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08 우즈베키스탄 안디잔 자혼 바자르

좀좀이 2012. 10. 2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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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잔에는 유명한 시장이 3개 있어요. 이 시장 3개는 양기 보조르, 에스키 보조르, 자혼 보조르에요. 양기 보조르는 '새로운 시장', 에스키 보조르는 '오래된 시장', 자혼 보조르는 '세계 시장'이에요. 자혼 보조르는 페르가나 계곡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시장. 안디잔에 왔다면 한 번 쯤 구경갈 만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거대한 규모의 시장이라면 당연히 볼 것도 많을 것이고, 먹을 것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시장 구경은 사람들이 북적일 때 해야 제 맛. 사람 없는 시장을 구경하는 것은 무언가 다른 의미를 찾고, 다른 감상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이지, 시장이 어떻게 생겼나 보러 가는 것은 아니에요. 게다가 자혼 보조르는 안디잔 교외에 있는 시장이라 시내에서 어영부영하다가는 안디잔 구경을 망치거나 시장 구경을 망칠 수 있었어요. 지금 빨리 움직이면 둘 다 무리없이 볼 수 있었지만, 계속 우물쭈물하며 에스키 보조르 근처에서 허송세월하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시각이 될 수 있었어요. 더욱이 오늘은 일요일. 시장에 사람이 가장 많은 날. 사진 찍기는 어려울 지언정 시장을 구경하기에는 최고의 날이었어요.


에스키 보조르에서 자혼 보조르까지 가는 다마스를 탔어요.


"목화밭이다!"


자혼 보조르 입구 맞은편에 목화밭이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 하면 목화에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목화 수확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아주 중요한 일. 목화 수확 시기가 되면 학생들을 총동원해서 목화 수확에 투입해요. 예전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전부 목화 수확에 투입했다고 했어요. 소련 시절만 해도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 수확철이 되면 국가 전체가 총동원되다시피 했다고 해요.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목화 수확에 투입되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리고 지금은 목화 수확철. 안디잔까지 오며 목화밭은 많이 보았어요. 하지만 직접 가서 목화를 만져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목화를 우즈베키스탄 와서 처음 보았기 때문에 목화를 직접 만져보고 싶었어요. 여럿이 타고 가는 택시에서 목화밭에서 잠깐 놀게 해달라고 택시를 세우기는 그래서 목화밭에 어떻게 가 볼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차에 자혼 보조르 근처에 있는 목화밭을 발견했으니 이것은 정말 일석이조. 자혼 보조르를 구경하고 나와서 목화밭에 가 보면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어요.




이것이 자혼 보조르 입구쪽. 목화밭이야 시장 문 닫는다고 거기 있는 목화들이 다 퇴근하는 것도 아니고 낮이든 밤이든 그냥 거기 있는 것이므로 일단 밥 먹고 시장을 대충 둘러본 후 목화밭에 가기로 했어요.



이 문을 통과해 먼저 식당으로 갔어요. 아직 밥을 못 먹었거든요. 그리고 자혼 보조르에 온 목적 중 에스키 보조르에서 오쉬를 팔지 않아 시장에서 파는 오쉬를 먹으러 온 목적도 있었어요. 현재 가장 급한 것은 오쉬 시식. 이게 만들어놓은 솥이 다 끝나면 더 만들어 팔지 않거든요.


"오쉬 있어요?"


오쉬가 다 떨어졌다고 했어요. 직원은 근처 다른 식당에 가면 혹시 남아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직원이 알려준 식당으로 갔어요.


"오쉬 끝났어."


오쉬가 담긴 두 그릇. 그리고 텅 빈 솥. 간발의 차이였어요. 조금만 더 일찍 여기로 왔다면 먹었을 수도 있었어요. 정말 이것은 간발의 차이. 오쉬가 담긴 두 그릇은 다른 손님에게 갔고, 저는 다른 음식을 골라야 했어요. 그래서 대충 돌마를 시켜 먹었어요. 이것은 흔히 포도잎에 싸서 만든 음식의 이름인데 여기에서 돌마는 그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커다란 고기 완자와 계란, 야채들 넣고 국물 부어준 음식이었어요.


식당은 이제 슬슬 문을 닫고 있었어요. 특징이라면 길목 양쪽에 여러 식당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한 가게는 밥과 면, 스프 종류를, 어떤 가게는 카봅만을, 어떤 가게는 솜사만을 팔고 있었어요. 이게 그냥 식당이어도 붐빌 자리인데 길목에 위치한 곳이라 그냥 지나가는 행인들과 식당에서 음식 받아가는 사람들, 종업원들이 다 섞여서 엄청 복잡한 곳이었어요.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왔어요. 이제 시장을 구경할 차례.


"응? 이거 뭐야?"


이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라고 해서 기대를 하고 왔어요. 그러나 그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바람 새는 풍선처럼 바로 푹 꺼졌어요.


"이거 부윰 보조르 아니야?"


우즈베키스탄에는 두 종류 시장이 있어요. 무엇을 볼 지에 따라 시장을 잘 골라가야 해요. 제가 보고 싶었던 곳은 잡화를 파는 부윰 보조르가 아니라 농산물을 파는 데흐콘 보조르. 그런데 이곳은 잡화를 파는 부윰 보조르였어요. 아무리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해도 제가 큰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이 안 보였어요. 부윰 보조르라면 타슈켄트에 있는 이포드롬 보조르가 제대로 큰 부윰 보조르이거든요. 이포드롬 보조르는 다 둘러보는 데에만 한나절 걸리는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 물건들 가운데 정말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나마 눈길을 끌었을 텐데, 여기는 크게 눈길을 끌 게 없었어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여기에서 타슈켄트는 그렇게 멀지 않거든요. 말은 '우즈베키스탄 동부'라고 하지만 타슈켄트 자체가 워낙 동쪽에 치우쳐진 곳에 있다 보니 큰 특징이랄 것 까지는 없었어요.



시장을 대충 둘러보고 바로 빠져나왔어요. 인상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정말로 없었거든요. 시장에서 빠져 나오는 길에 바나나킥처럼 생긴 과자를 한 봉지 사서 콜라와 먹었어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답게 사람은 정말로 많았어요. 규모도 꽤 큰 편이었구요. 여기에 데흐콘 보조르도 같이 있었다면 정말 재미있었을 거에요. 농산물을 파는 상인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제대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바나나킥처럼 생긴 과자를 다 먹고 목화밭으로 갔어요.


"어서 와!"


목화밭에 다가가는데 여자 아이들과 어른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어요. 제가 목화밭으로 오는 것을 보자 제게 오라고 불렀어요.


"안녕하세요."

"안녕! 어디에서 왔어?"

"한국이요."


어른들은 말을 걸고 아이들은 저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우즈벡어로 이야기하는 동양인이었거든요.


"우즈벡어 어디에서 배웠어?"

"타슈켄트에서 배우고 있어요. 지금 방학 얻어서 여행중이에요."

"배운지 얼마나 되었는데?"

"7개월이요."

"우즈벡어 정말 잘 하는구나!"

"감사합니다."


어른들은 학교 선생님이었고, 아이들은 학생이었어요. 오늘은 목화 수확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어요.


"저 사람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야."

"왜요?"

"저 사람이 얼마나 땄는지 적거든."


목화밭 한 쪽 구석에 앉아 있는 나이 드신 아저씨를 가리키며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얼핏 듣기로 목화 수확에 동원되면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 오는 게 아니라 수확량이 할당되어 있다고 했어요. 그 할당량을 반드시 채워야 하는데, 이 선생님께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아저씨가 바로 얼마나 수확했는지 측정하고 기록하는 분이셨어요.


"수박 먹어!"


선생님과 아이들은 휴식 시간이라 간식과 새참을 먹는 중이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저와 아이들에게 앉으라고 하시더니 제게 수박을 권했어요.


"감사합니다."


수박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정말로 아기 주먹만한 하얀 눈이 풀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았어요.


"우즈베키스탄 어때?"

"아주 좋아요."

"한국이랑 우즈베키스탄이랑 어디가 더 좋아?"

"둘 다 너무 좋아요."


아이들도 제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언제 오셨어요?"

"오늘 아침에. 파르고나에서 왔어."

"언제 가세요?"

"내일 아침. 내일 아침에 타슈켄트로 돌아가서 기차 타고 부하라로 갈 거야."

"다른 도시들도 가 보셨어요?"

"아니. 이제 가 보려구. 타슈켄트 돌아간 후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에 갈 거야. 너희들 모두 학생이니?"

"예. 우리들 모두 학생이에요."


수박을 먹고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손을 대충 옷에 비벼 닦은 후 목화를 따 보았어요.


"이거 생각만큼 잘 안 따지는데?"


이게 무조건 잡아 뜯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게다가 무게는 당연히 가벼웠구요. 제가 하나 하나 따는 것을 보더니 직접 어떻게 따는지 시범을 보여주었어요.


화화화확


순식간에 솜사탕만큼 큰 솜뭉치가 되었어요. 하나 따고 집어넣고 다음 거 하나 또 따고 하는 게 아니라 한 뭉치 잽싸게 만들어 앞주머니에 넣고 또 한 뭉치 만들어 앞주머니에 넣고 그랬어요.



이 엄청나게 많은 목화를 전부 손으로 따야 한대요. 이것을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하니 일손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 이게 규모가 큰 목화밭도 아닌데도 이 정도였어요. 사진 가운데 아저씨는 목화를 정말 잘 따셨어요.



목화를 실은 차량이 보였어요. 그 너머로는 해바라기밭.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왕 온 김에 해바라기밭도 보고 가기로 했어요.



해바라기 꽃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어요. 이 나라에서 해바라기씨는 전 국민의 놀이이자 간식거리. 조용하라고 할 때 해바라기씨나 까먹으라고 한다고 할 정도에요. 가격도 저렴하고 심심할 때 까먹으면 시간 보내기 좋아요. 당연히 해바라기씨 기름도 있구요.



목화를 가득 실은 수레 두 대가 이어져 있는 트랙터. 왠지 저 뒤에 지금 밭 속에 있는 수레까지 이어서 가지 않을까 싶었어요.




목화밭이나 해바라기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장면. 우리나라에서 정말 보기 힘든 두 장면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정말로 너무나 이국적이었구요.


목화밭 옆이 제가 가 보고 싶어했던 데흐콘 보조르였어요.



하지만 어느덧 오후 3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이제 슬슬 다시 에스키 바자르 쪽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어요. 이 시각에 데흐콘 보조르까지 구경 갔다 오면 에스키 바자르 쪽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었어요.


'어차피 농산물 파는 것이야 그것이 그것이겠지.'


타슈켄트 기준으로 동부는 과일과 꿀 품질이 매우 뛰어나요. 타슈켄트 기준으로 동부는 과일, 남서부는 멜론과 수박이 유명해요. 시장에 가면 당연히 과일을 사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었어요. 문제는 칼도 없고 과일을 샀다가 남으면 그것도 여행중 골칫덩어리라는 것이었어요. 구입했다가 안 먹어서 버리는 음식을 볼 때마다 정말로 많이 아까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시식만 해 보고 안 사는 법도 있기는 했지만, 정말 매력적인 맛을 가진 과일을 맛보면 안 사기도 어려웠어요. 우즈베키스탄 과일들은 저장 시설이 안 좋아서 문제이지, 원래 과일의 품질은 한국 것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매우 뛰어나거든요. 그 중에서도 진짜 맛있는 놈을 먹으면 바로 이성 마비, 구입 결정이에요. 9월 말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포도가 제철에서 살짝 끝나가는 시기. 그리고 석류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시기에요. 석류는 저장성이 좋다는 이유로 구입을 순간적으로 합리화시킬 수도 있고, 포도는 다니며 주전부리처럼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구입을 순간적으로 합리화시킬 수 있는 무서운 녀석들. 게다가 오늘 저녁은 어차피 카봅을 먹든 굶든 할 것이었으므로 시장에 발을 디디는 순간 무언가 사게 될 확률은 너무 높았어요. 석류라면 또 볼 줄 몰라서 대충 몇 알 먹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포도는 제가 좋아하는 종류가 확실했어요. Oq husayn. 이 '오크 후사인' 종류는 하얀 포도인데, 알이 손가락처럼 매우 길쭉해요. 이 포도는 신 맛이 하나도 없고 엄청나게 달며, 저장성이 매우 뛰어난 포도에요. 당연히 시장에 가면 이 종류를 집중적으로 시식해 볼 것이며, 그러다가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맛을 찾아버리면 그 자리에서 최소 1kg 구매 확정.


데흐콘 보조르를 구경하면 에스키 바자르 및 안디잔 시내를 구경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데다 시장에 가면 분명히 너무나 매력적인 맛을 가진 치명적인 녀석들을 만나 충동구매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마스를 타고 에스키 바자르로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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