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시장에서 나와 다시 큰 길로 갔어요.
제가 걸어가고 있던 길에는 제주 상록회관이 있었어요.
아주 예전에 제주시 관덕정 근처에는 공무원 연금 매장이 있었어요. 공무원 연금 매장은 다른 가게들보다 상품 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했어요.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요. 어렸을 적에는 '공무원 연금 매장'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공무원 마켓', '공무원 슈퍼'로 부르기도 했어요. 공무원들을 위한 상점이 관덕정 근처에 딱 한 곳 운영되었었어요. 1990년대 초까지 운영되었을 거에요. 제가 매우 어릴 적 일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까지 운영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공무원 연금 매장은 아무나 들어가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공무원 연금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공무원 및 공무원 가족들 뿐이었어요. 입구에 들어갈 때 의료보험카드 검사를 했어요. 제 아무리 공무원 및 공무원 가족이라 해도 의료보험카드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었어요. 이 당시 일반인 의료보험카드는 하늘색, 공무원 의료보험카드는 아주 연한 연두색 비슷한 색이었어요.
의료보험카드를 보여주고 입구를 통과하면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매장 안에서 물건을 마음대로 집어들어서 장바구니에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한국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요즘도 과거 소련이었던 지역 가보면 가끔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가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단 코너마다 점원이 있어요. 물건을 자기가 직접 골라서 구경하고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원에게 어떤 물건을 보여달라고 하면 직원이 진열되어 있던 물건을 집어들어서 갖다주는 식이었어요. 직원에게 어떤 물건을 구입하겠다고 하면 종이에 뭘 써서 줘요. 이렇게 코너를 쭉 돌면서 자기가 구입하기로 한 물품을 고르고, 그때마다 그 상품이 적힌 종이를 받아요. 계산대로 가서 이 종이들을 보여주고 계산을 한 후, 이제 영수증을 들고 다시 코너를 돌며 자기가 구입하기로 한 물건에 대한 돈을 지불했음을 직원에게 보여주면 직원이 물건을 건네줘요.
관덕정에 있던 제주도 공무원 연금 매장은 이후 삼도1동에 제주 상록회관을 건설하면서 이주했어요. 이때부터는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상점이 되었어요. 그러나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격이 예전 공무원 연금 매장 시절만큼 파격적으로 저렴하지 않았어요. 설상가상으로 제주시 탑동에 이마트가 들어오고 제주시 여기저기에 할인 마트가 등장하면서 제주 상록회관은 장사가 안 되기 시작했어요.
안에 들어가보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아마 예전처럼 타 지역 백화점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곳은 더 이상 아닐 거였어요.
다시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제주 칼호텔이 나왔어요.
제주도에는 원래 까치가 없었어요.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정해진 국조는 없어요. 그러나 사회통념상 국조를 까치로 인정하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우리나라의 국조로 여겨지는 까치가 한국 땅인 제주도에 까치가 없다고 육지에서 까치를 들여왔어요. 이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에요. 제주도 사람들 모두 까치를 매우 신기해했어요. 드라마, 영화 같은 데에서나 보던 까치였으니까요.
까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 새라고 해요. 그래서 까치는 제주도에 성공적으로 잘 정착했어요. 제주도에 방사된 까치가 초창기에 집을 지은 곳 중 하나가 제주 칼호텔 근처 어디께였어요. 이 당시에는 제주도에서 까치가 매우 진귀한 구경거리라서 과학 관련 전시회에 까치집 떨어진 것을 전시해놓기도 했어요. 참고로 까치는 집 위에 다시 집을 짓는 습성이 있어서 집이 상당히 높아요.
까치가 처음 제주도에 방사되어 칼호텔 근처에 둥지를 만들었을 때 까치 구경하러 간 사람들도 여럿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지금은 제주도 여기저기에 까치가 많이 살고 있어요. 성공적으로 잘 정착했어요. 과일 쪼아먹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구요. 사람들 많이 사는 해안가 근처에는 까치가 많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중산간 지역에는 까마귀가 많이 살고 있어요.
제게는 너무나 익숙한 제주도의 가로수. 제주도 가로수는 바람 때문에 밑둥이 굵고 곱게 위로 쭉 자라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대학교 진학하면서 서울로 처음 올라왔을 때 정말 신기하게 본 것 중 하나가 바로 곧게 쭉 자란 가로수들이었어요.
제주 대성학원이 나왔어요. 여기는 제주도에서 재수, 삼수하는 학생들이 많이 가는 학원이에요. 제주도에서 재수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제주 대성학원을 다녀요. 일반 과정도 있지만 재수학원으로 더 유명한 학원이에요.
제주 대성학원은 상당히 오래된 학원이에요. 1971년에 개원한 학원이거든요. 제주도에서 재수 준비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학원이에요. 저 학원도 제주도 역사에서는 나름 의미있는 학원인 셈이죠.
이런 저런 풍경을 찍으며 걸어갔어요.
제주시민회관 사거리까지 왔어요.
미세먼지가 매우 심했어요. 분명히 맑은 날인데 하늘이 매우 뿌연 색이었어요.
"저거 뭐야?"
제주시에 스리랑카 식당?
얼핏 보면 T.G.I.프라이데이스 프랜차이즈 레스토랑과 매우 비슷한 로고가 그려져 있었어요. 그러나 그 안에 적혀 있는 문구는 Sri-Jeju Food 였어요. 옆에 합장하고 웃고 있는 여성 얼굴은 누가 봐도 남아시아인 여성 얼굴.
서울에도 거의 없는 스리랑카 식당이 제주시에 있다고?
엄청나게 충격받았어요. 그냥 충격받은 정도가 아니었어요. 이건 대박이라 해도 될 정도였어요.
'제주시에 외국인 노동자 대체 얼마나 많다는 거야?'
서울에도 스리랑카 음식점이 없어요. 한 곳 있기는 해요. 이수역 근처에 '세녹'이라는 카페가 있어요. 여기는 스리랑카 홍차를 판매하는 카페에요. 여기에서 식사 메뉴로 스리랑카 음식을 판매해요. 세녹 외에는 서울에 스리랑카 식당이 하나도 없어요. 이수역 세녹 카페에서 식사 메뉴 판매하는 시간 외에는 서울에서 스리랑카 음식을 접할 방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경기도 안산에는 스리랑카 식당이 있어요. 그러나 경기도 안산은 서울에서 멀죠.
스리랑카 음식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편이 아니에요. 스리랑카 노동자는 많지만 의외로 스리랑카 음식은 별로 퍼지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 남아시아 음식이라고 하면 네팔, 인도, 파키스탄 음식이에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음식은 진짜 안산 같은 곳이나 가야 먹어볼 수 있어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음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인도 음식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음식 먹어보고 먹어봤다고 퉁칠 수 있는 음식들이 아니에요. 정말 차이가 엄청나게 크거든요.
서울에서도 진귀한 스리랑카 음식 판매하는 식당이 제주도에 있다니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스리랑카 국기도 걸려 있었어요.
제주시 남문로타리까지 왔어요.
사진 속 뾰족한 첨탑은 제주도 제주시 제주 중앙성당이었어요. 이제 중앙로 번화가 입구까지 다 왔어요. 남문로타리 넘어서부터는 제주도 사람들이 '중앙로'라고 부르는 번화가 지역이었어요.
중앙로는 매우 한산했어요.
'골목으로 한 번 들어가볼까?'
중앙로는 별로 볼 것 없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동문시장 방향의 반대쪽 방향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기로 했어요.
인천문화당이 나왔어요. 여기는 제주도에서 문구도매점으로 꽤 유명한 곳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에는 새 학년이 시작할 때가 되면 여기 가서 문방구를 사오곤 했어요.
"아, 예멘 식당!"
예멘 식당이 나왔어요.
'저기서 점심 먹어?'
2018년 여름. 예멘인 난민들이 제주도 무비자 정책을 이용해 제주도에 대거 입국한 사건이 있었어요. 전국 사람들 다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들을 받아주고 도와줘야 한다는 무리와 이들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무리가 서로 엄청나게 싸웠어요.
당시 제주도 사람들의 심정은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제주도 사람들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모두가 이들이 육지로 올라가 온갖 사고치고 테러 저지르지 않을까 무서워할 뿐이었어요.
제주도 사람들이 가장 우려했던 점은 예멘 사람들을 지금껏 그래왔듯 제주도에 가둬놓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방치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제주도는 영어도 잘 못 하고 아랍어만 하는 예멘인들을 감당해낼 능력은 아예 없었거든요. 제주도에 무슨 일자리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아랍어 아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이슬람에 대해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구요. 그런데 지금껏 그래왔듯 일단 격리된 지역이니 거기에 놔둬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방치하거나 봉쇄해버리는 방식을 써서 제주도만 더 엉망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 썼고 관심도 안 가졌죠.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 무비자 정책 때문에 중국인들 폭증하고 덩달아 중국인 불법체류자와 중국인들이 저지르는 만행과 범죄행위 폭증해서 제주도 사람들은 살기 상당히 피곤해진 상태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예멘인들까지 들어와서 온갖 사고 일으키고 다니면 제주도는 말 그대로 대혼란 상태. 그렇다고 제주도에 무슨 초대형 공업단지가 있어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정착시킬 능력도 방법도 없었어요. 이 상태에서 제주도에 예멘인을 가둬놓고 될 대로 되라지 하며 방치해버리면 제주도는 보나마나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어찌 해결되기는 했어요. 그리고 제주도에 예멘 식당이 하나 생겼어요. 나름 제주도 역사에서 의미있는 식당이었어요.
'저기 가봐?'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어요. 점심은 혼자 먹어야 했어요.
초가집을 보며 고민했어요. 제주도에 있는 예멘 식당인 와르다 레스토랑을 갈 지, 아니면 제주도에서 상당히 오래된 중국집을 찾아가 짜장면 한 그릇 먹을까 계속 고민했어요.
'저기 가자.'
점심은 제주도에 있는 예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어요.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입구에서는 케밥을 만들어 팔고 있었어요. 식당 안에는 좌석이 많지는 않았지만 밥 먹고 있는 제주도 사람들이 있었어요. 종업원들은 예멘인이었어요.
메뉴를 쭉 봤어요. 예멘의 대표음식인 '만디'라는 음식은 없었어요. 대신 서울 이태원 모스크 근처에 있는 예멘 식당에서 판매하지 않는 예멘 음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안 먹어본 예멘 음식을 주문했어요.
음식이 매우 맛있었어요. 요리를 할 줄 아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었어요. 아랍 향신료 같은 거 구하기 어려울텐데 최대한 맛을 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때문에 유명한 식당이었지만 그보다는 그냥 평범한 맛집으로 훨씬 더 유명해져야 할 식당이었어요.
여기는 맛 때문에 유명해져야 하는 식당이었어요. 정치사회적 사건인 제주 난민 사태 때문에 유명해야 할 식당이 아니라요. 서울에서도 이 정도로 맛있게 아랍 음식 잘 하는 식당은 별로 없거든요.
서울에 있었다면 사람들이 줄 서서 먹을 맛집이었어요. 인스타 맛집이니 SNS 맛집이니 하면서 사람들 바글바글하고 대기표 나눠주고 했을 수 있어요. 이태원이나 홍대에 있었다면 초대박났을 거에요. 하지만 제주도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막 줄 서서 기다리며 먹는 일은 없었어요. 일단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육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월정리 같은 곳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하긴, 서울에 진짜 아랍 음식 맛집은 이상한 데에 숨어 있잖아.'
서울에도 진짜 아랍 음식 제대로 잘 하는 식당이 하나 있어요. 시청 쪽에 '헬로 베이루트'라는 식당이에요. 여기도 이태원, 홍대 같은 곳에 있었다면 난리났을 곳이지만 위치가 참 애매해서 사람들이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식당이에요. 제주시 와르다 레스토랑과 시청 헬로 베이루트가 어째서 맛집 방송에 등장 안 하는지 의문이었어요. 맨날 맛 엄청 없다고 악명 높은 곳만 절묘하게 골라서 찾아가구요.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식당에서 나왔어요.
제주 중앙성당으로 갔어요.
'관덕정 우체국 가야지.'
다음 목적지는 관덕정 우체국이었어요.
제주도 제주시 관덕정 우체국은 원래 제주 중앙우체국이었어요. 제주제일고등학교 쪽에 우편집중국이 생기면서 여기는 평범한 우체국이 되었어요.
제주 중앙우체국은 지금도 제주도에서 약간 특별한 우체국이에요.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우체국에서 만든 제주도 엽서를 판매하고 있거든요.
창구로 갔어요. 제주도 엽서가 있냐고 물어봤어요. 당연히 있었어요.
사진엽서는 총 4종류였어요.
위 사진에서 오른쪽 하단 제주도 초가집과 산방산 사진은 제주도 풍경 사진에서 교과서에 가까운 사진이에요. 저 사진과 거의 똑같은 사진이 공중전화카드 디자인으로 사용된 적도 있어요. 우리나라 공중전화카드 중 제주도 지역카드로 5만장 발행된 일련번호 M09808221-5 인 제주 초가 전화카드가 딱 저런 구도로 찍은 사진이에요. 초가집과 산방산 사진은 몇십 년 우려먹은 전통 소재일 거에요. 뼈까지 우려먹는 수준이 아니라 골분 내서 섭취하는 수준으로 끝없이 계속 우려먹지만 끝없이 인기좋고 그걸 넘어설 만한 것도 거의 없는 가장 제주도 이미지를 대표할 만한 소재에요.
왼쪽 상단 한라산과 조랑말 사진도 소재만 따지면 상당히 오랫동안 우려먹는 소재에요. 그러나 한라산을 저 각도에서 바라보며 찍는 사진 구도는 그렇게 오랫동안 우려먹은 구도까지는 아니에요. 참고로 한라산은 제주도에서 방향 찾을 때 매우 유용해요. 그리고 제주시 어디에서나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라산은 제주도 어디에서나 매우 쉽게 볼 수 있어요. 한라산 중턱부터는 국립공원이라 개발이 완전 막혀 있거든요. 그래서 개발 안 된 곳과 개발된 곳의 고저차가 심하고 도로를 건설할 때 계획적으로 건설한 곳이 많아서 한라산은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잘 보여요. 이 점을 이용하면 제주도에서 방향 찾기 매우 쉬워요. 자기가 대충 어디쯤 있는지만 알면 한라산 보고 바로 큰 방향 찾아서 걸어가면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오른쪽 상단 성산일출봉 사진 구도는 널리 이용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저건 꽤 나중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 구도에요. 애초에 항공샷을 아무나 막 찍을 수 없죠. 저건 돈 많이 쏟아부어서 찍은 사진이에요.
왼쪽 하단 주상절리 사진은...주상절리 자체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역사가 별로 안 길어요.
위 엽서 네 장 속 사진에서 사진 구도와 소재가 상업적, 홍보용으로 이용된 역사를 살펴보면 가장 오래된 것은 오른쪽 하단 산방산과 초가집이고, 그 다음은 한라산과 조랑말, 그 다음은 성산일출봉,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주상절리에요. 한라산과 조랑말이 산방산과 초가집만큼 오래 전부터 상업적, 홍보용으로 많이 이용되던 소재이기는 하지만 저 각도와 저 자리에서 한라산 찍는 구도가 많이 사용된 건 산방산과 초가집보다 이후에요.
제주도 관덕정 우체국에서 판매중인 제주도 사진엽서 네 종류를 모두 구입했어요.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었어요.
'슬슬 동문로타리 쪽으로 가볼까?'
우체국에서 나왔어요.
우체통에 엽서를 집어넣었어요.
바로 옆에는 관덕정이 있었어요.
관덕정에 있는 돌하루방도 여전히 안녕하셨어요.
관덕정 옆에 있는 돌하루방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2-1호, 2-2호에요.
돌하르방은 몇 가지 유형이 있어요.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돌하르방은 관덕정 옆에 있는 돌하르방이에요. 이 돌하르방이 제주도 돌하루방의 대표적인 모습이에요.
관덕정 옆 돌하루방이 가장 유명한 이유는 일단 관덕정이 제주도에서 보물로 지정된 곳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관덕정이 교통의 요충지인 곳이기 때문이에요. 워낙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이다보니 제일 많이 접하게 되는 돌하루방이 바로 이 관덕정 돌하르방인 것이죠.
제주도 돌하르방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캐릭터에요. 그러나 한편으로, 가장 캐릭터화가 안 되고 있는 소재이기도 해요. 시도는 있었어요. 2000년대 즈음으로 기억해요. 귀여운 돌하르방 캐릭터가 등장했어요. 제주도에서는 이것을 엄청나게 밀어주려고 했어요. 원래 투박한 돌하르방은 싹 사라지고 캐릭터 돌하르방만 토산품 가게에 있던 때도 있었어요. 그러나 반응은 매우 나빴어요. 가히 최악이라 해도 될 지경이었어요.
이후 이 캐릭터 돌하르방은 서서히 사라젹갔고, 여기저기에 보이는 캐릭터 돌하르방은 다시 원래 투박한 돌하르방으로 돌아왔어요. 지금은 돌하르방을 소재로 마크나 캐릭터를 만들 때 아주 살짝만 손대는 수준으로 그치고 있어요.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돌하르방의 매력은 거칠고 투박한 현무암 소재의 특징과 조금 화난 것 같은 표정에 있거든요. 그런데 귀엽게 만들어버리면 조금 화난 것 같은 표정이 주는 묘한 매력이 싹 사라져버려요. 실제 돌하르방에서 매력을 느끼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귀여운 돌하르방 보고 엄청난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어요. 여기에 캐릭터 돌하르방이라고 귀엽게 만든 것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조로증 걸린 어린이처럼 생겼어요. 이러니 대중의 환영을 받을 수 없었어요.
돌하르방의 매력은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자상한 호랑이 할아버지 이미지에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돌하르방 캐릭터 및 디자인은 돌하르방 원형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게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좋고 제주도 사람들도 좋게 평가해주고 있구요.
관덕정은 제가 어렸을 적과 크게 달라진 점이 두 가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이제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관덕정 안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게 바뀌었어요.
두 번째는 벽화가 완전히 복원되었다는 점이었어요.
국민학교 3학년 때였을 거에요. 학기 시작부터 중간고사까지 사회 시간에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배우는 단원이 있었어요. 교과서 자체가 '사회-제주도'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어요.
이때만 해도 제주도에서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은 관덕정 하나 뿐이었어요. 관덕정은 보물 제 322호로 1963년 1월 21일에 보물로 지정되었어요. 이후 불탑사 오층석탑이 1993년 11월 19일에 보물 제 1187호로 지정되기 전까지 제주도에 있는 보물은 관덕정 뿐이었어요.
제주도에 있는 보물을 검색해보면 제주시청내에 있는 탐라순력도가 있어요. 탐라순력도는 보물 제652-6호로 1979년 2월 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나와요. 그러나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제주도에 보물은 오직 하나 - 관덕정만 있다고 아예 교과서에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불탑사 오층석탑보다 지정일이 빠르기는 하지만 제주도에 들어온 때는 나중의 일일 거에요.
이때 사회 교과서를 보며 상당히 의아해했던 것이 하나 있었어요.
'관덕정에 벽화가 있다구?'
관덕정 안쪽을 아무리 봐도 벽화는 없었어요. 그런데 교과서에는 관덕정 내부에 벽화가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벽화가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었어요. 훼손이 너무 많이 되어서 그게 벽화인 줄도 몰라볼 정도였을 뿐이었어요.
그 벽화가 이제는 완전히 다 복원되어 있었어요.
관덕정 안에 앉아서 조금 쉬다가 다시 일어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