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울

현지 소식 - 이슬람 최대 명절 라마단, 서울 이태원 모스크를 가다

좀좀이 2013. 8. 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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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슬람 최대 명절인 라마단이에요.


우리나라에는 그냥 '단식'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래도 요즘은 이슬람이 우리나라에 조금 많이 알려진 편이라 예전보다는 덜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라마단은 우리나라에서 '괴로운 단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하지만 실제 이슬람권에서 라마단은 오히려 축제랍니다. 낮에는 물론 괴롭지요.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백주대낮에 물도 안 먹고 심한 사람은 침까지도 안 삼키고 뱉으니까요. 하지만 해가 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답니다. '이프타르'라고 라마단 첫 식사가 시작되면 사실살 파티 시작이랍니다. 친척들과 모여 음식을 나누어먹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지요.


단, 낮에 견뎌야 하는 고통은 지역마다 강도가 다르답니다. 기후 차이도 있을 뿐더러, 사회적으로 라마단을 지키는 분위기, 또는 라마단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라마단 단식의 강도는 매우 높아지죠. 제가 작년에 있었던 우즈베키스탄 역시 무슬림이 많은 국가이기는 했지만, 라마단을 배려하는 국가는 아니라서 이것을 지키는 무슬림들이 꽤 많이 힘들어했어요. 모든 업무 같은 게 전부 정상적으로 돌아가거든요.


우리나라 역시 무슬림들이 가장 힘들어할 때가 라마단이에요. 우리나라는 특히 무슬림이 소수이다보니 라마단에 대한 배려는 없거든요. 그래서 특히 한국인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금식을 하는 것을 꽤 힘들어해요. 외국인 무슬림이야 '쟤는 외국인에 무슬림이니까'라고 쉽게 이해가 되지만, 한국인 무슬림들에 대해서는 그런 이해가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요.


그러면 왜 무슬림들은 반드시 라마단때 금식을 철저히 지키려고 할까요? 사실 라마단때 전 기간 금식을 안 해도 되기는 한답니다. 교리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금식을 안 하고, 안 한 만큼 라마단이 끝난 후 따로 금식을 해서 채워도 되요. 그리고 여기에서 '부득이한 경우'는 율법으로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매우 관대하게 적용할 수도 있고, 매우 엄격하게 적용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라마단때 하는 금식에 비해 라마단때 하지 못해 나중에 하는 금식은 훨씬 효력이 적다는 것이에요. 간단히 비유를 하자면, 라마단 때 금식을 하면 천당행 마일리지를 매일 3포인트씩 쌓는데, 라마단 때 금식을 못 해서 라마단 끝나고나서 금식을 하면 매일 1포인트씩 쌓이는 것이죠.


저는 8월 2일 금요일, 한국에서의 라마단을 보기 위해 서울특별시 이태원 모스크에 가 보았답니다.


저녁 7시. 친한 형과 종로에서 출발해서 이태원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바로 가지는 않고 헌 책을 팔러 알라딘 서점에 갔다가 젖은 적이 있는 책은 매입이 안 된다 하여 결국 동대문까지 가서 팔려 했지만 거기서도 매입 안 한다 해서 알아서 팔아달라고 그냥 드리고 이태원으로 향했어요.


이날 식사 (이프타르) 시각은 오후 7시 41분. 이프타르 시각은 매일 달라진답니다. 원래는 흰 실과 검은 실을 매달아놓고, 두 실의 색이 구분이 안 될 때가 바로 이프타르 시각이지요. 하지만 요즘은 빛 공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방팔방 밝아서 이런 방법을 쓸 수가 없어요. 오지깡촌도 가로등이 다 들어가 있는 21세기에 쓰기에는 매우 어려운 방법. 그래서 이 이프타르 시각은 라마단 때가 되면 매일 몇 시인지 다 나와요. 그 시각이 되면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시각에 맞추어 가려 했지만 헌 책을 가지고 씨름하다보니 훨씬 늦은 시각에 도착해 버렸어요.


사실 라마단 기간 동안에는 이프타르에 밥을 모두에게 그냥 준다는 말을 들어서 진짜인지 확인해보려고 가는 것이었는데 시간을 훨씬 넘겨버려서 가는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이태원_밤거리


전혀 라마단이라는 게 안 와닿는 이태원 거리 풍경. 평소와 마찬가지로 술집도 많이 열려 있고, 술집으로 클럽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이태원 모스크라면 정말 질리도록 많이 갔어요. 2002년에 처음 가 본 이후, 일 년에 몇 번씩은 꼭 가게 되는 곳. 거리에 있는 건물 전체가 싹 다 바뀌어도 이태원 모스크라면 찾아갈 자신이 있을 정도에요.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와 첫 번째 골목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인도 카레 부페가 나오는데 계속 올라가요. 그러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르막인 왼쪽 길로 올라가면 모스크가 나오죠.


모스크를 향해 가는데 무슬림들이 우루루 걸어내려오고 있었어요. 식당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구요.


"밥 준다는 거 틀린 정보였나?"


하지만 이것은 제가 무슬림한테 직접 들은 정보. 틀릴 리는 없었어요. 만약 없다면 제가 늦게 가서 때를 놓친 것.


사원에 가까워지자 하얀 일회용 플라스틱 도시락을 들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아직도 밥 주나?'


이미 이프타르 시간에서 한참 늦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모스크에 들어가 보았어요.



라마단_이태원_모스크_이프타르


"진짜였구나!"


밥을 주는 곳이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다 여자기도실 입구쪽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타서 마시고 있길래 여쭈어보았어요.


"밥 먹을 수 있나요?"

"저기 가면 먹을 수 있어요. 빨리 가 보세요!"


무슬림 분께서 '밥 먹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웃으시며 친절하게 알려주셨어요.


알려주신 곳에 가자 아랍인 한 분이 제게 물어보셨어요.


"밥 먹을 거야?"


순간 당황한 형은 아니라고 했어요. 먼저 밥 먹을거냐고 물어보셔서 순간 저도 당황했지만, 곧 밥을 먹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아랍인은 다른 아랍인을 부르더니 하얀 일회용 도시락을 주셨어요.



이태원_모스크_이프타르_식사


이렇게 도시락을 받아 적당히 자리에 앉았어요.



비르자니_차파티


"바로 이 맛이야!"


예전 아랍 국가에 체류할 때 먹었던 것과 비슷한 맛이었어요. 수건 비슷하게 생긴 건 얇은 빵이에요. 이건 국가마다 이름이 달라요. 차파티라고 하기도 하고 뭐 이름이 지역마다 다 달라요. 그리고 사진에서 스파게티 처럼 보이기도 하고 밥 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은 비르자니. 쌀은 길고 찰기 없는 인디카이고, '메르지멕'이라는 붉은 녹두 비슷한 콩과 각종 향신료와 양고기가 들어가 있었어요. 참고로 비르자니는 인도에서부터 아랍 국가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먹는 쌀밥 요리로, 먹는 지역이 넓은 만큼 다양한 비르자니가 존재해요. 이날 제가 먹은 것은 인도-파키스탄 풍의 비르자니. 전혀 한국화되지 않은 맛이었어요. 저는 예전 아랍에 머물렀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맛있게 먹었지만, 순수 한국인이라면 먹기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맛이었어요.


자리를 보니 과일도 나오고, 샐러드도 나오고, 치킨도 나왔던 흔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늦게 갔고, 무슬림도 아닌데 이렇게 라마단이라고 무료로 밥을 얻어먹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어요. 저 역시 진짜 라마단을 제대로 하는 곳에서 라마단을 보내본 적은 없어요. 이슬람 국가에서 라마단을 맞이한 것은 우즈베키스탄이 전부인데, 우즈베키스탄은 아랍 국가만큼 엄격하고 크게 라마단을 하지는 않거든요. 아랍 국가에서는 라마단 때 사원에 가면 식사를 준다고 하던데, 우리나라 이태원 모스크도 마찬가지였어요.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라마단_모스크_야경


이태원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내려다본 모습.



모스크와_이프타르


저곳에 아까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앉아 다 같이 식사를 했겠죠.


한국에서 라마단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비록 이프타르 직전 예배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조금이나마 우리나라에서의 라마단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 먹고 내려오는 길에 사서 먹은 주스.



리치_주스


매우 특이한 맛이 날 줄 알았는데, 그냥 감귤 주스와 비슷한 맛이 나더군요. 가격은 1000원이었는데, 그냥 신기한 것 먹는다는 점까지 고려해서 딱 1000원어치의 맛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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