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계터미널 뒷편으로 갔어요.
도계터미널 뒷편에서 본 도계읍 전두리 풍경은 아름다웠어요. 다시 도계터미널 버스 주차장으로 갔어요.
도계터미널에서 나왔어요.
이 여행의 끝은 도계에서 끝내기로 마음먹고 삼척종합버스정류장에서 70번 버스를 타고 도계터미널로 왔어요. 여기까지는 순조로웠어요.
계획이 없다.
도계에서 여행을 끝낼 계획도 아니었다.
"어디 가지?"
오십천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어요. 막상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까지 오기는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도계 와서 어디를 갈지 전혀 생각해놓은 것이 없었어요. 그저 도계 가서 도계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청량리역으로 가서 의정부로 돌아가야겠다고만 생각했어요.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도계터미널에서 버스에서 내리자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나 벌써 도계 세 번째 왔어.
도계에서 웬만한 건 다 봤어.
여기 새로울 게 있을 리 없잖아!
2022년 8월 29일에 도계에 처음 왔어요. 이때는 탄광촌이 궁금해서 여행을 왔어요. 그때 전두리 일대를 돌아다녔어요. 2022년 10월 6일에 또 도계에 왔어요. 이때는 운탄고도1330 8길을 걷기 위해 왔어요. 태백에서 첫 차 타고 새벽에 넘어와서 흥전리를 둘러봤고, 흥전리에서 전두리를 거쳐 늑구리까지 다 걸어가며 봤어요. 그러니까 도계에서는 딱히 가볼 만한 곳이 안 남아 있었어요.
도계에서 안 가본 곳이 남아 있기는 했어요. 첫 번째는 대한석탄공사 동덕갱이 있는 황조리였어요. 황조리 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대학교라는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가 있어요. 두 번째는 태백시 방향으로 한참 내려가면 있는 도계유리나라였어요. 강원도 도계읍 심포리에 있는 도계유리나라는 도계 지역 석탄 산업이 쇠퇴하자 대체산업으로 유리 공업을 키우기 위해 만든 체험 테마파크에요. 석탄을 걸러내고 남은 경석에서 뽑아낸 도계 유리는 유해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양질의 유리로 밝혀지면서 탄광 폐석을 이용해 유리 공예품, 글라스 아트 타일, 트로피, 상패 등을 생산하는 곳이에요.
'둘 다 가기엔 너무 먼데...'
황조리, 심포리 둘 다 도계터미널에서 걸어서 갈 거리가 아니었어요. 작정하고 가려고 하면 갈 수는 있었어요. 도계역에서 출발해 청량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6시 54분에 도계역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어요. 둘 다 가기는 어려워도 한 곳 정도라면 걸어서 다녀올 시간적 여유는 있었어요.
도저히 못 걸어가겠다.
발이 죽도록 아파.
문제는 발 상태였어요. 너무 아팠어요. 걸어다닐 때마다 송곳으로 발 뼈를 쑤시는 통증이 느껴졌어요. 신발이 아무리 길이 들었다고 해도 발 볼 자체가 좁았기 때문에 많이 걸었더니 신발 볼이 좁은 문제가 다시 발을 괴롭히고 있었어요. 멀리까지 열심히 걸어서 갔다올 발이 아니었어요.
'전두리 안에서 돌아다녀야겠다.'
멀리 가지 않고 전두리 안이나 천천히 걸으며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다리를 건넜어요.
"도계가 이런 색이었구나!"
도계에 세 번째 왔지만 맑은 날은 처음이었어요. 앞서 두 번 왔을 때는 항상 날이 매우 안 좋았어요. 그냥 안 좋은 게 아니라 비가 내렸어요. 비가 내릴 때 도계읍 전두리는 세상이 빗물을 머금으며 채도가 높아지며 색이 진해지는 것이 아니라 검은 석탄가루 빛이 올라오며 검은색이 올라와 색이 진해졌어요. 그래서 전에 두 번 왔을 때는 진짜 까만 동네로 보였어요.
맑은 날 와서 보니 전에 와서 봤을 때 도계의 색깔과는 완전히 다른 색이었어요. 게다가 그 사이 단풍도 매우 예쁘게 들었어요. '탄광촌'이라는 이미지만 지우고 보면 자연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지역이었어요.
누가 빨래를 널어놨어요.
도계역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인클라인 철도가 보였어요. 인클라인 철도는 한국어로 강삭철도라고 해요. 인클라인 철도는 열차 차량에 줄을 연결하고 줄을 모터 동력으로 풀고 말며 움직이는 철도에요. 도계역 근처에는 인클라인 철도가 있어요. 사람이 타고 다니는 철도는 아니에요. 바로 인근 대한석탄공사 도계갱에서 나온 폐석을 광차에 실어 산 위로 운반할 때 사용하는 인클라인 철도에요.
까막동네로 가는 철도 건널목 위로 올라갔어요.
도계역 방향을 바라봤어요.
철길 신호등이 땡땡땡 울리기 시작했어요. 철길 건널목이 닫히고 기차가 지나갈 거라는 신호였어요. 철길 건널목에서 나왔어요.
기차가 철길을 지나갔어요.
부전역에서 동해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였어요.
기차가 지나가고 철길 건널목이 다시 열리자 철길 건널목 위로 다시 올라갔어요.
멀리 도계역 방향으로 탄차와 무궁화호 열차가 보였어요.
길을 건너서 까막동네로 갔어요.
'전에 왔을 때 여기가 탄광이라는 것도 몰랐는데...'
웃음이 나왔어요. 도계에 처음 왔을 때였어요. 도계가 탄광촌이라는 것을 알고 궁금해서 왔어요. 그때 탄광촌 왔는데 탄광 한 번 봐야하지 않겠냐며 폭우 속에서 탄광을 찾아 헤메었어요. 결국 탄광을 못 찾고 포기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도계역 바로 뒤가 탄광이었어요. 도계역 바로 뒷편에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도계갱이 있어요. 그러니까 도계역 왔다면 탄광도 같이 본 셈이에요.
맨 처음 도계 여행 왔을 때 봤던 평상이 있었어요.
할머니께서 제 쪽을 향해 걸어오셨어요. 할머니께 인사드렸어요.
"안녕하세요."
할머니께서 인사를 받아주셨어요.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소?"
"아, 여기가 탄광촌이라고 해서 궁금해서 왔어요. 제주도 출신이거든요."
"아이고, 여기 볼 거 아무 것도 없는데..."
할머니께서는 제가 탄광촌 풍경이 궁금해서 도계로 여행 왔다고 말씀드리자 여기 볼 거 없는데 어떡하냐고 안타까워하셨어요.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요."
"예?"
"바쁘지 않으면 와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요. 여기 아무 것도 없는데 커피라도 마시고 가요."
할머니께서는 이 동네 볼 거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며 자기 집으로 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 자기 집으로 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셔서 할머니를 따라갔어요. 할머니 댁은 까막동네에 있었어요.
할머니 댁 안으로 들어갔어요. 할머니 댁 안에는 연탄 보일러가 있었어요. 할머니께 허락을 받고 연탄보일러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할머니께서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타주셨어요. 할머니께서 주신 커피를 마시며 까막동네 가옥 내부를 봤어요. 8평쯤 되는 단칸방이 있었고, 단칸방 앞에는 연탄 보일러와 주방 공간이 있었어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할머니의 오빠는 광부였다고 하셨어요. 할머니의 오빠는 여든까지 사셨고, 규폐증으로 돌아가셨다고 하셨어요.
"할머니, 이 동네 지금도 사람들 많이 사나요?"
"여기? 노인들만 살아. 이제 다 나이가 있어서...올 한 해 동안에만 40~50명은 죽었어."
"예? 그렇게나 많이요?"
"다 나이가 있으니까."
할머니께서는 까막동네에서 거주하는 주민들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나이가 매우 많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2022년 한 해 동안에 까막동네에서 40~50명 돌아가셨다고 하셨어요.
"할머니, 여기 여행 오기 전에 글 본 게 있는데요, 거기 보니까 여기가 흥전항에서 캐낸 석탄 운반하는 삭도 때문에 석탄 가루 날려서 까막동네라고 하더라구요."
"맞아. 예전에는 석탄 가루 엄청 날렸지."
할머니께서 옛날 일을 떠올리시는 듯 잠시 말씀을 멈추시더니 말씀하셨어요.
"삭도가 없어진 때부터 도계가 쇠락하기 시작했어."
제가 본 자료에는 없는 내용이었어요. 할머니께서는 흥전항에서 캐낸 석탄을 도계역 뒷편 저탄장으로 운반하는 삭도가 없어진 때부터 도계가 쇠락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주셨어요.
할머니께서는 도계는 석공 - 대한석탄공사 지역이라고 알려주셨어요. 도계에서 전두리, 흥전리, 심포리 등 대부분 지역이 대한석탄공사 탄광 지역이었고, 늑구리는 탄광이 있었지만 거기는 민간 광산이었다고 알려주셨어요.
할머니께서는 며칠 전에 도계 사람들이 도계 살릴 대책 내놓으라고 시위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갱이 문을 닫을 때마다 사람들이 많이 떠나갔다고 하셨어요. 지금 남아 있는 탄광도 석공에서 적자 보면서 운영하고 있는 거라 광산 닫는다는 건데, 이쪽 주민들은 광산 문 닫으면 이 동네 완전히 노인 빼고 아무도 안 남을 거라 시위했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석공에서 탄광을 적자 보면서 운영중인데 어쩌겠냐며 한숨을 내쉬었어요.
할머니께서는 도계에 있는 다른 탄광 갱인 점리, 심포리는 예전에 닫았고, 흥덕갱도 몇년 전에 문 닫았다고 하셨어요. 도계에 이제 갱이 2개 남았는데 여기 폐쇄하면 광부들 다 떠날 거고 노인들만 남을 거라고 하셨어요. 현재 갱은 도계역과 황조에 남아 있다고 하셨어요. 도계역 쪽에는 도계갱, 황조리 쪽에는 동덕갱이 있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아랫쪽 심포리에서는 유리 팔고 황조리에는 대학이 있다고 하셨어요. 할머니 어투에서 그것들 다 영 시원찮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가 있어서 대학생들이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예전 탄광이 많이 운영될 때에 비해서는 도계에 사람이 턱없이 적은 데다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 대학생들이 모두 도계에서 사는 것도 아니에요. 도계유리나라는 진짜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의 어투에서 대학교도 생겼고 도계유리나라도 생겼지만 도계가 사라져가는 걸 막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일종의 체념이 느껴졌어요.
"할머니, 항과 갱은 어떻게 다른 거에요?"
"항은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이고, 갱은 나중에 우리말로 바꾼 거야."
도계 돌아다니며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인 항과 갱의 차이를 여쭈어봤어요. 할머니께서는 항은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이고 갱은 나중에 우리말로 바꾼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도계항과 도계갱, 흥전항과 흥전갱은 의미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 의미적으로 완전히 같은 말이라는 말씀이었어요. 단지 예전에는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을 그대로 써서 도계항, 흥전항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우리말로 바꾸면서 도계갱, 흥전갱으로 바뀌었대요.
할머니께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셨어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할머니와 같이 나왔어요.
"할머니, 감사합니다."
"여행 잘 하고 가요."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도계역으로 갔어요.
'여기는 역사 유적 마을로 제대로 테마 잡아서 보존, 개발하면 진짜 좋을 텐데...'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는 살아 있는 역사 유적 마을이에요. 대한민국 현대사 산업화 역사 유적 마을이에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눈부시게 빠르게 성장하던 산업화 시기의 한 축에는 광업이 존재했어요. 강원도 남부에서 채탄한 무연탄은 전국에서 난방 연료로 사용되었어요. 대한민국 현대 산업화 역사에서 강원도 남부 석탄 산업을 빼놓을 수 없어요.
우리나라 석탄 산업은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의 시행과 함께 급격히 몰락했어요. 탄광이 폐광하면 탄광촌도 철거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현재 남아 있는 탄광촌이 거의 없어요. 2022년 가행중인 탄광은 몇 곳 없어요.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라남도 화순군에만 있어요. 나머지 지역에 있는 탄광은 모두 폐광되었고, 탄광촌 모습도 거의 모두 사라졌어요.
우리나라에서 탄광촌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곳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에요. 태백시 장성동도 아직까지 탄광촌이기는 하지만 여기는 탄광촌 느낌이 그렇게 크게 강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결정적으로 태백시 장성동에서 채탄된 무연탄을 저장하는 저탄장은 장성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암동에 있어요. 반면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는 당장 기차역인 도계역 바로 뒤에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도계갱이 있어요. 저탄장과 인클라인 철도도 있구요. 도계읍 전두리 일대에는 과거 탄광촌 모습이 지금도 그대로 많이 남아 있어요.
전두리는 대한민국 현대사 산업화 역사 유적 마을로 관광산업을 개발하면 매우 좋을 거에요. 지금은 한국 현대사 중 산업화 역사가 아직 완전한 역사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 영역에도 속해 있어요. 그래서 정치 이념에 따라 논란과 논쟁도 심한 편이에요. 그러나 먼 미래에는 순수하게 역사의 영역이 될 거에요. 그러면 그때 사람들은 산업화 역사 유적을 찾아 여행을 다닐 거에요.
경상북도 경주 가서 신라 유적을 찾고 충청남도 공주, 부여 가서 백제 유적을 찾아다니는 것과 똑같아요. 경주가 신라 유적 도시이고, 공주, 부여가 백제 유적 도시인 것처럼 강원도 삼척시 전두리는 대한민국 현대사 산업화 역사 유적 마을이에요. 그러니 대한민국 현대사 산업화 역사 유적 마을로 잘 보존하고 개발하고 홍보하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을 거에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는 아직도 옛날 탄광촌 모습이 상당히 많이 그대로 남아 있고, 자연 경치도 좋은 지역이에요. 그러니 대한민국 현대사 산업화 역사 유적 마을로 보존, 개발하는 것도 매우 좋을 거에요.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하는 것도 매우 좋다고 봐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적이 없잖아요. 맨날 국사 시간때 이래서 없어지고 저래서 사라졌다는 말만 잔뜩 듣고, 실제로 제대로 남아 있는 유적이랄 게 별로 없어요. 국사책 보면서 우리나라는 왜 남아 있는 유적이 별로 없냐고 아쉬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이런 곳은 잘 남길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더욱이 이 지역은 소멸 위기에 몰린 곳이기 때문에 더욱요. 가만히 놔둔다면 여기도 앞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탄광촌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어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구요. 사람 없는 마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건 언제 생겼대?"
운탄고도1330 표지판이 있었어요. 전에 왔을 때 봤는지 못 봤는지 가물가물했어요. 아마 있기는 했을 거에요. 신기역에서 운탄고도1330 표지판 본 기억은 확실히 있었어요. 그러니 도계역에도 당연히 있었을 거에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건물이 보였어요.
계속 도계역 주변을 돌아다녔어요.
전두리 읍내 방향을 향해 걸어갔어요.
11월 2일이라 해가 짧아지고 있을 때였어요. 고작 오후 3시 49분인데 햇볕에 붉은빛이 강해지고 있었어요. 풍경도 갈 수록 붉어지는 햇볕을 받아 점점 붉은 빛이 진하게 끼어가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