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2019)

[제주도 여행] 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 35 제주도 순대, 그리고 귀가

좀좀이 2020. 6. 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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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점심은 어떻게 할 거?"

"글쎄..."


복습의시간이 점심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어요.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딱히 생각해놓은 것은 없었어요. 점심 먹을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어요. 아직 늦은 아침 먹어도 되는 시간이었거든요. 아침에 먹은 것은 호떡 2개와 튀김이 전부였어요. 그러나 그거면 충분했어요. 원래 아침을 안 챙겨먹거든요. 딱히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밤새 카페 세 곳 가서 커피 세 잔 마셔서 식욕이 없었어요.


"너 아침은 먹었어?"

"아까 오일장 가서 호떡 사먹은 게 전부야."


이제 슬슬 공항으로 가야 했어요. 제주공항에 사람이 미어터질지 안 미어터질지 몰랐거든요. 2019년 3월 7일 목요일. 3월에 있는 평일이니 공항이 그렇게 미어터질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너무 시간을 딱 맞춰서 가면 안 되었어요.


점심을 굳이 이렇게 일찍 먹고 올라가야하나 싶기도 했어요. 아직 식당이 제대로 문 열고 장사할 시간이 아니었어요. 점심부터 장사하는 집도 이제 가게 문 열고 장사 준비하면 빨리 준비하는 집이었어요. 아침 10시 20분 정도였거든요. 점심을 거르고 올라가서 의정부 도착한 후에 무언가 먹어도 충분한 시간이었어요. 점심 먹을 시간도 아니었고 점심 먹을 생각도 없었어요.


"너 순대국 땡기지 않냐?"


복습의시간이 저한테 순대국 먹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어요.


'얘, 자기가 순대국 엄청 먹고 싶구만.'


제주도 처음 내려온 날부터 복습의시간은 저한테 순대국 먹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어요. 아침에 내려왔는데 식사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길거리에 순대국 판매중인 식당이 보이면 저한테 계속 순대국 먹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어요. 제주도 도착했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복습의시간이 아침밥을 안 먹어서 그런 거라 여겼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어요.


'순대국 한 그릇 사줄까?'


복습의시간 집에서 이틀 밤 신세졌어요. 제가 제주도 도착한 날에는 자기 차를 몰고 나와서 비양도로 갔어요. 그리고 오늘은 제가 간다고 하자 졸릴텐데 제 딴에 일찍 일어나서 차 끌고 나왔어요. 제가 이호해수욕장이나 갔다 오자고 하자 진짜 이호해수욕장으로 운전해서 왔어요. 아마 이따 공항 가야 할 때도 자기 차로 저를 데려다줄 거였어요. 계속 순대국 먹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그 정성에 감복해서라도 순대국 먹고 가기로 했어요.


"그래. 그러자. 그런데 지금 순대국 하는 곳 있어?"


제주도에서 살 때 식당에서 국밥을 사먹은 기억이 거의 없어요. 그때야 집이 제주도에 있는데 국밥 같은 것을 나가서 왜 사먹어요. 집에서 밥 먹으면 되는데요. 밖에서 사먹으려면 집에서 못 먹는 것을 먹어야죠. 집에서 순대국을 끓여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원체 순대국을 잘 먹는 편이 아니에요. 순대를 먹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졸업한 후 한참 지나서였어요. 그때부터 순대를 먹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순대를 안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로 싫어했어요. 지금은 순대를 먹기는 하지만 허파, 간 같은 것은 여전히 잘 못 먹어요.


순대를 먹기 시작한 지 그렇게 꽤 오래되지 않았어요. 제주도 살 때는 순대를 아예 안 먹었구요. 그나마 순대를 먹기 시작한 것이 순대국 먹으면서 먹기 시작한 것이었어요. 당연히 제주도에서 순대국 먹으면서 먹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순대국 먹으면서 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제주도에서 어디가 순대국이 맛있는지 알 리가 없었어요. 게다가 아직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순대국 맛집이라고 무턱대고 찾아갈 수도 없었어요.


"잠깐만, 내가 검색해볼께."


복습의시간이 아주 신났어요. 정말 순대국이 엄청 먹고 싶은 모양이었어요.


'그렇게 순댓국 먹고 싶으면 혼자 가서 먹으면 되지, 뭘 여태 기다리고 있었어?'


고깃집은 2명이 가야 해요. 혼자 2인분 주문하겠다고 해도 안 받아주는 곳들이 있거든요. 특히 고기 무한리필 식당은 더욱 그래요. 그렇지만 국밥집은 그런 거 없어요. 국밥집이 무조건 2명 이상 와야 받아준다고 하면 그 가게 망하죠. 순댓국이 그렇게 먹고 싶다면 혼자 가서 먹어도 될 텐데 왜 굳이 저와 함께 먹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국밥집은 혼자 가도 전혀 안 이상한데요.


복습의시간은 순대국 파는 식당을 검색했어요. 용담쪽에 하나 있었어요. 복습의시간 차에 올라탔어요.


"야, 오일장 이른 아침부터 장 크게 열리는 거 거짓말이더라."

"그래?"

"어. 내가 오늘 직접 가봤어."


아까 아침에 오일장 갔던 이야기를 해줬어요. 아마 오늘도 무수히 많은 제주도 어린이들이 오일장날이 되면 어머니로부터 할머니들은 이른 아침부터 장터 가시는데 너는 여태 잠자고 있냐는 소리를 들을 거에요. 그거 다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본 결과, 학교 수업 시작할 때나 되어야 장이 제대로 열렸어요. 복습의시간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 거짓말에 너무 깊이 세뇌당해 있었어요.


"제주도 사람들은 오일장만 되면 다 할 거 없이 장에 가!"


오일장 근처로 오자 차가 엄청 막혔어요. 오일장날이었기 때문에 특히 막혔어요. 오일장 가는 차가 많았어요. 복습의시간은 운전대를 잡자 입이 폭군 아틸라 능지처참할 기세였어요. 놀라운 현상은 아니었어요. 이상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리 순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운전대만 잡으면 기본 폭군 아틸라 빙의에요. 거기에 혼연일체되어서 운전까지 험하게 하면 진짜 운전 못 하는 거고, 마인드컨트롤해서 정신줄을 꽉 잡고 울분을 꾹 참고 있으면 능숙한 운전자구요. 복습의시간은 아주 초보까지는 아니고 능숙한 수준도 아니었어요. 운전은 얌전히 하지만 입은 폭군 아틸라 밥상 뒤엎는 사나운 맹수의 심장으로 빙의해가고 있었어요.


"아, 저 새끼 뭐야?"


앞에서 운전을 개같이 하는 놈이 하나 있었어요. 깜빡이 안 켜고 계속 차선을 정신없이 변경하는 차가 있었어요. 차선 변경한다고 빨리 앞으로 잘 가면 상관없는데 그런다고 앞으로 가는 것도 아니었어요. 얌전히 자기 차선 타고 가면 빨리 갈 건데 쓸 데 없이 이 차선 저 차선 끼어들면서 오히려 더 못 가고 있었어요. 그렇게 이상하게 운전하는 놈이 저와 복습의시간이 타고 있는 차 바로 코 앞에 끼어들기로 들어왔어요. 일명 칼치기라고 부르는 끼어들기였어요. 복습의시간이 화나서 클락션을 눌렀어요.


"저 새끼 렌트카다."



렌트카였어요. 차량 번호판 맨 앞에 '허'였어요.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제 친구 중 운전을 진짜 잘 하는 친구가 하나 있어요. 그 친구가 제게 운전 이야기를 해주면서 해준 말이 있었어요.


"서울은 진짜 끼어들기를 잘 해야 해."


각 지역마다 운전 문화에 특징이 있대요. 그 특징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야 진짜 운전을 잘 하는 거래요. 서울에서는 끼어들기를 잘 해야 운전을 잘 하는 거래요. 바로 앞 렌트카가 칼치기하는 것을 보는 순간 그게 문득 떠올랐어요.


칼치기로 들어온 차는 다시 옆 차선으로 갈아탔어요. 이제 찾은 식당으로 거의 다 왔어요. 우회전을 해야 했어요. 그 렌트카도 여전히 옆차선에서 운전하고 있었어요. 복습의시간이 우회전을 하기 위해 차선을 바꾸려고 깜빡이를 켰어요. 그러나 렌트카는 작정하고 약올리려고 했는지 속력을 더 내는 것도 아니고 속력을 줄이는 것도 아니고 딱 옆에 붙어서 같이 갔어요. 정확히는 복습의시간 차 속도에 맞춰서 복습의시간이 속도를 더 내면 따라서 더 내고, 속도를 줄이면 따라서 줄이면서 약올리고 있었어요.


"저거 완전 쓰레기네."


앞으로 쭉 나가도 되는데 일부러 딱 속도를 맞춰서 못 끼어들게 하고 있었어요. 제주도에서 렌트카 운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운전을 쓰레기같이 하는지는 저도 이미 매우 잘 알고 있었어요. 사라봉 산지등대 걸어서 올라가는데 렌트카가 뒤에서 와서 저를 들이받았으니까요. 옆 차선 렌트카는 일부러 약올리려고 딱 속도를 맞춰서 가고 있었어요. 결국 렌트카가 골목길로 들어간 후에야 복습의시간은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원래 꺾어들어가는 골목에서 한참 지나서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이번에는 주차 자리를 찾는 게 문제였어요. 당연히 주차 자리가 있을 리 없었어요. 밥 먹고 어서 공항 가야 하는데 골목길을 돌면서 주차 공간을 찾아야 했어요. 간신히 주차 공간을 찾아 차를 주차했어요. 차를 주차하고 바로 식당으로 들어갔어요. 들어가자마자 순대국과 순대를 주문했어요.


제주도 순대국


제가 주문한 것은 따로국밥이었어요. 가격은 7천원이었어요. 국밥 속에 순대는 3조각 들어있었어요. 순대는 고기잡내를 잡으려고 깻잎을 다져넣은 거 아닌가 싶었어요. 순대에서 깻잎향도 났거든요. 국밥 속 건더기는 무지 푸짐했어요. 부속고기와 내장을 다 건져먹으니 국물이 반 아래로 줄어들었어요. 순댓국 따로굽밥 국물에서는 고기 잡내가 느껴지지 않았고 구수했어요. 간은 싱겁게 되어 있어서 소금이나 새우젓으로 따로 간을 맞추어야했어요.


제주도 순대


순대도 맛이 괜찮았어요. 고기 냄새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먹을 만 했어요. 제가 먹을 만 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먹을 거에요. 저는 순대를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이게 무슨 천안 병천 순대 같이 매우 맛있는 것까지는 아니었어요. 제주도 와서 제주도 순대가 어떤지 맛보기에는 좋았어요.


순댓국에 순대를 시켰지만 순댓국 속에 들어 있는 건더기가 많아서 순대는 거의 못 먹었어요.


"야, 이거 싸 가서 너희 어머니랑 먹어."

"그럴까?"

"어. 이번에는 버리지 마라."

"알았어. 이번엔 꼭 다 먹을께."


복습의시간과 천안시 병천 순대를 먹으러 갔을 때였어요. 멋모르고 둘이서 각자 순댓국 하나씩 시키고 순대 주문했더니 양이 너무 많았어요. 미치도록 많았어요. 순댓국 자체도 양이 너무 많은데 순대는 그보다 더 많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순대를 시킬 필요가 없었어요. 순댓국 속에 들어 있는 순대도 충분히 많았거든요. 순댓국이 순대를 먹으라는 건지 순댓국을 먹으라는 건지 분간도 안 되게 건더기가 많았어요. 결국 순대는 그때 몇 점 먹지도 못하고 다 남겼어요. 남은 것은 복습의시간이 포장해서 들고갔어요. 그런데 복습의시간이 순대를 집에 들고 가서 까먹고 있다가 결국 버렸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밥을 먹고 식당에서 나왔어요. 이제 진짜 공항에 가야 했어요.


"잠깐만, 나 여기에서 카메라 직거래 하나 하고 가자."

"지금? 시간 빠듯할 건데? 너 또 거기 가서 주차한다고 엄청 헤멜 거잖아."

"괜찮아. 용담이니까 공항 금방 가. 너 비행기 안 늦어."

"그래, 갔다 가자."


복습의시간이 잠깐 용담에 카메라를 직거래로 사러 가야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들렀다 공항으로 가기로 했어요. 용담동으로 갔어요. 복습의시간은 카메라를 직거래로 구입했어요.


차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가기 전에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이거 카메라 문제 맞네.'


제주도 제주시 용담동


사진 한가운데가 희뿌얬어요. 이건 카메라 렌즈에 곰팡이가 피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어요. 제 후지필름 HS10 카메라 수명이 이제 거의 다 된 모양이었어요.


다시 복습의시간 차를 탔어요. 공항에 도착했어요. 복습의시간에게 잘 가라고 했어요. 복습의시간은 나중에 오면 또 연락하라고 하고 차를 몰고 돌아갔어요.


제주공항


비행기표 발권을 하러 공항 안으로 들어갔어요.


제주도 비행기표 발권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비행기표를 발권받고 나서 다시 공항 밖으로 나왔어요.


제주시 풍경 사진


'어떻게 마지막까지 한라산을 못 보냐?'


이 정도면 놀랄 정도였어요. 그렇게 하늘이 맑았는데도 절묘하게 한라산 쪽은 뿌옇고 구름이 가득 끼어 있었어요. 제주도 와서 한라산 보기 이렇게 어려운 것은 처음이었어요. 처음 도착할 때 비행기에서 본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한라산을 볼 수 없었거든요. 햇살이 따사롭든 하늘이 새파랗든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어요. 제주도 오면 당연히 보는 한라산이었어요. 이렇게 한라산을 못 보고 다시 육지로 돌아갈 줄은 몰랐어요.


이상할 것 없으려나?


이렇게 제주도를 온 것도 처음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제주도에 올 때마다 숙박 문제로 걱정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집에 가서 잠을 자면 되었거든요. 이번처럼 제주도 가는데 숙박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적은 아예 없었어요. 제가 무슨 가출 청소년도 아니고 몰래 제주도 살짝 다녀와야 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제주도 가면 당연히 집에 가서 잠을 잤어요. 그러나 가족들이 전부 제주도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이제는 제주도 갈 때 숙박을 알아봐야 했어요. 제주도 오면서 잠을 어디에서 자야할지 고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러니 한라산을 못 보고 떠나는 것도 이상할 것 없었어요. 항상 보던 한라산이었어요. 항상 있던 집이었어요. 제주도에 더 이상 제가 돌아갈 집이 없는 것처럼 한라산을 보는 것도 그렇게 진귀한 일이 되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되었어요.


탑승 수속을 밟았어요.


제주국제공항


한라산 쪽은 구름이 가득했지만 바닷가 쪽은 매우 맑았어요.


제주도 돌하루방 디자인


'역시 돌하루방은 뭔 짓을 해도 오리지날이 최고야.'


돌하루방을 이용한 비비고 광고판이 있었어요. 돌하루방은 뭔 짓을 해도 오리지날이 최고에요. 표정과 손 정도만 적당히 바꿔주는 선에서 끝내야 해요.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진으로 합성했다면 더 나았을 거에요. 중요한 것은 저렇게 돌하루방 표정과 자세만 바꿔놓은 것이 훨씬 보기 좋다는 것이었어요. 저런 건 딱 봐도 제주도 느낌이 엄청나게 나니까요. 제주도 사람이 봐도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광고였어요. '이것이 제주도 광고다'라고 보여줘도 괜찮은 디자인이었어요.


제주도 면세점


제주국제공항 내국인 면세점


담배 판매하는 부스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제주국제공항 탑승구


비행기를 탈 시간이 되었어요. 비행기를 탔어요.


이스타항공


창가 좌석을 고르다 보니 비행기 거의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어요.


'이거 맨 뒤라서 좁은 건가?'


이스타항공 비행기 좌석은 매우 좁았어요. 좌석에 기대어 팔을 쭉 펴면 손바닥이 앞좌석에 닿았어요.


제주도 제주시 제주국제공항


이제 다시 서울 김포국제공항으로 돌아갈 거였어요. 아무 생각 없었어요. 아무 느낌 없었어요. 서울에서 놀다가 밤에 의정부로 돌아가기 위해 종로5가에서 108번 버스를 탈 때 기분과 똑같았어요. 집에 돌아갈 때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어요. 차이점이라면 버스 좌석이 훨씬 편하다는 것 정도였어요. 돌아갈 때가 되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거였어요. 당연했어요. 여운 같은 거 없었어요.


비행기가 이륙했어요.


제주도 제주시 항공 사진


제주도 항공 사진


역시나 한라산은 안 보였어요.


남해안 항공 사진


섬과 양식장이 보였어요. 이제 제주도 사람들이 말하는 '육지'라는 곳에 진입했어요.


제주도를 내가 여행으로 가보다니...


비행기 안에 한겨울 패딩을 입고 있는 사람은 저 뿐이었어요. 이제 여행은 끝났어요. 제주도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태어나서 제주도를 여행으로 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당연했어요. 제가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제주도를 왜 쓸 데 없이 여행으로 가요. 세상에서 가장 여행가기 싫은 곳이 제주도인데요. 남들에게는 좋은 관광지겠지만 저는 거기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어지간한 곳은 다 가봤어요. 초등학교때 소풍, 현장학습, 수학여행으로 다 돌아봤거든요. 최근에 생긴 테마파크 같은 곳은 못 가본 곳도 많지만 그거 제외하는 거의 다 봤어요.


남들은 제주도 간다고 하면 여행 간다고 매우 흥분되겠지만 저는 제주도 가는 게 여행하러 가는 게 아니라 집 가러 가는 거였어요. 제주도 집에 갔다 온다고 하면 무슨 제주도로 여행 가는 줄 알고 선물 사오라고 하거나 제주도 가서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요. 그래서 제주도 갈 때만큼은 절대 그 어떤 선물도 안 사왔어요. 집에 다녀오는 건데 뭔 선물을 사와요. 그런 논리라면 서울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퇴근했다 출근할 때마다 맨날 선물 사오나요. 다른 지역 여행갈 때는 선물을 사왔지만 제주도 갔다 올 때만큼은 절대 선물을 아무 것도 안 사왔어요. 저는 제주도 갈 때 목적이 집에 가는 거지 놀러 가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 제주도를 처음으로 여행으로 가봤어요. 기분이 아주 달랐어요. 하필 옷도 삼대악산이 캠핑하자고 해서 두꺼운 패딩을 걸치고 갔더니 모든 사람들이 저를 관광객으로 봤어요. 무슨 한겨울 한라산 정상 등반할 거 아니면 제주도에서 아무리 추워도 절대 입을 일 없는 매우 두꺼운 패딩을 3월에 입고 있었으니까요. 의정부에서는 밖에 나갈 때 추워서 입어야 했지만 제주도는 아니었어요. 사람들 시선에서부터 그간 제주도 갔을 때와 다른 것을 느꼈어요.


가장 큰 것은 집에 돌아가서 잠을 자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그게 엄청나게 컸어요. 제주도에서 내가 집에 돌아가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확 와닿을 줄 몰랐어요. 길이 미어터지고 미세먼지가 심해진 것도 어색했지만 그건 부차적인 것이었어요. 그동안 제주도 가면 집에서 잠을 자는 것을 당연히 여겼어요. 그게 깨지자 제주도 자체가 묘하게 어색해졌어요. 뻔히 아는 풍경, 다 아는 길인데도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진 것은 제주도에 더 이상 돌아갈 집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서울 항공 사진


드디어 서울이 나타났어요.


서울


2019년 3월 7일 오후 2시 8분. 비행기가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했어요.


김포공항


무사히 잘 돌아왔어요. 제주도 갈 때 목표는 다 달성했어요. 깔끔하게 마무리를 잘 했어요.


김포국제공항


서울 김포 국제 공항


서울특별시


김포국제공항에서 나왔어요.


서울 김포공항


이제 의정부 자취방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길이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항상 그것이 최고로 지루한 순간이고 가장 피곤한 순간이에요. 어떤 생각도 안 들고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 단계죠.


공항 버스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가장 저렴하게 의정부로 가는 방법으로 가기로 했어요. 전철 타고 돌아가는 거요.


'5호선 타고 가다가 신길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지.'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어요.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에서 환승하면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괜히 5호선을 타고 신길역으로 가서 1호선으로 환승해 의정부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김포공항 지하철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으로 갔어요.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


육교 조각을 붙여놓은 장식. 저건 제가 대학교 진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에도 있었어요. 비행기 타고 서울로 가고, 제주도로 갈 때마다 봐왔어요. 지금은 공항철도, 9호선이 있지만 예전에는 김포공항까지 전철로 가려면 무조건 5호선을 타야 했어요. 제게는 저 육교 장식이 김포공항의 상징이었어요. 전철 타고 와서 내렸을 때 저게 보이면 이제 제주도 가는 거고, 전철 타러 와서 저걸 보면 이제 제가 육지에서 머무는 곳으로 가는 거였거든요.


'다음에 김포공항 올 때 늦장 안 부리면 저거 보면서 길이 시작되겠지.'


제 취향이에요. 1호선을 타고 김포공항 갈 때는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하는 것보다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해 가는 것을 좋아해요. 예전에 처음 서울 올라와서 가양동에서 머무를 때 1호선 타려면 그렇게 가야만 했거든요. 그때 기억들 때문에 1호선 타고 김포공항 갈 때는 어지간하면 신길역에서 환승해서 김포공항 가는 편이에요. 하지만 게으름 부리면 답 없죠. 그때는 최대한 빨리 김포공항 가야하니까 서울역에서 공항철도 타고 가야죠.


전철을 탔어요. 신길역에서 내렸어요.


신길역


지하철 신길역


서울은 아직 겨울 풍경이었어요. 저 멀리 남쪽 제주도는 매화가 이미 개화했어요. 철 모르는 벚꽃도 몇 송이 피었구요. 남쪽의 봄소식은 아직 서울까지 오지 않았어요.


지하철이 들어오자 지하철을 탔어요.


의정부역


2019년 3월 7일 오후 4시 20분. 의정부역에 도착했어요. 거창한 느낌 같은 거 없었어요. 친구 만나러 서울 갔다가 지하철 타고 의정부 돌아왔을 때 그 느낌. 똑같았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어요. 그게 끝이었어요. 어서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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