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2부 04 - 강원도 영월군 영월역 찜질방에서 영월 17번 버스 첫 차 타고 운탄고도1330 3길 시작 지점 모운동 가기

좀좀이 2023. 3. 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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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역에서 가까운 24시간 찜질방인 레스트스파 안으로 들어갔어요. 요금을 계산했어요.

 

"담요 필요 없으세요?"

 

아주머니께서 제게 담요 필요없냐고 물어보셨어요.

 

'담요 공짜인가? 덮고 자면 좋기는 한데...'

 

찜질방에서 잠을 잘 때 담요가 있으면 좋아요. 담요 덮고 자면 따스하게 잘 수 있어요. 이때는 가을이었어요. 가을이라서 찜질방에서 난방을 강하게 틀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어요. 난방을 아예 안 하지는 않겠지만 약하게 해서 잘 때 추울 수 있었어요. 영월역 근처가 태백역 근처보다는 훨씬 따스했지만 아무 것도 안 덮고 자기에는 꽤 쌀쌀한 날씨였어요. 게다가 찜질방 찜질복은 반팔에 반바지에요. 반팔에 반바지 입고 아주 약한 난방 속에서 자면 추워서 잘 자지 못해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기 걸리는 것도 가능해요.

 

"담요요? 담요 빌리는 거 무료인가요? 아니면 돈 내야 하나요?"

"보증금 2천원 내면 되요. 나갈 때 보증금 돌려드려요."

"예..."

 

잠시 고민에 빠졌어요. 유료는 아니었어요. 보증금 2천원이었어요. 담요 보증금 2천원이니까 지금 2천원 내고 담요를 빌려서 덮고 잤다가 이따 찜질방에서 나갈 때 담요를 반납하고 2천원을 돌려받으면 되었어요. 담요를 분실하거나 손상시키지만 않으면 돌려받는 돈 2천원이었어요. 찜질방에서 제가 담요를 들고 도망갈 것도 아니고 담요 훼손할 일도 있을 리 없었어요. 2천원 내고 담요를 빌리면 따스하게 잘 잘 수 있었어요.

 

'아니야, 나 이따 나갈 때 카운터에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해.'

 

2022월 10월 19일 밤. 날씨는 그렇게 쌀쌀하지 않았어요. 쌀쌀하기는 했지만 춥다고 난리피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다음날 새벽 5시 30분 전에 찜질방에서 나갈 계획이었어요. 영월 17번 버스 첫 차를 타고 모운동으로 가서 운탄고도1330 3길 걷는 일정을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 일정이 빨리 끝나고 보다 더 많이 쉴 거였어요.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 그 다음날 운탄고도1330 9길 걸을 때 덜 무리가 갈 거였어요.

 

'담요는 안 되겠다.'

 

이불은 보증금만 내면 무료 대여였지만 새벽 일찍 나가야 했어요. 새벽에 나갈 때 카운터에 사람 없으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골치아플 거였어요.

 

"담요는 괜찮아요. 저 어차피 내일 일찍 나갈 거라서요."

 

담요를 안 빌렸어요. 찜질복을 받아서 목욕탕으로 들어갔어요. 간단히 샤워를 하고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찜질방으로 올라갔어요.

 

 

찜질방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저까지 합쳐서 다섯 명 정도 있었어요. 그 중 한 명은 체격 좋은 백인 남성이었어요. 백인 남성은 노트북 컴퓨터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를 찾아봤어요. 콘센트가 벽걸이형 TV 맞은편 벽에 하나 있었어요. 스마트폰 충전기를 꽂은 후 바닥에 드러누웠어요.

 

'조금 쌀쌀하긴 하네.'

 

찜질방 내부는 가을이라서 그런지 난방을 강하게 틀지 않았어요. 앉아 있거나 돌아다니면 괜찮은 온도였어요. 그러나 바닥에 매트리스 깔고 드러누워서 자기에는 조금 차가운 온도였어요.

 

'다른 곳 잘 만한 곳 없나?'

 

찜질방 안을 돌아다녔어요. 24시간 가동되는 찜질실이 두 곳 있었어요. 하나는 소금방이었고, 하나는 일반 찜질실이었어요. 소금방은 뜨겁기 때문에 일반 찜질실에 들어갔어요. 일반 찜질실 온도는 한여름 더운 밤 정도였어요. 여기에서 자면 따뜻하게 잘 수 있었어요. 더도 덜도 말고 딱 여름철 더운 밤에 자는 정도였어요. 더위를 잘 못 견디는 사람이라면 조금 자기 어렵겠지만 저는 더위 잘 견뎌요. 바닥에 드러누웠어요. 잠깐 눈을 감았어요.

 

'스마트폰 엄청 신경쓰이네.'

 

스마트폰은 찜질방 밖에서 충전중이었어요. 스마트폰을 밖에서 충전시키고 혼자 찜질실 안에서 드러누워서 자려고 하니 신경이 엄청나게 쓰였어요. 이대로 자면 딱 좋은데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사람이 별로 없고 도난 위험이 별로 없다고 해도 스마트폰이 곁에 없다는 것이 매우 신경쓰였기 때문이었어요. 24시간 찜질방이니까 언제든 사람이 더 올 수 있어요. 게다가 찜질실 안에 있으니까 찜질실 바깥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어요. 아무리 안전한 곳이라 해도 이런 곳 올 때는 기본적으로 도난 우려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해요. 그렇게 크게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기는 했지만 그 정말 재수없는 경우가 발생할 확률이 완벽히 0은 아니기 때문에 신경쓰일 수 밖에 없었어요. 더욱이 스마트폰 고장으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서 멘탈 붕괴했던 경험이 근래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 진짜 운 없을 매우 미미한 확률에 엄청나게 신경쓰였어요.

 

첫 번째 이유는 그저 저 혼자 너무 예민하고 극성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문제였어요.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보다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어요.

 

만약 너무 깊게 골아떨어진다면?

여기에서 잔다고 깨워줄 사람 하나도 없는데?

 

그렇지 않아도 한 번 깊게 잠들면 스스로 아예 못 일어나요. 자명종이 울리든 스마트폰이 울리든 그대로 계속 자요. 저는 여행다닐 때 제일 스트레스 받는 게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잠을 너무 깊게 잘 자는 거에요. 스스로 진짜 깊게 잠들면 알람이 울려도 너는 울려라 나는 잘란다 그대로 계속 자기 때문에 아침 일정 잡는 것을 최대한 기피해요. 그런데 전날 자정에 잠에서 깨어서 계속 안 자고 이러고 있었어요. 잠드는 순간 진짜 깊게 잠들 거였어요. 가볍게 잠깐 눈만 붙여야 하는데 숙면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무 것도 모르고 계속 잘 거였어요. 그나마 스마트폰이 옆에 있다면 간간이 몇 시인지 확인하면서 살짝 살짝 자니까 너무 깊게 잠들지 않을 수 있는데 스마트폰이 옆에 없었어요.

 

기분 좋게 누워서 아주 잠깐 잠들었어요. 10분쯤 잤을 거에요. 몸에서 땀이 가볍게 났어요. 원래는 더 자야 하는데 스마트폰이 옆에 없으니 도저히 신경쓰여서 잘 수가 없었어요.

 

'밖에 나가서 스마트폰 옆에서 자자.'

 

잠자기 좋은 곳을 찾기는 했지만 스마트폰 충전기를 꽂아놓은 콘센트와 단절된 공간이라 계속 신경쓰여서 도저히 잘 수 없었어요. 스마트폰 옆에 가서 자기로 했어요.

 

찜질실에서 나왔어요. 스마트폰 충전기를 꽂아놓은 곳 옆에 매트리스를 깔고 드러누웠어요.

 

나 혼자 한밤의 열탕지옥 냉탕지옥이 시작되었다.

 

"아, 추워!"

 

바닥에 드러누워서 살짝 눈을 붙이려고 했어요. 가볍게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이었어요. 너무 추웠어요. 찜질실에서 달군 몸이 다 식었어요. 가볍게 났던 땀도 다 식었어요. 여기에 찜질복도 가볍게 난 땀 때문에 살짝 젖었는데 찜질복도 식으면서 급격히 차가워지기 시작했어요. 찜질방 내부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나 혼자 냉한지옥에 빠졌어요. 자야 하는데 추워서 잘 수 없었어요.

 

'매트리스 한 장 더 가져와서 덮고 자야겠다.'

 

매트리스 한 장을 더 가져와서 담요 삼아서 덮었어요. 매트리스는 담요 삼아서 덮기에는 폭이 너무 좁았어요. 게다가 조금만 뒤척여도 매트리스가 흘러내려서 맨몸이 되었어요. 매트리스가 닿은 곳만 체온 때문에 간신히 조금 살만했는데 매트리스가 벗겨지면 나 혼자 혹한기 훈련, 나 혼자 환장의 엄동설한이었어요. 진짜 죽은 듯 가만히 누워서 매트리스를 덮고 있어도 땀이 식어가며 너무 추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찜질실 가서 다시 몸 좀 데우고 나오자.'

 

찜질실 들어가서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데우기 시작했어요. 식어가던 땀에 얼어붙던 몸이 해동되어갔어요. 따뜻하고 좋았어요. 또 슬슬 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몸에서 슬슬 땀이 날 때가 되어서야 식은 땀 때문에 얼려고 하던 몸이 다 녹았어요. 다시 밖으로 나갔어요. 잽싸게 매트리스에 드러누워서 매트리스 한 장을 덮었어요. 역시 아주 잠깐동안 좋았어요. 또 몸이 식어갔고, 못 견디게 추웠어요.

 

한국에는 매우 좋은 속담이 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언 발에 오줌누기라고...

 

도저히 추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다시 찜질실 안으로 들어갔어요. 또 몸을 녹이고 나왔어요. 역시나 효과는 몇 분 안 갔어요. 찜질복은 땀에 점점 더 젖어갔어요. 찜질복이 땀에 젖어갈 수록 찜질실에서 몸을 데운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은 2배로 짧아졌어요.

 

우와아아, 잠이 깬다!

정신이 맑아진다!

몸이 건강해진다!

 

찜질 효과가 아주 좋았어요. 몸이 너무 건강해지고 있었어요.

 

나 지금 자야한단 말이야!

 

지금 찜질실 즐기려고 온 게 아니에요. 자려고 왔어요. 자정부터 안 잤기 때문에 어서 한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어요. 그런데 가면 갈 수록 잠이 도망갔어요. 온찜질과 냉찜질을 계속 번갈아하니 이것만으로도 몸이 정신 바짝 차렸고, 일어나서 왔다갔다 하니 정신이 더욱 맑아졌어요.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정신이 맑아져만 갔어요. 지금 필요한 건 맑은 정신이 아니라 잠에 취한 혼탁한 정신이었어요. 당장 몇 시간 후 일어나서 운탄고도1330 3길을 걸어야한단 말이었어요!

 

몇 번 이렇게 찜질실을 들락날락거렸더니 적당히 따스한 찜질실도 소용없어졌어요. 땀에 젖은 찜질복이 식으니까 감당이 안 되었어요.

 

금단의 문을 연다.

열려라, 소금방!

 

찜질복은 땀에 완전히 흠뻑 젖었어요. 적당히 따스했던 찜질실도 땀에 흠뻑 젖은 찜질복 때문에 몸을 쉽게 녹여주지 못했어요. 더욱 강한 게 필요했어요. 건드리면 안 되는 금단의 문 손잡이를 움켜쥐었어요. 바로 소금방이었어요.

 

1배는 지루하다

화끈하게 2배 3배 속도로 빠르게 망해보자

 

소금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스펙타클 환장의 냉찜질 열찜질이 펼쳐졌어요. 소금방에 들어가서 얼마 채 되지도 않았는데 땀이 좍좍 쏟아졌어요. 몸은 확실히 녹았어요. 대신에 찜질복도 땀에 완전히 푹 젖어버렸어요. 밖으로 나와서 다시 매트리스에 누워서 매트리스를 덮었어요. 아까는 축축한 옷을 입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탈수도 안 된 푹 젖은 옷을 입고 있는 수준이었어요. 차원이 다른 냉찜질이었어요. 땀에 푹 젖은 찜질복은 급속도로 식었고, 확 차가워진 땀에 젖은 찜질복은 냉기를 피부 깊숙이 쿡쿡 찔러넣었어요. 돌아버릴 지경이었어요.

 

도저히 추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아까는 찬물 샤워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완전히 한빙지옥이었어요.

 

'담요 빌릴껄!'

 

뼈저리게 후회했어요. 카운터 아주머니께서 보증금 2천원 내고 담요 빌려가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너무 꼭두새벽에 찜질방에서 나가는 바람에 그깟 2천원 못 받아도 괜찮았어요. 무조건 담요를 빌려야 했어요. 담요를 빌렸다면 이렇게 혼자 불지옥 얼음지옥 왔다갔다하며 영월의 밤을 대환장의 영월의 밤으로 만들 일 자체가 없었을 거에요.

 

찜질방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멍청해서 이 난리였어요. 찜질방에서는 분명히 먼저 담요 빌려가지 않겠냐고 했어요. 유료 서비스도 아니고 보증금 내고 담요 받아갔다가 담요 반납하고 보증금 그대로 되돌려 받는 무료 서비스였어요. 카운터 아주머니께서 먼저 담요 빌려가지 않겠냐고 물어본 데에서 가을이라서 아직 찜질방 난방을 강하게 틀지 않았을 거라고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요. 그러니 무조건 담요를 빌려야 했어요.

 

강원도가 황태가 유명하지?

영월은 황태 유명한 곳 아니잖아!

왜 영월의 밤이 대환장 황태 체험의 밤인데!

 

계속 소금방을 들락날락했어요. 갈 수록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갔어요. 강원도는 황태가 유명해요.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말린 명태인 황태의 땅 강원도. 인제 용대리 황태 덕장이 제일 유명하고, 동해시 묵호 지역에서는 묵호태라는 황태를 생산해요. 영월은 황태 유명한 곳 아니잖아요. 왜 내가 영월의 밤을 대환장 황태 체험의 밤으로 보내야 해요. 황태란 너무나 잔인한 것. 얼었다 녹았다 하며 말라가는 황태의 심정에 격하게 공감되었어요. 왜냐하면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완전히 강원도 명물 황태 되어보기 체험이었어요.

 

카운터 아주머니께서 담요 빌려가라고 하셨을 때 안 빌린 제 잘못이니 누구 탓 할 수도 없었어요. 분명히 제 잘못이었어요.

 

'지금이라도 담요 빌릴까?'

 

도저히 수습 안 되는 상황. 잠은 다 도망갔고, 땀 식어서 사람 돌게 만드는 추위만 어떻게 좀 해결하고 싶었어요. 먼저 담요를 빌려야 했어요.

 

'이 시각에 아래 카운터에 사람 없겠지?'

 

24시간 찜질방이라고 해서 카운터에 사람이 항상 있지는 않아요. 사람이 있을 시각이 아니었어요. 이 정도 야심한 시각이면 아무리 24시간 찜질방이라 해도 목욕탕, 찜질방 이용하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카운터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허다해요.

 

'담요로 될 일이 아니잖아.'

 

담요를 빌리러 가자고 마음먹었다가 단념했어요. 담요만 빌려서 될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땀에 푹 젖은 찜질복이었어요. 영월의 밤이 황태 체험의 밤을 넘어서 대환장 황태 체험 지옥의 밤으로 무지막지하게 괴롭게 강화된 이유는 바로 땀에 푹 젖은 찜질복이었어요. 담요 덮어봐야 찜질복이 땀에 푹 젖어 있으니 땀이 식으며 견딜 수 없이 추울 거였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담요만 빌려서 될 일이 아니었어요. 그보다 우선 찜질복을 하나 더 빌려야 했고, 샤워를 해야 했어요. 찜질복은 입장할 때는 무료로 대여해주지만 교체할 때는 돈 내야 해요. 돈 내고 찜질복을 빌리자니 돈이 아까웠어요.

 

'최대한 버텨보자.'

 

버텨보기로 했어요. 찜질방 입장할 때 담요 안 빌린 게 영월의 밤을 지옥으로 만들었어요. 잠자러 와서 자야 하는 잠은 안 자고 정신과 육체를 강하게 단련하고 있었어요. 이제 돈 내고 찜질복 바꾸고 이불 빌린다고 해봐야 몇 시간 못 자는 것은 확정이었어요. 망했어요.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그때부터는 잠시 자고 쉬려고 찜질방에 있는 건지 첫 차 다닐 때까지 갈 곳 없어서 버티고 있는 건지 분간 안 가는 때로 접어들 거였어요.

 

소금방에서 조금이라도 자려고 했어요. 소금방은 너무 뜨뜻해서 도저히 잠을 잘 곳이 아니었어요. 잠시 누워 있으면 바로 땀이 좍좍 쏟아져나왔어요. 아무리 땀 식어서 추워서 괴로워도 소금방만큼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요. 소금방 문 손잡이를 잡은 순간 망했어요. 소금방 문 손잡이만큼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요.

 

백인 남성이 소금방 안으로 들어왔어요.

 

'미국인이겠지?'

 

영월에 있는 백인 남성. 시골로 갈 수록 외국인은 미국인일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져요. 한국인도 별로 없는 시골에 외국인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가는 일은 흔하지 않아요. 한국에 많이 와본 외국인이라면 몰라도 처음 온 외국인이라면 대체로 주요 대도시로 가요. 서울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은 멀리 가봐야 춘천 남이섬이에요. 스키 시즌 되면 숙소에서 판매하는 스키 투어 상품으로 스키장 가는 외국인들이 조금 있구요. 한국인도 전국 방방곡곡 다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외국인은 당연히 더욱 없어요.

 

시골에서 백인 남성이 보인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셋 중 하나에요. 첫 번째는 근처에 주한미군 부대가 있다면 주한미군인 경우에요. 주한미군 가족들이 교외 및 시골로 놀러가는 경우가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 관광지 가보면 있어요. 그분들은 한국에서 근무하시니 한국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기세요. 두 번째는 진짜 백인처럼 생긴 인도인, 파키스탄인인 경우에요. 이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인도인, 파키스탄인도 아리안 혈통인 인도인은 백인이에요. 인도, 파키스탄이라고 해서 다 까무잡잡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에요. 인도인이 시골에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고, 파키스탄인들은 공장에서 많이 일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진짜 백인인 인도인, 파키스탄인은 매우 드문 편이에요.

 

현실적으로 가장 높은 확률은 원어민 영어 강사에요. 이쪽은 대체로 미국인들이에요. 시골에도 학교가 있고, 읍내에는 학원이 있어요. 그래서 외국인은 고사하고 한국인도 없게 생긴 동네인데 미국인이 있는 일이 있어요. 학교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원어민 영어 선생님, 학원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원어민 영어 강사가 있거든요. 시골이라고 중학교, 고등학교 없지 않고, 학원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제일 잘 보여요.

 

찜질방에서 여유를 즐기는 백인 남성. 당연히 확률적으로 가장 높은 이 동네 미국인 원어민 영어 강사일 거라고 추측했어요.

 

'어차피 망했는데 외국인이랑 잡담이나 조금 할까?'

 

외국인에게 인사를 했어요. 외국인도 인사를 받아줬어요.

 

"웨어 아 유 프롬?"

"아임 프롬 러시아."

"러시아?"

 

의외였어요. 러시아인이었어요. 한국인도 얼마 없는 영월 찜질방에서 백인 남성 보는 것도 신기했는데 미국인도 아니고 러시아인이었어요. 이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어요. 러시아라고 해서 모스크바에서 왔냐고 물어봤어요. 아니라고 했어요. 그러면 블라디보스토크 쪽 사람이냐고 물어봤어요. 역시 아니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러시아 시베리아 엄청 추운 지역에서 왔다고 했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 타고 왔냐고 물어봤어요. 아니라고 했어요. 비행기 타고 왔다고 했어요.

 

러시아인과 잡담했어요. 심각한 이야기는 당연히 안 하고 기후 이야기나 조금 했어요. 러시아인은 자기 살던 동네는 너무 추워서 한국 추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러시아인이 온 동네는 겨울에 영하 30도, 영하 40도 찍는 동네라고 했어요. 딱 이 정도 대화만 했어요.

 

러시아인과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소금방에서 나왔어요. 다시 매트리스에 누웠어요. 땀이 매루 빠르게 식었고, 다시 또 도저히 추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사우나 가서 자는 게 낫겠다."

 

어느덧 새벽 3시가 넘었어요. 찜질방에서 나가기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어요. 잠은 한숨도 못 잤어요. 카운터 아주머니 말씀 안 들은 대가는 너무나 컸어요. 이대로 계속 고통받을 바에는 온탕에 몸 푹 담그며 쉬는 게 더 나았어요. 온탕에 들어가서 10분이라도 자야 했어요. 10분이라도 자고 가는 것과 아예 한숨도 안 자고 가는 것은 천지차이였어요. 눈을 조금이라도 붙여야 했어요.

 

다 포기하고 사우나로 갔어요. 온탕에 몸을 담갔어요.

 

"살겠다."

 

포기하니까 편했어요. 사우나에 들어가서 눈을 감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사우나에서 너무 자면 안 되잖아.'

 

온탕에서 깊게 잠들면 이것도 또 곤란해요. 몸에 매우 안 좋아요. 온탕에서 나와서 온탕 벽 위에 드러누웠어요. 새벽 4시 채 안 된 시각이었기 때문에 사우나에는 저 혼자였어요. 온탕 벽에 올라가 드러누워도 눈치 하나도 안 보였어요.

 

"진작에 사우나로 올 걸!"

 

온탕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 때문에 아주 적당히 따스했어요. 드러누워서 자는데 너무 좋았어요. 온탕 벽에 드러누워서 조금 잤어요. 자다가 깨면 바로 온탕으로 퐁당 들어가서 잠시 또 몸을 데우고 온탕 벽으로 올라가서 드러누워서 잤어요. 찜질방에서 혼자 불지옥 얼음지옥 난리를 칠 때보다 비교도 안 되게 행복했어요. 너무 따스하고 잠을 잘 잤어요.

 

사우나에서 잠시 자서 다행이었어요. 슬슬 씻고 나가야할 시각이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온탕에 들어가서 몸을 충분히 데운 후 씻고 나왔어요. 2022년 10월 20일 새벽 5시 20분 조금 넘었어요. 카운터에는 아주머니께서 계셨어요. 아주머니께 인사하고 찜질방에서 나왔어요.

 

'아, 그냥 빌렸어도 되었네!'

 

찜질방에서 나오면서 엄청나게 후회했어요. 아무리 영월에서 첫 차를 타고 모운동 간다고 해도 첫 차가 그렇게 엄청나게 일찍 있지 않아요. 수도권은 버스 첫 차가 새벽 4시쯤에 차고지에서 출발해요. 그러나 그것은 수도권 이야기고, 여기는 영월이었어요. 첫 차는 6시 15분에서 차고지 출발이었어요. 모운동 가는 버스 첫 차를 타기 위해 영월교통차고지에 가기 위해 찜질방에서 나와야할 때는 대충 새벽 5시 반 정도까지였어요. 이 시각이면 웬만한 사우나는 다 문 열어요. 그러니까 나갈 때 카운터에 사람 없어서 담요 반납 제대로 못 하고 보증금 못 받을 걱정은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어요.

 

'내가 뭔 짓 했지.'

 

찜질방은 잘못한 것 하나도 없었어요. 분명히 제가 들어갈 때 담요 빌려가지 않겠냐고 했고, 담요 대여는 유료가 아니라 보증금 맡기고 빌려갔다가 반납하고 보증금 되돌려받는 무료 서비스였어요. 저 혼자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 영월의 밤을 지옥의 밤으로 만들었어요.

 

 

영월교통차고지를 향해 걸어갔어요.

 

 

'뭔가 묘하네.'

 

야심한 이른 새벽. 영월 풍경은 상당히 묘했어요.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풍경에 사람은 없고 동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어요. 도시라고 보기에는 이 시각에 차와 사람이 너무 없었고, 시골이라고 보기에는 정비가 너무 잘 되어 있었어요.

 

 

동강 산책로 옆 경계석 위에는 누가 호박을 잘라서 널어놨어요. 호박나물을 만들고 있었어요.

 

 

'이건 장식으로 널어놓은 거야, 진짜 먹으려고 널어놓은 거야?'

 

경계석 위에 호박나물을 올려놓아서 경계석과 주변 풍경이 더 예뻤어요. 경계석은 눈 살짝 쌓인 모습 같았어요. 장식 삼아서 널어놓은 거라면 매우 기발한 아이디어였어요. 그러나 장식으로 널어놓은 것은 아닐 거에요.

 

멀리 동강대교가 보였어요. 동강대교도 아무도 없는 야심한 시간이라고 조명을 꺼놨어요.

 

 

영월 동강 산책로를 따라 걸어갔어요. 영월교통차고지로 가는 길에 영월스포츠파크가 있었어요. 새벽 6시도 안 되었는데 사람들이 나와서 운동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이렇게 보면 엄청나게 번화한 도시 풍경 같았어요. 의정부도 새벽 6시 전에 나와서 테니스 연습하고 축구 연습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의정부 뿐만 아니라 서울도 마찬가지에요. 새벽 5시대는 사람들이 활동할 시간이 아니에요. 하지만 영월스포츠파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어요.

 

2022년 10월 20일 새벽 5시 49분, 영월교통차고지에 도착했어요.

 

 

차고지에는 버스가 많이 서 있었어요. 직원들이 한 명 두 명 출근하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여기에서 모운동 가는 버스 탈 수 있나요?"

 

직원분께 인사를 드리고 영월교통차고지에서 모운동 가는 버스 탈 수 있냐고 여쭈어봤어요.

 

"모운동? 17번 버스 타면 되요.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기사님 오시면 잡아서 타고 가세요."

"17번이요?"

"저기에 작은 버스 있어요. 그거 출발할 때 잡아타고 가시면 되요."

 

직원분께서 영월교통차고지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17번 버스 기사님이 오시면 버스에 태워달라고 하라고 하셨어요. 17번 버스는 커다란 일반 버스가 아니라 승합차처럼 생긴 작은 마을버스라고 알려주셨어요.

 

직원분께서는 저를 살짝 희안한 사람 보듯 보셨어요. 저도 직원분의 반응에 조금 이상했어요.

 

'운탄고도1330 안 유명한가?'

 

운탄고도1330 1길, 2길, 3길은 강원도 영월군 코스에요. 강원도 영월군에서는 운탄고도1330을 매우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어요. 영월군 혼자 운탄고도1330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 도 차원에서 운탄고도1330을 열심히 홍보중이었어요. 특히 운탄고도1330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코스는 운탄고도1330 3길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3길 시작점은 모운동이에요. 그러니 모운동 가려고 버스 타러 오는 사람이 많을 거고, 직원분께서 이 시각에 모운동 가려고 버스 타려고 오는 사람을 희안하게 여길 리 없었어요.

 

운탄고도1330 3길을 가려면 17번 버스 타고 모운동으로 가야 해요.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모운동 가는 17번 버스는 새벽 6시 10분에 있고, 그 다음 버스는 오전 9시 55분에 있었어요. 운탄고도1330 3길을 완주할 거라면 새벽 6시 10분 버스나 오전 9시 55분 버스를 타야 해요. 이 중 새벽 6시 10분 버스를 타고 가면 아침을 못 먹고, 오전 9시 55분 버스를 타면 점심을 못 먹어요. 첫 차인 새벽 6시 10분 버스 타고 갈 거라면 영월교통차고지로 가서 타고 가도 되었어요.

 

사람들이 운탄고도1330 3길 많이 갈 건데 왜 저를 희안하게 보는지 저도 희안했어요.

 

 

일반 버스 사이에 조그만 마을 버스가 한 대 끼어 있었어요. 이 버스가 제가 타고 가야 하는 17번 버스였어요.

 

17번 버스 기사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어요. 버스 기사분들이 하나 둘 영월교통차고지로 오셨어요. 계속 바라봤어요. 17번 버스 기사님께서 오셨어요.

 

"지금 버스 탈 수 있나요?"

"여기에서는 안 되요."

"예?"

 

직원분께서는 17번 버스를 입구에서 잡아타고 가면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17번 버스 기사분께서는 차고지에서는 못 태워준다고 하셨어요.

 

"직원분께서 여기서 타고 가라고 하셨는데요?"

"여기는 규정상 손님 못 태우게 되어 있어요."

"예? 그러면요?"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세요."

"버스 정류장은 어디 있어요?"

"저기 고가도로 다리 아래 있어요."

"진짜 여기서 안 되나요? 저 운탄고도 3길 때문에 꼭 타야 하는데요."

"정말 여기는 안 되요. 규정상 안 된다니까요. 저기 다리 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태워갈께요."

"버스 정류장 머나요?"

"안 멀어요. 여기에서 저기 고가도로 다리 아래에 있어요."

 

직원분 말씀과 달리 17번 버스기사님께서는 차고지에서는 절대 승객을 태울 수 없다고 하셨어요. 고가도로 다리 아래에 버스 정류장이 있으니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기가 반드시 태워서 갈 테니 어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버스기사님께서 규정 때문에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버스기사님께서 알려주신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 했어요.

 

'버스 정류장 어디 있다는 거지?'

 

카카오맵, 네이버 지도 모두 17번 버스 첫 번째 정류장은 영월교통차고지라고 나와 있었어요. 그 다음은 주공3,4차 아파트 정류장이었어요. 영월교통차고지에서 주공3,4차 아파트 정류장까지 거리는 도보로 624미터, 도보로 10분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빨리 가야겠다!"

 

17번 버스 기사 아저씨께서는 제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태워가겠다고 하셨어요. 그건 제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구요. 고가도로 밑 버스 정류장은 지도에 나와 있지도 않았어요. 고가도로 아래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인지 알 수 없었어요. 빨리 고가도로 아래로 가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야 했어요.

 

영월교통차고지에서 나와서 고가도로로 달려갔어요. 고가도로 아래에는 주차장 같은 것이 있었고, '하송리'라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어요.

 

 

"여기인가?"

 

고가도로 아래 버스 정류장은 432-26 하송리 정류장 뿐이었어요. 여기는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둘 다 검색이 안 되었어요. 17번 버스기사님께서 말씀하신 정류장이라면 여기였어요.

 

하송리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어요. 시간이 되자 아까 그 기사님께서 몰고 오시는 17번 버스가 보였어요. 17번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했어요. 17번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아직 깜깜했어요. 영월읍내에서 사람들이 계속 탔어요. 사람들과 버스기사님이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어요. 가벼운 안부를 묻기도 했어요. 모두가 잠이 덜 깨어서 피곤할 만도 한 이른 시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버스 내부도 히터가 가동되면서 조금씩 따스해지기 시작했어요.

 

'버스 정류장은 대체 뭐지?'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모두 검색 안 되는 하송리 버스 정류장. 계속 궁금했어요.

 

버스는 남한강을 따라 매우 빠르게 달렸어요. 남한강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어요. 그러나 아직 어두침침하고 버스가 빠르게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은 못 찍었어요.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 이어졌어요. 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새벽을 즐겼어요. 버스가 예밀리를 지나 주문리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설마 이 길을 걸어올라가라고? 나는 죽어도 안 한다.'

 

버스가 올라가는 길은 상당히 험했어요. 급경사였어요. 버스가 급경사를 올라가자 몸이 뒤로 젖혀졌어요. 도로폭도 너무 좁았어요. 이런 길은 걸어서 올라가기 진짜 위험한 길이었어요.

 

2022년 10월 20일 새벽 6시 50분, 17번 버스가 모운동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버스에서 내렸어요.

 

 

운탄고도1330 2길 종점이자 운탄고도1330 3길 시작점인 모운동에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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