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먹어본 닭강정은 큰집닭강정 약간매운맛 닭강정이에요.
큰집닭강정을 처음 갔을 때였어요. 어떤 닭강정을 주문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보통 이런 치킨집 치킨맛을 볼 때는 후라이드 치킨, 양념치킨, 간장치킨 - 이렇게 셋을 먹어보는 편이에요.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은 당연한 것이에요. 여기에 교촌치킨이 만들어 이제는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메뉴인 간장치킨이 있어요. 이렇게 세 종류 먹어보면 대충 이 집이 어느 정도 맛있고, 어떤 게 강점인지 파악할 수 있어요. 다른 잡다한 치킨은 전부 이 셋에서 파생되어 나오다시피 하니까요.
'세 개 다 먹을 자신은 없는데...'
셋 다 먹어볼 자신은 없었어요. 큰집닭강정 가게에서 닭강정 대자에 콜라 500cc 패트병 하나 구입하면 1만원이에요. 2개 사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상자 크기를 보니 대자로 2상자 먹으면 저녁이 될 것 같았거든요. 일단 후라이드 치킨, 양념치킨, 간장 치킨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어요.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어요. 셋 다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후라이드 포기하자.'
순살 후라이드 닭강정은 포기하기로 했어요. 이것은 흔한 맛일 것 같았어요. 소위 말하는 '순살 닭튀김'과 별로 다를 게 없을 것 같았어요. 닭강정은 KFC처럼 크리스피한 튀김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아마 없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후라이드 치킨도 맛이 천차만별이기는 해요. 후라이드 치킨이라고 해서 순수 밀가루 반죽만 입혀놓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안에 후추도 넣고 이것저것 집어넣어요. 그래서 그 배합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그래도 후라이드 닭강정을 보니 그렇게까지 독특한 맛이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생긴 것이 평범했거든요.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후라이드 닭강정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후라이드 닭강정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여기는 뭐 양념 닭강정이 여러 종류야?'
양념 닭강정 맛은 매운맛 기준으로 4단계로 분류되어 있었어요. 매운맛, 중간매운맛, 약간매운맛, 순한맛이었어요.
"매운맛 많이 매워요?"
"그건 꽤 매워요."
"그러면 매운맛으로 주세요."
매운맛 닭강정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아, 속쓰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느낌. 매운 것을 먹는데 식도와 위가 연결되는 부위를 찾게 만들어주는 자극. 처음에 이 통증이 느껴지자 닭강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요. 한참 뒤에야 이게 매워서 느껴지는 통증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매운맛은 제게 무리였어요. 엄청나게 매운것을 무지 잘 먹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평범하게 매운맛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무리였어요.
며칠 후. 닭강정이 먹고 싶어서 또 큰집닭강정 가게로 갔어요.
"매운맛 너무 맵던데요? 이거 사먹는 사람들 있어요?"
"그거 확실히 많이 맵기는 한데 좋아하는 사람들 있어요. 그래도 우리 것은 괜찮은 거야. 다른 집 보면 막 맵게 하려고 캡사이신 쏟아붓는 데도 있어."
"그때 그거 먹고 속 쓰려서 깜짝 놀랐네요."
그러다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어요. 큰집닭강정의 매운맛은 4단계.
"저거 순한맛은 어느 정도에요?"
"그건 매운맛 아예 없어요."
"아, 애기들 먹는 거요?"
순한맛은 매운맛이 아예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이건 아기용 양념 닭강정.
"중간매운맛은요?"
"그것도 좀 매워요. 매운맛보다 살짝 덜 매워요."
매운맛은 확실히 먹다 속쓰려서 혼났어요. 중간매운맛도 그러면 위험.
"약간매운맛 주세요."
큰집닭강정 매운맛 닭강정 먹었다가 혼났기 때문에 약간매운맛 닭강정으로 주문했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사람들이 보통 중간매운맛이나 약간매운맛을 잘 사가고, 집에 아이 있는 사람들이 순한맛 잘 사간다고 하셨어요. 매운맛은 매니아가 있구요. 매운맛 닭강정의 매운 정도를 떠올려보니 중간매운맛도 꽤 매울 것 같았어요. 혀 조금 얼얼한 수준으로 즐기기에는 약간매운맛이 맞을 것 같았어요.
이번에도 닭강정 대자에 콜라 500cc 패트병 하나로 구성된 1만원짜리로 구입했어요. 치킨값이 하늘로 치솟은 지 오래지만, 닭강정으로 먹으면 가격이 확실히 저렴해요. 순살 닭강정이다보니 눈으로 보고 가늠한 양과 실제 양이 딱 일치해요. 치킨에서 뼈 빼고 살만 발라내면 닭강정과 먹는 양은 아마 비슷할 거에요. 치킨이 더 적을 수도 있구요.
아주머니께서 이번에도 닭강정을 엄청나게 많이 넣어주셨어요.
상자에 넘치도록 산을 만들어서 넣어주셨어요. 상자는 별로 안 커 보이지만 속에 들어가 있는 양은 꽤 많아요. 두 명이서 술안주로 먹을 거라면 닭강정 대자에 콜라 500cc 패트병 하나로 구성된 1만원짜리면 충분해요. 저야 아주 작정하고 밥으로 먹을 생각하고 구입하기 때문에 2만원어치 사서 오는 편이지만요.
뚜껑을 열 필요는 없었어요. 그냥 들렸거든요. 닭강정이 수북히 산처럼 쌓여 있어서 처음부터 뚜껑이 닫히지도 않았어요. 호일을 펼쳤어요.
역시나 시뻘건 닭강정. 불타오르고 있었어요. 일단 냄새를 맡아봤어요. 냄새에서 매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사진을 잘 보면 떡도 들어가 있어요. 떡볶이에서 사용하는 떡을 튀긴 것과 닭고기가 섞여 있어요. 순수히 닭고기 양도 적지 않지만 여기에 떡까지 들어 있기 때문에 양이 꽤 되요. 그리고 떡 때문에 식사용으로 먹기에도 괜찮아요. 닭고기만 쉬지 않고 먹으면 물리거나 입에 닭고기 냄새가 누적되어서 맛이 떨어진다고 느끼기 쉬워요. 그런데 떡도 꽤 들어 있어서 떡으로 그 냄새를 씻어내면 되요. 떡은 떡대로 또 맛있구요.
그래, 이거야.
중간매운맛 닭강정으로 주문했다면 후회할 뻔 했어요. 매운맛 닭강정에 한 번 혼나고 나서 구입하는 거라 난이도를 아주 확 낮춰서 약간매운맛으로 구입했어요. 만약 매운맛 닭강정이 흉통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중간매운맛을 주문했을 거에요. 그렇게 순차적으로 하나씩 먹어봤을 거에요. 그러나 매운맛에서 혼났기 때문에 난이도를 아주 확 끌어낮춰버렸어요.
양념은 달콤하고 고추장 맛이 있었어요. 쓴맛은 없었어요. 상당히 고전적인 양념치킨 맛이었어요. 물엿 들어가고 고추장 들어가고 매콤한 맛 나는 양념치킨 맛에 가까웠어요. 양념 맛은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구성이었어요. 하지만 친숙하고 쉽게 잘 안 물리는 맛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매운맛 강도. 일반 양념치킨 중 매콤하다고 하는 양념치킨 정도의 매운맛이었어요. 매운맛이 아주 확실하고 선명하고 뚜렷하게 느껴졌어요. 혓바닥을 가볍고 경쾌하게 자극하는 매운맛이었어요. 콜라를 마시고 싶게 만들지만 콜라를 꼭 마시지 않아도 되는 정도였어요. 취향에 따라 치즈 가루, 양파 시즈닝 같은 거 뿌려도 괜찮을 매운맛이었어요. '상식적으로 매운맛' 수준이었어요.
'처음부터 이걸 시켜야 했어.'
큰집닭강정 약간매운맛 닭강정은 매우 맛있었어요. 사실 제가 매운맛 닭강정 주문하고 기대했던 맛이 이런 맛이었어요. 콜라를 마시고 싶게 만들지만 참으려고 하면 참을 수 있는 매운맛. 혓바닥만 가볍고 경쾌하게 자극하는 매운맛. 다른 맛 시즈닝을 뿌려 먹으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뚜렷한 매운맛. 그리고 다 먹은 후에 후폭풍 없는 매운맛.
큰집닭강정에서 고통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매운맛을 먹고 싶다면 약간매운맛 닭강정을 고르면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