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우즈벡에서 걸어서 세계속으로 - 우즈베키스탄 (2012.08.18) 본 소감

좀좀이 2012. 9. 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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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속으로 - 우즈베키스탄편 (2012.08.18)을 보았어요.


보기 전까지는 제가 머물고 있는 곳이 우즈베키스탄이라 어떻게 찍혔을지 매우 궁금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욕을 한 바가지 했네요. 저라면 정말 이거 이렇게 만든 주범 찾아서 바로 해고해 버렸을 거에요. 이건 제가 본 걸어서 세계속으로 시리즈 가운데 정말 최악이었어요.


정말 보면서 왜 이따위로 찍었을까 계속 의문이 들었어요. 그냥 아무 여행자에게 캠코더 하나 들려주고 알아서 대충 찍어오라고 시켜도 이거 보다는 훨씬 잘 찍었을 거에요.


이제부터 이렇게 욕을 한 바가지 하며 본 이유를 설명할게요.


먼저 동선.


타슈켄트 - 히바 - 타슈켄트 - 차르박 - 타슈켄트 - 사마르칸트 - 샤흐리사브즈 - 사마르칸트 - 타슈켄트


이건 누가 봐도 멍청한 동선. 한국 지리로 비교하자면


서울 - 완도 - 서울 - 가평 - 부산 - 경주 - 부산


누가 한국 여행 간다고 할 때 '서울 - 완도 - 서울 - 가평 - 부산 - 경주 - 부산 - 서울' 로 동선 짜 주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저 예가 정확히 맞지 않아요. 도시 특성을 맞추기 어려우니까요. 문제는 서울에서 완도 가는 것은 서울에서 히바 가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거에요. 히바는 타슈켄트에서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기차로 20시간 정도 걸리는 곳. 여기는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는 한 절대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없어요. 부하라는 무박 2일로 다녀올 수 있지만, 부하라 넘어가면 사실상 불가능해요.


이건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세계테마기행과 달리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한 편에 다 우겨넣어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곳을 집어넣다보니 내용이 빈약해질 수는 있어요. 문제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런 경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저렇게 바보 같은 동선으로 다니라고 하면 이 나라 지리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 뜯어말려요. '서울 - 완도 - 서울 - 가평 - 부산 - 경주 - 부산' 이렇게 동선 짜주는 사람이 제정신인 사람이겠어요? 그냥 제비뽑기해서 나오는 순서대로 가는 거죠. 그렇게 한다 쳐도 저렇게 나오면 복불복에서도 가장 재수 없는 거 걸린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건 복불복 수준이 아니라 몇 시간씩 걸린다는 것.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 제일 빠른 기차로 가야 2시간 반이에요.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어요.


1단계 -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 이것은 단기간에 볼 수 있어요. 사마르칸트를 아침 첫 기차 타고 가서 마지막 기차 타고 돌아온다면 충분히 가능해요. 아주 짧은 기간 선택할 수 있는 루트.


2단계 -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 이것은 1단계보다 이틀 정도 더 필요해요. 타슈켄트에서 부하라,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로 이동해야 하니까요.


3단계 -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 히바는 육로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요. 기차로 20여 시간인데요. 비행기를 타고 히바부터 간 후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를 거쳐 타슈켄트로 돌아오는 것이죠. 타슈켄트에서 이 루트로 여행을 하면 최소 4일 걸려요. 대신 피로도 작살이죠. 그냥 날아다니며 후딱 보고 후다닥 이동해야 해요. 한국에서 혼자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4일은 실상 불가능해요. 최소 한 번 - 히바에서 타슈켄트, 또는 타슈켄트에서 히바 노선 비행기표를 사고, 달러를 현지화로 환전할 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 후에는 이것 저것 붙여넣을 수가 있어요. 타슈켄트 동부에 있는 페르고나, 나만강을 가든가, 히바에서 더 멀리 있는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 아랄해를 보든가요.


우즈베키스탄만 여행한다면 저렇게 일정에 따라 동선이 갈려요. 수도인 타슈켄트가 워낙 동북쪽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서쪽으로 하나 하나 덧붙여가는 식이죠.


단, 한 화에 모든 것을 우겨넣기 위해 저랬다고 한다면 약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어요. 히바 - 사마르칸트 구간이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차표 못 잡아서 그랬을 수도 있죠. 그래도 이곳 지리를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냥 이해 불가.


보면서 이게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찍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일단 위의 동선은 진짜 저렇게 짜주고 끌고 다녔다면 순진한 사람 일부터 뱅뱅 돌아서 몇 만 원 요금 만드는 악질 택시기사이거나, 복불복 게임하는 거에요.


두 번째로 컨셉.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이번이 첫 우즈베키스탄도 아니에요. 이미 전에 한 번 더 찍었어요. 한 번에 다 끝내겠다고 덤빈 게 아니라는 것이죠. 예전 것은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를 찍었어요.


동선이 엉망진창이라면 컨셉이라도 있어야 해요. '이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겠다', '이 나라의 역사를 소개하겠다', '이 나라의 자연을 소개하겠다' 이런 것들이요. 이 컨셉 때문에 동선이 엉망이 될 수는 있거든요.


그런데 컨셉도 없어!


타슈켄트의 현대적 모습 보여주다가 갑자기 히바 날아가서 유적 대충 보고 사막 체험하고 다시 차르박가서 현지인들 노는 거 구경하고 다시 사마르칸트와 샤흐리사브즈를 간다.


당최 컨셉이 뭐인지 모르겠어요. 역사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현지 문화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현지 자연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엉망진창 짬뽕. 동선을 엉망으로 짰다면 컨셉이라도 제대로 잡든가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예전 걸어서 세계속으로 - 우즈베키스탄 편에 비해 극악으로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에요. 예전 편은 이렇게 뒤죽박죽이지는 않았어요.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를 차분히 소개해주는 내용. 혹시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꿈꾸시거나 관심이 있는 분께는 정말 예전 우즈베키스탄 편을 추천해요. 이번 것은 절대 추천하지 않아요.


이미 한 번 찍은 국가를 다시 찍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컨셉을 잡아서 찍든가, 지리적 구분을 해서 찍는 게 필요해요. 일단 예전 것은 매우 괜찮았어요. 딱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소개에 중점을 두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것을 엉망으로 해 놓았기 때문에 다음에 우즈베키스탄을 또 찍게 된다면 그때도 또 엉망이 되요. 이번처럼 지난 번에 갔던 곳을 또 가서 찍든가, 동선을 또 엉망으로 만들어 놓거나요. 이번 편은 만약 다음에 또 우즈베키스탄을 찍게 된다면 그 미래의 것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최악의 한 수였기 때문에 극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제가 만약 이걸 계획했다면 이번에는 딱 부하라, 사마르칸트, 샤흐리사브즈로 짰을 거에요. 히바 가서 사막 투어하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것 집어넣을 게 아니라요. 이렇게 하면 동선 면에서도 매우 깔끔하고, '역사'라는 컨셉도 잡히기 때문에 일거양득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잘 가구요. 이렇게 찍고, 나중에 또 우즈베키스탄을 찍게 될 때에는 히바와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 아랄해를 찍는 것이죠. 아랄해도 황폐한 곳이니 히바의 사막 투어도 딱 어울리겠네요.


그런데 이번에 엉망으로 찍어놓았기 때문에 다음에는 아마 부하라와 아랄해를 찍을 거 같은데...아이쿠...참 조화롭네요...동선은 이미 글러먹었고, 어떤 컨셉을 잡을지 궁금해집니다. 진심으로요.


세 번째, 누구의 문화를 찍는 것인가?


구 소련 지역 찍는 프로그램 볼 때마다 상당히 거슬리는 게 있어요. 무조건 러시아어 가능자 및 러시아 관련 전문가를 끌고 와서 쓴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분명 짚고 넘어가고,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있어요.


대체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문화는 누구의 문화인가?


이번 걸어서 세계속으로 - 우즈베키스탄 편도 마찬가지였어요. 보여주는 문화는 분명히 우즈벡인들의 문화였어요. 그런데 이번도 대충 러시아어 가능자 빌려 쓴 것이 딱 티가 났어요. 발음을 러시아식으로 쓰는 것 까지는 이제 그러려니 해요. 현지 음식, 지명 이상하게 적어 올리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확실히 듣기 이상한 표현 및 비유나 대충 찍었다는 인상을 주는 장면 등 깊이가 너무 떨어지는 부분이 종종 보였어요.


물론, 한국과 정말 관계가 적은 나라를 찍는다면 다 이해해요. 당연히 넓은 마음으로 보아야죠. 그쪽에서 한국어 하나도 모르고, 우리가 현지어 하나도 모른다면 어쩌겠어요. 둘 다 아는 언어로 대화해야 할 수 밖에요. 아니면 통역자를 두 명 쓰든가요.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은 그렇지 않아요. 우즈벡인 문화를 찍는데 한국어 잘 하는 우즈벡인을 못 찾겠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요구하는 수준이라면 그 정도의 한국어 잘 하는 우즈벡인 많아요.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우즈벡인이 몇 명인데요. 그리고 우즈벡인들 한국어 곧잘 배워요.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보여주는 것은 학문적인 것이나 전문분야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촬영할 때 오히려 그 문화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욱 필요해요. 어떻게 밥을 먹고, 어떻게 잠을 자고, 어떻게 노는 것 등 아주 기초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미국 문화를 하나도 몰라도 영어를 공부해 어려운 영어로 된 전문서적을 읽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미국 문화를 하나도 모르는데 미국인의 일상생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찍는다? 이것과 같은 문제에요.


'플로브 센터'가 나오는 장면에서 '이거 엉망으로 찍었겠구나' 하는 예감이 확 들었어요. 여기 현지인들이 현지 음식을 먹겠다고 추천하는 식당은 '쭘' 근처에 있는 큰 식당이에요. 이 식당은 론리플래닛에서도 강력히 추천하는 식당으로, 이 식당 가면 다양한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어요. 단순히 그 식당을 찍지 않고 플로브 센터에 갔다고 그런 예감이 들은 것은 아니었어요. 오슈 (플로브) 를 그릇에 뜨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이 느낌이 확 들었고, 그 불길한 '혹시나'는 '역시나'로 바뀌었어요.


참고로 이번만은 걸어서 세계속으로-우즈베키스탄편에 오슈(오쉬)가 '플로브'로 나왔기 때문에 저 역시 '플로브'로 씁니다.


플로브는 큰 접시 - 우즈벡어로는 라간 Lagan - 에 가볍게 툭 던져서 받듯 퍼요. 이번 편에 나온 플로브는 작은 공기 - 우즈벡어로는 코사 Kosa - 에 퍼서 담는데, 이건 제대로 담는 게 아니에요. '이것이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음식' 이라면서 중요하게 다룰 거라면 제대로 플로브를 뜨는 장면을 찍어야죠. 이 가게에서 라간에는 담아주지 않나 하고 보았는데 라간에도 담아주더군요. 제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아예 핀트를 못 맞춘 대표적 장면으로 손꼽는 장면이에요. 저 역시 라간과 코사가 플로브 맛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까지 음미할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한 한국 밥상을 찍는데 숫가락과 젓가락으로 먹느냐, 숫가락과 포크로 먹느냐의 차이 만큼은 되요.


글을 쓰며 '왜 이렇게 찍었을까' 고민하다 한 가지 추측을 했어요.


혹시 원래는 히바-부하라-사마르칸트-타슈켄트로 찍으려고 했는데 히바에서 부하라 넘어가는 기차표를 못 산 거 아니야?


분명 부하라를 안 찍을 리 없는데 부하라를 안 찍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예전처럼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소개에 큰 비중을 준 것도 아니구요. 부하라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분량인데 생뚱맞은 사막 투어가 나오고, 샤흐리사브즈를 가거든요. 샤흐리사브즈는 사마르칸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도시로, 큰 기대를 하고 가는 곳까지는 아니에요. 상식적으로 샤흐리사브즈를 넣을 바에는 부하라를 넣어야 하는데 부하라가 빠지고 샤흐리사브즈가 들어갔어요. 이건 한국 밥상으로 치면 국이 빠지고 그 자리에 숭늉이 올라가 앉은 거에요. 샤흐리사브즈는 이런 주요 도시를 돌고도 여유가 있겠다 싶을 때 사마르칸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곳이지, 부하라를 포기하고 가는 곳은 아니에요.


과연 최소한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지도만 보아도 답이 나오는 것인데 동선을 저렇게 짜지는 않았을 거고...게다가 왜 부하라는 빠졌지? 우즈베키스탄이 중국처럼 하도 찍어대서 이제 매니악한 곳을 찍어야하는 곳도 아닌데...게다가 왜 샤흐리사브즈는 또 가? 단순히 논 (방송에서는 리뾰슈카) 주문한 거 기다리느라고?


무언가 이상했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이 '원래는 히바에서 부하라-사마르칸트로 가려 했으나, 히바에서 부하라 가는 기차표를 못 구했다' 였어요. 이러면 동선이 이상해진 게 납득이 되었어요. 원래 부하라 가려 했으나 기차표 못 구하고 택시로 가기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부하라를 포기하고 남는 시간에 사막 투어하고 샤흐리사브즈 다녀왔다...이러면 뭐 납득이 되기는 했어요.


참 많이 기대하고 보았는데 오히려 실망만 크게 했어요. 개인적으로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매우 좋아하는데 앞으로 정말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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