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15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라비 하우즈

좀좀이 2012. 10. 3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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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행의 시작은 라비 하우즈. 라비 하우즈에서 마슈르트카 탔던 곳까지 가서 마슈르트카 타고 시장에 갈 계획이었어요.




제가 가야할 곳은 사진 속 길과 정반대 방향. 아직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조용히 돌아다니기 괜찮아 보였어요.



"이거 너무 예쁜데!"


드디어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에 왔다는 사실이 느껴졌어요. 우즈베키스탄 동부 지역이나 타슈켄트에서 이렇게 관광 기념품을 많이 파는 곳이 모여 있는 곳은 보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본 곳 중 그나마 관광 기념품을 파는 곳이 많이 몰려 있던 곳은 타슈켄트 브로드웨이 거리. 그런데 여기는 정말로 예쁜 기념품이 너무 많았어요. 그 중에서 저의 눈을 확 잡아당기는 것은 바로 체스.


"이거 얼마에요?"

"60달러."


음...너무 비싼데? 정말 사고 싶었어요. 체스 말이 너무 예뻤거든요. 하지만 가격도 비싸고 결정적으로 저는 체스를 둘 줄 몰랐어요. 말을 움직이는 방법이야 알지만 제대로 둔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게다가 체스를 둘 때마다 재미없어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 단순히 장식용으로 사기에는 너무 비쌌어요. 게다가 제가 예쁘다고 느낀 것은 체스 말이었지, 체스 판은 아니었어요.


"체스 말만 살 수는 있나요?"

"안 돼."


당연히 단칼에 거절당했어요. 이 체스 말은 전부 나무를 깎아 손으로 칠한 말이라고 했어요. 체스 말을 가지고는 싶지만 말만 팔지는 않아서 결국은 포기했어요.


'나 지금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거 맞아?'


거리에서 들리는 말은 온통 타지크어였어요. 우즈벡어는 거의 들을 수가 없었어요. 상인들끼리, 또는 사람들끼리 거의 모두 자기들끼리는 타지크어로 대화하고 있었어요. 제가 물어보거나 말을 걸면 유창한 우즈벡어로 대답해주기는 해서 불편함은 없었지만 매우 색다른 분위기였어요. 타지키스탄 후잔드에 갔을 때와 정반대의 느낌이었어요. 타지키스탄 후잔드에 갔을 때에는 국어가 타지크어인 타지키스탄에서 우즈벡어가 너무 많이 들려서 신기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우즈베크어가 국어인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크어가 너무 많이 들려서 신기했어요.


조금 걸어가자 꼭두각시 박물관이 나타났어요.



지금 들어갈까 나중에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입장료가 공짜라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내부에는 꼭두각시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한쪽은 전시실이었고, 한쪽은 작업실이었어요. 사진에서 아래쪽 연극 무대처럼 생긴 곳에 있는 인형들은 우즈베키스탄 전통 이야기인 Zumrad va Qimmat 인형들이에요. '줌라드와 큼마트'는 '콩쥐 팥쥐' 정도 되는 이야기. 줌라드가 착한 소녀이고 큼마트가 나쁜 소녀이며, 줌라드는 전처 소생의 딸, 큼마트는 새어머니의 딸이라는 설정까지는 똑같아요. 콩쥐 팥쥐와의 차이라면 줌라드와 큼마트에서 줌라드가 결혼하는 이야기는 없어요.


천천히 구경하려는데 독일인 단체 관광객들이 우루루 몰려들어왔어요. 인형들 전시된 것은 적당히 보았기 때문에 독일인 단체 관광객들이 없는 작업실 쪽으로 갔어요.




"음...이렇게 만드는구나."


모두 독일인 단체 관광객 쪽으로 가서 작업실 쪽은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주 편하게 사진을 찍고 나올 수 있었어요.


꼭두각시 박물관에서 나오자 라비 하우즈로 갔어요. 꼭두각시 박물관 앞에 있는 연못과 그 주변이 바로 라비 하우즈에요. 타지크어로 ҳавз (havz, 하브즈)는 연못 이라는 뜻이고 лаб (lab, 라브)는 '~가 (주변)'라는 뜻. 그러므로 '라비 하브즈'는 우리 말로는 연못 주변, 타지크어를 영어로 그대로 옮기면 'coast of pool'. 론니 플래닛 중앙아시아편에는 번역도, 원래 이름의 철자도 잘못되어 있어요. 론니 플래닛에는 'Lyabi Hauz'라고 되어 있고, 번역은 'around the pool'이라고 되어 있어요. 저도 이 여행기를 쓰며 타지키스탄에서 사 온 타지크어-영어 사전을 뒤적여서 알게 되었어요.



이것이 바로 그 연못이에요. 이 연못 주변에 마드라사가 3개 있어요. 하나 하나 들어가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연못 앞에서 반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했어요.



이 마드라사는 1620년에 지어진 Nodir Devonbegi Xonaqosi. 이곳은 무슬림 가운데 수피즘 신도들이 기도드리고 공부하던 곳이에요.



내부는 박물관이었어요. 크게 볼 것은 없었어요. 그냥 밖에서 보는 것이 예쁜 유적이었어요.


그 다음 간 곳은 Ko'kaldosh Madrasasi. 1568~69년에 지어진 유적이었어요.



매우 아름다운 입구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입장료를 내야 하는지 찾아보고 있는데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안으로 들어가자 기념품 가게 종업원들은 실크 제품, 수공예 제품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래서 대충 몇 번 보고 안 사겠다고 하고서 안을 둘러보았어요.




옛날에는 파란 타일로 예쁘게 장식이 되어 있었었어요. 하지만 여기도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되다보니 파란 타일이 많이 떨어져 나가 있었어요. 그래도 우즈베키스탄이 독립 후 이 정도까지 보수를 하고 복원을 해 놓고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상태가 좋은 것.


그리고 이 마드라사는 밤에 인형극을 상연하는 곳이기도 했어요.



"밤에 심심하면 인형극이나 보러 와야겠다."


마드라사에서 나와 나머지 한 마드라사에 들어가려는데 힘들고 속도 안 좋았어요. 게다가 나머지 한 마드라사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 몰려 들어갔어요. 단체 관광객과 엉키면 제대로 구경하고 사진찍고 감상하기는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그 무리들과 엉키고 싶지도 않았고, 몸상태도 좋지 않아서 의자에 앉았어요.


관광객 두 팀이 들어가서 마드라사 앞 나스렛딘 호자 동상에까지 관광객들이 바글대었어요. 저는 그냥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며 휴식을 취했어요.



연못과 그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오시더니 제게 커다란 부하라 논을 주셨어요.


"필요 없어요."

"아니야, 이거 정말 맛있는 논이야. 3천숨."

"아니요, 필요 없어요."

"이거 정말 맛있는 논이라니까. 집에서 바로 구운 거야. 2천숨에 줄게."


어떻게든 강제로 제게 논을 떠넘기고 돈을 받으려는 할머니. 그러나 끝까지 버텨서 논을 강매당하지는 않았어요. 할머니는 어떻게든 제게 강매를 해보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완강히 안 사겠다고 버티자 논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셨어요.


잠깐 아주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독일, 프랑스 단체 관광객들은 썰물 같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속도 어느 정도 괜찮아졌고, 체력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단체 관광객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조용히 구경하기 좋아졌어요.



이것이 바로 '나스렛딘 호자'의 동상. 이 아저씨는 모든 튀르크 민족들과 페르시아 민족들이 서로 자기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인데, 정말 실존했는지 가상의 인물인지조차 불분명해요. 이 나스렛딘 호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봉이 김선달' 같은 분이에요. 재미있고 짤막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간단히 한 이야기만 여기에서 소개할게요.


어느 날 밤, 나스렛딘 호자가 아내와 자는데 아기가 앵앵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애 좀 달래줘요."

"왜?"

"저 애의 반쪽은 당신 거잖아요. 그러니 애 좀 달래줘요."

아내의 말을 들은 나스렛딘 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울고 있는 것은 당신의 반쪽이야. 내 반쪽은 지금 자고 있어."


나스렛딘 호자가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어느 지역에서나 똑같아요. 그러나 이 당나귀를 어떻게 타고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있어요. 첫 번째는 당연히 제대로 타고 다녔다는 설. 두 번째는 나스렛딘 호자가 주로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다녔다는 설. 이 동상은 당나귀를 제대로 타고 있었어요.



나스렛딘 호자 동상 뒤에 있는 마드라사는 1622년에 지어진 Nodir Devon Begi Madrasasi. 이 마드라사도 태양을 사람 얼굴로 그렸어요.



내부는 식당이었어요. 안쪽은 식당이었고, 건물은 기념품점이었어요. 기념품점을 대충 둘러보는데 직접 그림을 그려서 그려 파시는 부부가 계셨어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보아온 그림들 가운데 이 가게 그림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들이 많이 보였거든요. 그래서 한 장 사 갈까 하고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제 마음에 드는 그림들은 한결같이 가격이 비쌌어요. 특히 커피로 그린 그림, 갈대를 붙여 만든 그림은 더욱 비쌌구요. 그래서 적당한 크기의 그림을 하나 살까 망설이는데 아저씨께서 옆으로 오시더니 얼마면 좋겠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러나 살지 말지 고민이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어요.


"얼마면 되겠어? 내가 깎아줄게."


아저씨께서는 처음 가격의 90%까지 깎아주셨어요. 하지만 가격 때문에 고민하는 것보다 이것을 들고 여행을 다니면 그림이 멀쩡할까가 의문이었어요. 가방에 잘 넣고 다니면 되기야 하겠지만 혹시라도 구겨지면 정말로 많이 속상해질 테니까요.


"너는 우즈벡어 할 줄 아니까 내가 크게 깎아줄게!"


제가 계속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아저씨께서는 가격이 비싸서 머뭇거리는 것으로 아신 듯 했어요. 아저씨는 갑자기 반값을 부르셨어요.


'반값이면 그냥 괜찮은 가격인데?'


솔직히 흥정해서 절반까지 후려치는 건 쉽지 않은 일. 대체 얼마까지 가격을 높게 불렀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자신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이었어요. 자기가 그린 그림이니 가격도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맞기는 했어요. 원래 가격의 절반이면 그다지 나쁜 가격도 아니고, 나중에 한국 가서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저씨가 처음 부른 가격의 절반 가격에 구입했어요. 아저씨는 선물이라며 책갈피 크기의 작은 그림 하나를 주셨어요. 그림을 보니 제가 돈 주고 산 그림은 제대로 신경써서 그린 그림이었고, 선물로 받은 작은 그림은 조금 대충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 티가 났어요. 그래도 작은 그림도 예뻤기 때문에 만족스러웠어요.


"혹시 여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물론!"



아저씨께서는 직접 자세를 잡고 모델이 되어 주셨어요.


'그림이나 숙소에 놓고 나와야지.'


그림을 한 손에 들고 다니면 사진 찍기 불편했어요. 어차피 숙소에서 멀리 온 것도 아니고, 화장실도 한 번 더 들릴 겸 해서 일단 숙소로 다시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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