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14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좀좀이 2012. 10. 2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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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발 부하라행 기차는 이번이 두 번째. 처음 이 기차를 탄 것은 투르크메니스탄에 가기 위해 파라브 Farab 국경에 가기 위해서였어요.


'그때처럼 안개 사우나는 아니겠지?'


투르크메니스탄 여행 자체는 힘들지 않았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이 제게 그다지 나쁘고 답답한 곳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구요. 그래서 가끔 다시 투르크메니스탄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때마다 뒷목 잡으며 단호히 다시 안 간다고 외치는 이유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메니스탄 가기 위해 하도 고생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기 위해 고생한 것도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일. 그리고 그때 비자 문제로만 고생이 끝난 것이 아니었어요.


안개 사우나에서의 하룻밤


2012년 6월 30일의 밤. 그렇게 가기 어렵다는 투르크메니스탄에 간다는 설레임 따위는 없는 밤이었어요. 당연히 설레임이 있어야 하는 밤이었지만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해 신경을 쓸 정신이 없었어요. 그 이유는 객실 안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더웠기 때문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이 아무리 50도까지 올라간다 하더라도 한국보다 덜 덥고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 역시 그늘에 있다는 조건 하에서는 한국보다 시원하게 느낀다는 의견에 동의해요. 왜냐하면 건조하거든요. 건조하다보니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기온이 떨어지는 기후인데, 이것은 여름도 마찬가지에요. 더 재미있는 것은 양달과 응달의 기온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 50도까지 올라가는 더위 속에서 학원도 잘 가고 시장도 잘 보고 다닌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타슈켄트는 나무가 많아서 50도 폭염을 그대로 다 맞을 일이 생각보다 적거든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렇게 더울 때에는 머리만 특히 조심하면 되요. 50도 폭염을 그대로 다 맞아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양달로 가면 최대 50도 폭염을 그대로 맞는 거니까요. 이때 더워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간 사람이 아니라면 정말 아찔할 수가 있어요. 여름에 여러 번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만, 40도 넘어가는 폭염을 만드는 햇볕을 그대로 맞고 있으면 햇볕을 바가지에 가득 담아 머리에 쏟아붓는 느낌이에요. 30도와는 그냥 차원이 다른 느낌이에요.


기차 객실에 들어간 순간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어요. 기차는 하루 종일 데워진 상태. 정확히 하루 종일 데워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충분히 잘 데워져 있었어요. 기차가 양달에 서 있었거든요. 당연히 시동이 걸리지 않은 기차였으므로 에어컨은 나오고 있지 않았어요. 문제는 습하기까지 했다는 것. 기차에 타자 마자 바깥보다 습하다는 것이 확 느껴졌고, 객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물에 빠졌다가 막 기어올라온 사람처럼 온몸이 흠뻑 젖었어요. 과장 조금만 보태면 물을 마시는 족족 전부 방광으로 가는 게 아니라 땀샘으로 가서 피부로 줄줄 새어 나오는 정도.


같은 방에 탄 우즈벡인 두 명은 일부러 2층 자리를 골랐다고 했어요. 그때 저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화장실 가기 불편하고 갑갑하기 때문에' 1층 자리가 좋다고 해서 1층 자리로 잡았어요. 4명이 타고 가는 침대칸이었기 때문에 그깟 화장실 가기 불편하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차 침대칸에서 2층은 정말로 답답한 자리. 특히 우즈베키스탄 기차 침대칸은 2층이 기차 객실의 가운데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보다 높게 붙어 있어서 앉아 있기도 불편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2층은 갑갑해서 싫다는 개인적 경험으로 1층 자리로 표를 끊었어요.


기차가 출발하고, 더워서 열어 놓은 창문은 차장이 모두 강제로 닫게 했어요. 에어컨이라고 나온다고 하기는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바람이 약해서 오직 2층에만 갔다는 것. 이게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인지 2층에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선풍기를 달아놓은 것인지 햇갈릴 정도였어요. 당연히 방은 시원해지기는 커녕 창문을 닫아놓아서 더 더워지고 있었어요. 1층에서 자려니 더워서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줄줄 나서 옷은 방금 빨래한 옷처럼 축축해졌어요. 잠을 든 것은 자정 넘어서였어요. 잠을 잔 게 아니라 기절했어요. 그리고 계속 더워서 깨었구요. 웬만해서는 덥다고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없어요. 대학생 때 동향과 남향으로 창이 나고 단열재도 제대로 안 들어가서 여름만 되면 불바다가 되던 고시원 방에서도 문 잠그고 낮잠만 잘 잤어요. 그런 제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였어요.


기차로 부하라에 처음 갔을 때 그랬어요. 그래서 부하라행 기차가 또 불지옥이 아니기만을 바랬어요. 이번에는 일부러 2층으로 자리를 끊었어요. 그때 현지인들이 일부러 2층으로 끊은 이유를 체득했거든요.


'그래도 기온이 많이 떨어졌으니 괜찮을 거야.'


8월 마지막 2주간 정말로 불지옥이었어요. 이때가 바로 50도까지 치솟은 그 때에요. 그 후 비 같지도 않게 잠깐 비가 내렸고, 그 다음부터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마지막으로 더위가 발악하나 했지만 근성 부족. 게다가 지금은 기온이 계속 떨어져가고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 동부를 돌아다닐 때에는 단 한 번도 크게 덥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저 햇볕이 따갑다고 느꼈을 뿐, 덥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해가 떨어지면 쌀쌀했어요.


그때처럼 불지옥만 아니기를 바라며 기차에 올라탔어요.


"그때에 비해 많이 좋아졌네!"


확실히 덥지 않았어요. 더위를 잘 타는 사람이라면 살짝 덥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였어요. 이 정도 더위라면 새벽에 추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즈벡인 청년과 아저씨가 제가 탄 객실에 들어왔어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어요. 기차는 딱 기차표에 적혀 있는 대로 저녁 8시 25분에 출발했어요. 기차가 출발하고 차장이 이불과 시트 커버, 베갯보를 주었어요.


"우즈벡어 아세요?"

"당연히. 우즈벡어 아니?"

"예."


청년은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만들고 누워 있었어요. 저는 심심하던 차에 아저씨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대화하러 내려가도 되요?"

"물론, 물론! 어서 내려와!"


저와 우즈벡인 아저씨가 우즈벡어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자 2층에서 자리를 만든 청년도 같이 놀기 위해 아래로 내려왔어요.


"부하라 출신이세요?"


한국인들이 우즈베크어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발음은 o' 이에요. 이것을 그냥 '우즈벡 '오''라고 하는데 이건 현지인들이 아무리 발음을 해 주어도 정말로 구분하기도 흉내내기도 어려운 발음이에요. 이 발음을 한국인들이 더욱 어려워하는 이유는 어떤 때에는 '우'처럼 들리고, 어떤 때에는 '오'처럼 들리기 때문이에요. 국가 이름인 O'zbekiston 에서는 '우'처럼, '고기'라는 뜻의 g'o'sht 에서는 '오'처럼 들려요. 그래서 대충 들리는 대로 단어에 따라 '우'라고 하든가 '오'라고 하는 발음. 그런데 부하라 사람들이 이 발음을 단모음 '외'처럼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요. 두 분 말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굳이 부하라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 o'를 단모음 '외'처럼 발음하는 것 때문에 대충 부하라 사람들이라고 짐작은 했어요.


역시나 부하라 사람들이었어요. 아저씨는 회사에서 일하시고, 청년은 군인이었어요. 장교인지 하사관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직업 군인. 휴가를 받아서 놀다가 집에 갔다가 부대로 복귀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어요.


"부하라 다 보려면 얼마나 걸려요?"

"거기? 3일은 필요해."

"3일이요?"


주변 사람들 모두 부하라는 하루 보고 돌아온 도시였어요. 타슈켄트에서 부하라만 간다면 무박 3일로 다녀와요. 제가 탄 저녁 8시 25분 기차를 타고 부하라로 야간 이동 한 후, 부하라에 도착하자마자 부하라를 보고 다시 그날 밤 야간이동으로 타슈켄트에 돌아오는 식이에요. 또는 저처럼 우즈베키스탄을 돌아볼 때 하루 보고 가는 곳. 주변에서, 그리고 다른 여행자들의 정보를 참고하며 제가 짠 일정은 부하라 이틀. 이렇게 이틀이나 부하라에 이틀이나 준 이유는 이번에는 무조건 강행군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게다가 안디잔-타슈켄트-부하라 이동일은 하루 종일 이동만 하는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휴식일을 하루 주었어요. 이번 일정의 특징은 부하라, 히바, 사마르칸트 모두 야간 이동으로 이동하고, 각 도시에서 1박을 하는 것. 힘들게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여행 후 바로 학원에 수업 들으러 나가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짰어요.


"한국인들 거의 다 부하라 하루만 보고 가는데요?"

"부하라 커."


둘 다 한국인들이 부하라 하루 보고 떠난다고 하자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이었어요.


"너는 부하라에 얼마나 있을 거니?"

"저는 이틀이요. 모레 밤 기차로 히바 갈 거에요."

"히바? 거기까지 기차가 있어?"

"아! 우르겐치요!"


히바에는 기차역이 없어요. 히바를 가기 위해서는 우르겐치에서 내려서 따로 더 들어가야 해요. 공항도, 기차역도 전부 우르겐치에 있지 히바에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르겐치로 간다고 다시 말했어요. 그런데도 둘은 기차가 있냐고 되물어보았어요.


"수요일에 밤기차로 딱 한 대 있더라구요."


저는 이분들이, 그리고 다른 우즈벡인들 모두 왜 기차로 부하라에서 히바까지 간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지 잘 몰랐어요. 부하라에서 우르겐치까지 가는 철도 노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소련 시절에는 빨리 갈 수 있는 기차 노선이 있었어요. 그런데 소련이 해체되고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 다른 나라가 되면서 이 노선의 대부분이 투르크메니스탄 영토에 들어가며 노선이 단절되어 버린 것이 문제. 제가 타기로 한 부하라에서 우르겐치 가는 기차 노선은 일주일 중 수요일에만 야간 열차로 있었고, 바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북쪽으로 나보이까지 올라간 후 거기에서 다시 우르겐치로 내려가는 노선이었어요. 여행을 끝내고도 한참동안 단지 '수요일에 딱 한 대, 야간 열차로만 있어서 사람들이 부하라에서 우르겐치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몰랐던 것이 아니었어요. 제가 타고 갈 부하라-우르겐치 기차 노선은 올해 - 즉 2012년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관광 산업 육성을 위해 시범 운영을 시작한 노선. 3월 14일부터 5월말까지, 그리고 8월 15일부터 10월 말까지만 운행하는 특별 노선이었어요. 이러니 다른 사람들이 알 리가 없었죠. 저는 말 그대로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 이게 우즈베키스탄 여행 가격을 혁명적으로 줄여버린 일등 공신...아니 순전히 이것 하나로 우즈베키스탄 여행 가격을 말도 안 되게 줄여버린 것이었는데 이게 그냥 차일피일 우즈베키스탄 여행 미루다 운 좋게 걸렸던 것이었어요. 이게 왜 혁명적이냐 하면 타슈켄트에서 히바까지 비행기표가 편도 92달러였는데, 부하라-히바 구간을 기차이동을 하며 동선을 짰더니 90달러에 기차표 전부에 3일 숙박비까지 거의 다 해결했거든요. 우즈베키스탄 여행에서 교통비가 차지하는 부문이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가히 '혁명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해요.


"부하라에 타지크인들 많나요?"


우즈베키스탄에는 타지크인들이 매우 많이 살아요. 그리고 이들 타지크인들이 주로 몰려 사는 곳이 바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원래 타지크인들의 주요 도시였는데, 스탈린이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만들 때 민족 구성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인구수로만 만드는 바람에 원래 타지크인들의 도시였던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우즈베키스탄 영토가 되었어요. 이것 때문에 타지키스탄보다 그 주변 국가에 살고 있는 타지크인들이 더 많고, 정작 타지키스탄에는 우즈베크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특히 후잔드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우즈베크어로 대화하며 다니는 데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는 정도.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크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는 사마르칸트, 부하라, 그리고 수르혼다리오 주를 꼽아요. 수르혼다리오는 우즈베키스탄 최남단으로 아프가니스탄 및 타지키스탄 접경지대로, 여기 사람들에게 '수르혼다리오에 타지크인 많나요?'라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넘쳐난다고 대답해요. 거의 절반은 타지크인이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사마르칸트, 부하라 역시 타지크인 많이 살기로는 만만찮은 도시.


"타지크인 많아. 주로 시내에 몰려 살아."


두 분은 부하라에 타지크인들이 매우 많다고 알려주셨어요.


"타지크인들 타지크어 쓰나요?"

"응. 자기들끼리는 타지크어로 이야기해. 우즈벡인이랑 이야기할 때에는 우즈벡어로 이야기하고."

"두 분 다 타지크어 아세요?"


두 분 모두 대충 조금 안다고 하셨어요. 들으면 대충 이해는 하지만 타지크어로 말을 할 줄은 모른다고 대답하셨어요. 그리고 타지크인들이 쓰는 우즈벡어는 우즈벡인들이 쓰는 우즈벡어와 조금 다르다고 알려주셨어요.


"타지크인들이 쓰는 우즈벡어는 어떤 차이가 있어요?"

"가서 들어봐."


둘이 웃으며 제게 직접 가서 들어보라고 하셨어요.


"투르크멘인들은 많나요?"


부하라도 '우즈베키스탄의 투르크메니스탄 접경 도시'라고 할 수도 있는 도시에요. 부하라에서 파라브 국경까지 멀기는 하지만, 파라브 국경까지 택시로 가는 데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거든요. 게다가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받기 위해 주 타슈켄트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앞에서 시간 때울 때 꽤 많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투르크멘인들과 만나기도 했어요. 그래서 혹시 부하라 가면 투르크멘인들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투르크멘인들은 많지 않아. 주로 국경쪽에 몰려 살아."


부하라에서 투르크멘어도 들어볼까 기대했는데 투르크멘인들은 별로 없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기차역에서 부하라 시내까지 버스로 갈 수 있냐고 물어보자 아저씨께서는 내일 자기가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잡담을 조금 더 하다가 2층으로 기어올라갔어요. 저도 나름 신경을 많이 써서 잠자리를 만들었는데 옆의 군인이 만들어놓은 잠자리에 비하면 제가 만든 잠자리는 정말 천조각 대충 펼쳐놓은 수준. 군대 있었을 때에도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편이 아니었고, 지금은 말할 것도 없죠. 그래도 옆에서 잠자리를 하도 잘 만들어 놓아서 저도 쪽팔리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놓고 이불이라고 준 얇고 하얀 천을 뒤집어 덮었어요. 아직 이 천조각을 뒤집어쓸 정도로 춥지는 않았지만 새벽에 쌀쌀해질 것이었거든요.


"부하라! 일어나!"


'벌써 부하라 도착할 때가 다 되었나?'


차장이 각 객실에 들어가 승객들을 모두 깨우고 있었어요. 간밤에 잠을 만족스럽게 잤어요. 새벽에 꽤 쌀쌀해질 줄 알고 양말을 신고 잤더니 오히려 밤새 덥게 느껴졌다는 것만 제외하면 편한 밤이었어요.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부하라 도착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차장은 승객들을 깨우고 침대보, 베갯보, 이불을 걷어가고 있었어요.





복도로 나가 창밖을 보니 해가 뜨고 있었어요. 참고로 저 정도까지 어두운 하늘은 아니었어요. 해를 찍다 보니 저렇게 하늘이 완전 시커멓게 나온 것.


'지평선의 일출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지평선. 그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내가 지금 여행중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실감이 났어요. 수평선이야 질리도록 많이 보았었고, 지평선도 외국 여행 다니며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수평선이든 지평선이든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 것은 아마 제 기억에 한 번인가 있었고,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처음 보는 지평선의 일출이라 정말 신기했어요.


대충 화장실에서 씻고 나왔어요. 변기가 너무 더러워서 볼 일은 보지 못했어요. 대충 씻고 방에 돌아와 기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어요.


"우리집 지나갔다."


아저씨께서 자기가 사는 동네가 방금 지나갔다고 알려주셨어요. 아저씨께서 사시는 곳은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어요. 부하라 역 들어가기 조금 전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이 아저씨께서 사시는 마을이라고 하셨어요.


6시 45분. 기차가 드디어 부하라 역에 도착했어요.


"너 어디로 가니?"

"부하라 시내요. 라비 하우스로 가려구요."


아저씨와 군인과 함께 기차에서 나와 역을 빠져나왔어요. 역시나 아침부터 택시 기사들이 기차역 출구에 진을 치고 있었어요. 저를 보자 택시로 시내에 가자고 달려들었지만 현지인들과 같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저를 잡지는 못했어요. 그렇게 기차역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군인이 먼저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 다른 방향으로 갔어요. 저는 아저씨와 함께 기차역 출구에서 앞으로 쭉 걸어갔어요.


기차역 출구에서 아주 조금 쭉 걸어가자 마슈르트카 정거장이 있었어요. 여기에서는 마슈르트카 기사들이 와서 서로 자기 마슈르트카에 타라고 했어요. 아저씨께서는 마슈르트카 기사들과 제가 탈 마슈르트카를 찾기 위해 대화했어요. 그 동안 저는 다른 마슈르트카 기사들과 제가 갈 방향을 찾기 위해 대화했어요. 제가 타고 가야 할 마슈르트카는 68번. 부하라역에서 시내까지는 꽤 멀어요. 그래서 역에서 부하라 구시가지까지 걸어가지는 못하고 보통 입구에서 택시를 이용해 구시가지까지 가는데, 굳이 택시를 탈 필요가 없었어요. 기차역에서 나와서 조금만 앞으로 걸어가면 마슈르트카 정거장이 있고, 그 마슈르트카 정거장에서 68번을 타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하라'에 갈 수 있었어요.


마슈르트카에 올라탔어요. 처음에는 아는 길이 나왔어요. 파라브 국경 갈 때 가던 길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비슷했으나 차는 파라브 국경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어요. 마슈르트카는 부하라 시가지 (신시가지)를 지나 구시가지 입구에 멈추어 세웠어요.


"종점이에요?"

"종점."


마슈르트카에서 내려 어디로 가야 하나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그렇게 크게 고민할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마슈르트카에서 내려서 마슈르트카가 온 길을 등지고 서니 그쪽에는 딱 구시가지처럼 생긴 곳이 있었거든요.


"여기는 뭐 시작부터 다 유적이야?"


제대로 부하라 구시가지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온통 유적임을 알려주는 회색 석판이 달린 건물 투성이였어요. 정말 발에 채이는 것이 유적일 정도로 입구부터 많은 유적들이 있었어요. 그 유적 중 대부분은 마드라사 (이슬람 신학교)였고, 어떤 것은 문이 잠겨 있었고, 어떤 것은 호텔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어요.


숙소도 입구부터 많이 보였어요. 굳이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와도 숙소 없어서 고생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단지 비싸서 문제가 될 뿐, 코칸드, 파르고나처럼 아예 숙소 자체가 몇 개 없어서 숙소 찾느라 헤맬 필요까지는 전혀 없어 보였어요.


제가 여기에서 1박하고 싶은 곳은 딱 두 곳이었어요. 하나는 Sarrafon B&B, 다른 하나는 Mubinjon B&B. 이 둘이 가격이 가장 싼 숙소였어요.


숙소를 찾기 위해 라비 하우즈 쪽으로 걷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급히 화장실을 가야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신호가 계속 오고 있었어요.


'기차에서 그냥 앉아서 볼 일 보고 올 걸 그랬나?'


주변에 화장실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 너무 이른 아침이라 문은 열려 있지 않았어요. 아침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올까 했지만 안 간 이유는 너무 변기가 더러웠기 때문. 너무 오물이 많이 묻어 있어서 앉아서 볼 일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기차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어요. 기차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은 지금 이 통증이 그나마 참을 만 하다는 증거.


Sarrafon B&B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부하라 구시가지에는 '라비 하우즈' Lyabi-Hauz 라고 커다란 연못이 있는 곳이 있어요. 68번 마슈르트카 종점에서 멀지도 않고, 커다란 연못이 여기 밖에 없기 때문에 부하라 구시가지에서 커다란 연못이 나오면 라비 하우즈에 온 것이에요. 이 라비 하우즈 주변에 골목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한 골목 입구 근처에 Sarrafon B&B가 있어요.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방 있나요?"

"있어요. 그런데 화장실과 샤워실을 저기 입구에 있는 곳에서 써야 해요."

"1박에 얼마에요?"

"10달러."


화장실과 샤워실이 입구에 있는 것을 써야 하고 방은 숙소 안 2층에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다른 숙소들을 둘러보았어요.


'그냥 사라폰에서 잘까?'


큰 길가에 있는 숙소들은 가격이 센 곳이었고, 골목에 있는 숙소들도 10달러 수준의 방은 없었어요. 대체로 20달러였어요.


'Mubinjon Hotel까지만 가고 거기 아니면 그냥 사라폰 가야겠다.'



골목길을 헤매는데 별로 의미 없는 짓 같았어요. 여기도 론니 플래닛 지도가 잘 맞는 곳은 아니었어요. 저렴한 숙소는 큰 길가가 아니라 뒷골목에 있었는데, 여기는 길이 조그마한 지도에 길을 다 표시할 만큼 적지 않았거든요. 더 웃긴 것은 이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동안에 본 유적도 몇 개 있다는 것. 이 뒷골목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일일이 사진을 찍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아직 안에 들어가본 것이 하나도 없어서 나중에 돌면서 사진을 다시 찍기로 했어요.


Mubinjon Hotel을 찾아 가는데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지도를 보며 길 하나를 계속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Mubinjon Hotel'이라고 적힌 간판을 찾았는데, 이게 오직 집으로 들어가는 막힌 길 입구 안쪽에 작게 달려 있었어요. 게다가 이 막힌 길로 들어갔더니 다른 집 대문 두 개가 있었어요. 어느 대문이 Mubinjon Hotel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어요. 한 마디로 50% 확률의 찍기.


먼저 왼쪽 집에 들어가 보았어요. 꽝이었어요. 그냥 일반 가정집. 그래서 조용히 나와 오른쪽 집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무빈존 호텔인가요?"

"다."


할아버지가 러시아어로 대답했어요. 얼굴을 보니 러시아인이었어요.


"우즈벡어 아세요?"

"아들이 알아요."


주인 가족이 러시아인이라는 점에서 일단 -50점 먹고 들어갔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우즈벡어도 제대로 모르는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거든요. 가격이 정말 눈에 띄게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우즈벡어를 잘 아는 숙소에서 자고 싶었어요. 말이 잘 안 통하면 이래저래 많이 불편하거든요. 가장 쉬운 정보 획득은 숙소 주인에게 물어봐서 정보를 얻는 것이거든요. 그 지역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모든 것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행자를 위한 여행 정보는 여행업 종사자들이 잘 알아요. 이것은 여행을 많이 다녀서 깨달은 게 아니라 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출신이라 그냥 아는 것.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인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인심이 야박한 편이에요.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깨우러 가셨어요. 아들은 컴컴한 방에서 잠자다 일어나 어설픈 우즈벡어로 이야기했어요. 방을 보니 침대도 없고 전등이 없었어요. 전등이 있다고는 하는데 불을 켜보니 불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게다가 1박에 6달러. 고작 4천원 차이.


"샤워는 어디에서 해요?"

"샤워는 여기서 못해요. 저 큰 길에 아주 좋은 함맘이 있어요. 거기에서 하면 되요."


나 여기서 안 자.


여기에서 잠을 자야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샤워시설은 없어서 함맘 가서 샤워를 해야 하고,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데다 시설도 안 좋았어요. 게다가 찾아오는 길도 안 좋았어요. 관광지가 모여 있는 큰 길가에서 안쪽 길로 들어가서 헤매야하는 위치였어요. 게다가 가격은 사라폰에 비해 고작 4달러 더 저렴했어요. 그래서 그냥 인사만 하고 다시 Sarrafon B&B로 돌아갔어요. 더 생각하고 말고가 없었어요. 가격 대 성능을 생각하면 Sarrafon B&B가 최고의 선택. 설령 러시아어만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안 되는 것이, 여기 사람들이 러시아어는 거의 다 할 줄 알아요. 단지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잠을 잘 이유도 없다는 것이죠.



아침 8시. 다시 Sarrafon B&B로 돌아왔어요. Sarrafon B&B에 가자마자 여기에서 1박 하겠다고 했어요. 달러로 내는 것이 이득인지 숨으로 내는 것이 이득인지 알아보기 위해 숨으로는 가격이 얼마냐고 여쭈어 보았어요. 우즈베키스탄 숨을 1달러에 2700숨으로 계산해서 숨으로는 27000숨. 달러로 내는 것이 이득이었어요. 방에 짐을 풀고 아래로 다시 내려가 달러로 10달러 드리고 저는 일반 여행자가 아니라 타슈켄트 거주자이므로 특별히 거주지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여권을 드렸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아들에게 제 여권을 건네주고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어요. 저는 제가 앉을 자리를 알려드리고 후다닥 화장실로 갔어요.


'휴...살겠다.'


화장실에서 자리로 돌아오자 아주머니께서 아침 식사를 주셨어요. 아침 식사는 멜론, 포도, 논, 계란 후라이 1개, 그리고 우유를 넣고 끓인 죽, 차 한 주전자였어요. 적당히 차 한 잔 주실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주셨어요. 아침을 먹고 나서 여권을 받는데 아주머니께서 제게 다음날 아침을 언제 먹을 것이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아침 8시 반에서 9시 정도에 먹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내일 아침 또 줘?'


다음날 아침은 숙소에서 준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하지만 아침을 두 번 받아먹는다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아침은 한 번만 주거든요.


'여기서 머물기를 정말 잘 했다!'


아침을 다 먹고 방으로 돌아갔어요.



이것이 제가 머물렀던 도미토리 방. 입구에 있는 화장살과 샤워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 외에는 10달러 치고는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샤워하고 슬슬 돌아볼까 하는 순간 배가 아팠어요. 재빨리 샤워 도구를 챙기고 화장실로 빨리 걸어갔어요. 또 설사.


'어제 키마 카봅 먹은 것이 잘못되었나?'


우즈베키스탄 와서 이렇게 설사를 아침에 두 번이나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이런 설사는 정말 여기 와서 처음 겪는 일. 어제 설사하게 만들 원인이 무엇이 있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카봅이었어요. 카봅 중에서도 키마 카봅이 잘못되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나 심증만 있고 확증은 없었어요. 오히려 자즈 카봅이 문제였을 수도 있었거든요. 심정적으로 키마 카봅 때문이라는 쪽이 80, 자즈 카봅 때문이라는 쪽이 20이었어요. 전날 먹었을 때 자즈 카봅 고기 덩어리 속이 붉은 빛이 돌았어요. 스테이크로 따지자면 미디엄으로 구워진 듯 했는데 이게 오히려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설익은 듯한 카봅을 먹었다고 해서 설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속이 편하지 않고 설사를 아침에 두 번이나 했더니 힘이 쭉 빠졌어요. 일단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갔어요.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부하라를 금방 다 볼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일단 일정이 이틀이므로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게다가 아랫배가 계속 아팠어요. 그래서 잠깐 눈을 붙였어요.


11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어요. 역시나 속이 안 좋았어요. 그래도 다시 화장실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슬슬 돌아다니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방에서 나왔어요. 아침에 밖에 나와 있던 테이블은 모두 치워져 있었어요. 돌아다니기에는 너무나 좋은 날씨. 살짝 더운 듯 하면서 덥지 않은 온도에 하늘에는 약간의 구름이 끼어 있었어요.


'여기에서라면 타지크어로 된 책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 타지키스탄에 갔을 때에는 말이 잘 안 통해서 책을 많이 구해오지 못했어요. 그때는 우즈벡어도 잘 못하고, 러시아어는 아예 한 마디도 모르고, 타지크어도 여행 전 벼락치기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벼락치기도 하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두샨베에서는 우즈벡어가 잘 통하지도 않았구요. 하지만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게다가 이제 우즈벡어를 공부한지 어느덧 7개월이 지났어요. 여행 다닌 시간을 빼도 반년은 되었어요. 서점 가서 책을 찾는 정도라면 자신있었어요.


1층으로 내려가서 주인 아주머니께 서점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려는데 주인 가족분들의 대화를 얼핏 듣게 되었어요.


'타지크어잖아!'


타지크어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즈벡어와 타지크어를 구분할 수는 있었어요.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께 타지크인이시냐고 여쭈어 보았어요.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맞다고 하셨어요.


"부하라에서 가장 큰 서점은 어디 있나요?"

"그건 크리티 바자르에 있어요."

"거기는 어떻게 가요?"

"나가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마슈르트카 있어요. 그거 타고 가요."


그래서 점심으로 부하라 오쉬를 먹은 후 일단 서점에 가서 타지크어 책이 있나 둘러본 후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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