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첫 걸음 (2007)

첫 걸음 - 11 모로코 라바트 시장 풍경

좀좀이 2011. 12. 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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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신은 내 두 입술에 말했다. "합쳐져라!" (02)



택시를 타고 살레에서 다시 라바트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있었던 프랑스 문화원 건물입니다. 확실히 프랑스의 입김이 강하더군요. 사람들도 프랑스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구요. 서양에 대한 적대감과 프랑스에 대한 호감은 별개인 것 같았습니다. 만약 둘이 별개가 아니라면 이렇게 대놓고 크게 프랑스 문화원이라고 알릴 수는 없었겠죠. 서양에 대한 적대감과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똑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대놓고 프랑스 문화원이라고 크게 알린다면 당장 테러당하겠지요. 특히 反서양 시위가 일어날 때 주요 타겟이 되었겠죠. 그래서 모로코 주재 미국 문화원은 엄청나게 입구도 좁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살레 구경을 마치고 라바트 시내로 돌아와서 재래시장 구경을 갔습니다. 여기도 구 시가지 및 재래시장이 있는 동네는 'la medina'였습니다. 저 말은 이 지역 공통으로 쓰이는 것 같더군요.


시장에서 특히 조심해야할 것은 바로 소매치기...일단 소매치기의 악명이 높은 곳으로는 스페인이 있어요. 그런데 스페인 소매치기와 강도의 대부분은 정통 스페인 소매치기가 아니라 동유럽 및 모로코의 용병들이라네요. 즉 유럽에서 활동하는 소매치기의 원조를 느껴볼 수 있는 곳. 그러나 그런 거 전혀 느끼고 싶지 않아요. '소매치기도 마그리브 문화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향기야!'라고 주장하며 소매치기에게 당할 것을 권한다면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여권을 팔아버리겠어요. 한국 여권이 이 동네에서는 미화 5천 달러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주요 고객은 단연 중국인이구요. 5천 달러면 우리 돈으로 5백만원! 전체 여행경비로 예상한 금액의 두 배보다도 훨씬 큰 돈이잖아! '스페인 들어가서 귀국 직전에 여권을 팔고 바로 분실신고할까'라고 생각 해보기도 했어요. 이건 완전 거저먹는 장사에요. 그러나 범죄세계와 연줄이 닿고 싶지 않아서 바로 히죽히죽 웃으며 상상단계에서 폐기. 부대찌개의 원조를 맛볼 수 있다면 괜찮아요. 그러나 소매치기의 원조를 맛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이것들, 분명히 불법복제일 거야.



콩 종류를 파는 상인이고, 뒤에 얼핏 보이는 좌판은 뭔가를 삶아서 파는 상인이에요. 이 근처에서 상당히 고약한 악취가 났는데, 그 범인이 이 둘 가운데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견과류 파는 가게입니다.


우오오! 대추야자닷! 정말 정말 사고 싶어! 저거 무지 맛있는데...진짜 최고의 맛인데...그러나 멀리서 군침만 꿀떡꿀떡 삼켰습니다. 튀니지 호텔에서는 아침에 대추야자도 주던데 모로코의 호텔에서는 대추야자를 안 주더군요. 옛날에는 이라크 대추야자를 최고로 쳤는데, 이제는 튀니지 대추야자를 최고로 친답니다. 하여간 대추야자 보니까 침이 꿀꺽꿀꺽...아랍와서 대추야자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튀니지 호텔에서 몇 번 맛본 것 빼고는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정육점입니다. 걸려있는 것은 분명히 양고기일 거에요.



옷가게입니다. 모로코 여자 전통의상은 확실히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만...


저 옷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향신료가게입니다. 냄새는 이제 하도 많이 맡아서 무덤덤해졌습니다. 제가 먹는 음식 속에 저런 것들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향신료 가게에서는 향신료 외에도 이것저것 다양한 잡화도 함께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향신료만' 파는 가게는 많지 않았습니다.


시장길을 따라 계속 가다보니 큰 거리가 나오고, 큰 거리를 건너가자 모로코 병무청이 등장했습니다. 여기는 사진촬영 금지라서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병무청 담에서는 병사들이 웃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인지 그냥 놀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위협적인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병무청을 지나가자 공동묘지가 나왔습니다.



푸른 바다와 등대, 그리고 공동묘지...음산하기 보다는 너무나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한국의 무덤이 모로코의 무덤보다 훨씬 무섭게 생겼더군요. 우리 나라 공동묘지에서는 바로 귀신이 튀어나와서 '어이~나랑 좀 놀지? 함께 무덤 속으로 들어갈까?'라고 말할 것 같은데 여기 무덤은 사람이 오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무덤도 다닥다닥 붙어있어요. 우리나라보다 귀신밀도가 훨씬 더 높은 공동묘지였습니다.



공동묘지를 보고 다시 시장으로 들어가서 시장 구경을 조금 더 하다가 큰길로 나왔습니다.



보석방입니다. 허리띠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저거 차고 돌아다니면 '너, 무슨 챔피언 먹었냐'랴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을 설 것 같았습니다. 저걸 진짜 차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미적 감각의 차이가 확실히 대단하기는 대단하더군요. 우리나라 같으면 저런 허리띠 만들어서 팔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은데...저거 스댕과 메끼, 큐빅도 아닐 거 아니에요. 보석방에서 '스댕, 메끼, 큐빅 판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저런 허리띠를 잔뜩 만들어서 진열해 놓을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에요. (스댕-스테인레스, 메끼-도금)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책을 한 권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거 얼마에요?"
"씬디람"
"씬디람?"


아랍어도 알고 불어도 알고 모로코 방언도 약간 알아요. 그러나 그 어디에도 '씬디람'이라는 말은 없어요.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일행 가운데 아랍어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제가 아랍어와 불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의사소통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자신감. 이 자신감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씬디람이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한참동안 생각. 책을 파는 사람은 제가 흥정을 생각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 어차피 '너무 비싸요. 깎아주세요.'라고 말하면 여기 사람들은 흥분하기 때문에 흥정할 때는 시간을 노리는 방법이니까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 가지 알아내었어요.


여기 화폐는 디르함(dirham)이라는 사실. 튀니지는 디나르이지만 여기는 디르함이야. 그런데 환전을 오늘 점심에야 했기 때문에 아직 현지 화폐를 단 한 번도 안 써봤어. 그래서 당연히 아직까지 머리와 입과 귀에 익숙한 화폐단위는 디나르. 내 머리와 귀가 원했던 대답은 '몇 디나르'였기 때문에 약간의 착각이 온 거야. 그리고 히읗 발음은 모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어물쩍 넘어가서 못 들었을 수도 있어. 그러므로 씬디람은 씬 디르함일거야. 하지만 씬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신드롬(syndrome) 뿐이야. 아랍어 공부하다보면 아랍어에서는 자음이 중요하고 모음은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 그래서 이 주인의 발음이 다른 외국어도 모음을 무시하고 자음만 중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신드롬이란 우리말로 증후군, 어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를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야. 나는 분명히 '이거 얼마에요?'라고 물어보았는데 '어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를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라고 대답할 리 없잖아. 더욱이 내가 집어든 책은 아랍어로 된 베르베르어 교재. 책 제목이 '신드롬'이라고 볼 수도 없어. 진짜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야.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봤어.


"이거 얼마에요?"
"씬디람."


다시 물어봤으나 또 돌아오는 대답은 씬디람. 그래서 내가 아는 불어의 범위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Quoi? Pardon?"


이 말에 돌아온 대답은...


"Five!"


할 말을 잃어버렸어. 공항과 역의 방송을 들으며 여기 불어 발음이 약간 이상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어. 그러나 나의 상상은 어디까지나 나나 튀니지 사람들처럼 앵앵 거릴 것이라는 추측이었어. cinq dirhams을 '쌩 디람'이라고 하지 않고 '씬디람'이라고 할 줄은 전혀 몰랐어. 어쨌든 가격을 알았으니 흥정을 하자. 그런데 이상해.


입이 안 열려!


흥정을 위해 입을 열려고 해도 입술이 안 떨어져. 바로 전까지 술술 잘 나오던 불어가 갑자기 하나도 안 나와. 아주 자연스럽게 되던 동사변화조차 하나도 안 돼. 오로지 한국어만이 머리 속에 남아있을 뿐이야. 아무리 불어로 흥정하려고 해도 흥정이 안 돼. 일단 입술이 떨어져야 말이 나올텐데 입술이 안 떨어져. 디나르와 디르함의 차이는 웃어넘길 수도 있어. 어차피 디르함 뒤에 붙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디르함보다 더 작은 화폐단위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 간단한 숫자조차 나올 생각을 안 해. 결국 Five를 들은 후 입술이 안 떨어져서 5디르함을 지불했어. 이건 패배가 아니라 경기장에도 들어가지 못한 거야. 나는 지금 경기장에 들어가서 승부를 걸고 싶은데 경기장에 들어갈 수가 없어. 그러고서는 무조건 졌다고 우겨. 경기장에 들어가면 이길 수 있다고 아무리 외쳐도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할 수 없대. 그러면서 졌대. 억울해. 정말 억울해. 그러나 여기는 나의 홈구장이 아니야. 이건 어쩔 수 없는 나의 패배야. 멋지게 싸우고 하얗게 불타며 쓰러진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방적으로 진 거야. 제대로 된 경기조차 해보지 못했어. 이런 패배는 도저히 용납할 수는 없지만 일단 흥정경기에서 1패가 추가되는 순간.


문제는 이 일 이후부터 불어가 도저히 안 나왔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불어로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불어가 안 나오더군요. 이건 겁에 질려서라든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진짜로 입술이 짝 달라 붙으면서 한 마디도 안 나오더군요. 그 쉽던 동사변화조차 하나도 안 되구요. 1패의 후유증이 너무 컸습니다. 태국에서는 exchange를 '액첸'이라고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주변에서 외국을 다녀오신 분들이 제가 여행 나가기 전에 한 말은 한결같이 '아무리 외국어를 잘한다고 해도 처음 외국 나가면 입술이 붙어버리니 기초 여행회화책이라도 하나 들고 가라'였습니다. 튀니지에서는 그 말을 몰랐어요. 너무 재미있게 대화했어요. 어차피 대화 상대는 거의 100% 남자였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말문이 막히면 서로 눈을 쳐다보고 미소짓다가 박장대소하고 하이파이브 한 번 시원하게 때리면 다 통했어요. 그러나 모로코에 와서, 그것도 여행에서 사용하는 불어 정도라면 할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후에 이렇게 입술이 붙어버릴 줄은 전혀 몰랐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씬디람...신은 제가 너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시샘하여 제 두 입술에 순간접착제를 잔뜩 발라서 봉인시켜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5디르함입니다.



씬디람의 충격을 그대로 껴안고 라바트 중심가의 야경을 구경했습니다. 이것은 왕궁 끄트머리에 있는 첨탑입니다.



이것은 라바트 중심가에 있는 길입니다. 가운데에 잔디밭이 있고 양쪽에는 가로수가, 그리고 그 옆에 인도가 있습니다. 벤치도 있어서 사람들은 시내 중심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잡담을 하기도 하더군요.



이것은 라바트 중심가에 있는 'Gare de Rabat vill'(라바트빌 기차역) 앞에 있는 광장의 분수입니다. 가동을 안 하더군요. 멀리 보이는 첨탑이 바로 왕궁 끄트머리에 있는 첨탑입니다. 참고로 라바트에는 기차역이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중심가에 있는 라바트빌 역이고 하나는 제가 묵었던 숙소 바로 옆에 있는 'Gare de Rabat agdal'(라바트 아그달 기차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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