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시장 안으로 들어왔어요.
시장 안은 한적했어요. 예전 제가 어렸을 적에는 동문시장은 매우 붐비고 번잡한 곳이었어요. 바닥은 매우 울퉁불퉁했어요. 동문시장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그게 오래된 기억이라서뿐만이 아니었어요. 시장 내부가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어머니 따라서 돌아다니기 정신없었거든요. 주변을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없었어요. 주변을 제대로 살펴봤다고 한들 사람들에 치이고 하도 번잡해서 정신없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게다가 그 당시에는 전국 어디든 다 똑같을 줄 알았어요. 제주도에서 벗어날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일상 중 하나였기 때문에 별 관심 없었어요. 여기에 동문시장은 제가 잘 가던 곳도 아니었구요. 동문시장쪽은 놀 것이 별로 없는 곳이었거든요. 친구들과 중앙로로 놀러간 적은 조금 있었지만 중앙로 갔다고 해서 동문시장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완전 관광시장이잖아."
입구쪽은 온갖 기념품을 다 팔고 있었어요. 제주도에서는 관광 기념품을 살 때 동문시장이 관광지, 공항보다 저렴한 편이에요. 저도 예전에 제주도 내려와서 지인에게 줄 선물 사갈 때 동문시장에서 선물을 샀어요. 제가 어렸을 적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그때도 기념품 판매하는 곳이 있기는 했어요. 그러나 지금처럼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엄청 많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도처에 토산품점이 있었어요. 길 가다 보면 토산품점이 하나는 꼭 있었어요. 다른 지역에서는 기념품점, 기념품 가게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제주도에서는 토산품점이라고 했어요. 가게 이름이 'ㅇㅇ 토산품'이었어요. 이런 곳이 흔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토산품점은 거의 전부 사라져버렸고, 대신 이렇게 동문시장 같은 곳에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아예 크게 기념품 판매하는 센터 같은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진짜 별 거 다 있네."
제주도 기념품을 보며 속으로 웃었어요. 참 별 게 다 있었어요. 감귤 관련된 것은 이해해요. 감귤이야 제주도에서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니까요. 한라봉 관련된 것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라봉 관련된 것은 썩 좋아하지 않아요. 감귤 관련된 것은 가공 제품도 맛과 질이 상당히 좋지만 한라봉은 그냥 먹는 것에 비해 가공제품 맛과 질이 항상 엄청나게 많이 떨어졌거든요. 왜 그런지 대충 짐작가는 것은 있어요. 한라봉이 아무리 과거보다 그 가치가 낮아졌다 한들 아직도 귀한 과일이에요. 이런 가공제품은 보통 비상품 선과인 '파치'로 만들어요. 그런데 한라봉은 파치도 귀해요. 그러니 이런 가공제품으로 가는 한라봉 파치는 그 질이 무지무지 떨어질 거에요. 파치 중에서 괜찮은 건 자기들 먹기도 바쁘니까요.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사실이에요. 겨울에 제주도 가서 귤 한 번 공짜로 못 얻어먹고 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한라봉 공짜로 얻어먹고 오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한라봉은 파치도 귀하거든요. 사람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은 한라봉인데 그 중에서 가공제품 만들 정도인 것은 당연히 질이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겠죠. 솔직히 지금도 한라봉 가공제품 보면 대체 무슨 한라봉이 남아서 저런 걸 만들 수 있을까 싶어요.
오메기떡은 어째서 뜨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이건 아무리 봐도 볼 때마다 참 신기해요. 반면 어렸을 적 먹었던 제주도 음식 중 그나마 괜찮았던 기름떡은 요즘 정말 보기 어려워졌어요. 기름떡 정도는 길거리 간식으로 만들어서 판매해도 될 법 한데 잘 안 보여요.
돌하르방 열쇠고리가 있었어요. 돌하루방은 정말 캐릭터 상품화가 어려운 소재에요. 이렇게 캐릭터 상품화가 안 되는 것도 없을 거에요. 아무리 캐릭터 상품화해도 결국은 오리지널을 못 이겨요. 보통 캐릭터 상품화하면 캐릭터 상품은 그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기 마련인데 돌하루방은 그렇지 못해요.
제주도 한라산 소주 미니어처도 판매하고 있었어요. 예전에 지역 소주는 해당 지역에서만 판매하도록 되어 있었을 때, 제주도 한라산 소주는 제주도 여행 가서 꼭 마셔봐야하는 소주라고 알려져 있었어요. 실제 제주도 사람들은 흰색 투명한 병 한라산 소주를 잘 마셔요. 이게 다른 소주보다 더 독해요. 체감상 한라산 소주만 마시다가 다른 소주를 마시면 2잔 정도 더 마실 수 있었어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어요. 요즘은 전국 어디에서나 지역 소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재미는 많이 사라졌어요.
제주도에서는 소주를 차게 해서 마시기보다는 상온에 보관한 미지근한 소주를 마시는 편이에요. 이것도 타지역 음주 문화와 다른 점 중 하나에요.
역시 돌하르방은 오리지날이 최고야.
오리지날 돌하르방이 있었어요. 한때 제주도에서 캐릭터 돌하르방을 밀어주면서 관광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오리지널 돌하르방이 거의 사라졌던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캐릭터 돌하르방 인기가 워낙 없었고, 결국은 오리지널 돌하르방이 다시 상점에 많이 진열되기 시작했어요.
참고로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돌하르방 느낌의 얼굴을 가진 제주도 사람들이 진짜 여럿 있어요. 얼굴을 보자마자 이 사람은 제주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확 오는 얼굴 형태가 있어요.
여기는 대체 왜 유명한 걸까?
육지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명한 사랑분식은 문이 닫혀 있었어요. 여기는 사랑식이 유명해요. 그런데 맛있어서 유명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제주도에서 떡볶이로 유명한 집은 몇 곳 있어요. 육지와 달리 천하통일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어요. 신제주에는 제원분식이 있고, 그 외에 다른 동네에는 각자 지역 군주에 해당하는 떡볶이집이 있었어요. 사랑분식은 맛있어서 유명한 곳이 아니라 양 많다고 조금 유명한 곳이었어요. 동문시장 쪽에서 양 많이 준다고 유명한 곳이었지, 제주도 전체에서 유명한 곳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랑분식이 엄청 유명해졌어요. 처음에는 양 많다고 유명해졌던 걸로 기억해요. 그 후에는 육지 사람들 사이에서 여기가 제주도 최고 떡볶이 맛집이라고 소문났어요. 그거 보고 참 많이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저게 대체 왜 유명해지나 싶었거든요. 아마 동문시장이 관광시장화되면서 뜬 거 아닐까 싶어요. 제주시 동지역 게스트하우스들이 동문시장쪽에 여러 곳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거구요.
솔직히 내가 물어보고 싶다. 사랑식 대체 왜 유명한 거야?
진짜로 궁금했어요. 대체 왜 육지 사람들 사이에서 동문시장 사랑분식이 인기 좋은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여기는 동네 지역 군주 노릇하던 곳에도 간신히 들까 말까하던 곳이었거든요. 심지어 동문시장 근처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크게 인기 좋은 집까지는 아니었어요. 알기는 하지만 그냥 양 많이 주는 집 정도였지, 맛이 끝내주게 좋다고 유명한 곳은 아니었거든요. 육지 사람들은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매우 궁금했어요. 지금도 궁금하구요.
이런 것이 어떻게 보면 현지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관광 관련으로 대박칠 수 없는 증거라 할 수 있어요. 현지인 기준으로 좋은 것과 타지역 사람들 기준으로 좋은 것은 큰 차이가 있거든요.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일치하는 경우도 어마어마해요. 게다가 이게 만약 불일치한다면 관광객이 몰리는 곳과 현지인이 몰리는 곳이 갈려버려요. 이런 경우는 현지인이 오히려 관광객들의 후기 찾아보고 가야하는 경우도 생겨요.
다른 분식집은 장사중이었어요. 안에는 사람이 많았어요. 떡볶이는 역시나 국물이 흥건한 제주도식 떡볶이였어요. 처음 본 사람은 이게 떡볶이인지 떡탕인지 분간 못하게 생긴 떡볶이요.
'한 그릇 먹고 갈까?'
일단 그냥 시장부터 다 둘러보기로 했어요.
진짜 볼 때마다 미스터리인 것 중 하나.
우도에서 땅콩이 저렇게 많이 생산되나?
관광객이 많이 가는 우도. 우도는 예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했어요. 제주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도는 예쁜 곳으로 유명했어요. 그리고 우도 특산물로 땅콩이 유명했구요. 우도 땅콩은 일반 땅콩과 모양이 달라요. 일반 땅콩은 길쭉해요. 우도 땅콩은 완두콩처럼 둥글둥글한 모양이에요. 그리고 우도 땅콩은 일반 땅콩보다 알이 조금 작아보여요. 길지 않고 둥그렇기 때문에 보면 딱 알아볼 수 있어요.
우도 가보면 진짜 땅콩밭이 있어요. 땅콩 재배 많이 하기는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도처에 엄청나게 많이 팔고, 우도 땅콩 막걸리 만들 만큼 생산량이 엄청난지 궁금해요. 우도가 제주도에서는 큰 섬이지만 실제 그렇게까지 큰 섬은 아니거든요. 아침에 우도 들어가서 섬 한 바퀴 돌고 우도봉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배 타고 나올 수 있으니까요. 땅콩밭이 많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땅콩이 어마어마하게 생산되는지 궁금했어요.
우도 땅콩은 제주도에서 예전부터 유명했어요. 우도 땅콩 막걸리는 안 마셔봤지만 우도 땅콩은 제주도 왔을 때 먹어보는 것도 괜찮아요.
제주도 특산물 중 이상하게 안 알려진 것이 있어요. 그건 바로 제주도 보리 미숫가루에요. 제주도 보리 미숫가루는 엄청나게 고소해요. 일반 미숫가루와 비교 자체가 안 되요. 제주도 보리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먹으면 무지 고소하고 무지 달아요. 설탕 하나도 안 넣어도 죠리퐁 말아먹는 맛이 나요. 이거 먹다가 다른 미숫가루 먹으면 깔깔하고 맛없어서 못 먹어요.
죠리퐁 좋아하는 사람 많으니까 제주도 보리 미숫가루는 분명히 잘 팔릴 만 한데 이상하게 영 안 알려지고 있어요. 이것도 볼 때마다 엄청나게 신기한 점 중 하나에요. 이건 홍보 조금만 해주면 엄청나게 뜰 만한 건데 굉장할 정도로 아무도 관심없어요. 미숫가루 타서 마시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니라 간편식으로도 좋은데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플라스틱 쉐이크 통에 우유 조금 붓고 미숫가루 넣고 다시 우유 부은 흔들어주면 끝나거든요.
"멜이다!"
이름표에 '멜'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멜'은 제주도 사투리로, 표준어로는 '멸치'에요. 이건 제주도에서는 돼지고기를 멸치젓에 찍어먹는다는 소리가 널리 퍼지면서 꽤 알려진 제주도 방언이에요.
'멜'이라는 표기를 보자 매우 반가웠어요.
"멜 삽서!"
내가 어렸을 때. 아침마다 들리던 '멜 삽서!' 소리. 아주머니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멸치 사라고 '멜 삽서!'를 외치고 다니셨다. 어린 날, 나의 아침은 '멜 삽서' 소리로 기억되고 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아침에 '멜 삽서!'를 외치며 돌아다니며 멸치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메엘 삽서어' 처럼 외치곤 하셨어요. 이걸 거의 마지막으로 들어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로 기억해요. 초등학교 2학년때 오후반을 했었거든요. 1학기때는 한 달간 오후반을 했고, 2학기때는 1주일간 오후반을 했어요. 오후반이라 아침에 집에 있으면 '멜 삽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이후에 몇 번 더 들어본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실상 거의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오후반 할 때였어요.
동문시장에서 나왔어요.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갔어요.
"어? 저거 뭐야?"
눈에 확 들어왔어요.
채 내립니다.
넋 들임.
이거 얼마만에 보는 거냐?
일단 눈에 들어온 것은 '채 내립니다'였어요. '체'가 아니라 '채'였어요. 이런 게 유독 눈에 잘 들어와요. 순간 '체'가 아니라 진짜 '채'가 맞나 헷갈렸어요. 이건 저를 시험에 들게 했어요. 당연히 '체'가 맞았어요. 아직도 체 내리는 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체 내리는 집은 저도 말로만 들어봤어요. 어렸을 적 제가 사는 동네에는 체 내리는 집이 없었거든요.
여기에 '넋 들임'도 있었어요. 넋 나간 사람 정신 돌아오게 한다는 거였어요. 뭘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여기에서 넋 들인다는 것은 무당집을 의미하는 건 아닐 거에요. 그것보다는 더위를 먹는다든가 경기를 일으켜서 정신 못 차리는 걸 의미할 거에요. 요즘은 정말 보기 어려운 집이었어요.
그래, 바로 이거야!
보물 찾기 하다가 황금 덩어리를 발견한 이 기분!
육지 배추!
제주도 사람들이 방언인줄 모르고 쓰는 바로 그 표현!
그것은 바로 '육지'.
'육지'라는 말은 표준어 맞아요. 표준어에도 있어요. 표준어에 있는 의미도 제주도 말에서 그대로 사용해요. 하지만 제주도 말에서 '육지'는 타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육지와 의미가 조금 달라요. 제주도 사람들이 말하는 육지는 '타지역'을 지칭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거든요. 바다의 반대 개념으로 '육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주도'의 반대 개념으로 '타지역'을 지칭할 때 '육지'라고 표현해요.
타지역 사람들은 '타지역'이라고 하면 될 걸 왜 굳이 '육지'라고 하냐고 물어보곤 해요. 그러나 이게 딱히 대체할 말이 없어요. '타지역'이라고 하면 그 느낌이 와닿지 않거든요. 바다 건너 세계와 제주도의 차이점이 확 와닿지 않으니까요. 바다로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느끼는 고립 지역 특유의 감정, 그리고 바다로 단절된 지리적 이유로 발생하는 차이점과 기후적 특징 등이 전부 빠져 있거든요. 제주도 말 '육지'를 굳이 번역한다면 '타지역'보다는 '여기와는 다른 세계'라 번역해야 원래 의미가 훨씬 더 잘 살아나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와는 다른 세계'요.
'여기와는 다른 세계'라는 말을 봤을 때 드는 느낌이 바로 제주도 사람들이 타지역에 대해 '육지'라고 말할 때 '육지'의 진짜 의미에요.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요. 제주도 사람들이 '육지'라고 하는 것은 '타지역'보다는 '여기와는 다른 세계'라는 의미에 훨씬 더 가까워요. 이걸 '이계'라고 해봐요. '이계'라는 말은 무슨 판타지 분류할 때나 쓰는 말이에요. 거기에다 육지보다 훨씬 더 이상한 단어에요. 타지역 사람한테 '너는 이계에서 왔지?'라고 해봐요. 백이면 백 다 무슨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렸더니 차원이동해서 제주도 왔냐는 소리로 알아들을 거에요. '여기와는 다른 세계'라는 의미까지 살려서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육지'라는 말을 쓸 수 밖에 없어요. 타지역 생활 오래하다 보면 타지역 사람들이 '육지'라는 말을 매우 이상하게 여기기 때문에 '육지'보다 '타지역' 같은 표현을 많이 쓰게 되기는 하지만요.
다시 동문시장으로 돌아왔어요.
식당이 하나 있었어요.
식당 메뉴 중에는 '창도름'이 있었어요. 이건 표준어로 '막창자'를 의미해요.
'이 정도면 보물 찾기 성공했네.'
사진으로 제주도 말을 몇 개 촬영했어요. 이 정도면 매우 만족스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