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한국 주식 채권

2020년 4월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사태 정리 - 모두의 성급한 판단이 부른 대참사

좀좀이 2020. 5. 3. 11:34
728x90

2020년 3월. 중국 우한 폐렴으로 인한 전세계적 경제 마비 상황이 발생하면서 주가가 무섭게 폭락했어요. 먼 미래에는 이 폭락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두고봐야할 거에요. 단순히 정말 중국 괴질 코로나19 때문인지, 아니면 리먼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양적 완화로 덮어놓기에 급급해하다가 실물경제와 주가의 괴리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거품이 터진 거라고 해석할 지는 미래에 알 수 있을 거에요.


중요한 것은 2020년 3월은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엄청나게 폭락했고, 3월 말부터 4월에는 반대로 주가가 무시무시하게 반등했어요. 눈 감고 아무 주식이나 하나 골라서 찍어도 무조건 오르는 장이었으니까요.


원래 주식시장은 매우 고요한 편이에요. 개별 회사 주식만 놓고 각각 살펴보면 나름대로 폭등과 폭락이 있지만 종합주가지수로 보면 크게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종합주가지수는 하루에 4%만 움직여도 엄청나게 크게 움직였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올해 3월과 4월에는 종합주가지수 자체가 매우 격하게 움직였어요. 종합주가지수가 크게 움직였다는 것은 개별 주식은 더 크게 날뛰었음을 의미하죠.


3월에는 일명 '동학개미'들의 삼성전자 매수로 시끄러웠어요. 삼성전자 주식은 2018년 1/50으로 액면분할했어요. 기존 주식을 50토막내어서 재상장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삼성전자 주식이 몇백만원짜리에서 몇만원짜리로 매우 저렴해졌어요. 3월 폭락장에서는 삼성전자 주식이 1주에 4만원대였어요. 액면분할 전 가격으로 계산해보면 200만원대이지만 액면분할 후 가격은 어쨌든 4만원짜리였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없이 매수할 수 있는 가격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믿을만하고 가치투자할 만한 주식이 삼성전자 뿐이라는 사실과 가격이 자기 주머니 사정에 맞게 누구든 매수할 수 있다는 점이 더해져서 많은 일반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했어요. 이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다음해 삼성전자 주주총회는 광화문 광장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어요. 1주만 있으면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데 온갖 사람들이 다 삼성전자 주식을 샀으니까요. 돈 없으면 없는대로 1주라도 사고 돈 있으면 있는대로 뭉텅이로 샀는데 1주만 있든 50만주가 있든 똑같이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4월 반등장에서 주식 시장, 더 나아가 우리나라 경제 뉴스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것은 정작 삼성전자 주식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4월 반등장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것은 바로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사태였어요.


아직까지도 경제 뉴스를 보면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사태와 관련된 뉴스가 나오고 있어요. 그러나 뉴스를 보면 매우 중요하지만 누락된 내용이 있어요. 그리고 선물시장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이해 자체가 불가능해요.


일단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선물 시장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아요.


선물 시장의 특징


'선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대충은 다 알아요. 미래에 체결될 매매계약을 맺는 것을 말해요. 예를 들어서 오늘은 5월 3일이에요. 6월 3일에 물건을 얼마에 구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하는 거에요.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알아요.


선물 시장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위 '선물 거래'에 대한 간단한 지식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선물 시장과 선물 거래는 매우 크게 다르거든요.


선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계약'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만기가 있어요. 만기일이 되면 계약에 따라 돈을 지불하고 현물을 인도받는 거죠.


선물 거래


위 그림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선물 거래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래에 체결될 계약'을 거래하는 거에요. 만기일이 되면 계약이 성사되고 계약을 매수한 사람은 실물을 인도받게 되요. 계약을 매수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계약서가 실물로 바뀐다'고 할 수 있어요.


원래는 이런 시장인데, 당연히 이렇게 거래가 일어나는 곳에는 온갖 투기꾼들이 꼬이기 마련이에요. 좋은 말로 트레이더, 딜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시세차익 노리는 투기꾼들이죠. 그러나 투기꾼들이 아무리 달라붙는다고 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아요. 만기일이 되면 계약이 성사되고 계약을 매수한 사람은 실물을 인도받는다는 사실은 그대로에요.


선물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은 '미래에 체결될 계약'이에요. 그런데 만기일이 되면 계약이 실제 체결되기 때문에 만기일 이후에는 계약이 실제 물건으로 바뀌어요. 실제 물건은 현물 시장에서 거래되죠. 현물로 바뀌어버린 과거 계약을 들고, 또는 현물을 들고 선물 시장에서 거래할 수는 없어요.


선물 만기


위 그림처럼 바뀌는 거에요. 만기일까지 계속 들고 있으면 계약이 현물로 바뀌기 때문에 참여해야 하는 시장도 아예 달라져버려요. 미체결 계약을 들고 있었을 때는 선물 시장에서 계약을 거래하지만, 만기일이 되어서 체결되면 그때부터는 현물을 들고 현물 시장에서 거래해야 해요.


하지만 선물 시장에 참여해 거래하는 대다수는 실제 현물을 인도받으려고 거래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시세차익을 남기기 위해 뛰어든 투기꾼들이죠. 이들이 계속 선물시장에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만기일 도래 전에 만기될 계약을 매도하고 만기일이 남아 있는 새로운 계약을 다시 매수해야 해요. 이렇게 만기될 계약을 매도하고 만기일이 남아 있는 새로운 계약을 매수하는 것을 '롤오버'라고 해요.


만약 현물을 인도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선물 만기 전에 만기될 계약을 매도하고 만기일이 남아 있는 새로운 계약을 매수해야 해요. 이것을 롤오버라고 한다고 했어요. 만기일 현물 가격보다 선물 계약이 비싸면 콘탱고, 반대로 선물 계약이 저렴하면 백워데이션이라고 해요.


선물 롤오버, 콘탱고, 백워데이션


뉴스 같은 곳에서 소개하는 롤오버, 콘탱고, 백워데이션 설명을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차월물 가격이 비싸면 같은 1계약의 가치가 높아진 거니까 더 좋아진 것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요. 그러나 위 그림을 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만기일까지 선물을 끌고 가면 계약이 실제 거래 체결이 되어서 현물로 바뀌어요. 계약이 현물로 바뀌면 거래되는 시장 자체가 선물 시장에서 현물 시장으로 바뀌게 되죠. 그러나 선물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물을 받아서 현물 시장으로 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계속 선물 시장에 남아서 시세 변동에 따른 차익을 얻기를 원해요. 그렇기 때문에 만기일이 임박하면 계약을 청산하고 새로운 계약을 다시 매수해야 해요. 이때 최종적으로 확정된 가격 - 즉 선물 만기일날 최종 가격이자 현물 가격보다 만기 기간이 남아 있는 선물 계약 가격이 비싸면 콘탱고, 저렴하면 백워데이션이라고 해요.


콘탱고 상황이 발생하면 계약 청산한 후 웃돈을 보태서 새로 계약을 매수해야 해요. 반면 백워데이션 상황이면 계약 청산 후 새로 계약을 매수하고 돈이 남아요.


선물은 이처럼 만기가 있어요. 만기일이 되면 계약이 체결되어 계약은 현물로 바뀌어요. 그렇기 때문에 주구장창 계속 들고 갈 수 없어요. 만약 선물 시장에 남아서 계약 거래만 계속 하고 싶다면 만기 도래 전에 들고 있던 계약을 모두 청산하고 만기일이 남아 있는 새로운 계약을 다시 매수해야 해요.


쉽게 말해서, 우리는 보통 어떤 것에 투자할 때 '연속적'이라고 생각해요. 주식을 사도 계속 갖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집을 사도 계속 갖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주식, 집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선물은 달라요. 이것은 불연속적이에요. 만기일 되면 계약이 실행되어 현물로 바뀌어버려요. 선물 계약은 주구장창 그대로 들고 있을 수 없어요.


원유 선물


ETN, 괴리율, 순가치자산 NAV, 유동성공급자 LP


ETN은 상장 지수 증권 Exchange Traded Note 이에요. 증권사가 기초 지수 변동과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발행한 파생 결합 증권이에요.


ETN은 증권사의 신용을 담보로 지수수익률만큼 투자자에게 수익을 보장하는 신용상품이에요. ETF는 커다란 실물 덩어리를 잘게 쪼개서 만든 증권이라면 ETN은 실물은 없고 오직 증권사가 특정 지수 변동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든 신용 상품이에요. 이 점에서 ETF와 ETN은 차이가 있어요.


ETF, ETN 모두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어요. ETF 및 ETN에 투자할 때 중요한 체크포인트로는 괴리율이 있어요. 이것은 쉽게 말해서 실제 가치와 가격의 차이라 보면 되요. 이것은 보통 순가치자산 NAV 값과 실제 거래되고 있는 값의 차이를 통해 알 수 있어요. NAV는 '실제 가치'라고 이해하면 되요. NAV보다 ETF, ETN 가격이 높다면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서 거래중이고, NAV보다 ETF, ETN 가격이 낮다면 실제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서 거래중이에요.


ETF, ETN 모두 유동성공급자 - LP가 존재해요. LP는 ETF와 ETN이 실제 가치와 동떨어진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세를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해요. 괴리율이 벌어지면 ETF, ETN의 실제 가치와 가격을 일치시키기 위해 물량을 풀거나 회수해요. LP는 ETF, ETN을 발행한 곳에서 보통 호가창 채워주는 의무가 있다고 이해하지만, 정확히는 ETF, ETN의 실제 가치와 가격이 너무 동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량과 가격을 조정하는 의무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LP가 현 IIV값의 ±6% 내외로 주문을 낼 수 있게 정해져 있어요.


선물 ETN, 선물 ETF는 선물에 간접 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갖고 있어요. 선물 거래를 위해서는 교육 이수 및 충분한 증거금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해요. 게다가 '마진콜'이라는 무시무시한 리스크, '캐시콜'이라는 생지옥도 존재해요. 마진콜은 증거금 부족으로 인해 강제청산당하는 것을 말하고, 캐시콜은 시세가 쭉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위든 아래든 확 튀어버리는 바람에 증거금을 다 날리는 수준을 넘어서 빚까지 생기는 경우를 말해요. 갑자기 큰 폭으로 갭상, 갭락할 때 캐시콜이 발생해요. 선물 ETN, 선물 ETF는 증거금도 필요 없고 마진콜, 캐시콜 맞을 위험도 없어요. 그래서 누구나 소소하게 투자해서 선물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어요. 그리고 선물에 투자하는 것처럼 롤오버 비용 문제도 그대로 갖고 있구요.


선물 시장은 메이저리그, 미니 선물 시장은 마이너리그, 선물 ETN, 선물 ETF 는 사회인 리그라고 생각해도 되요. 수익 및 위험성은 차이가 크지만 기본 특성은 비슷해요.


괴리율


사건의 발단


3월부터 국제 유가가 폭락하기 시작했어요. 국제적으로 경제가 중국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비되기 시작하며 석유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OPEC+ 회의에서 감산에 대한 의견이 불일치하자 양국은 증산 전쟁을 시작했어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런 증산 전쟁을 충분히 여러 번 해본 백전의 노장이었어요. 게다가 이란한테 치이고, 카타르에게 무시당하고 심지어 예멘 후티 반군한테 공격받아 자존심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황이었어요. 가뜩이나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이슬람 성지 메카, 메디나를 보유한 국가라는 점과 국제 유가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 의견에 반대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 물러설 수가 없었어요. 국제 원유 생산량 조절 능력에서 러시아에 밀리는 순간 사우디아라비아는 진짜 뭐 남는 게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나름 세계구 일진에서 동네 바보형으로 전락할 위기였어요.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많은 준비를 한 상태였어요.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모두 지도자가 매우 강경한 성향이었어요. 둘 다 작정하고 원유를 증산해대기 시작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국제 유가가 하락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증산하니 국제 유가는 완전히 곤두박질쳤어요.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돕기 위해 UAE, 쿠웨이트 같은 중동 산유국들도 덩달아 증산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국제 유가가 떨어지자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시세도 하락했어요. 국제 원유가 무지막지하게 하락하는 것을 본 투기꾼들은 설마 여기에서 더 유가가 떨어지겠냐고 생각하고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을 매수하기 시작했어요.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은 WTI 원유 선물 가격 변동을 정방향으로 2배로 움직여요. WTI 원유 선물 가격이 1% 상승하면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가격은 2% 상승해요. WTI 원유 선물 가격이 1% 하락하면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가격은 2% 하락하구요.


유가가 떨어질 수록 더 많은 투기꾼들이 몰려들었어요. 국제 유가가 언젠가는 반등할 거라고 여긴 거에요.


이 투기꾼들이 정말 한심하고 웃긴 것은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이 뭔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매수했다는 거에요. 위에서 제가 선물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이딴 거 하나도 모르고 사서 무조건 쥐고 버티면 어쨌든 유가가 올라서 대박칠 거라고 여기고 이걸 마구잡이로 매수한 거에요.


ETF고 ETN이고 '선물'이 들어간 것은 장기 투자에서 매우 불리해요. 선물은 계약을 거래하는 것이거든요. 만기가 되면 계약이 실행되어 계약은 현물로 바뀌어요. 계약이 현물로 바뀌는 것을 피하고 싶다면 만기가 도래하는 계약을 청산하고 만기가 남아 있는 계약을 새로 매수해야 해요. 이걸 롤오버라고 한다고 했어요. 롤오버 과정에서 만기가 남아 있는 계약이 더 비싸다면 청산하고 받은 돈에 추가로 웃돈 주고 새로운 계약을 사는 콘탱고 상황이 발생해요. 모르고 보면 1계약 계속 들고 가는 거니까 똑같은 1계약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이게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이에요. 계속 새로 바꿔줘야 하고, 이 과정에서 돈이 들어가요.


유가가 떨어질 수록 개미 투기꾼들의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매수세는 더욱 강해졌어요. 온갖 투기꾼들이 다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에 들러붙자 괴리율이 높아지기 시작했어요.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을 발행한 증권사는 괴리율이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세를 조정해야 하는 유동성 공급자 LP 역할을 담당할 의무가 있어요. 이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로, 안 지키면 징계당하고, 심각할 경우 상장폐지까지 가능해요.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가 실제 가치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자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를 발행한 증권사들은 이런 거품을 진압하기 위해 갖고 있던 물량을 매도했어요. 그러나 눈이 돌아간 투기꾼 개미들의 광기는 훨씬 더 거세졌어요. LP가 진압하려고 집어넣은 모든 매물을 싹 다 쓸어가버렸어요. 졸지에 LP는 모든 물량을 싸그리 털려버렸어요. 그냥 털린 게 아니라 완전 개털렸어요. 모든 매물을 다 쏟아부었지만 투기꾼 개미들이 싹 다 먹어치웠거든요.


LP가 갖고 있던 물량을 몽땅 다 털려버리자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시세는 완전히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시세에 거래중이기 때문에 LP가 갖고 있는 물량을 마구 매도해서 거품을 진압해야 하는데 진압용으로 던진 ETN마저 깔끔히 다 털려버렸거든요.


급해진 한국거래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는 건 어땠을까


4월 7일, 한국거래소는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괴리율이 미친듯이 치솟자 4월 8일부터  5거래일간 연속해 30%를 초과할 경우 매매거래를 1일 정지시키는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어요.


여기에서 특히 문제가 된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은 삼성증권의 삼성 WTI 레버리지 선물 ETN, 신한금융투자의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H), NH투자증권의 QV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H), 미래에셋대우의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였어요.


여기에서 봐야하는 점은 5일이 아니라 5거래일이라는 점이에요. 4월 8일 기준으로 5일 연속이면 4월 12일이지만, 5거래일 연속이기 때문에 중간에 토요일, 일요일이 들어가서 5거래일 연속은 4월 15일까지에요.


그러나 이런 경고에도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괴리율은 낮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가장 큰 문제는 개미 투기꾼들이 뭐가 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원유 가격은 오를 거라고 이걸 마구잡이로 매수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차트만 보면 2018년 10월에 최고점 30420원이었고, 3월 시작 가격은 8860원이었거든요. 선물 기반이라는 사실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계속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유가가 올라서 크게 횡재할 거라 여기고 있었어요.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은 선물 거래 특징인 만기일 때문에 발생하는 롤오버 비용 발생에 레버리지 특성상 하락시에도 2배로 하락한다는 특성이 있어요. 이런 걸 전부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어요.


한국거래소의 경고가 먹혔는지 4월 9일부터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시세는 하락하기 시작했어요. 4월 7일 최대 4100원까지 치솟은 가격은 4월 10일에 2830원까지 내려왔어요.


4월 10일, 한국거래소는 13일부터 괴리율이 심한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4종류 -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 QV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에 대해 13일부터 매매체결 방법을 접속매매에서 단일가매매로 전환할 거라 밝혔어요. 단일가매매 대상에서 해제되기 위해서는 다음 중 하나에 해당되어야 했어요.


1. 3매매거래일 연속으로 괴리율이 15% 미만

2. 추가발행 등을 통해 LP 보유비중(다음 매매 거래일에 추가상장 예정 수량 포함)이 20% 이상인 경우

3. 괴리율 관련 2매매거래일 이상 매매거래 정지된 종목의 매매거래 정지가 해제되는 경우


4월 13일,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4종류는 단일가거래로 거래가 진행되었어요.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 QV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은 30분 단위로 호가를 접수해 하나의 가격으로 매매거래가 체결되었어요. 이날 괴리율은 많이 하락했어요.


 

 4월 10일 괴리율

 4월 13일 괴리율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

 82.8

 47.7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

 61.6

 40.1

 QV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

 59

 40.7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52.6

 37.2


괴리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기는 했어요. 슬슬 눈치채고 도망가는 투기꾼들이 늘어나고 있었어요. 그러나 괴리율 30% 미만은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4월 14일. 한국거래소는 결국 5거래일 연속 괴리율이 30%가 넘은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에 대해 4월 16일 하루 거래 정지시키겠다고 발표했어요. 그리고 4월 17일에 거래를 재개시켜서 단일가매매로 매매하도록 하고, 이때도 괴리율이 30% 이내로 안정화되지 않으면 괴리율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매매거래정지를 연장하겠다고 발표했어요.


4월 17일.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의 괴리율은 30% 이내로 떨어지지 않았어요. 한국거래소는 4월 20일에 이 세 종목을 다시 거래정지시키기로 결정했어요.


4월 20일. 국제 유가 선물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했어요. 이날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한 이유는 이날이 바로 만기일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마지막까지 계약을 들고 있던 트레이더들이 현물인 원유를 인도받지 않기 위해 계약을 마구잡이로 던지며 마이너스까지 가버린 거였어요.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은 진작에 국제 유가 선물을 5월물에서 6월물로 교체했기 때문에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이 0원이 되어 상장폐지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어요.


마이너스 유가로 인한 상장폐지는 피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원유 가격이 많이 하락해 있었기 때문에 슈퍼 콘탱고가 발생했어요. 5월물을 팔고 6월물을 사는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었어요. 이로 인해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의 실제가치인 NAV는 당연히 더 떨어졌어요.


4월 20일부터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은 무기한 거래 정지 상태에 들어갔어요. 이 부분은 성급했다고 봐요. 괴리율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어요. 그러나 거래정지되고 유가가 하락하고 슈퍼 콘탱고 발생하면서 괴리율이 정신나간 수준까지 치솟아버렸어요.


신한금투는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 유동성공급자 LP 보유 물량 2억주를 충전했어요. 이 덕분에 4월 21일에 다시 거래가 재개되었어요. 신한금투가 충전한 LP 보유 물량은 무려 2억주였어요. 2억원이 아니라 2억주요. 신한금투는 이 망할 거품을 진압하려고 시장에 물량 폭격을 가했지만 투기꾼 개미들이 무려 971억원에 달하는 1억주를 싹쓸이 매도해버렸어요. 신한금투는 이것을 마지막으로 손들어버렸어요. 4월 23일부터 다시 거래정지되었어요.


삼성증권은 최대 2조원에 달하는 신규 물량을 투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상황이 막장으로 돌아가자 자신들의 물량을 투하해 거품을 진압하는 것을 일단 보류하기로 결정했어요.


이때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은 거래정지되면서 실제 가치인 NAV가 훨씬 더 떨어지는데 가격은 거래정지라 고정되어버리자 괴리율이 무시무시하게 치솟았어요.


4월 22일 괴리율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2281.77%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1826.04%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

 868.80%


이쯤 되면 이건 그냥 답이 없는 괴리율이에요. 삼성 것은 22.8배, NH 것은 18.2배, 신한 것은 8.36배에요. 그나마 1억주 매도 폭탄 투하해 상태 양호한 신한 것이 8.68배에요.


한국거래소는 아마 규정대로 했을 거에요. 규정대로, 그리고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래정지를 시켰겠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문제를 아주 핵폭탄급으로 키워버리는 조치가 되어버렸어요.


관련 규정을 보면 이런 경우는 유동성거래자 LP가 자기 의무를 소홀히하는 것을 방지하고 LP가 장난질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에요. 이렇게 LP가 진압하려고 해도 갖고 있던 물량까지 싸그리 다 털려서 손쓸 수 없게 된 상황에는 맞지 않는 규정이에요.


한국 거래소 규정에 의하면 증권사는 지표가치의 ±6% 내에서만 ETN 호가를 낼 수 있어요. 동시에 모든 상장 종목은 시장가격의 ±30% 범위 내, 레버리지 상품은 2배 추종이기 때문에 ±60% 에서 호가를 낼 수 있어요. 그런데 괴리율이 2281.77%, 1826.04%, 868.80% 이니 호가를 아예 낼 수도 없죠. 이 규정은 LP에게 가격 갖고 장난질치지 못하게 설정한 규정이지, 이번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사태처럼 투기 수요가 폭증해 LP 물량까지 싹 털리고 괴리율이 우주로 로켓 쏴버리는 상황에 맞는 규정은 아니에요. 증권사는 자신들이 보유한 LP 물량을 전부 쏟아내었지만 진압에 실패했고 호가조차 낼 수 없는 지경까지 괴리율이 동학개미 투기꾼들에 의해 치솟아버렸거든요.


단일가거래가 이루어질 때 괴리율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어요. 괴리율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거래정지를 하는 바람에 괴리율은 더 치솟아버렸어요.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 더 나았을 거에요. 어쨌든 괴리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으니까요. 차라리 단일가거래 체결시간을 30분 단위에서 1시간, 2시간 이렇게 늘리는 페넕티를 안기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어요. 규정 때문에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요.


선심이 뒤통수로, 삼성자산운용의 월물 교체


4월 23일, 삼성자산운용은 KODEX WTI원유선물(H) 보유월물을 교체했어요. 원래 KODEX WTI원유선물(H) 보유월물은 WTI 6월물 79.22%, USO ETF 20.78%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4월 23일, 삼성자산운용은 KODEX WTI원유선물(H) 보유월물 중 6월물 일부를 8월물 19.82%, 7월물 19.26%, Unites States Oil ETF(USO) ETF 18.65%, 9월물 9.42%로 롤오버했어요. 롤오버라고 하니까 어려울 수 있는데 6월물 일부를 7월물, 8월물, 9월물로 교체한 거에요.


삼성자산운용에서는 이런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어요. 원유 선물 5월물이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했어요. 감산을 한다고 하지만 저장시설이 꽉 들어차서 유조선까지 석유가 들어찬 상황이었어요. 생산 자체가 악재인 상황이었어요. 이러니 6월물이 또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할 경우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했어요.


삼성자산운용의 결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 했어요.


그렇지만 세상은 선심을 뒤통수 후려치기로 바꿨다.


하필 4월 23일, 4월 24일 연속으로 WTI원유 선물 6월물 가격이 상승해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며칠 지켜보고 롤오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건 삼성자산운용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였어요. 삼성자산운용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혼자서 국제 유가를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국제 선물시장에서 큰 세력들은 상상을 초월한 존재에요. 실제 4월에는 멕시코가 원유 선물 매도 포지션을 잡고 열심히 석유를 생산했어요.


주식판에서는 SK 최태원 회장이 선물 건드렸다가 1000억원 날려먹었다는 이야기가 매우 유명해요. 일설에 의하면 처음에는 잘 따고 있었는데 거래 규모 보고 초거대세력 여럿이 뭉쳐서 작정하고 털어버렸다는 말이 있어요. 중요한 건 대기업 회장님이 판돈 크게 갖고 들어가도 초대왕고래한테 휘둘리는 판인데 이걸 삼성자산운용 혼자 흔들겠다는 건 말이 안 되요.



2020년 4월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사태는 현재진행형이에요. 한국거래소에서 ETN, ETP의 LP 관련 규정을 바꾸든가, 아니면 서부텍사스유 가격이 미친듯이 몇 배씩 폭등해서 자연적으로 괴리율이 낮아지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어요. WTI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에 몰린 투기꾼 개미들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개미가 되었어요. 이건 버틴다고 언제 풀려날지 정말 기약없어요. 현물 기반이 아니라 선물 기반이거든요. 당연히 배당금 같은 것도 아예 없어요. 본전 찾는 문제가 아니라 거래정지 풀릴 날도 기약없어요. 거래정지 상태나 아니어야 손해보고 빠져나오지, 거래정지 상태니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에요. 간간이 LP들에게 진압하라고 매매를 허가해주는 날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때 괴리율이 제대로 잡힐지 의문이에요. 괴리율이 잡힌다면 거래는 계속 이루어지겠지만 대신 가격이 완전 박살나 있겠죠. 언론에서는 0% 확정이 우려된다고 하지만 거래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상황이어야 0%도 의미가 있죠.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거래소와 유동성공급자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어요. 무슨 대책을 실행하면 절묘하게 상황이 오히려 그게 약이 아니라 독이 되게 흘러가버렸으니까요. 유가 떨어졌다고 성급하게 덤벼든 사람들, 오른다고 성급하게 같이 덩달아 올라탄 사람들, 급히 진압하려고 나선 한국거래소 등 모두가 좀 성급히 판단해 행동했고, 여기에 서부텍사스유 선물 가격도 딱 뭘 해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변동했어요.


주식이든 ETF든 뭐든지 투자할 때 최소한 '선물'이 들어가 있는 건 조심해야 해요. 그 전에 자기가 투자하는 게 대체 뭔지 아주 간단한 지식은 갖고 있어야 하구요. 최소한 이게 뭉쓰고 버텨서 될 건지는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2020년 4월 WTI 원유 선물 레버리지 ETN 사태는 두고두고 회자될 거에요. 그 누구도 ETF, ETN 보면서 유동성공급자 LP가 투기꾼 개미들 폭주에 무너져버릴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을 거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니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