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Polvon darvoza 앞에 있는 시장으로 갔어요.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인데 마침 동문 앞에 있던 시장을 가볍게 둘러보고 가는 것도 괜찮을 듯 했어요. 여기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슈켄트와 반대로 매우 서쪽에 치우친 부분. 혹시 이곳 시장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까 기대했어요.
역시나 여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박과 멜론. 여기 멜론을 하나 사서 먹고 싶었지만 도저히 혼자 다 먹을 크기의 멜론은 없었어요. 혼자 먹기는 고사하고, 혼자 들기도 버거워보이는 커다란 것들 밖에 없었어요. 시기와 지역을 고려했을 때 맛이야 무조건 보장이 된다고 보아도 좋았지만, 반 통도 못 먹고 나머지를 버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칼이 없어서 기차에 멜론을 들고 타야 하는데, 이때 문제는 이 나라 비닐봉지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점. 이 나라 비닐봉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물기가 많은 음식물 쓰레기는 반드시 비닐 봉지에 넣고, 그 비닐 봉지를 다시 다른 비닐 봉지에 집어넣어야 밖으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집에서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저건 한 통 사면 오늘 하루 종일 먹어도 다 먹을까 말까한 크기인데, 그것을 다 썰어서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그저 아침에 호스텔에서 먹은 멜론으로 만족하기로 했어요.
멜론, 수박, 호박을 파는 구역을 지나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시장 바로 너머가 바로 이찬 칼아였어요. 이렇게 오래된 성벽 바로 앞에 시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하고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바로 이 시장 맞은편에 있는 이찬 칼아 동문에 노예 시장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 시장에서도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주로 식품을 팔고 있었어요. 이런 평범한 식품 시장과 노예 시장을 한 자리에 그려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전날 우르겐치 가는 다마스가 서는 곳을 알아두었기 때문에 별 망설임 없이 동문 Polvon darvoza 에서 성벽을 따라 북문 Bog'cha darvoza 가는 방향으로 갔어요. 동문에서 얼마 걷지 않아 다마스가 많이 서 있는 곳이 나왔어요. 전날 알아보았을 때 성벽이 꺾어지는 쪽에 우르겐치 다마스가 있다고 들었지만 여기도 다마스가 많이 서 있었어요. 주마 미노라를 올라갔다오니 다리가 더 많이 아파서 조금이라도 덜 걷고 싶었어요.
"우르겐치 가요?"
운전기사가 타고 있는 다마스에 가서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다마스 보조석에 앉아 있던 우즈벡인이 조수석에서 나오며 말했어요.
"얼마?"
어디 가냐고 되묻는 것도 아니고 언제 가냐고 물어보는 것도 아니었어요. 이렇게 이 다마스 우르겐치 가냐고 물어보는데 얼마냐고 물어볼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
"너 택시지?"
"응."
"니나다!"
러시아어로 필요없다고 말하고 바로 뒤돌아서서 성벽이 꺾어지는 곳까지 걸어갔어요. 다리도 아프고 이제 우르겐치를 돌아볼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우즈베크어로 필요없다고 했다가 말 질질 끌면서 시간을 날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택시 가격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던 이유는 히바에서 우르겐치 기차역까지 다마스 2번 타고 가나 택시를 타고 가나 그 시간이 그 시간인데다 다마스로만 가면 2000숨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거든요. 참고로 다마스는 개인 소유라서 사람만 적당히 차면 빨리 몰아서 가요. 그래서 택시와 속도가 비슷해요. 그렇기 때문에 괜히 택시를 타지 않고 다마스를 타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많이 걸어가야하는 거리는 아니라 별 생각 없이 걸어갈 수 있었어요. 다리만 멀쩡하면 금방 걸어갈 거리인데 다리가 아파서 빨리 걸어가지는 못했어요. 전날 아저씨께서 알려주신대로 우르겐치 가는 승합차가 한 대 있었어요. 이번에는 다마스가 아니라 그거보다 조금 큰 승합차였어요. 우르겐치에 가냐고 물어보자 빨리 타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가 타자마자 승합차는 우르겐치를 향해 출발했어요.
우르겐치 데흐콘 보조르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우르겐치 기차역 가는 다마스로 갈아탔어요. 이번에는 맨 앞 조수석에 앉아서 창밖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우르겐치 기차역으로 달려가는 승합차 안에서 공원 두 곳을 보았어요. 한 곳은 걸어가기에는 조금 멀었고, 다른 한 곳은 걸어갈만한 거리였어요. 시각을 확인해 보니 오후 2시. 아직 여유가 있었어요. 우르겐치에서 사마르칸트 가는 기차는 오후 4시 10분 출발. 멀리 떨어진 공원까지 걸어갔다 오기에는 약간 시간이 부족한 듯 싶었고, 적당히 근처에 있는 공원까지 다녀오면 시간이 딱 맞을 거 같았어요.
"에구구..."
걸어가는데 신음 소리가 저절로 나왔어요. 체력이 저질이 되어서 탑 세 개 올라갔다고 다리가 맛이 갔어요. 걸을 때마다 다리가 아팠어요.
왠지 러시아 교회를 짓는 것 같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인 없는 곳은 없고, 여기도 러시아인들이 산다고 했는데,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고 있는 건가? 우즈벡인들이 러시아 정교를 믿을 것 같지는 않았어요. 우즈벡인 대부분이 아랍인에 비해 율법을 느슨하게 지키기는 해도 무슬림이기는 하거든요.
이런 풍경을 보며 느낀 건 한 가지였어요. 정말 중앙아시아 지역 풍경은 비슷하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 전부 소련에 속했던 지역이었기 때문. 그나마 독립 후 열심히 가꾸고 뜯고 고친 곳은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그 외에는 전부 엇비슷한 모습이었어요. 여기 이 풍경을 가지고 '이 풍경은 투르크메니스탄의 풍경입니다', 또는 '이 풍경은 타지키스탄의 풍경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해도 될 거 같았어요.
드디어 공원에 도착했어요.
이 공원은 잘롤릿딘 망구베르드 공원. 잘롤릿딘 망구베르드는 호라즘 제국 제 8대 술탄으로, 칭기즈 칸이 호라즘 제국을 멸망시키자 1221년 호라즘 지역에 있는 도시인 우르겐치로 돌아와 술탄에 즉위했어요. 망구베르드는 가즈나로 돌아와 재기를 도모하며 현지 유력자를 규합하고 군사를 모았고, 아프가니스탄 카불 근교에서 몽골군의 선봉 부대를 물리쳐 몽골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승리를 거두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칭기즈 칸은 사마르칸트에 주둔하고 있던 본군을 이끌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남하했고, 망구베르드는 칭기즈 칸과 대결했지만 패배하고 살아 남은 소수의 부하와 함께 인도에 도망쳤어요. 인도로 도망간 망구베르드는 노예 왕조와 손잡고 몽골군과의 싸움을 계속하려고 했으나 노예 왕조로부터 거절 당해 1224년 인도로부터 이란으로 돌아가 이스파한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이를 알아챈 몽골군이 이스파한을 공격해 아제르바이잔 방면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고, 타브리즈를 본거지로 남 카프카스로부터 동부 아나톨리아, 시리아 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해 갔어요. 하지만 망구베르드의 너무 활발한 활동과 주변 제국에 대한 약탈 때문에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1230년에 아나톨리아의 룸 셀주크 왕조와 시리아를 지배하는 아이유브 왕조에게 패하고, 몽골에게 추격당해 아제르바이잔으로 피신하게 되었어요. 이후 동부 아나톨리아의 여러 곳을 전전하다 오늘날 터키 디야르바크르에서 쿠르드족에게 암살당했다고 해요.
설명이 길기 때문에 간단히 요약하자면 칭기즈 칸에 대항해 싸운 사람으로, 타지키스탄의 테무르 말리크와 비슷한 사람이에요. 실제로 테무르 말리크와 함께 칭기즈 칸의 몽골에 대항해서 싸웠던 사람이구요. (월요일에 가자 - 22 타지키스탄 이스타라브샨 http://zomzom.tistory.com/287)
공원을 둘러보고 역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먹을 거 사 가야지!"
공원을 보고 역으로 돌아가는 중에서야 오늘 한 끼도 안 먹었다는 사실이 생각났어요. 그러고보니 이번 여행은 식사를 정말 부실하게 하면서 다니고 있었어요. 정말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숙소에서 잠을 잤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분명 핼쓱해져서 돌아다니고 있었을 거에요. 이번에 타야 하는 기차는 오후 4시 10분 출발하는 기차였기 때문에 기차에서 맨정신으로 버텨야할 시간이 더욱 길었어요. 그래서 가게에 가서 과자와 콜라, 물을 샀어요.
"돌아가는 길이 참 멀구나."
역으로 천천히 걸어갔어요.
기차표 매표소 건물이 따로 조그만 건물로 지어져 있었어요. 하얀 바탕에 진한 청색 유리창 건물이야 타슈켄트에서 이제 쉽게 볼 수 있는 건물이 되었지만 저런 흙빛 바탕에 진한 청색 유리창 건물은 아직 흔한 디자인은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 저 흙빛 바탕에 진한 청색 유리창이 훨씬 조화를 이루는 듯 보였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반짝이는 하얀 바탕에 진한 청색 유리창은 힘이 느껴지는 디자인이기는 하지만, 일단 햇볕이 강한 시각에 보면 눈이 아팠거든요.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이 반짝이는 하얀 바탕에 진한 청색 유리창 건물을 매우 비싸보이고 예쁘다고 좋아해요.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과의 미적 기준의 차이이기도 하구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번쩍이는 하얀 바탕에 진한 청색 유리창 건물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꽤 좋아하거든요. 이것은 제가 하도 궁금해서 현지인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대답을 들은 내용이기도 해요. 어쨌든, 너무 번쩍이는 하얀 바탕에 진한 청색 유리창 건물은 그 디자인 자체에 대한 개인적 취향을 떠나서 햇볕 강할 때 보면 눈이 아프고 사진을 찍으면 시커멓게 나오기 일쑤인 건물이었어요. 게다가 이 중앙아시아 지역은 햇볕이 강한 시기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길고, 햇볕의 강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세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여부를 떠나 일단 보면 눈이 아프고 사진 찍기 어려운 편이라 안 좋아해요. 그에 비해 흙빛 바탕 건물은 일단 건물을 보았을 때 눈이 편해서 좋았어요.
"택시?"
"아니요. 저 기차역 가요. 기차역 입구 어디에요?"
"저쪽으로 가면 돼."
택시 기사가 접근하자 기차 타러 간다고 대답하고 기차역 입구를 물어보았어요. 이렇게 기차역 입구를 물어본 이유는?
바로 공사중.
적당히 보수 공사 중이 아니라 새로 짓는 수준의 공사였어요. 얼핏 보아서는 입구라고 할 만한 곳이 없고, 그냥 공사장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어요. 나올 때에야 그냥 막 나왔지만 들어갈 때에는 표 검사, 보안 검사를 받아야 했어요. 우즈베키스탄 기차역에서 나올 때에는 어쨌든 나가기만 하면 되지만, 들어갈 때에는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입구를 물어보고 입구라고 알려준 곳으로 갔는데 기차역 입구를 가로막는 검문소가 없었어요.
"이거 그냥 지나가도 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검문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어쨌든 여권과 기차표는 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걸리면 그때 보여주자는 심산으로 기차역을 향해 걸어갔어요.
"표."
"여기요."
기차역 임시 대기실 앞에서 경찰이 표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말이 좋아 임시 대기실에 경찰이 표 검사를 하는 것이었지, 사방이 뻥 뚫려 있어서 피해 가려고 하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도 있었어요. 경찰은 표를 보고는 바로 제게 돌려주었어요.
어? 이게 아닌데...
이게 너무 허술하니까 오히려 받는 제가 당황스러웠어요. 앞서 말했듯 우즈베키스탄에서 기차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소에서 '표검사 - 수하물 및 신체 보안검색 - 여권 및 표 검사 및 확인도장 받기'라는 3단계를 거쳐야 해요. 이것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수도 있고, 멀찍멀찍 떨어져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3단계는 웬만한 역에서는 다 하는 절차였어요. 그런데 이 역에서는 기차표 뒷면에 확인도장을 찍어주지 않았어요. 혹시 제가 못 찾은 것 아닌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주변에 확인도장을 찍어주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경찰에게 된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경찰은 되었으니 들어가 기차 기다리라고 대답했어요.
사방이 뻥 뚫려 있는 대합실이었어요. 정말 '임시 대기실'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았어요. 우즈베키스탄 돌아다니며 이렇게 허접하게 검사하는 기차역은 또 처음이었어요.
정말 적응이 안 되는 역. 마음 한쪽에는 표에 도장을 못 받았다는 생각이 일으켜대는 불안감이 파도를 만들어대고 있었어요. 그래서 옆 사람이 들고 있는 표를 슬쩍 보았어요. 옆 사람이 들고 있는 기차표 역시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았어요.
기차역 대합실 옆은 공사중이었어요. 가끔 불똥이 튀어 제 발 앞까지 날아오기도 했어요. 옆은 공사중이라 엄청 시끄러운데, 우즈벡인들도 열심히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어요. 게다가 검색이 너무 허술해서 시간이 매우 많이 남아 버렸어요.
지이이잉 이이이잉 탕탕탕탕 애애애앵
지이이잉 이이이잉 탕탕탕탕 애애애앵
지이이잉 이이이잉 탕탕탕탕 애애애앵
아무 생각 없이 앉아서 쉬고 싶었어요. 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단지 소음을 열심히 감상할 뿐이었어요. 바로 옆쪽이 공사중이어서 무엇을 하든 소음 감상이었어요. 멍때리고 있어도 소음 감상, 음악을 들어도 소음 감상, 여행 기록을 남겨도 소음 감상...무엇을 해도 그 결과는 소음 감상이었어요. 덕분에 지루하거나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공사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거든요.
3시 45분. 드디어 기차가 왔어요.
"이 사람들 다 어디에 있었던 거야?"
정말 장관이 펼쳐졌어요. 대합실에 있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우루루 기차를 향해 가기 시작했어요. 거대한 파도가 방파제를 덮치는 것처럼 사람들이 기차를 덮치러 가고 있었어요.
제가 타야할 객차는 대합실 정 반대쪽. 대합실에서 나가 오른쪽 끝까지 가야 했어요. 사람들이 엄청나게 기차 앞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제가 제 객차에 갔을 때에는 이미 사람들이 어느 정도 탄 후였어요. 그래도 아직도 사람들이 기차 앞에 많이 서 있었어요. 객차 앞에 가서 승무원에게 기차표와 여권을 보여주자 승무원은 기차표 뒷장을 뜯어가고 표를 돌려주었어요. 여기는 아마 공사중이라서 일단 이렇게 객차 앞에서 기차표 뒷장을 뜯어간 후, 나중에 도장을 한 번에 다 찍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객실에 들어가 짐을 2층에 올렸어요. 오늘도 제 자리는 2층. 우르겐치에 올 때 아랫칸에서 잤다가 밤에 추워서 제대로 혼났기 때문에 오늘은 무조건 2층에서 잘 생각이었어요. 짐을 2층에 올리고 내려와 앉았어요. 제가 탄 객실에 한 청년이 들어왔어요.
"안녕?"
"안녕."
가볍게 인사를 했어요. 이 청년도 딱 보니 우즈벡인이었어요.
"너 어디에서 사니?"
"타슈켄트. 너는?"
"나도 타슈켄트. 그런데 사마르칸트에서 내려."
"왜?"
"지금 타슈켄트에서 우즈벡어 배우는데 잠깐 방학 얻어서 여행중이거든."
"그래?"
"응. 너는 어디에서 내려?"
"나는 타슈켄트에요."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둘 다 말이 없었어요. 그때 마침 우즈벡인에게 전화가 왔어요. 우즈벡인이 전화로 이야기하는데 우즈벡어가 아니라 터키어로 이야기했어요.
"너 터키어도 알아?"
"응. 비슷하잖아. 별로 어렵지 않아."
또 다시 침묵. 둘이 멍하니 앉아 있으면 시간이 더욱 안 지나갈 거 같아서 무엇을 말할지 머리를 굴렸어요.
"너 히바에서 돌아가는 거야?"
"응. 친구집 놀러갔다 돌아가는 길이야."
"히바 물 이상하지?"
"응. 너 그 우물물 마셔보았어?"
"아니."
"그 우물물 짜잖아. 거기 사람들 말고는 거기 물 안 좋다고 해."
저만 히바에서 물이 안 좋다고 느낀 것은 아닌 것 같았어요. 이 청년도 히바 지역 물이 별로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어요.
"너 사마르칸트 잘 알아?"
"응. 나 거기에서 대학 다녔었어. 너 거기 간다고 했지?"
"응."
"사마르칸트는 걸어서 다닐 수 있어. 택시 기사들이 택시 타라고 하는데 절대 택시 타지 마. 울루그벡 천문대가 조금 멀어. 거기만 택시 타고 가. 거기 2천숨 정도면 갈 거야. 내 친구들이 사마르칸트 왔었을 때, 레기스탄 광장에서 쇼흐 진다까지 택시비 5천숨 받았대. 그런데 거기 가깝거든. 그냥 걸어가는 곳이야."
"아..."
이 청년은 사마르칸트를 어떻게 다녀야하는지 잘 알려주었어요. 사마르칸트는 볼 것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그냥 걸어서도 충분히 다 볼 수 있다고 했어요. 조금 먼 곳이라면 울루그벡 천문대 정도 있는데, 여기만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여기도 걸어서 못 갈 곳은 아니라서 2천숨 정도 쥐어주면 충분히 택시로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사마르칸트에 타지크인 많다면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에 타지크인이 많다는 것은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원래 타지크인들의 도시였거든요. 하지만 비록 스쳐간 것이기는 하지만 두 번 사마르칸트에 갔을 때 타지크인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타지크어를 듣지 못했어요.
"사마르칸트에 많아."
"타지크인 어때?"
"걔네들 별로 안 좋아. 사기꾼 같아."
우즈벡 청년은 타지크어로 대화는 못 하지만 이해는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부하라에서 사용하는 타지크어는 조금 투박하고, 사마르칸트에서 사용하는 타지크어는 조금 더 부드럽다는 것도 알려주었어요.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기 시작했어요. 그제서야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어요. 잠자리를 만들고 드러누웠어요. 청년도 자기 자리에 드러누워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즐기고 있었어요. 우즈벡인이 3G로 스카이프도 하고 이런 저런 인터넷 서핑도 즐기고 하는 것은 이때 처음 보았어요. 참고로 이 청년은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지금도 그쪽 일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기차는 가볍게 흔들리며 황량한 들판을 달리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