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삼대악산 (2010)

삼대악산 - 21 월악산

좀좀이 2011. 11. 2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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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을 보니 그냥 답이 없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계단이 많고 급한데 옆은 이렇게 생겼어요. 진짜 설악산 대청봉 때처럼 바람까지 휭휭 불었다면 정말 대책 없었을 거에요. 정말 열심히 올라갔어요. 그래서 1440, 정상 도착.



젊은 것을이 왜 이제야 올라와?”


친구의 친척분들께서는 정상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드시고 계셨어요. 우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나름 열심히 올라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체력이 저질이라 너무 오래 걸렸어요. 이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었어요.


와서 밥 좀 먹어. 이거 우리 혼자 다 먹기에는 많다.”

그래, 와서 좀 먹어. 산에 와서 배고프면 안 되잖니.”


친구의 친척분들께서 우리에게 점심밥을 조금 나누어 주셨어요. 우리가 다 먹자 친구의 친척분들께서는 먼저 내려가신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영봉 비석에 올라갔어요. 주변에 보이는 것? 그런 것 없었어요. 흐려서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비에 젖어서 으슬으슬 추웠어요. 정말 설악산 대청봉만큼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이제 내려가자.”



영봉 가는 길에서 마지막 장애물. 우리 앞에서 내려가던 사람이 이 나무에 머리를 부딪혔어요.


공무원들은 이런 거 하나 안 치워놓고 뭐하는 거야!”


올라갈 때도 이게 정말 고약한 장애물이었는데 내려갈 때도 고약한 장애물이었어요. 공무원들이 이 나무를 그냥 두는 이유는 아마 이 나무가 죽어서 쓰러진 나무가 아니라 그냥 살아있는 나무이기 때문일 거에요.


좌아악


영봉 입구에 도착하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어요. 빨리 달려서 내려가고 싶은데 신발에 믿음이 가지 않아 달릴 수 없었어요. 더욱이 친구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해서 혼자 신나게 속도를 내서 갈 수도 없었어요. 일단 내려가는 코스는 동창교 코스. 이쪽은 올라왔던 코스가 아니라 신중히 길을 찾아가야 했어요. 비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바가지로 물 끼얹듯 비가 퍼붓고 있어서 앞도 잘 안 보였고 옷은 순식간에 쫄딱 젖어 버렸어요.


너 먼저 내려가라. 내려가서 기다리다가 나 안 내려오면 조난신고 해.”


지쳐버린 친구가 제게 먼저 내려가라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설악산 때와 달랐어요.


이 상황이면 재수 없게 조난당해도 같이 당하는 게 훨씬 나아. 여차하면 서로 등 대고 체온으로 버티다가 내일 내려가지.”


아주 어렸을 적, 한라산 조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어요. 아마 형제였을 거에요. 눈보라를 만나 둘 다 탈진했는데 한 명은 동굴에 남고 한 명은 구조대를 불러 오겠다고 동굴에서 나갔는데 둘 다 얼어 죽었어요. 어차피 지금은 여름. 남자 둘이 등을 붙이고 체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짜증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진짜 큰 사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어요. 둘이 같이 있으면 이 비가 그칠 때까지만 버티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둘이 떨어져 있으면 오히려 더 위험할 것 같았어요. 더욱이 지금은 여름. 겨울처럼 순식간에 얼어 죽을 일은 없어요.


사진 찍을만한 것들이 몇 군데 있었어요. 대표적인 곳이 통천문. 분명 지나기는 했지만 사진을 못 찍었어요. 그냥 앞으로 가느라 정신없었어요.



오후 4시쯤 되자 비가 거의 그쳤어요. 이때부터 평범한 하산길이 이어졌어요.



드디어 동창교까지 1.6km!



우리를 잔뜩 고생하게 만든 월악산은 아무 말 없었어요. 구름이 걷히고 모습을 제대로 한 번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거 없었어요. 솔직히 비가 다시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1730. 드디어 무슨 사당 비슷한 곳에 도착했어요. 여기에서 월악산 산신제를 지낸다고 했어요. 이곳을 지나 또 열심히 걸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자광사에 도착했어요.


여기에서 쉬었다 가자.”


날이 개었어요. , 다리를 씻고 신발을 벗어 말렸어요. 옷도 갈아입고 싶었지만 아직 버스 타러 가야했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었어요.


쏴아아


다시 쏟아지는 소나기...친구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어요. 한참동안 소나기가 멈추기를 기다렸어요. 다행히 진짜 비가 아니라 소나기여서 기다리자 그쳤어요. 친구와 터벅터벅 걸어 버스 정류장에 갔어요. 버스 정류장은 특별히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주유소 앞이었어요.


서울 가자.”


너무 피곤했어요. 충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친구에게 그냥 서울로 바로 돌아가자고 하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서 버스에 올라탔어요.


망할 냉방!”


온몸이 젖어 있었어요. 그냥 젖은 게 아니라 아주 흠뻑 젖어 있었어요. 그 상태에서 버스에 탔는데 버스 에어컨은 정말 겨울 칼바람처럼 강력했어요. 당연히 이가 덜덜 떨리고 추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제 자리의 에어컨은 닫아버렸지만 그걸로 될 일이 아니었어요. 가방에서 갈아입기 위해 가져온 옷을 꺼내 덮었지만 역시나 추웠어요. 서울 가는 동안 휴게소도 안 들렸어요. 정말 지옥의 시간. 밖은 덥다고 난리인데 저는 정말 추워서 난리였어요.


버스가 서울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어요. 감기, 몸살에 걸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어요. 물에 흠뻑 젖은 옷은 하나도 마르지 않았어요. 그 상태로 집에 간다면 보나마나 다음날 드러누울 거였어요.


동서울터미널에서 친구와 헤어져 바로 집으로 왔어요. 저는 내심 밖은 많이 더워서 이 추운 몸을 녹여주기를 바랬지만 하필이면 이날 온도가 많이 떨어져서 몸이 녹지 않았어요. 전철 안은 당연히 냉방. 집에 오자마자 보일러를 틀고 온수로 몸을 녹였어요. 한여름에 몸이 꽁꽁 얼어서 온수로 해동하는 웃긴 상황이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어요. 정말 너무 추웠거든요.


온수로 몸을 녹이고 바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어요. 당연히 에어컨은 껐어요. 그제야 좀 살 것 같았어요. 드디어 삼대악산이라는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 다 끝냈구나. 정상에서 본 것은 없지만 정상을 밟기는 했구나. 이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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