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깊게 잠들었네?"
낮에 졸려서 잠깐 드러누웠다가 일어나서 할 거 하려고 했어요.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다시 할 거 하려고 했어요. 눈을 떠보니 세상이 아주 깜깜했어요. 스마트폰으로 몇 시인지 확인해봤어요. 2022년 10월 19일 자정이었어요. 2022년 10월 19일은 운탄고도1330 3길과 운탄고도1330 9길을 걷기 위해 저녁에 기차를 타고 강원도 영월군으로 가기로 한 날이었어요.
"더 자야겠다."
이렇게 된 이상 잠을 더 자기로 했어요. 점심 즈음에 일어나서 기차표 예매하고 할 거 하다가 시간 되면 청량리역 가서 무궁호화 열차 타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역으로 가기로 했어요. 영월역은 일찍 갈 필요가 없었어요. 영월역 가서 딱히 할 만한 것이 없었어요. 영월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시장이 있기는 했지만 시장 구경하기도 애매했어요. 영월역 근처에서 밤 늦게까지 놀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혼자 가는 여행인데다 영월군은 시골이라서 버스가 별로 없어요. 너무 멀리 가면 안 되었고, 갈 수도 없었어요. 시장 구경한다면 시장 구경 후 찜질방 들어가서 잠을 청하기 전까지 시간이 길고 애매하게 남을 거였어요.
다시 두 눈을 감았어요. 눈을 감았는데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암흑이 보였어요.
'왜 이렇게 깊게 잤지?'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잠이 안 왔어요. 너무 푹 잤어요. 영월군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지금 자야 하는데 잠을 너무 푹 잤더니 잠이 하나도 안 왔어요. 이러면 이따 오후에 졸릴 거였어요. 오후에 잠을 자면 당연히 영월군으로 못 갈 거였어요. 오후에 또 잠시 잠 깬다고 드러누우면 그대로 깊게 잠들 게 뻔했어요. 게다가 분명히 시간도 슬슬 씻고 준비해야 할 시간 즈음에 졸리기 시작할 거였어요. 그러므로 무조건 자야 했어요.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어요.
바닥에 드러누워서 애써 잠을 청해봤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어요. 이번 일정이 설레어서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진짜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깊게 자고 깨어났기 때문에 잠이 안 오는 거였어요. 이건 정말 방법 없어요. 아무리 잠을 못 자는 일이 없다는 저라고 해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왜냐하면 잠을 너무 잘 자고 일어나버렸기 때문에 더 자고 싶어도 잠이 없었어요.
그렇게 바닥에서 계속 더 자려고 뒤척였어요. 몇 시간을 뒤척였지만 잠은 오지 않았어요.
"일어나자. 일어나서 할 거 하다가 아침에 조금 자야겠다."
여전히 깜깜한 어둠. 새벽 4시였어요. 진짜 모든 노력을 다 해서 잠을 다시 자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어요. 불을 켜고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3박 4일 여행이니 글을 미리 써야 했어요. 글을 쓰는데 집중이 하나도 안 되었어요.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앉아서 무의미하게 인터넷 뉴스나 마우스로 깔짝깔짝 클릭하며 보다 보니 어느새 동이 텄어요.
'이거 시작부터 더럽게 꼬이네?'
안 가면 그만입니다.
포기하면 평화로워집니다.
마음 속에서 이날 말고 나중에 가도 된다는 마음의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어요.
왜 굳이 생활 리듬을 억지로 바꾸려 함?
그거 간다고 누가 상 줌?
운탄고도1330 3길과 운탄고도1330 9길은 안 가도 그만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 여행 계획짜고 갈 때와는 달랐어요. 운탄고도1330 8길 갈 때는 매우 흥분되었고 어떤 길이 펼쳐질지 너무 흥미진진해서 견딜 수 없었어요. 하지만 운탄고도1330 3길과 운탄고도1330 9길은 그런 흥분은 별로 없었어요. 궁금하기는 했지만 안 가도 상관없었어요. 궁금하니까 가기는 하지만 그 궁금증이 순수한 안 가본 곳에 대한 즐거운 호기심이 아니었어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가기 귀찮아졌어요. 청량리역에서 영월역 가는 기차표를 봤어요. 자리가 널널했어요. 청량리역에서 영월역 가는 기차 중 17시에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1637호 무궁화호 열차와 19시 10분에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1639호 무궁화호 열차 중 하나를 타야 했어요. 자정에 잠을 깨어서 계속 못 자고 있었기 때문에 이따가 분명히 엄청나게 졸릴 거였어요. 잠이 한 번에 몰려와서 기절하듯 졸린 게 아니라 점점 의욕이 상실되고 만사 귀찮아질 거였어요. 만약 가려면 17시에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1637호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자야 했어요.
'안 가도 상관 없잖아?'
'아니야, 이번에 안 가면 5일 뒤에 가야 해.'
'간다고 누가 상 줘? 가기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이지.'
'그래도 이번 아니면 가기 힘들어.'
'너 여행기는? 여행기 밀린 건 어쩔 건데?'
머리 속에서 제 영혼이 두 개로 갈려 싸워댔어요. 반드시 가야 할 이유는 없었어요. 일 때문에 가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제 돈 써가며 놀러가는 거였어요. 그러니 가기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이었어요. 안 가도 뭐라고 할 사람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놀러가기 싫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자정에 일어나서 저녁에 기차 타고 간다? 컨디션 엉망에 잠과 싸우며 청량리역으로 가야 할 거였어요. 영월 도착해서 컨디션 엉망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의정부 자취방에서 나갈 때 이미 컨디션이 아주 걸레짝일 거였어요.
여행기는 엄청 밀려 있었어요. 이제야 8월말에 다녀온 여행기를 쓰고 있었어요. 8월말 강원도 남부 탄전지역 다녀온 여행기 외에도 다녀온 여행이 몇 개 더 있었어요. 자잘한 여행 다녀온 건 다 여행기 안 쓰고 제낀다 하더라도 당장 얼마 전 다녀온 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 운탄고도1330 8길, 동해시 다녀온 여행은 여행기로 쓸 거였어요. 이게 대체 언제 끝날 지 감이 안 왔어요. 여행 일정은 짧았지만 여행기를 쓰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쓸 말이 은근히 많았어요. 사진도 많이 들어갔어요. 올해 안에 끝내지는 않아도 되었어요. 겨울에는 여행 안 가니까요. 그래도 봄이 오기 전에는 끝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신없이 써야 했어요. 이런 상황인데 여행을 또 간다?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었어요.
아직 졸리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분명히 컨디션은 안 좋아지고 있었어요. 계획 짤 때까지만 해도 너무 재미있겠다고 흥분했는데 흥분이 식고 점점 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자체가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그렇다고 안 가자니 그건 또 아니었어요. 이번에 안 가면 5일을 기다려야 했어요. 그래야 삼척 오일장에 맞춰서 돌아오도록 일정을 짤 수 있었어요. 다음 삼척 오일장에 맞춰서 돌아오도록 출발하려면 10월 24일에 출발해야 했어요. 너무 늦었어요.
점점 안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어요. 결단을 내려야 했어요.
클로버 한 잎 뜯으며 간다
클로버 한 잎 뜯으며 안 간다
클로버 한 잎 뜯으며 간다
클로버 한 잎 뜯으며 안 간다
요즘은 잘 안 보이지만 예전에 만화, 드라마, 영화 같은 곳 보면 클로버 하나 뜯어서 이파리를 하나씩 떼어내며 한다, 안 한다 하는 장면이 있어요.
응, 우리 동네 클로버 없어.
제가 사는 동네에는 클로버가 없어요. 하고 싶어도 못 해요. 잡풀 자라는 건 있으니까 잡풀 따와서 해도 되기는 할 거에요. 그래도 이런 건 클로버로 해야죠. 신성한 의식, 미래를 예견하는 점을 치는 행위인데요. 제대고 제물과 격식을 안 갖추고 미래를 점치려 하다니 어디 그런 불경스러운 짓을 하나요.
그때였어요.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신라젠 어떻게 되었지?"
황제의 귀환
바이오 테마주의 신화
서사가 있는 주식
코스닥 215600 신라젠
며칠 전이었던 2022년 10월 13일, 그 유명한 바이오 테마주의 황제이자 서사가 있는 주식 코스닥 215600 신라젠이 거래 재개되었어요. 2020년 5월 6일자로 거래정지된 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거래재개되었어요. 주식쟁이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큰 이슈이자 모처럼 찾아온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어요. 펙사벡의 꿈 신라젠이고 임상 3상 실패로 나락가고 작전주의 전설로 남으며 거래정지 먹었었어요.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의 전성기 시절, 주식을 모르는 사람들도 신라젠은 들어서 알 정도였어요. 이후 신라젠 관련 작전이 수사에 들어가면서 다시 한 번 많은 사람들이 신라젠을 듣고 알게 되었어요.
2022년 10월 13일에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 거래 재개가 확정되자 주식쟁이들은 신라젠이 거래재개 후 어떻게 될 지에 대해 매우 많이 떠들었어요. 이런 건 무조건 잡아야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시작부터 주가 박살나서 쩜하 - 시작하자마자 하한가나 안 맞으면 다행이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2022년, 주식쟁이들은 증시가 한국이고 미국이고 전세계가 맨날 처박기 바쁜데 언제나 항상 보합인 신라젠이 위대하다며 조롱하고 있었어요. 신라젠을 조롱하는 건지 세계 증시를 조롱하는 건지 모를 말이었어요. 신라젠 주가가 거래재개 후 어떻게 될 지 모두 궁금해했어요.
2022년 10월 13일,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이 거래재개되었어요.
신라젠 상한가!
다음날이었어요.
신라젠 2연상!
그 다음날이었어요.
신라젠 3상 실패.
펙사벡도 3상은 실패했고 코스닥 215600 신라젠 거래 재개 후 3연상도 실패했어요.
그 다음날인 2022년 10월 18일,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가는 10.69% 하락으로 마감했어요.
그래, 전설의 주식으로 점쳐보자.
신성한 미래 예측을 위해 바이오주 황제의 귀환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만한 것이 없었어요.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을 매수할 거에요. 다음날까지 안 끌고 가요. 무조건 오늘 승부봐요. 진짜 오래 들고 가야 오후 3시 20분. 아무리 크게 물린다 해도 딱 동시호가 직전까지에요.
만약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으로 익절? 무조건 감.
만약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으로 손절? 절대 안 감.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을 매수했다가 익절하고 나온다면 이건 하늘의 뜻이에요. 10원이라도 벌고 나온다면 무조건 이날 여행갈 거에요. 하지만 손절한다면? 그건 하늘이 가지 말라고 한 거에요. 주식으로 날려먹었는데 뭔 돈이 있다고 여행을 가요. 영월 여행 대신 주식 한 판 땡긴 거에요.
2022년 10월 19일 10시 정각,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을 매수했어요.
"물렸네."
타점 맞는 거 같은데 물렸어요. 그런데 계좌 잔고가 이상했어요. 몇 틱 물리지도 않았는데 피해금액이 너무 크게 나왔어요.
"아, 씨발! 조때따!"
비상금을 NH투자증권 발행어음형 CMA에 넣어놓고 매일 이자 받고 있었어요.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의 발행어음형 CMA는 매일 일정산으로 이자를 지급해줘요. 증권사 발행어음형 CMA는 토스뱅크, 카카오뱅크보다 이자를 훨씬 많이 줘요. 그래서 비상금을 나무증권 발행어음형 CMA에 넣어놓고 있었어요.
나무증권 발행어음형 CMA는 CMA이면서 동시에 주식 매매가 가능해요.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 발행어음형 CMA는 주식 매매가 불가능하지만 NH투자증권 발행어음형 CMA는 CMA이면서 동시에 종합매매계좌에요. 그래서 돈이 들어 있는 증권사 계좌이자 귀찮게 이체하지 않고 바로 매매할 수 있는 NH투자증권 발행어음형 CMA 계좌로 들어가서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을 매수했어요.
별 생각없이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으로 점이나 쳐본다고 적당히 타점 보다가 들어간 게 풀매수해버렸어요. 이건 정말 가지 말라는 계시였어요. 주식하다 보면 이런 사소한 실수가 생길 때가 있어요. 재미로 1주만 사서 점을 쳐볼 생각이었는데 200만원 넘게 들어갔어요. 호가창만 보면서 전에 주식 단타 매매할 때 습관대로 주문 넣었더니 1주가 아니라 풀매수였어요.
"씨발 대가리 존나 뜨겁네! 아 조깥네, 진짜!"
주식 물리면 입에서 좋은 말 안 나와요. 내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내 돈이 날아가고 있는데 좋은 말 나오겠어요? 돈 실시간으로 조까치 털리고 있는데 어머머 주식이 물렸네요 아야아야 어떻게 하나요 오호홋 오늘부터 우리는 가치투자 1일 이럴까요? 내가 시장에 내 소중한 돈을 왜 뿌려요. 크리스마스도 존나게 씨발 멀었는데 뭔 돈을 뿌리고 앉았어요. 크리스마스 온다고 해도 내 친한 사람들한테 돈 쓰지, 왜 생면부지 알지도 못하는 것들한테 돈을 뿌려요. 1주면 장난이지만 200만원 넘게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이제 몇만원이었어요.
여행 문제가 아니었어요. 주식 문제로 바뀌었어요. 영월 여행을 가느냐가 아니라 점 친다고 재미로 들어갔다가 진지하게 주주가 된 문제였어요. 솔직히 신라젠이 지금 무슨 개발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몰라요. 펙사벡 망한 건 아는데 그 다음 스토리 하나도 몰라요. 대가리는 갈 수록 뜨거워지는데 뜨거워진 대가리로 뭔지도 모를 바이오 공부하며 대가리 더 뜨거워지게 생겼어요.
장난으로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에 처물리면 주식으로 돈 날려서 여행 갈 경비 없으니 안 간다고 했어요. 진짜 말이 씨가 되었어요. 실시간으로 영월, 삼척 여행 갈 경비가 사라져가고 있었어요.
"일단 좀 보자."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세력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오늘 반드시 약속 지킬께요. 쓰러져 죽을 거 같아도 무조건 영월 갈께요.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진짜 욕심 안 부리고 한 틱만 먹고 나갈께요. 딱 한 틱만요. 13000원에 샀으니까 13050원! 한 틱! 진짜 50원! 나 벌써 매도 주문 넣었어요. 절대 안 건드릴께요. 욕심 하나도 안 내고 딱 한 틱! 우리 한 틱으로 쇼부 봅시다. 진짜 나 안 건드릴께요. 오른다고 해서 매물 싹 빼는 양아치짓 안할 테니까 그냥 싸게 주워 가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예정에 없던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에 물리자 머리가 뜨거웠어요. 글 같은 게 써질 리 없었어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드러누웠어요. 이때부터라도 잠깐 눈 붙이면 이따 영월 갈 때는 컨디션이 좋을 거였어요. 주식 물렸는데 무슨 잠이 와요.
"몰라. 이따 3시 19분에 무조건 던질 거야!"
물린 주식과 함께하는 영월 여행? 그딴 건 없어요. 상상만 해도 토나왔어요. 신라젠이 전망이 좋은지 나쁜지 몰라요. 그런 거 관심 하나도 없어요.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신라젠 주식에 물렸다는 사실이었어요. 주식 물린 채로 여행 가면 기분 퍽이나 신나겠어요. 그거도 무슨 전망 보고 중장기 투자한다고 들어간 게 아니라 단타로 들어갔는데 가치투자 강성주주 되게 생겼고, 그나마도 원래 1주만 들어갈 걸 실수로 풀매수해버렸어요.
포기했어요. 3시 19분에 무조건 던질 거에요. 진동이 울릴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봤어요. 오라는 매도 주문 체결 알람은 안 오고 쓸 데 없는 광고 메세지만 계속 왔어요.
신라젠이 영월 가라신다!
2022년 10월 19일 수요일 오후 2시 53분, 신라젠 주식 매도 주문 전량 체결되었다고 알람이 왔어요.
"살았다!"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으로 3477원 벌었어요. 바이오주의 전설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이 영월 가라고 살려줬어요. 청량리역까지 가는 차비를 손에 쥐어줬어요.
"그래, 가자!"
제가 한 말은 지켜야 했어요. 분명히 코스닥 215600 신라젠 주식으로 익절하고 나오면 무조건 영월 간다고 했어요. 그러니 진짜로 영월 가야 했어요.
"기차표 예매부터 해야겠다."
코레일에 들어가서 기차표 상황을 봤어요.
"5시 차 다 매진? 영월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2022년 10월 19일은 수요일. 평일이었어요. 다음날은 목요일이었어요. 평일인데 서울에서 영월로 놀러가는 사람이 많아서 기차표가 매진이라니 이상했어요.
"이거 원주, 제천에서 다 잘라먹은 거 아니야?"
서울 청량리역에서 영월역 가는 사람이 많아서 매진이 아니라 그 전에 양평, 원주, 제천까지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일 거 같았어요. 영월역 가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중간 구간마다 매진된 경우였어요. 역을 바꿔가며 봤어요. 역시나였어요. 평일에 서울에서 영월역으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지난 8월말에 청량리역에서 도계역으로 기차 타고 갈 때도 이랬어요. 기차표가 거의 없었지만 정작 제천 넘어가자 기차 안이 텅텅 비어갔고, 나중에는 저와 친구만 남아있다시피 했어요.
17시 차는 매진이었기 때문에 19시 10분 차로 예매했어요.
"일어나자."
19시 10분 차였기 때문에 아직 여유가 있었어요. 그러나 졸음이 계속 더 가기 싫게 만들고 있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잠깐 눕는다고 드러누울 거였고, 그러면 깊게 잠들어서 여행 못 갈 거였어요.
커피 한 잔 마시고 슬슬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3박4일 일정이기는 했지만 짐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날짜에 맞춰서 속옷 챙기고, 비상용 겉옷 챙겼어요. 여기에 슬리퍼도 챙겼어요. 게스트하우스 갔을 때는 슬리퍼가 매우 유용해요. 그 외에는 짐을 꾸릴 것이 딱히 없었어요. 짐 싸는 것은 금방이었어요. 짐을 대충 꾸린 후 간단히 빗자루로 방을 쓸었어요. 그 다음 샤워를 했어요. 17시 기차였다면 매우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해야했을 거였어요. 그러나 19시 10분 기차였기 때문에 여유로웠어요.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어요. 나갈 준비가 끝났어요.
2022년 10월 19일 오후 5시 29분, 의정부역에 도착했어요.
승강장으로 내려갔어요.
조금 기다리자 지하철이 왔어요.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역으로 갔어요. 아직까지는 순조로웠어요.
2022년 10월 19일 저녁 6시 14분, 청량리역에 도착했어요.
잠깐 밖으로 나왔어요.
"아직 저녁 먹을 시간 있겠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었어요. 다음날 일정을 고려하면 청량리역에서 저녁을 먹고 기차 타는 것이 좋았어요. 기차는 밤 9시 30분에 영월역에 도착할 예정이었어요. 밤 9시 30분에 영월역 근처에 저녁 먹을 곳이 있을 거 같지 않았어요. 영월역 근처가 낮시간에 보면 나름 뭔가 있을 거 같지만 그건 낮시간 이야기였어요. 만약 영월 도착해서 저녁을 먹지 못한다면 다음날 운탄고도1330 3길을 아침도 못 먹고 하루 종일 굶으면서 걸어야 했어요. 운탄고도1330 3길 코스를 보면 완전히 하루 종일 굶지는 않겠지만 점심때까지는 굶어야 했어요. 굶고 산에 오르려고 하면 힘들어요.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뭐라도 먹어야 했어요.
입맛이 없었어요. 원래는 자야 할 시간이었어요. 자정에 일어났으니 잘 시간이 맞았어요. 게다가 하루 종일 그놈의 주식 때문에 머리 엄청 뜨거웠었어요. 컨디션이 엉망이었어요. 원래대로라면 하루 종일 굶었으니 김밥을 3줄 시켜서 먹었을 거에요. 그러나 진짜 뭐 먹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억지로라도 뭔가 먹어야 했기 때문에 김밥 두 줄을 시켰어요. 입 안이 깔깔하고 정말 안 넘어갔지만 꾸역꾸역 삼켰어요.
억지로 김밥 두 줄을 먹자 속이 불편했어요. 얹힌 것까지는 아니지만 더부룩했어요. 김밥 맛이 어떤지 느끼지도 못 하고 뱃속으로 우겨넣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어요.
19시 10분 동해로 가는 무궁화호 1639호 열차 탑승 신호가 떴어요.
승강장으로 내려갔어요.
무궁화호 1639호 열차가 플랫폼에 대기중이었어요.
기차에 올라탔어요.
시간이 되자 기차가 출발했어요. 밖이 깜깜해서 사진을 찍을 것이 없었어요.
볼빨간 사춘기가 불렀다. 나만 안 되는 연애.
좀좀이가 부른다, 나만 안 되는 영월?
'설마 아니겠지.'
영월은 이번에 4번째 가는 거였어요. 영월 여행은 이상하게 항상 만족스럽지 못 했어요. 이번이 영월을 4번째 가는 것이기는 했지만 영월역 주변으로 가는 것은 세 번째였어요. 한 번은 영월군이기는 했지만 영월 읍내가 아니라 상동읍이기는 했지만요. 상동읍은 태백시 생활권이지만 엄연한 영월군이에요. 그런데 상동읍까지 포함해서 영월 여행 세 번 모두 여행을 다녀온 후 개운한 맛이 없었어요.
'아냐, 이번엔 좋을 거야.'
그렇게 믿고 싶겠지.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나만 안 되는 영월 따위는 없어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은 아닐 거에요. 이번에는 혼자 재미있는 여행을 할 거에요. 남들 다 재미있게 여행다녀오는 영월인데 저만 이상하게 항상 재미없었어요. 이번은 코스를 재미있는 코스로 잘 골랐기 때문에 재미없다는 소리는 절대 안 나올 거였어요. 준비도 잘 해 왔어요. 계획대로만 잘 움직이면 저도 드디어 영월을 재미있게 여행하고 돌아올 거에요. 계획대로 못 움직일 이유도 없었어요. 그러니 드디어 '나만 안 되는 영월'에서 벗어날 거에요.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솔직히 이 여행, 처음부터 그리 좋지 않았어요. 자정부터 깨어 있었으니 18시간 넘게 깨어 있었어요. 가만히 깨어 있어도 피곤하고 졸릴 시간인데 낮에 그놈의 주식 때문에 더 피곤해졌어요. 정신적으로는 안 졸린데 몸은 졸리다고 하고 있었어요. 그 때문에 김밥이 제대로 넘어가지도 않았어요. 억지로 김밥을 삼키다 하마터면 얹힐 뻔 했어요.
'3477원 땄잖아.'
아니에요. 3477원 땄어요. 그러니까 이 여행은 분명히 운이 따라줄 거에요. 시작부터 운이 따라줬으니까요. 시작부터 운이 따라주면 대체로 끝까지 좋아요. 이 여행, 분명히 시원하게 잘 풀리는 느낌이 계속 들 거고 정말 재미있을 거에요.
기차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기차에 타는 사람도 많고 내리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러나 역시 예상대로 대부분의 탑승객은 영월역 도착 전에 거의 다 내렸어요. 제천역을 지나자 기차 안이 매우 거의 텅 비었어요.
2022년 10월 19일 밤 9시 30분, 기차가 영월역에 도착했어요.
한옥 모양 영월역 역사가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어요.
영월역에서 나왔어요.
"이거 예쁘다."
영월역 앞에는 초승달 조형물이 있었어요. 초승달 조형물에는 토끼가 절구를 찧고 있는 모습이 있었어요. 영월역에 밤에 내린 것은 처음이었어요. 전에 왔을 때는 해가 떠 있던 시각이었기 때문에 그저 초승달 모양 조형물이 있다고만 생각하고 지나쳤었어요. 밤에 와서 보니 매우 예뻤어요.
영월 24시간 찜질방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아...추...워?"
'생각보다 안 추운데?'
춥다고 말하려고 하다가 생각보다 안 추워서 살짝 놀랐어요. 영월역 올 때까지만 해도 태백시를 상상했어요. 태백시는 여름에 가도 가을에 가도 버스에서 내려서 세 걸음 걸으면 바로 '추워'라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어요. 영월역도 그럴 줄 알았는데 영월역 근처는 그렇게 쌀쌀하지 않았어요. 이 정도면 의정부 밤공기와 비슷했어요. 의정부에서 밤에 돌아다니는 수준이라 그렇게 춥지 않았어요.
동강으로 갔어요. 영월군 영월읍 24시간 찜질방인 레스트 스파를 가기 위해서는 동강대교를 건너야 했어요.
여기는 도시인가 시골인가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애매한 풍경이었어요.
동강대교는 아름다웠어요. 조명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관광으로 유명한 영월군다웠어요.
영월대교를 건넌 후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보도로 들어갔어요.
지하보도도 예쁘게 꾸며놨어요.
레스트스파를 향해 걸어갔어요. 동강 강변에 조형물이 있었어요.
석상은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이었어요.
눈이 없어!
뜰망을 들고 있는 아이 석상은 눈이 없었어요. 이것이 이 여행 첫날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었어요. 역시나였어요. 영월군 영월읍 읍내쪽은 그렇게 인상적인 풍경이 없었어요. 제가 영월 여행 와서 항상 개운한 맛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영월군 읍내는 한적한 도시 풍경이에요. 큰 특징이 없어요. 말초신경 짜릿하게 만드는 풍경을 기대하는 곳이 아니에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었고, 지금 열심히 돌아다닐 생각도 없었어요. 지금은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중요할 뿐이었어요. 애초에 영월 읍내를 돌아다닐 생각이 있었다면 주식으로 점친다고 하지 않고 아침에 바로 영월로 넘어왔을 거에요. 그리고 밤이라 깜깜해서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눈에 확 들어올 만한 곳은 동강대교 외에 없었어요.
2022년 10월 19일 밤 10시, 영월군 24시간 찜질방인 레스트스파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