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07 우즈베키스탄 안디잔

좀좀이 2012. 10. 2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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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잔 Andijon 은 마지막까지 가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한 곳이었어요. 이 도시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었어요. 텔레비전으로 본 안디잔은 꽤 아름다워 보였구요. 그러나 여기를 마지막까지 갈지 말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그것은 론니플래닛에 지도도 없고 설명도 건성으로 되어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여기가 타슈켄트에서 너무 멀어서도 아니었어요. 여기 역시 관광지가 아니라 숙소 잡기 힘들 거라는 예상 때문도 아니었어요.


2005년 5월 13일 안디잔 유혈 사태


이것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민했어요. 2005년 안디잔 사태는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사건.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 시위와 무자비한 진압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 및 이들 조직과의 유혈 충돌이에요. 한국에서 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2005년 안디잔 사태가 절대 언급해서는 안 되고 언급되지도 않는 비밀이자 금기라고 상상하겠지만, 그것은 아니에요. 관영 방송사인 O'zbekiston 에서 TV로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을 직접 보았거든요. 중요한 것은 정부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 및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단체의 준동으로 규정지었다는 것. 단지 언급해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이 문제는 알고 보면 조금 복잡해요. 단순히 민주화 요구에 학살로 대답했다고 쉽게 대답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죠. 민주화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쪽이나 우즈베키스탄 정부 주장이나 일단 시위의 발단은 현지 사업가 23명의 체포. 이들은 당시 안디잔에서 공익 활동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해요. 여기까지는 양측의 공통된 주장. 


단순히 '공익 활동으로 인기가 높았던 사업가 23명이 체포되어 발생한 대규모 시위를 학살로 응답했다'고 하면 아주 쉽겠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꼬여있어요. 이것을 잘 했다고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단지 왜 그렇게 초강경 진압으로 나갔는지 그 원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우즈베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요.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가 준동하고 있는 곳. 게다가 이 지역 마약의 주요 생산지이자 공급지.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의 옆 나라는 타지키스탄. 여기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공산주의자 간의 내전이 치열하게 발생한 곳. 이렇게 우즈베키스탄은 주변 국가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시달리는 것을 보아온 데다 이 지역에서 활동중인 이슬람 원리단체들이 우즈베키스탄으로도 이슬람 원리주의 수출을 꾸준히 획책하고 있어요.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정부가 악용하는 것도 당연히 있겠지만, 우즈베키스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 실제 타슈켄트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일으킨 테러가 발생한 적도 있어서 이들에 대한 경계심만은 항상 극도로 높아요.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중심지이니 이슬람 원리주의가 한 번 뿌리내리면 확 퍼져버리기 아주 좋은 풍토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빈부격차, 잠재되어 있는 민족적, 문화적 갈등, 부정부패 문제를 이슬람 원리주의로 해결하자는 움직임이 퍼지기 아주 좋은 환경이에요. 더욱이 페르가나 계곡은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분리독립세력의 준동이 있었던 곳이고, 안디잔은 바로 이 페르가나 계곡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에요. 즉, 정부가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에 정부에서 바로 초강경 진압으로 나선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2005년 사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요. 시위대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섞여 있었고, 정부의 대처가 늦어서 시위가 확 퍼져나가는데, 그 와중에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으로 바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또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에요. 이건 억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주도권을 잡고 국토를 거의 통일시켰던 과정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아요. 역사적으로 사도 무함마드가 현실 세계에서 이상향을 건설했기 때문에 불안정하거나 어려운 시기에 이슬람 원리주의가 확 퍼질 수 있는 것이죠. 이게 있었던 것을 다시 만들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메뉴얼 정도는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탈레반도 처음에는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순식간에 다른 군벌들을 무리치고 아프가니스탄 국토 대부분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구요.


어쨌든 이런 일이 있었던 곳이라 긴장이 되었어요. 여행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거주지등록 문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래도 무언가 일이 꼬이면 골치아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마 여기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로 경찰이 와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곳곳에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 있으면 꽤 짜증날텐데...


택시 기사 말로는 파르고나에서 안디잔까지는 택시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어요.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었어요. 여름보다 확실히 덜 덥기는 한데, 햇볕은 여름보다 더 따가운 것 같았어요. 여름에는 정말 누가 양동이에 햇볕을 퍼담아 제 머리 위에 쏟아버리는 것 같았는데, 이 햇볕은 그렇게 무식하게 퍼붓는 느낌은 없었지만 매우 따가웠어요. 아주 가느다란 화살을 제게 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왼쪽 뺨과 팔은 시원하고 좋은데 오른쪽 뺨과 팔은 햇볕 때문에 따가웠어요.



여기도 목화밭. 좋게 표현하면 풀밭에 흰 눈이 내렸고, 나쁘게 표현하면 풀밭에 거대한 흰 곰팡이가 피었어요. 전자나 후자나 딱 들어맞는 풍경이었어요.







11시 30분, 안디잔에 도착했어요.


"호텔 어디 있어요?"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았어요. 택시 기사는 기차역 앞에서 양기 바자르가 있는 곳까지 쭉 이어지는 보부르 거리 Bobur ko'chasi 에 호텔들이 많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길을 찾기 위해 먼저 기차역으로 갔어요.


"저건 왜 저래?"



"저거 불난 거 아니야?"


기차역 위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어요. 신기한 것은 아무도 저 연기에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타슈켄트로 가는 기차가 하나도 없는 역이라고 하지만 저렇게 시커먼 연기가 나고 있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 기차역을 보니 대체 어디 가는 기차가 있는지 물어보러 갈까 순간 생각했어요. 그러나 저 시커먼 연기가 역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갈 마음이 싹 사라졌어요.


"소방차 안 와?"


제대로 크게 난 불이 아니라 불 끄러 안 오는 건가?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역을 뒤로 하고 또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기차역 길 건너 맞은편에는 공원이 하나 있었어요. 공원이 크지는 않았지만 꽤 예쁘게 잘 꾸며놓았어요.


그리고 이 공원에는 동상이 하나 있었어요.



Zahiriddin Muhammad Bobur (1483-1530)


자히릿딘 무함마드 보부르는 안디잔 출신 모험가로, 여러 차례 실패 끝에 1504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데에 성공했어요. 그리고 자히릿딘 무함마드 보부르가 세운 왕국이 바로 세계사 시간때 배우는 인도 무굴 왕국의 토대가 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꽤 중요한 인물.



"여기는 타슈켄트보다 더 아름다운데!"


이 길은 바로 텔레비전에서 종종 '안디잔'이 나올 때 보던 그 길이었어요. 보고서 항상 정말 깔끔하고 예쁘게 잘 꾸며놓았다고 생각했던 그 거리. 아무리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슈켄트가 아름답고 현대적인 도시라고 선전해도 여기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어요. 타슈켄트 거주자의 입장에서 타슈켄트에 지하철이 없었다면 정말 정부와 타슈켄트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타슈켄트를 자랑스러워 했을까 궁금할 지경이거든요. 타슈켄트 나보이 거리를 부지런히 정비하고 건물들을 보수 및 리모델링하고 있기는 해요. 아미르 티무르 공원부터 나보이 거리까지 하얗고 빛나는 벽에 진한 청유리 건물로 꾸미는 작업이 진행중이기는 한데, 이게 끝난다면 몰라도 그 전에는 타슈켄트는 외국인 입장에서 그냥 낡은 도시. 진한 청색 유리창과 눈 아프게 만들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건물들을 새로 짓고, 이렇게 리모델링하고 있는 타슈켄트의 도시 디자인이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모습이라면, 여기는 부드럽고 알록달록하고 깨끗한 모습이었어요. 미래의 타슈켄트가 강력한 남성의 모습이라면 안디잔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가장 먼저 Hotel Elegant로 갔어요.


"하룻밤 얼마에요?"

"2인 1실 8만숨."


시설을 보았어요. 꽤 괜찮았어요. 파르고나에서 본 지요라트 호텔 100달러 짜리 방보다 오히려 더 좋아보였어요. 게다가 8만숨이면 그다지 나쁘지도 않은 가격. 타슈켄트 시장 환율 기준으로 30불 채 안 되는 가격이었어요. 방 하나 가격이 8만숨이었기 때문에 이 호텔에서 자도 꽤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다른 곳 보고 올께요."


바로 여기에서 1박 할까 생각했지만 제가 진짜 가 보고 싶던 호텔을 보고 나서 결정하기로 했어요. 이 호텔이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은 오직 하나. 시내 중심가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가서 머무르고 싶었던 Hotel Andijon은 구시가지 - 즉 안디잔의 에스키 샤하르 근처에 있는 호텔이었어요. 지금 제가 타슈켄트에서 살고 있는 곳은 타슈켄트의 구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 한 번 쯤은 구시가지의 밤거리를 직접 걸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구시가지 근처 호텔에서 머물러야 했구요.


길을 걷는데 자기 호텔로 오라고 호객행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2005년 사태 때문에 안디잔이 외국인은 들어가기 매우 어렵고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지는 위험한 곳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안디잔은 사업차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은 지역이며, 키르기즈스탄으로 넘어가는 관문이기도 해요. 안디잔에서 키르기즈스탄 오쉬 Osh 까지는 차로 얼마 걸리지도 않거든요.


"여행 계획을 내가 완전 잘못 짰구나."


거리에 많이 보이는 호텔. 게다가 호텔 가격을 알아보니 가격도 꽤 괜찮았어요. 30달러가 아주 저렴한 숙소라 할 수는 없지만, 시설을 보면 꽤 저렴한 가격이었거든요. 아무리 우즈베키스탄 물가가 저렴하다고 해도 호텔은 여행자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저렴하지는 않아요. 아니, 중앙아시아 자체가 호텔이 저렴하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찾아보면 아주 저렴한 호텔을 찾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시설이거든요. 아주 저렴하면 시설이 형편 없는 수준을 뛰어넘어요. 화장실 없는 방보다 고장난 화장실이 있는 방이 10배 더 무서운 방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바로 이 중앙아시아 지역 여행 중 깨달은 사실. 정말 궁상으로 다니고 극한 경험을 하는 여행을 할 생각이 없다면 중앙아시아에서 너무 저렴한 호텔 방은 피하는 게 좋아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화장실 없는 방보다 고장난 화장실이 있는 방이 더 무서워요.


여행을 아침 일찍 시작해서 빨리 코칸드를 보고 안디잔으로 넘어가야 했어요. 파르고나는 페르가나 계곡 갈 거 아니라면 갈 필요가 전혀 없는 도시였거든요. 전날 안디잔에서 1박 했다면 오늘 안디잔을 구경하고 여기에서 하루 더 쉬고 다음날 타슈켄트로 넘어가면 되었어요. 정 파르고나를 보고 싶다면 다음날 파르고나까지 택시로 이동해서 파르고나 잠깐 둘러보고 거기에서 바로 타슈켄트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구요. 어쩌면 오늘 아침 일찍부터 안디잔을 둘러보고 나만강으로 넘어가서 거기에서 1박을 하고 타슈켄트로 빠지는 수도 있었을 거에요. 하여간 전날 파르고나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안디잔으로 넘어가야 했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제가 있는 양기 바자르에서 제가 가야할 에스키 바자르까지는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먼 거리였어요. 양기 바자르에서 에스키 바자르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마스를 타야 했어요. 현지인들이 다마스 잡는 것을 도와주어서 쉽게 에스키 바자르로 이동했어요.


에스키 바자르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에게 호텔을 물어보았어요.


"호텔 안디잔 어디 있어요?"

"이 길 쭉 따라서 가면 돼."


사람들이 알려준 대로 길을 걸어갔어요. 거리에 식당들이 보였어요.


'밥이나 먹고 가?'


오쉬 (플로브)는 타슈켄트 오쉬를 최고로 쳐 주어요. 그 다음으로 최고로 쳐 주는 오쉬가 바로 안디잔 오쉬. 시간을 보니 밥 시간이었어요. 지금 아니면 오쉬를 못 먹을 확률이 높아서 일단 밥부터 먹고 호텔을 찾아 가기로 했어요.


"오쉬 팔아요?"

"오쉬 없어."


에스키 바자르 근처에 있는 식당들 모두 희안하게 오쉬는 팔지 않았어요. 그래서 몇 곳 돌아다니다 일단 짐이나 풀고 다시 나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영부영하다가 에스키 바자르 근처에 있는 호텔 안디존 방도 다 차버리고, 아까 보았던 호텔 엘레강트 방도 다 차버리면 또 호텔 찾으러 돌아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빨리 호텔 안디잔으로 갔어요.


호텔 로비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여기 저기 두드려보는데 한 사람이 윗층 층 관리인에게 가 보라고 했어요. 소련식 호텔의 특징은 각 층마다 층 관리인 (제주르나야)이 있다는 것. 나갈 때 열쇠를 맡기고 들어갈 때 열쇠를 받는 것은 로비에서 하는 게 아니라 층 관리인에게 해요. 이건 정말 소련식 호텔의 시스템.


호텔 내부는 볼 만 했어요. 특히 벽화가 아름다웠어요. 정말 저렴한 장급 여관 수준은 아닐 거라는 기대가 들었어요.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호텔인데?'


기대를 하며 2층으로 올라갔어요.


"방 있나요?"

"있어요."


먼저 보여준 방은 5만숨 짜리 3인실. 혼자서 3인실을 쓰는데 가격이 5만숨이니 가격만 놓고 보면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방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화장실을 보았어요.


"변기 고장났는데요?"

"물 받아서 내리면 되요."


온수는 그럭저럭 잘 나왔으나 문제는 변기. 변기가 고장이었어요. 층 관리인은 통에 물을 받아서 내리면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호텔에서 통에 물 받아 볼 일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커다란 바가지라도 있으면 그냥 그렇게 하겠는데 물을 부을 통도 없었어요.


"다른 방 없어요?"

"다른 방은 비싼 방."

"보여주세요."


그래서 본 방은 8만숨짜리 방이었어요. 이 방도 외관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하지만 아까 호텔 엘레강트에서 보았던 8만숨짜리 방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역시나 화장실로 갔어요. 샤워 시설은 괜찮았지만 여기도 변기가 고장이었어요. 게다가 샤워기 상태가 5만숨짜리 방보다도 안 좋았어요.


'어떻게 하지? 그냥 호텔 엘레강트로 돌아가?'


3만숨을 더 내고 좋은 방에서 자? 아니면 변기가 고장난 5만숨짜리 방에서 그냥 자?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타지키스탄 후잔드에서 고장난 변기의 위엄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화장실이 멀쩡한 방에서 자고 싶었어요.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은 화장실을 정말로 잘 안 빌려주어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화장실이 있는 방이 필요했어요.


'그냥 패트병에 물 받아서 내려버릴까? 어차피 하루 머무는 것인데...'


일단 지금은 여행 초기. 숨이라고는 300불 환전한 것 밖에 없었어요. 그 300불 환전한 것에서도 기차표, 택시비, 버스비 등이 나갔어요. 아직 돈뭉치가 몇 개 되었지만 숨을 아낄 필요는 있었어요. 안 그러면 환율 엄청나게 손해보며 다른 도시에서 환전해야 할 수도 있었거든요. 타지키스탄 후잔드에서 못 버티고 다른 방으로 옮겼던 것은 그 방에서 최소 이틀, 길면 사흘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여기는 오직 하루. 잠만 자고 대충 씻고 나가면 되는 곳. 정 여기에서 못 버티겠다 싶으면 다음날 타슈켄트에 있는 제 집으로 돌아가 씻고 가볍게 정비 좀 하고 기차역으로 가도 되었어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하룻밤만 화장실에서 새어나오는 저의 배설물 냄새를 맡으며 버티면 되었어요. 다음날 아침 일찍 타슈켄트로 떠날 거였으니까요.


'그냥 3만숨 아끼자. 크게 고생할 것도 아니고, 고작 하룻밤인데...'


일단 침대에 누워서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 힘든 일. 하룻밤 고장난 변기가 있는 방에서 자야 한다는 것 정도는 고생이라고 말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어요. 게다가 지금은 여행 시작 단계. 정말 피로가 온몸 구석구석, 말초신경에서 중추신경까지 꽉 들어차고 찌든 상태라면 당연히 귀찮더라도 호텔 엘레강트로 갔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은 시작 단계라 이 정도로 크게 피곤해지거나 체력을 크게 아껴야할 때도 아니었어요. 7박 35일 여행하던 때와 비교하면 이것은 지나친 과소비에 해당하는 것.


짐을 풀고 돈을 드리고 여권을 맡겼다 찾은 후 밥을 먹으러 에스키 바자르로 갔어요.


"오쉬 있어요?"

"오쉬는 없어요."


에스키 바자르 및 그 주변 모든 식당에서 오쉬는 팔지 않았어요. 다른 음식들이 있다고 하는데 제가 먹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 - 오쉬였어요.


이렇게 된 이상 자혼 바자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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