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한국인에게 '니하오'라고 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좀좀이 2012. 9. 14.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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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확실히 밝히고 들어가겠다. 동양인을 놀리기 위해 '니하오'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 경우 '니하오'는 '칭쳉총'과 같은 욕이기 때문이다. 최소 '호객행위', '친밀함 표현'부터 다룬다.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놀란 점 중 하나는 처음부터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자신들이 민족들을 잘 구분한다고 한다. 130개가 넘는 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라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사람 얼굴을 보고 살아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여기 살고 있는 고려인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얼굴도 다르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희안한 것은 단순히 한국인과 중국인 얼굴을 구분해낸다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별해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것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니하오' 또는 '곤니치와'가 한국어 인사인 줄 안다.


단순히 중국인이 많아서?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내 경험상 단순히 중국인이 많아서 한국인이 '니하오'라고 인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니하오'와 '곤니치와'는 엄청나게 많이 듣는다. 그런데 '안녕하세요'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단순히 얼굴을 구분 못 해서? 그러면 '니하오'와 '곤니치와'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예 없어서? 이건 약간의 가능성이 있긴 하나, 한국인 많이 가는 곳, 많이 사는 곳에서도 '안녕하세요'는 아직 못 들어보았다. 동남아시아는 가본 적이 없어서 그쪽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 본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 및 한국에서 장기간 일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안녕하세요'라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전혀 보지 못했다. 한국을 몰라서? 이건 틀렸다. '대한민국'과 '북한'을 잘 구분 못해서 그렇지.


단순히 중국인들이 합법 체류 및 불법 체류를 엄청나게 많이 해대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분명 무언가 크게 부족하다. 물론 그런 지역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까지도 '니하오'와 '곤니치와'는 들리는데 '안녕하세요'는 천연기념물 크낙새 찾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아룡!




이것이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분명 무슨 무협지 등장인물 쯤 되는 줄 알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게 외국인들이 '안녕'을 정말 잘 발음한 경우다.


안녕하세요

곤니치와

니하오


웬만한 외국인들이 서로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동아시아 3국 사람들의 인사다. 한국어가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는 인사부터 외국인에게 어렵다. 물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중국어 발음이 정말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저렇게 써 놓고 보면 한국어 인사는 동아시아 3국 중 가장 어렵다.


왜 어려운지 들어가면 내 생각에는 이렇다.


1. 길다.

여행에서 한국어 인사를 알려달라고 하는 외국인은 간간이 만날 수 있다. 그러면 고민하게 된다. '안녕'을 알려줄 것인가, '안녕하세요'를 알려줄 것인가. 분명 일반적으로 '안녕하세요'를 알려주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길다.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해보려고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인사말이나 하나 알자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이 태반이다. 일본어 인사와 비교했을 때 고작 1음절 차이인데 5음절이라고 그냥 '아, 너무 어려워, 포기할래.' 이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2. 어

외국인들이 정말 발음을 잘 못하는 우리나라 모음은 '어'다. 우리나라 단모음 '아,어,오,우,으,이,애,에,외,위' 중 단연코 '어'를 제일 못한다. '으'는 '우'로 발음을 많이 하고, '아, 이, 우, 에, 오'는 잘 발음하며, '애'는 우리나라 사람도 구분을 별로 하지 않고, '외, 위'는 어느 외국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발음 잘 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뵙다, 사귀다' 같은 경우 외에는 이중모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 이건 내가 접해본 언어들, 내가 만나본 외국인들 가운데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소리를 들려주면 이 '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외국인이 대부분. 그런데 '안녕하세요'에서는 무려 '어'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여'다. 그래도 나름 인사 한 마디는 알아두려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또박또박 발음해주면 한결 같이 '녕'에서 막혀버린다.


내가 한국어 선생님이고 상대가 학생이라면 정말 신경써서 잘 알려주겠지만, 상대는 대부분 그냥 인사 한 마디 알고 싶어하는 사람. 이건 짧은 시간에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둘 다 포기. 지금껏 제일 잘 발음한 사람의 발음이 '아룡하세요'다.


게다가 '어'는 걔네들 말로 적어줄 방법도 없다. 알파벳으로 적어줄 때도 간간이 있는데, 당장 나부터 '어'를 어떻게 적어야할 지 막막하다. 물론 우리나라도 외국어 표기법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적어준다 해서 '어' 발음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적어주면 더 못 알아보겠다고 나를 쳐다보는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 '어'를 'eo'로 적는데 이걸 보고 '이건 어떻게 읽어야하지?'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우리도 저렇게 적어놓으면 못 읽는데.


'니하오' 소리 듣는 것은 나 역시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한국어 인사를 알려달라고 하면 장난이든 진담이든 최대한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녕'을 못 뛰어넘고 있다. '안녕하세요'를 듣고 좌절한 외국인들의 선택은? '안녕하세요'보다 훨씬 쉬운 '곤니치와'나 '니하오'다.


여행 다닐 때마다 이런 게 한 두 번이 아니라서 혹시 다른 인사는 없나 고민했다. 문제는 '어'와 '으'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 제 2의 '아룡'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니까.


1. 반갑습니다. -> 5음절, '으' 있음.

2. 반가워. -> '어' 있음.

3. 오세요 -> 인사가 아님.

4. 어서오세요 -> 5음절에 '어' 2개


아직까지도 답을 못 찾았다. 그러고 보면 '안녕하세요'의 '안녕'은 한자어인데...대체 어떤 인사를 알려주어야 외국인들이 금방 기억하고 쉽게 발음해서 외국을 돌아다닐 때 '안녕하세요'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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