그 애들은 문틈에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저것들, 손 절단될라고 환장한 거 아냐?'


전철 문에 손이 잘리고 엘리베이터 문에 목이 껴서 참수 아닌 참수당하는 장면과 이야기를 너무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에 튀니지 남자애들이 전차 문틈에 손을 푹 집어넣는 것은 손이 잘리기 위해 발악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차 문이 닫히더니 남자애들의 손 때문에 다시 열리더군요. 우리나라였다면 차장이 문 닫기 전에 벌써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을 상황. 문이 닫힐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은 역장에게 마음 속에서 박수. 그런데 문이 다시 열렸는데도 남자애들이 손을 안 빼. 이건 차장에 대한 정면도전. 왠지 차장이 달려나와서 문틈에 손을 집어넣은 소년을 잡아내어서 호되게 뺨을 때리고 발로 사정없이 걷어찰 것 같아. 그런데...


그냥 출발한다.


그냥 출발한다.


전차 문을 안 닫은 채로 그냥 출발한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전차 문이 열린 채 전차가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차 문틈에 손을 집어넣은 두 명의 남자애들은 전차 문에 손을 넣고 사실상 문틈에 매달려 갔습니다. 그것이 재미있는지 깔깔 웃더군요. 이러니 저 뒤로 자빠지는 그림이 와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차가 문이 열렸다고 속도를 덜 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밀리다가 잘못하다가는 전차 밖으로 떨어질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 녀석들...충분히 전차가 멈추기 전에 힘으로 문을 열고 뛰어내릴 것 같아.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습니다. 문이 열린 채로 가다가 긴장감이 떨어지면 달리는 전차에서 뛰어내리는 보다 위험한 놀이를 할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상, 솔직히 말도 되지 않지만 튀니지 사람들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튀니지 사람들이 장난기가 심한 것은 불과 며칠 머문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위험한 장난을 하는 무모함, 그리고 이렇게 장난을 친다고 문을 열고 출발하는 역장...저의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무단횡단에 이어 또 다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지막날까지 충격을 주는군요.


전차를 타고 카르타즈역에 내렸지만, 카르타즈에 카르타고 유적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습니다. 내려서 바다 반대쪽으로 걸어가다가 길을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une patrimoine가 통했습니다.


"어디에 유적이 있나요?"

"왼쪽으로 꺾어가다가 우측에 계단이 나오면 계단을 올라가세요."

"감사합니다. 혹시 담배 태우세요?"

"예...? 예."


그래서 한국 담배 디스 한 개피를 권했습니다. 그렇게 한국 담배의 맛을 튀니지 사람 한 명에게 알리고 그 사람이 알려준대로 길을 갔습니다. 그 사람의 말대로 계단이 나왔습니다. 계단 앞에서는 인부 두 명이 무슨 작업을 하더군요.


"실례합니다."

"예?"

"혹시 담배 가지고 계세요?"


작업하던 인부 한 명이 제게 다가와서 담배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예. 이거 한국 담배에요."


제가 디스 한 개피를 건네주자 인부는 다른 인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뭐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그 의미야 한국이나 튀니지나 다르겠습니까. '내 동료도 담배 태우는데 한 개피 더 줄 수 있나요?'라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한 개피 더 주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유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인부는 맞다고 하며 담배 고맙다고 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자 성당이 나타났습니다.



성당 이름을 물어보자 '카테드랄'이라고 하더군요. eglise cathedrale 이라고 했습니다. 튀니지에도 대주교가 있나?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카테드랄 성당'은 프랑스가 지었다고 하더군요.



카테드랄 성당 앞에서 본 카르타즈의 풍경입니다. 아무리 봐도 하얀 말리키 양식의 사각형 첨탑은 너무 예뻤습니다. 두어 번 보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지만, 하얀 말리키 양식의 사각형 첨탑은 여행 내내 질리도록 보았지만 볼 때마다 너무 예쁘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날씨도 좋아요. 튀니지의 마지막날. 모든 것이 좋아요. 길 안내도 제가 생각할 때 지금까지는 상당히 잘 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모르는 길은 물어보아서 잘 찾아내었습니다. 일단 길을 잃거나 못 찾아서 헤메는 시간을 없앴다는 것만으로도 길 안내는 성공했다고 스스로 저 자신을 칭찬했습니다.


카테드랄 성당 바로 옆이 카르타고 유적지였습니다. 이 유적지 전체를 '카르타고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문제는 입장료가 매우 비쌌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10유로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일행분들은 카르타고 박물관에 들어갈 지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결론은 '들어가지 말자'였습니다. 일행분들이 의논하는 동안 저는 개구멍을 찾아보았습니다. 관광지에서 오래 산 결과, 어떤 관광지라도 개구멍 하나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튀니지의 카르타고 유적지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철창을 따라 돌아보는데 한 튀니지인이 철창 틈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철창 틈에 두 팔을 집어넣고 찍은 카르타고 유적>


개구멍 발견!


역시 저의 추측이 맞았습니다. 문제는 일행분들이 개구멍의 이용을 강력히 반대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외국 관광객의 입장에서 개구멍을 이용하다가 적발되면 국제망신에 재수없으면 여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애써 발견한 개구멍을 뒤로 하고 전차를 이용해 튀니스로 돌아갔습니다.


튀니스 전차역에서 튀니스 기차역까지는 도보로 20~30분정도 걸리는 거리이지만 기차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튀니스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표를 끊는 순간, 한 가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수스에 갈 때와 수스에서 돌아올 때, 기차는 자유좌석이었어. 표에 나와있는 좌석표는 아무 소용 없었어. 한 사람이 두 좌석을 차지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늦어. 기차 출발 직전에 기차를 탄다. 승객이 많다면? 승객이 기차 좌석의 절반만 되어도 자리가 없을 확률이 발생한다. 과연 승객은 얼마나?


저의 불길한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기차에 올라탔는데 사람들이 좌석번호를 지켰을 리도 없었고, 한 사람이 두 좌석을 차지한 곳도 여러군데였습니다. 일행분들은 이 상황에 대해 상당히 언짢아하셨지만 저는 이미 수스를 다녀올 때 경험했기 때문에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일행분 중 한 분이 검표원에게 번호표대로 앉는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자유좌석이에요. 좌석번호대로 안 앉아요.'였습니다.


하마마트까지 가는 기차는 비르 부레그바(bir bouregba)역에서 환승해야 합니다. 환승을 위해 내리자마자 환승할 기차로 잽싸게 올라갔고, 그 덕분에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내려야 했습니다. 하마마트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내리기 싫더군요. 겨우 편안히 앉게 되었는데, 이제 좀 앉아볼까 하자마자 내려야 하다니...


하마마트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갔습니다. 하마마트에서 유명한 것은 바로 바다-즉 지중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시디 부 사이드에서 실컷 지중해를 보았다는 것, 그리고 저는 3일 연속 지중해를 방문했다는 것...수스의 지중해에서는 튀니지의 지중해에 왔다는 기념을 남기기 위해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맨 얼굴로 돌아다녔습니다. 두번째, 시디 부 사이드에서는 좀 더 확실히 태워보겠다는 생각으로 맨 얼굴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세번째...얼굴에 스킨이나 로션을 바르는 것을 싫어해서 바르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슬슬 따갑더군요. 매우 부담스러운 햇빛이었습니다.



<하마마트의 해변가와 오래된 성채>


하마마트의 해변에서도 조개껍질을 하나도 줍지 못할 것인가? 두 눈에 불을 켜고 해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찾았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튀니지 지중해의 조개껍질을 찾았습니다! 이건 길거리에서 1만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의 기분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바닷가에 조개껍질이 없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가 3일동안 바다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조개껍질 하나 주웠습니다. 이건 정말 돈이 한 푼도 없고 돈이 생길 날은 일주일 뒤인데 방 구석 먼지 속에서 1000원을 찾아낸 기쁨이야! 항상 '최소한 얼마는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지내다가 갑자기 궁지에 몰린 상황,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의 아주 귀중함을 혼자 뼈저리게 느낄 때 등장한 구세주. 드디어 찾았습니다. 지중해의 조개껍질. 실제 크기는 손톱 크기였고 예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중해 바닷가에서 홀로 남아 저를 기다려 주었다는 것만으로 이것은 나에게 보물의 가치가 있어! 튀니지에서 드디어 조개껍질을 주웠다고 좋아했습니다. 오늘의 피로, 짜증...모두 날아갔습니다. 이 조개껍질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손익계산은 이익 무한대로 되었습니다. 지갑을 분실하지만 않는다면 정말 오늘의 손익계산은 이익 무한대로 마침표로 확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사원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슬 3개나 꿰어 놓았군요. 구슬 3개짜리 사원이면 보통 사원 규모인데...기차를 타고 튀니지의 시골풍경을 구경하면서 구슬 하나짜리도 발견했습니다. 생긴 것은 아무리 보아도 사원이라고 볼 수가 없는데 정말 사원이었을까요? 사원이라면 정말 매우 독특한 모습의 사원일 것입니다. 과연 이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튀니지의 공동묘지입니다. 무덤의 규모가 클수록 부자의 무덤입니다. 그래서 처음 무덤을 만들 때는 묘비만 세우고 돈을 모아서 조금씩 무덤의 규모를 늘리기도 한다고 하네요. 무덤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생겨서인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고향의 영향도 있겠죠. 어려서부터 무덤을 주변에서 워낙 많이 보다보니 무덤을 보고 무섭다는 생각은...그래도 봉분이 있어야 무덤처럼 보이는데 봉분이 없으니 특별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이 무덤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제가 크게 무서워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외국인, 귀신은 튀니지 사람. 저는 말이 안 통하는 척 하면 되요. 귀신이 저에게 뭐라고 말하든 고개만 갸우뚱 갸우뚱. 귀신 속이 터지겠지요. 저는 아무 잘못 없어요. 저는 외국어라고는 하나도 못하는 외국인이니까요. 그런데 귀신이 한국어로 말한다면 공포가 한국에서 귀신 만났을 때의 두 배가 되겠죠. 한국어 하는 튀니지인 귀신이 나와서 '으헤헤헤헤헤헤헤 학생, 튀니스에 어떻게 가?'라고 물어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어요.


1. 생전에 한국어를 공부했던 튀니지인의 귀신

2. 귀신이 되면 초능력이 생겨서 우주 삼라만상을 꿰뚫게 된다

3.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귀신과 내가 서로 마음이 통해서 말이 아닌 마음으로 대화한다


저 가설 가운데 답이 하나이든, 둘이든, 셋이든, 아예 없든 간에 튀니지 귀신이 나타나서 한국어로 말한다면 진짜 다리가 후덜덜 떨리게 무서울 거야. 정신이 몽롱해지고 공포에 온몸이 사로잡혀. 깨어나보면 여권과 지갑은 없어. 귀신이 가족들의 생활비에 보탬을 주려고 가져갔을 수도 있고 정신을 잃은 사이 튀니지 사람들이 와서 지갑과 여권을 빼어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무서워. 튀니지에서는 아랍어나 불어 하는 귀신이 나와야지 한국어 하는 귀신이 나와서는 안 돼. 그런건 완전 안 좋아. 너무 무서워.


하마마트 구경을 마치고 하마마트역으로 가는 길에 드디어 구슬을 5개나 꿰어 놓은 첨탑을 보았습니다. 왜 5개를 꿰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게 정말 큰 사원인지, 아니면 그냥 사원 지은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5개를 꿰어 놓았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사원 앞을 지나갈 때 때마침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나오더군요. 아잔이 나오면 그 많은 아랍인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기도를 할 줄 알았는데 그 누구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잔이 울려도 할 것을 다 하더군요. 아잔이 울리면 도시 전체가 멈추는 것처럼 여러 아랍 관련 자료에서 보여주더니만 튀니지에 와보니 아잔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것은 모로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마마트역으로 가는 길에 잠시 길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길을 찾아서 무사히 하마마트역에 갔습니다. 하마마트역은 정말 길을 잃어버리기 좋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기차는 단선이고 노선도 짧고 기차편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역은 당연히 작았습니다. 솔직히 기차역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할 지경이었습니다. 역에 문이 열려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역무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마마트역보다 하마마트 기차정거장이 더 좋은 표현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만들 지경이었습니다. 하마마트역에서는 기차표를 팔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기차에 탄 다음 검표원에게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하마마트역에서 기차표를 사기 싫어서 안 산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기차표를 팔지 않았습니다.


이 작은 하마마트역에서도 진귀한 구경을 했습니다. 하마마트에서 비르 부레그바 역으로 가는 기차가 올 시각이 다가오자 튀니지 사람들이 기차를 타기 위해 하나 둘 하마마트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99%가 입구가 아닌 철로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철로 양쪽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더군요. 기차역에 아무도 없으니 철도에 기차가 없으면 사람들에게 철로도 평범한 길이자 공간이었습니다. 철로에서 노는 어린이부터 철로를 타고 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까지 별별 사람들이 다 있더군요. '철로 무단횡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비르 부레그바 역


비르 부레그바 역에 도착해서 환승하는 시간이 널널해서 잠시 역에서 나왔습니다. 정말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비르 부레그바 역 내부입니다. 무단횡단을 방지하기 위한 쇠사슬?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막 건너가도 됩니다.



비르 부레그바 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이 기차는 수스나 스팍스에서 오는 기차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탔지만 일행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제게 튀니지 기차 시간표가 있다면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기차 시간표를 고향에 두고 올라온 바람에 확인할 수가 없네요) 저는 혼자 한 튀니지 청년 옆에 앉았습니다. 저와 동갑이었는데 기차가 튀니스역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심각한 정치 이야기나 경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잘잘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튀니지 청년은 자신이 5개월 후 캐나다 퀘벡을 방문할 것이며 아크로바트(?) 선수라고 했습니다. 또한 자신은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 청년이 담배를 태웠다면 함께 기차에서 담배를 태웠을 것입니다. 그 청년은 서로 간단한 자기 소개가 끝나자 저에게 튀니지 쿠스쿠스를 먹어보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매우 맛이 좋았다고 말했고, 튀니지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는 이 여행을 통해 완전 親튀니지파가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 풍경 모두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걸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튀니지 청년이 좋아하더군요. 이 튀니지 청년과 이야기하며 한 가지 알게된 것은 튀니지 사람들이 프랑스를 매우 좋아하며 시라크를 정말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라크가 튀니지를 많이 위해줬다고 하면서 미국은 좋아하지 않지만 프랑스라면 정말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부터 그 청년이 저에게 호감을 보인 이유 중 하나가 제가 떠듬떠듬 불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거의 모든 대화를 아주 부족한 불어로 떠듬떠듬 이야기하고 정말 막히는 부분만 아랍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 청년에 저에게 보다 많은 호감을 보인 것 아닐까 합니다. 이 만남을 중심으로 다른 튀니지, 모로코 사람들과의 접촉을 나름대로 분석해본 결과, 그들은 자기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강했습니다. 튀니지 사람들은 튀니지가 모로코보다 훨씬 좋은 국가라고 생각했고, 모로코 사람들은 모로코가 튀니지보다 훨씬 좋은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 국가 위에는 프랑스가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제게 프랑스 대통령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시라크'라고 말했습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튀니지 대통령의 이름도 아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튀니지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는 초대 대통령인데...지금 대통령 이름은 누구이지?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자 '벤 알리'가 현재 튀니지 대통령 이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솔직히 약간 미안했습니다. 그 청년은 '반기문'과 '노무현'을 알더군요. 우리나라가 유명한 것인지 김정일이 유명해서 덤으로 유명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잘 알더군요. 반기문씨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 이야기가 튀니지 사람들은 코피 아난 전 UN사무총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반기문씨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기차가 정지했습니다. 그러더니 기차가 좀처럼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그 튀니지 청년 모두 'Qu'est-ce qu'il y a?!'를 외쳤습니다. 짜증으로 외친 것이 아니라 단지 이유가 궁금해서 함께 외쳤습니다. 잠시 후, 그 튀니지 청년의 친구가 와서 기차가 차를 들이받았다고 하더군요. 사고가 큰 사고라서 사람들이 크게 다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차안은 정말 평온했습니다. 튀니지에서 무모한 용기의 결말이 어찌되는지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튀니지에서 기차는 '절대자'급 존재입니다. 그런 절대자급 존재에 자동차가 덤볐으니 당연히 그 결과는...그 사고로 인해 기차가 튀니스역에 도착했고, 우리는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도쪽에 앉았기 때문에 먼저 일어났고, 튀니지 청년이 늦게 일어났습니다.


"Mon ami! Au revoir!"


이렇게 외치고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튀니지 청년이 저를 잡아당기더군요. 그리고 '비주'를 했습니다. 드디어 외국인과 처음 비주를 했습니다. 정말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서로 갈 길이 달랐기 때문에 저는 일행과 함께 기차역을 나왔습니다. 튀니스역을 나와보니 역앞에 책을 파는 좌판이 열렸더군요. 그래서 이것을 구입했습니다.



바로 조그만 코란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란의 1/4입니다. 속을 펼쳐보면 내용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5디나르 주었습니다. 기념품으로 좋더군요. 코란 전문이 인쇄된 작은 코란도 있었지만 그것은 제가 산 것보다 크고 가격도 비싸서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현지 화폐라고는 20디나르짜리 지폐와 동전 몇 개가 전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다가 안 쓰면 기념으로 가질 돈이었기 때문에...솔직히 그 코란 전문을 구입하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현지 화폐의 고갈이었습니다...거기에서 작은 코란과 아-불 소사전을 사고 나니 현지 화폐가 사실상 고갈되었거든요. 아-불사전은 돌아다니며 불어로 이야기하다가 답답한 경우가 많아서 급히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외국 여행을 가실 때 현지 언어를 약간 아시고 가방에 여유가 된다면 한국어-현지 언어 사전을 꼭 챙겨가시기 바랍니다. 물론 사전은 작을 수록 좋습니다. 단순히 여행하고 사람들과 잡담하는데 고급어휘를 쓸 일은 없을테니까요. 책을 구입한 후 저녁을 먹었습니다. 튀니지에서 기차가 연착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고가 나서 연착한 일 외에는요.


튀니스의 호텔로 돌아와서 체크 아웃을 하려는 순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제를 유로로 하려고 하자 1유로에 1.5디나르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환전소가 모두 문닫은 상황. 더욱이 다음날 새벽 3시에 호텔에서 나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튀니스의 환전소에서 환전할때의 환율은 1유로에 1.68디나르였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바가지요금 수준이었습니다. 처음 말한 가격으로 지불하고 싶으면 디나르화로 결재하라고 했습니다. 한참 호텔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큰길인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 있는 5성 호텔인 아프리카 호텔에 가서 환전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수중에 보유한 외화와 현지 화폐가 다를 경우 호텔 체크아웃은 전날 아침에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현지화폐로 결재할지 수중에 보유한 외화로 결재할지 결정할 수 있고, 현지화폐가 부족할 경우에는 환전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엄청난 바가지를 뒤집어 쓸 수도 있습니다. 일정에 쫓기고 돈을 지불해야만하는 입장에서는 흥정을 할 위치가 아니니까요. 상대는 무조건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1원도 안 깎아주어도 상대는 자신의 주장을 다 들어주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수중에 보유한 외화와 현지 화폐가 다를 경우 호텔 체크아웃은 전날 아침에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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