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30 우즈베키스탄 히바 야경

좀좀이 2012. 11. 1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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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원을 지나 하렘 쪽으로 갔어요. 여기부터는 저 역시 정신이 없었어요. 그냥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기분이었어요. 정신적, 육체적 피로로 의해 뒤죽박죽이 되로 엉망진창이 된 것은 아니었어요. 정말로 정신이 없는 곳이었어요.


일단 하렘 성벽으로 갔어요. 혹시나 들어갈 곳이 있을 거 같아 궁전 반대편으로 걸어갔어요. 하렘 옆에는 담장 하나를 두고 또 다른 경찰이 있었어요. 여기는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둘러보는데 담장 위에 윤형 철조망이 쳐져 있었어요. 그래서 문을 두드려볼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경찰이 빵을 들고 가고 있었어요.


"여기 들어갈 수 있어요?"

"여기 내가 사는 곳이야."


예...경찰이 사는 곳이면 못 들어가겠구나. 아무리 우즈베키스탄에서 경찰을 무서워할 것 까지는 없다 해도 경찰이 살고, 윤형 철조망이 쳐져 있는 곳에 제 발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물론 당연히 윤형 철조망이 쳐져 있는 건물에 경찰이 순순히 들어오라고 할 것 같지도 않았구요. 하렘 반대쪽으로 계속 기 보았자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아서 방향을 틀어 다시 궁전쪽으로 걸어갔어요.


"여기도 문이 있네?"


이쪽 문 역시 문이 잠겨 있었어요. 여기도 문을 안으로 밀고 카메라 경통을 집어넣어 내부 사진을 찍었어요.




이쪽에서 보니 하렘이 더욱 황량해 보였어요. 여기도 한때는 칸과 정실 부인들, 궁녀들이 먹고 놀고 자던 곳이었을 텐데...옛날에는 정말 화려하고 볼 만 했을텐데 지금은 잡풀만 무성했어요. 정말 사람이 없으니 궁전도 별 수 없는 것 같았어요. 역시 집은 사람의 손길이 계속 닿아야만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 사람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는 궁전 내부는 그저 잡풀만 무성한 흉물처럼 보였어요.


"여기 하렘 맞구나!"



이것이 바로 여기가 하렘이라는 확실한 증거. 문의 양쪽 문고리가 모양이 달랐어요. 이것은 단순히 모양이 다른 것이 아니었어요. 문고리로 문을 두드려보니 소리가 달랐어요. 하렘에 거주하는 여성은 함부로 남자와 접촉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문고리를 다르게 만들어 남자가 두드리는 것인지, 여자가 두드리는 것인지 알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에요. 어떤 것이 남자 것이고, 어떤 것이 여자 것이라는 것까지는 저도 몰라요. 단지 이것이 하렘임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라는 것, 그리고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만 알 뿐이었어요. 이렇게 둘 다 두드려서 설마 남자 귀신이랑 여자 귀신이 우루루 사이좋게 몰려나오지는 않겠지? 괜찮아. 귀신이 나한테 뭐라고 해도 나는 한국인. 설마 귀신이 한국어 알겠어? 현대 우즈베크어로 이야기한다 해도 나는 우즈베크어 모르는 척 해야지. 귀신 나오면 '한국어 아세요? 아놔...한국어 아시냐구요'라고 대답할 거야.



다시 궁전으로 돌아왔어요. 옛날 칸의 금고 역할을 했다는 건물 사진을 하나 찍었어요. 아까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건물이라고 생각하고 사진을 제대로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건물의 모든 문은 시간이 늦어서 닫혀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그 건물에 있는 은행.



옛날에는 일반인은 감히 여기 접근할 생각도 못 했겠지? 히바 칸국은 법을 독하게 적용하기로 유명한 칸국이었어요. 툭하면 투르크멘인들이 약탈하러 오는 곳이기도 했고, 노예 장사로 짭짤한 돈을 벌던 나라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히바 칸국은 다른 칸국들보다 법이 훨씬 엄격했다고 했어요. 그런 히바 칸국에서 일반인이 궁전에 접근할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었어요. 양치기는 궁전 마당에 양을 데리고 나와 풀을 뜯어먹게 하고 있었어요. 옛날 칸이 여기 살고 있었을 때 저랬으면 저놈은 아마 참수였을 거야. 아니, 삼대를 멸족시켰을 수도 있어. 궁전 마당에서 양에게 풀을 먹이며 자연 제초시키는 모습을 보니 그저 웃음만 나왔어요.




왕궁을 따라 걸어갔어요.



이것은 19세기에 지어진 이브라김 호자의 집 Ibragim Xo'ja Uyi. 현재는 관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었어요. 일단 안에 들어가 보았어요. 안에는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어요.


"실례합니다. 여기 구경해도 되나요?"

"물론. 구경해."


할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셔서 안을 돌아다녔어요.



안은 낡고 허름하고 썰렁하다는 말 외에는 별로 떠오르는 표현이 없었어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서 위로 올라가 보았어요.




"아무 것도 없네..."



위층에서 볼 만한 것이라고는 바로 앞에 왕궁이 보인다는 정도였어요. 2층도 돌아다녀 보았지만 별 거 없어서 다시 아래로 내려왔어요.



건물에서 나와 이찬 칼아 쪽으로 걸어가며 보이는 유적은 전부 들어가보려고 했어요.




이것은 1893년에 지어진 누룰라보이 정원 Nurullaboy hovlilari. 제가 걸은 길은 바로 누룰라보이 정원이었다는 것을 나와서 문을 보고서야 깨달았어요.



이것은 1912년 지어진 누룰라보이 마드라사 Nurullaboy Madrasasi. 여기는 안에 들어갈 수 있어서 한 번 들어가 보았어요.



"뭐야, 이거?"


위의 사진은 엄청나게 밝기와 대비를 높여서 살려낸 사진이에요. 실제로는 빛이 거의 없어서 깜깜하기 그지 없는 공간이었어요. 어둠 속에서 본 것은 이곳이 식당, 아니면 클럽 용도로 쓰인다는 것. 사람도 없고 불도 없어서 저 역시 앞에 식탁이 있다는 것은 사진을 보정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실제로는 스피커가 달려 있고, 평범한 조명은 아닌 조명이 매달려 있다는 것만 보았어요. 예전에는 이슬람 신학과 학문을 공부하던 곳에서 지금은 덩실덩실 춤추기? 생각만 해도 웃겼어요. 왕의 재물 창고를 은행으로 쓰는 것은 재물을 보관한다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어서 참 머리 잘 썼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은 학교가 식당인지 클럽인지 구분 안 가는 곳으로 바뀌었어요. 공부하던 곳에서 놀고 즐기는 곳으로 바뀐 셈.



이 사진도 왜 찍었는지 의문. 아마 어이가 없어서 이거라도 찍고 가자는 생각에 찍었을 거에요.


"이제 돌아가야지."


나중에 여행기를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저곳이 저렇게 정신이 없었던 이유는 저곳 전부 과거 하나의 왕궁이었던 곳이었거든요. 즉, 엄청나게 넓은 궁전이었고, 거기 안을 다시 여러 문화재로 구분해 놓아서 정신이 없었던 것이었어요. 게다가 여기는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구입한 지도에도, 론니플래닛 중앙아시아편에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더욱 햇갈렸어요. 궁전 정원에서 빠져나온 후에야 궁전 정원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어요. 히바는 이찬 칼아 외곽에도 볼 것들이 있는데 대부분 이찬 칼아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이찬 칼아 지도만 그려놓고 '히바 지도'라고 해서 이찬 칼아에서 나온 후에는 무언가 엉망이 된 기분이었어요. 다시 가라고 한다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을 수야 있겠지만 누룰라보이 궁전 구조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저도 상당히 어려워요.


히바 이찬 칼아


"이찬 칼아다!"


고작 탑 하나 올라갔다 온 것 뿐인데 다리가 아팠어요. 빨리 걷고 싶었지만 빨리 걸을 수 없었어요. 탑을 올라가고, 디샨 칼아 간다고 멀리 있지도 않은 것을 한참 헤매고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욱신거렸어요.



"이제 저기 하나만 가면 되겠구나!"


저 망루만 올라가면 오늘 일정은 정말 끝. 나머지 시간은 그냥 흐느적 흐느적 걸어다니며 히바의 밤이나 구경할 생각이었어요.



서문 Ota darvoza 앞에 있는 알 호라즈미 동상을 잠깐 구경하고 서문 안으로 들어갔어요. 목이 말라 일단 병으로 된 콜라를 한 병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마셨어요. 이렇게 그 자리에서 다 안 마시면 병값도 내어야 했거든요. 콜라를 마시고 나오려는데 엽서가 보였어요.


"엽서나 부칠까?"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제가 있는 곳에서 고작 다른 도시를 다니는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엽서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루 일정이 무사히 거의 끝난 상황에서 엽서를 보니 왠지 친구들에게 엽서를 한 통 써서 부쳐주고 싶어졌어요. 그래도 히바는 타슈켄트에서 오기 매우 힘든 곳인데 여기 왔으니 기념으로 한 통 부쳐줘? 그러데 우체국은 이미 문을 닫았을 시각. 그리고 우체국을 찾으러 또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어요.


"엽서 1000숨."


청년이 다가와서 말했어요.


"지금 엽서 써서 부칠 수 있어?"

"응. 우표도 있어. 우표까지 사서 엽서 써서 나한테 주면 내가 부쳐줄게."


엽서를 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표를 보니 엽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엽서가 예뻐서가 아니라 우표가 예뻤기 때문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엽서를 부칠 때에는 보통 일반 보통 우표를 붙여주어요. 이것도 나름 예쁘다고 한다면 예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제 눈에는 정말 밋밋한 디자인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작은 일반 보통 우표 크기인데, 하얗고 그 위에 단색으로 간단한 그림이 그려진 우표였거든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엽서나 편지를 부칠 때마다 불만이었어요. 무언가 매우 화려하고 딱 보자마자 '이것이 우즈베키스탄이다!'라고 보여줄만한 우표를 붙여서 보내주고 싶은데 조그맣고 하얀 배경에 단색의 선으로 그려진 우표를 붙여서 보내야 했거든요. 그런데 청년이 보여준 우표는 초록 바탕에 나무를 깎아 만든 코란 받침이 그려진 예쁜 우표였어요.


"그 우표 붙이면 정말 한국까지 가?"

"당연하지. 왜 안 가?"


그래서 엽서와 우표를 샀어요. 어디에서 쓸까 주위를 둘러보는데 청년이 가게 안에 들어와서 엽서를 쓰라고 했어요. 그래서 가게 안에 들어가서 탁자에 앉아 엽서를 쓰고 우표를 붙여 청년에게 건네주었어요.


"이제 마지막이다!"


기쁜 마음으로 오크 샤이크 보보 Oq Shayx bobo로 갔어요. 여기는 


"표."

"여기요."


관리인 아주머니께 아침에 끊은 2일 자유이용권을 보여드렸어요.


"너, 위에 올라갈 거지?"

"예."

"그러면 2천숨 더 내야 해."


그래서 2천숨 더 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Oq Shayx bobo




원래 오크 샤이크 보보는 궁전이었던 곳으로, 볼 것 많은 히바에서 볼 것이 많은 장소로 손꼽히는 곳. 그러나 전부 휙휙 대충 보며 망루를 향해 걸어갔어요. 뛰어가고 싶었으나 다리가 아파서 뛰지는 못했어요. 덕분에 저의 상상과 달리 하나 하나 다 보면서 망루까지 가야 했어요. 한 가지 참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이 유명한 공간에 저 혼자 있었다는 것. 어차피 달리지도 못하는데 체념하고 볼 수 있는 것은 둘러보며 망루 위로 올라갔어요.



해는 서쪽 땅 너머로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사진 한가운데 보이는 성벽이 바로 누룰라보이 궁전. 오크 샤이크 보보도 궁전인데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라는 것이 망루에 올라가서 보니 딱 보였어요.



Uzbekistan


어느덧 해가 서쪽 나라로 완벽히 모습을 감추었어요.



그리고 히바에 검푸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어요.


우즈베키스탄 히바


히바 풍경



"정말 아름답구나!"


감탄을 하며 히바의 일몰을 구경했어요. 이 시각까지 망루에 서 있던 사람은 오직 저 혼자. 느긋하게 일몰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이따 집에 들어갈 때 과자나 사가야겠다.'


제대로 된 식당이 있으면 밥을 먹겠지만, 없다면 그냥 과자와 콜라를 먹으며 한 끼를 넘길 생각이었어요. 아름다운 일몰을 보면서도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지만 카봅 (샤슬릭)을 안 먹겠다고 드니 선택지가 없었어요. 그나마 일몰을 보며 찾은 대안이 항상 그래 온 것처럼 과자와 콜라로 저녁을 때우기였어요.


망루에서 내려왔어요.



"안에 사람 있니?"

"글쎄요? 그런데 망루에는 저 밖에 없었어요."


관리인 아주머니께서 제게 저 말고 안에 사람이 더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제가 들어갔을 때 안에는 두어 명 있었어요. 그들 모두 저보다 먼저 내려가기는 했는데 그들이 다른 곳에서 사진 찍으며 놀고 있을지 아닐지는 저도 잘 몰라서 그냥 망루에만 있다고 했어요. 아주머니는 안에 사람이 남았는지 확인하고 오크 샤이크 보보 문을 잠그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어요.


Muhammad Rahimxon madrasasi


오크 샤이크 보보 앞에 있는 처형 광장 앞으로 걸어나왔어요. 앞에 있는 건물은 무함마드 라힘혼 마드라사 Muhammad Rahimxon madrasasi. 여기도 문이 잠겨 있었어요.


"슬슬 걸어볼까? 대체 히바의 밤은 얼마나 심심한지 느껴보아야지."


이제 시간이 되었어요. 이 도시가 밤에 대체 얼마나 심심하기에 사람들이 한결같이 히바에서 밤에는 심심하다고 하는지 추적해볼 차례였어요. 그리고 여기는 관광지이니 혹시 카봅 말고 다른 것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이었어요. 저녁은 카봅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면 편한데 그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어요. 여기까지 와서 타슈켄트에서 저녁에 배는 고픈데 마땅히 먹을 게 없어서 사 먹는 카봅을 먹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서문 Ota darvoza 에서 동문 Polvon darvoza 로 천천히 걸어갔어요.





"정말로 아무 것도 없네..."


날이 저물자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지 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요. 부하라에서 밤 늦게까지 라비 하브즈에 사람들이 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이었어요. 게다가 가로등도 많지 않아 길거리가 컴컴했어요.


동문에서 나와 계속 쭉 걸어갔어요. 동문에 있는 탑 두 개까지 한 번 걸어보고 정말 아무 것도 없으면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먼저 1842년에 지어진 사이드 니요즈 숄리코르보이 모스크 Said Niyoz Sholikorboy Masjidi 로 갔어요.


"안녕하세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청년에게 인사했어요.


"여기 구경해도 되나요?"

"응. 구경해."


이 모스크 옆에도 커다란 탑이 하나 있었어요.


"이 탑 올라갈 수 있어요?"

"2천숨."


그래서 2000숨을 주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거 뭐야?"


이슬롬 호자 미노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좁고 안 좋은 계단. 게다가 해가 저물어 탑 안에 빛이라고는 전혀 없었어요. 카메라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켰어요. 핸드폰 불빛조차 없으면 코 앞에 있는 계단조차 안 보이는 깜깜함이라서 핸드폰 불빛 없이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어요. 핸드폰이 켜지자 밝기를 가장 밝게 해서 계단을 비추며 천천히 올라갔어요. 영화 보면 이런 탑은 횃불을 들고 올라가기 마련인데 탑 내부가 횃불을 들고 올라갈 높이도 되지 않았어요. 정말로 좁고 계단 난간 하나하나 높아서 한 손으로 핸드폰으로 앞을 비추고 한 손과 두 발을 이용해 기어올라가다시피 했어요.


"어이구..."



Khiva nightview


그야말로 암흑 천지.


불이 제대로 켜진 곳이 거의 없었어요. 몇몇 유명한 곳만 조명이 들어가 있고, 나머지는 그냥 시커맸어요. 야경이라 하면 사전적 의미로는 밤의 경치를 말하지만, 이것도 빛이 있어야 무엇을 보든 말든 하는 것. 어차피 빛이 없으면 볼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요. 사진을 잘못 찍어서 저렇게 나온 게 아니라 진짜 저렇게 어두컴컴한 도시였어요. 우리나라 야경처럼 별이 반짝이는 듯한 야경을 바랬던 것은 아니었어요. 한적한 동네의 야경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기 마련. 가로등 불빛만 땅으로 떨어지는 조용한 거리라 해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인데, 이건 도시에 불빛이 보이지 않았어요. 일단 불빛이 있어야 무언가 보든 말든 하며 아름다움을 느끼죠.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야경이라고 감상할 것이 없었어요.


"여기 진짜 밤에 심심한 곳인가 보다."


이제 남은 것은 탑에서 내려가는 것. 올라갈 때보다 더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훨씬 더 내려가기 어려웠어요. 역시나 핸드폰 불빛으로 아래를 비추어가며 천천히 내려갔어요. 이슬람 호자 미노라에 비해 높지 않은 탑이었지만, 그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길게 느껴졌어요.


"다 내려왔다!"


설악산에서 내려왔을 때의 기쁨이 다시 한 번 느껴졌어요. 먹은 것도 없이 탑을 두 개 올라갔더니 다리는 당연히 후들거렸어요. 모스크 안은 그렇게 크게 볼 것이 없었고, 빛도 밝지 않아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도 없었어요.


"혹시 이 탑 말고 다른 탑 올라갈 수 있는 곳 있나요?"

"내일 아침에 이슬람 호자 미노라 가 봐."

"거기 말고 다른 탑은 올라갈 수 없나요?"

"다른 탑은 올라갈 수 없어."


모스크 앞을 지키고 있는 청년에게 또 올라갈 수 있는 탑이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청년은 오직 이 탑과 이슬람 호자 미노라 외에는 올라갈 수 있는 탑이 없다고 대답해 주었어요. 히바에 있는 탑은 총 4개. 이 가운데 2개는 올라갔어요. 칼타 미노라는 미완성에 올라갈 방법이 없고, 나머지 2개만 올라가면 나름 그랜드슬램 달성인데 2개는 올라갈 방법이 없다고 했어요. 청년의 대답을 듣고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경찰에게 돈을 쥐어주고 올라갈 수 있지 않을 건가? 어쨌든 청년이 없다고 했으니 제대로 들어가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대충 둘러보고 다음 탑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다음 탑이 있는 곳은 1905년 지어진 폴본 코르 Polvon Qori Madrasasi, Masjid va Minorasi. 여기는 탑, 모스크, 마드라사가 같이 있는 곳. 사이드 니요즈 숄리코르보이 모스크에서 조금만 더 가던 방향으로 걸어가면 원통형 탑이 보이는데, 그 탑이 바로 폴본 코르 미노라였어요. 사이드 니요즈 숄리코르보이 모스크는 그래도 기도 드리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는데, 이쪽으로 오니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여기를 넘어가면 아무 것도 없는 평범한 마을. 마을쪽 역시 어두컴컴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이 탑 올라갈 수 있나?"


사진 찍기는 이미 글렀어요. 빛이 거의 없어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폴본 코르 안에 불이 켜진 곳이라고는 오직 한 곳. 그곳은 이발소로 사용되는 것 같았어요. 탑을 둘러보는데 탑 입구가 보이지 않았어요. 이 탑만 올라가면 오늘 하루에 히바에 있는 탑 3개를 올라가 보는 것.


"실례합니다. 이 탑 올라갈 수 있나요?"

"없어."


이발소로 쓰이는 듯한 곳에 사람이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올라갈 수 없다고 대답했어요. 혹시 다음날 올라갈 수 있나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어요. 이 탑은 입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이라고는 이발소처럼 보이는 곳을 지키고 있는 한 사람 밖에 없었고, 불빛도 없어서 다시 서문 Ota darvoza 로 돌아갔어요.


히바 야경


"진짜 아무 것도 없네."


식당도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없었고, 불빛도 별로 없었어요. 불빛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 그냥 돌아다닐 만은 했지만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거리였어요. 밝기만 놓고 보면 안디잔 구시가지가 훨씬 더 도시 같았어요. 간혹 진짜 히바에서 사는 주민들이 나와 산책하는 것이 보였어요. 그 외에는 관광객도, 사람도, 가게도 없었어요. 으슥한 곳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관광지가 다 몰려 있는 동문과 서문을 거의 직선으로 이어주는 거리를 걷고 있는데도 이랬어요. 더 돌아다녀 보았자 볼 게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빛이라도 있어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할 텐데 불빛이 너무 적어서 말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서문 망루는 못 올라가지만, 북문 Bog'cha darvoza 으로 가면 성벽에 올라 서문 쪽으로 쭉 걸어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야경을 감상하며 걸어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렇게 컴컴한 동네에서 그렇게 한다고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볼 거 같지도 않았어요. 낮에 올라가서 보았을 때 북문에서 서문으로 걸어갈 수 있는 성벽에서는 전망이 그렇게 잘 보이는 것도 아니었구요.


숙소로 돌아와 테라스로 나갔어요.


히바


그래도 칼타 미노라와 서문 쪽은 그나마 조명을 조금 해 놓아서 야경을 찍을 만 했어요. 카메라가 초점을 못 잡아서 한참 씨름하고, 초점을 겨우 잡으면 다마스가 와서 사진 다 망치기를 몇 번 반복했어요. 이렇게 한참 한밤중 서문을 찍겠다고 2층 테라스에서 사진기와 씨름하며 겨우 몇 장 찍어서 나중에 그나마 괜찮은 사진을 골라내기로 하고 망루쪽을 찍으려고 하는 순간.


"응?"


망루쪽 가로등이 전부 꺼져 버렸어요.


하...그냥 웃자.


여기가 왜 밤에 아무 것도 할 게 없어서 심심하다고 하는지 정말로 잘 깨달았어요. 가로등까지 꺼 버렸으니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었어요. 당연히 카메라는 초점 못 잡겠다고 계속 벅벅거리고, 밝은 곳이라고는 서문 쪽 밖에 없었어요.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아까는 계속 사진을 망쳐놓던 다마스가 이제는 아주 고맙고 소중한 존재로 돌변했어요. 성벽을 찍고 싶은데 빛이 없어서 카메라가 초점을 못 잡고 있었거든요. 그나마 초점을 잡는 순간이라면 전조등을 밝게 켠 다마스가 지나갈 때. 다마스가 올 때까지 멍하니 기다리다가 다마스가 오면 재빨리 초점을 잡고, 다마스가 되돌아나간 후에 셔터를 누르기를 반복했어요. 그래서 건진 사진이 이것 한 장.


Khiva


밤하늘에 보이는 하얀 점은 얼룩이 아니에요. 하얀 점은 바로 별. 작은곰자리가 사진에 찍힌 것을 보고 어이없어서 웃었어요. 과연 옛날에도 이렇게 밤이 되면 성벽은 깜깜했을까? 성을 지키기 위해 횃불이 하나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정말 조명을 조금이라도 더 해 놓았다면 야경도 꽤 볼 만한 도시였을 건데, 이건 있는 가로등도 꺼 버리니 그나마 아주 조금 볼 수 있는 것조차 볼 수 없었어요. 차라리 조명 좀 신경써서 설치하고, 오크 샤이크 보보를 통해 올라갈 수 있는 망루를 야경을 볼 수 있게 열어주고 관광객에게 만 숨씩 받으면 장사 좀 되지 않을 건가? 부하라야 도시를 내려다볼 만한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여기는 서문 망루에서 잘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조건은 잘 갖추어져 있는데...


히바의 야경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내가 부하라를 보고 와서 그런가?"


일반 관광객이라면 여기를 보고 정말 자지러지게 놀라며 아름답고 신기하다고 찬사를 보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제게 히바는 무언가 부족하기도 하고, 과거에 보았던 것과 비슷하기도 한...그런 곳이었어요. 워낙 타슈켄트에서 가기 힘들어서 너무 많은 상상과 기대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부하라가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그런 것일까?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느껴진 이 부족함과 허전함. 대체 왜 히바에서는 김 빠진 콜라를 마시는 기분이 드는지 스스로 궁금했어요. 다른 관광객들은 히바를 보고 감탄하고 칭찬하기에 바쁜데 왜 나는 여기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김 빠진 콜라를 마시고 난 후 느껴지는 떨떠름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묘한 기분을 느끼는 이유를 찾아보려 애를 썼지만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이럴 때 제가 취하는 방법은? 드러누워 잠이나 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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