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예습의 시간 (2019)

[일본 여행기] 예습의 시간 - 16 일본 TV 방송과 어둠의 한류 전도사, 일본 도쿄 신주쿠역

좀좀이 2019. 9. 3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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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잤어요. 방 불을 끈 후 TV를 끄고 눈을 감은 후, 바로 골아떨어졌어요. 단 한 번도 자다가 깨어나지 않았어요.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침침했어요. 숙소에 창문이 있기는 했지만 맞은편 건물과 너무 가까워서 햇볕이 잘 들지 않았거든요. 여기에 커튼을 쳐놓고 잤기 때문에 방이 더욱 어두침침했어요. 눈을 뜨자마자 불을 켰어요. 더 자고 싶었어요. 그래도 일어나야 했어요.


'어제 진짜 무리했구나.'


무릎부터 시작해서 발바닥까지 얼얼했어요. 종아리를 주무르고 발바닥을 꾹꾹 눌렀어요.


'대체 내가 운동을 얼마나 안 했으면...'


가만히 생각해보니 많이 걸은 적이 별로 없었어요. 많이 걸었다고 할 만한 것이라고는 올해 봄에 서울에 있는 달동네를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였어요.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2017년에 24시간 카페 찾아다닌다고 걸어다닌 게 전부일 거에요. 그러니 몸이 완전 굳었고 체력도 엉망이었어요. 전날 일정이 예상 외로 힘들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아플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러나 다리에 무리가 온 게 느껴졌어요.


'오늘은 많이 걸을 일 없으니까 괜찮겠지.'


이럴 줄 알고 내가 여행 일정을 매우 널널하게 짜자고 했지.


예전 같았으면 하루에 몇 곳씩 돌아다니는 빡빡한 일정을 짰을 거에요. 예를 들어서 전날 일정을 '우에노 공원'이라고 딱 하나만 정해놓는 것이 아니라 우에노 공원 보고 최소 신주쿠 가서 돌아다닌다고 일정을 짰을 거에요.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닌다면 여기에 긴자도 집어넣었을 거구요. 그러나 이번에는 일본 여행 일정을 오직 도쿄 5박6일 일정으로 계획했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어요. 아예 빡빡하게 계획을 짤 생각 자체를 안 했거든요. 그게 천만다행이었어요. 어쩌다보니 전날 아키하바라까지 갔다오게 되기는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하도 축소 지향 일본인에 일본에 관한 것이라면 일단 '좁다, 작다'같은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뭐든지 금방 볼 줄 알았어요.


그러나 절대 아니었어요. 컸어요. 예상과 전혀 달랐어요. 정말 다행이었어요. 여행 일정을 매우 널널하게 짰기 때문에 예상치 않게 하루 무리했다고 해서 큰 타격이 올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전날 무리하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일정은 모두 널널했어요. 그렇게까지 고생할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오늘 하루 무리하지 않고 살살 다니면서 잘 먹으면 금방 회복될 거였어요. 그럴 거라고 믿었어요.


2019년 8월 28일.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무릎, 종아리, 발바닥을 계속 꾹꾹 눌러주며 풀어줬어요.


'TV나 틀어볼까?'


아침 8시 30분. 일본 공중파 TV 방송에서는 무엇을 보여주나 보려고 TV를 켰어요. 아침 방송이 나오고 있었어요.


"어? 저거 뭐야?"


두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홍대 일본 여성 폭행 사건


아...망할...


문재인 정부 주도의 반일 선동에 발맞추어 2019년 8월 23일 금요일 서울 홍대입구 근처에서 한국인 남자가 일본인 여성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것 때문에 한국과 일본 인터넷 세계 모두 발칵 뒤집혔어요.


관제 반일운동에 선동된 한국인들은 이 사건이 한국의 반일 선동과는 관계 없는 개인의 우발적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었어요. 한국인들은 수준 높게 반일운동을 펼치고 있고, 이것은 홍대에 있는 찌질한 인간이 저지른 범죄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게 반일 선동과 아예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왜냐하면 이 폭행 동영상을 보면 한국인 남자가 일본인 여자들을 쫓아가면서 일본인 비하 표현을 소리치는 것이 아주 생생하게 들렸거든요. 여기에 관제 반일운동 선동꾼 및 여기에 선동된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한국인 관광객 폭행 사건도 있었다고 열심히 양비론을 펼쳐보려고 하고 있었어요.


일본 인터넷 세계에서는 왜 지금 분위기 험악한 한국에 놀러가서 그런 봉변을 당하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피해자 일본인이 오히려 한국을 두둔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일본인 여성이 한국인 남자에게 홍대 번화가 길거리에서 두들겨 맞고 있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걸로 또 시끄러웠어요.


일본 TV 아침 방송에서는 이 사건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어요. 주요 논점은 대체 왜 그 번화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남자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일본인 여성을 도와주지 않았는지였어요.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반일 감정 때문에 안 도와준 거라는 식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현재 한국의 이상한 현실 때문에 못 도와준 거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어요.


어떠한 해석이 맞을까요. 당연히 후자죠. 한국의 이상한 현실 때문에 사람들이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줄 수 밖에 없는 거요.


이미 폭행이 시작되었어요. 이걸 어떻게 말려야 할까요? 이미 주먹 날리며 사람을 때리고 있는 상황에서 말리려면 가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어요. 저거 말리는 것은 절대 안 쉬워요. 이미 작정하고 폭행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가해자와 주먹다짐할 것까지 가정하고 말리려고 접근하는 수 밖에 없어요. 이건 심판이 존재하는 격투기 스포츠가 아니라 실전 스트리트 파이트니까요. 엉뚱하게 말리려고 하는 사람에게 덤벼들어 싸움에 휩쓸리는 상황까지 가정해야만 해요.


그러나 이렇게 선의로 말리려 하다 잘못하면 오히려 가해자에게 피해 보상을 해야 해요. 법이 그 따위로 되어 있어요. 심지어 경찰조차도 저런 상황에서 제압할 때 잘못하면 경찰도 가해자한테 피해 보상하라는 소송 걸릴 수 있어요. 범죄자의 인권만 지나치게 보장해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해도 섣불리 도와줄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거에요. 인권이란 원래 인간 대 인간의 사회적 약속이에요. 상호불가침 조약 정도로 해석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찌 된 것이 인권이 어느 순간부터 '천부인권' 소리하면서 종교 교리가 되어버렸고, 범죄자 인권은 보장받고 피해자 인권은 보장받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이게 현재 한국 현실이에요.


일본 TV 아침 방송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어요. 대충 분위기를 보니 다행히 한국 현재 상황이 이상해서 사람들이 도와주고 싶었다 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는 것 같았어요.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서는 가해자 이름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데 일본에서는 아주 확실히 실명을 완전히 까발려놨다는 것이었어요.


홍대에서 일본인 여성을 폭행한 한국인 남성은 아침부터 한국을 일본 전역에 널리 홍보하고 있었어요. 어둠의 한류 전파자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해내고 있었어요.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위험한 나라이니 절대 여행 오지 말라고 열심히 홍보해주고 있었어요. 이건 일본 TV 방송 문제가 아니라 이런 짓을 한 놈 문제죠. 없는 것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실제보다 더 과장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게 한국의 현실 그대로였어요.


하아...


한숨이 나왔어요. 외국 여행 중 외국 현지 뉴스에서 한국을 본 것은 딱 2번. 한 번은 2015년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를 여행할 때였어요. 이때는 한국에 메르스가 퍼져서 난리였어요. 그 다음이 바로 이 순간이었어요. 정말 너무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지경이었어요. 일본 아침 공중파 TV에서 아주 한국 특집이라고 열심히 방송해주고 있었으니까요. 일본을 긴장시키는 대한민국이라고 자랑스러워해야 할까요.


'정신 더욱 잘 차리고 돌아다녀야겠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한국 안에서 메르스가 퍼진 거라 이미 외국에 나와 있는 저와는 별 상관 없는 뉴스였어요. 멀리 동남아시아 국가 뉴스에 한국의 메르스 사태 뉴스가 나오고 있고, 인터넷 뉴스마다 무슨 중세 흑사병 창궐 시기처럼 보도되고 있어서 여행 일정을 억지로라도 더 늘려서 나중에 한국 돌아가야 하나 조금 고민되는 정도였어요. 그 외에는 별 거 없었어요.


그러나 이번 2019년 8월 23일 일본인 여성 관광객 폭행 사건은 달랐어요. 일본 현지에서 한국 현지의 반일 선동과 분위기가 얼마나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까지는 몰랐어요. 하지만 이 방송을 보니 한 가지 확실해졌어요. 현재 한국에서의 반일 선동이 일본에 아주 잘 전달될 거라는 것이었어요. 동영상에는 한국인들이 매우 많이 사용하는 일본인 비하 표현이 있었어요. 가해자가 원래 쓰레기였든 뭐였든 간에 중요한 건 바로 그 표현이었어요. 최소한 반일 선동으로 인해 일본에 적대적인 분위기라는 것이 참 잘 전달되었거든요. 정말 좋게 가해자를 두둔해주려고 해야 반일 분위기를 타고 흥분해서 그랬다는 소리겠죠.


'절대 으슥한 곳에 있는 곳, 후진 곳, 가성비 좋다는 곳은 피해야겠다.'


일본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결심한 것이었지만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했어요. 어느 나라든 다 똑같아요. 으슥한 곳, 후진 동네, 가성비 좋다는 곳을 찾아갈 수록 범죄에 당할 위험이 급상승해요.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에요.


가성비가 좋다는 곳은 대체로 저렴한 가격을 의미해요. '가성비'라는 단어가 꼭 저렴한 가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 그런 의미로 사용하곤 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값이 비쌀 수록 본전 생각이 더욱 간절해져서 아무리 가격보다 성능이 훨씬 더 좋아도 가성비 좋다는 생각은 잘 안 들기 마련이거든요. 이래서 대체로 가성비 좋다는 식당 같은 곳은 낙후된 동네, 으슥한 골목에 있는 식당인 경우가 많아요. 애초에 가격이 저렴하니 주요 고객은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구요. 이런 곳으로 갈 수록 당연히 민족차별, 인종차별, 성희롱 등을 당할 확률이 크게 올라가요. 여행에서 최우선은 무조건 안전. 이런 방송을 현지에서 직접 봤기 때문에 더욱 신경써야 했어요.


다음 주제는 바로 이것이었어요.


다마네기 남자


ダマネギ男!


"이놈들 이름 진짜 잘 붙였네!"


화면 상단을 보고 빵 터졌어요. ダマネギ男. 다마네기남. 양파 남자. 별명을 붙여도 참 삶은 소대가리처럼 잘 붙였어요. 어이없는데 또 비유가 참 적절해서 웃음 터지게 만드는 표현요.


일본은 저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었어요.


다마네기 Cho X. 그가 누구인가요.


SNS에 동학농민운동 죽창가 운운하면서 앞장서서 관제 반일 운동을 선동하던 그분 아니신가요. 무슨 부적 지니고 돌격하면 총알도 못 뚫을 거라고 하면서 일본군 기관총 앞으로 돌격했다가 과학 기술 앞에 피떡실신 당했다던 동학농민운동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신 그 분. 맨정신으로는 역시나 이순신 12척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쪽팔려서 말도 못할 역사인데 그걸 자랑스러워하며 SNS에 올리며 관제 반일운동 열심히 선동하시던 그분.


온갖 깨끗한 척, 청렴한 척, 공정한 척 혼자 다 하다가 과거의 자신이 오늘의 자신에게 한 방 한 방 카운터펀치를 날리고 있는 그 사람 - Cho X.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퍼거슨경의 명언을 다시 한 번 과학적으로 몸소 입증하고 계신 그 분.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전 국민들에게 함부로 입 털지 말고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희생하시고 있는 그 인간 다마네기 Cho X.


어이없어서 웃음만 나왔어요. 아주 그냥 아침부터 어둠의 한류 전도사 두 명이 연달아 일본 공중파 TV 방송에 나오고 있었어요. 우리가 공중파 방송에서 저기 북쪽에서 '위대한 령도자' 소리 나오는 거 비웃고 저기 서쪽에서 중국몽 따위 소리 하는 거 비웃고 있는데 그걸 이번에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꼴. 8월의 땡볕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도로 위 얼음처럼 국격이 아주 잘 녹고 있었어요.


이게 일본이 악의적으로 한국을 비하하는 거야?


솔직히 저도 반박하고 싶었어요. 이건 악의적으로 한국을 비하하고 모함하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전부 사실이라는 점. 왜곡도 날조도 아니고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어둠의 한류 전도사 두 명이 열심히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홍보하고 있는 일본 도쿄의 2019년 8월 28일 아침. 감정적으로는 절대 좋지 않은데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나오는 상황.


기껏해야 일본도 안 좋은 점 많다고 이야기하는 정도일까? 그런데 그건 정말 더 유치하고 찌질해 보이잖아. 무슨 유치원, 초등학교 애들이 싸우는 거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일본도 나쁜 거 많다고 빼액거려봐야 우리나라 안 좋은 점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잖아. 그래, 일본인들한테야 그럴 수 있다 치자. 일본인 1억 4천만 제외한 나머지 전 세계 사람들이 봤을 때는 엄청 한심해 보일걸? 국격이 아주 잘 달궈진 불판 위의 버터마냥 살살 잘 녹고 있었어요.


일본에게 무시당하면 기분 좋을 거 하나 없어요. 저도 일본인이 한국 무시했다는 내용 보면 상당히 기분 나빠요. 그런데 무시당하는 것이 싫다면 무시당할 짓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한국 아이돌들이 일본 진출해서 아무리 좋은 성과 거둬봐야 내로남불 다마네기 Cho X 가 열심히 그만큼 비웃음거리 만들어서 원점으로 끌어내리고 있었어요. 다마네기 Cho X 와 더불어 반일감정에 취한 한국인 남성은 홍대에서 일본인 여성 상대로 한국인의 주먹 맛 보여줬네요. 쌍으로 어둠의 한류 전도사 역할을 해내었어요.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표현대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한류 홍보 전도사였어요.


어이없어서 계속 깔깔 웃음만 나오는 상쾌한 아침.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거라면 강수확률 60%라고 했는데 아직 비가 안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재미있는 것이 하나 더 있었어요.


"저 패널 만들어놓은 거 봐라."


커다란 패널을 세워놨어요. 그 널찍한 패널에 뭘 아주 촘촘하고 빽빽하게 글도 써놓고 사진도 붙여놨어요.


이것이 혼이 실린 방송이란 말인가.


한국이라면 거대한 스크린에 화면을 띄워가며 방송을 진행했을 거에요. 일본 방송은 패널에 일일이 표를 붙여서 방송하고 있었어요.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었어요. 시각적 효과는 확실했어요. 뭔가 참 어마어마하고 정보가 많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진행자 손에 안테나처럼 생긴 쇠막대를 쥐어주고 그걸로 가리켜가며 진행하라고 하고 싶었어요.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몰라요.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 문제. 돈은 일본 방식이 더 많이 들겠죠. 일일이 자르고 붙이고 하려면 더 많은 일손이 필요할 거구요. 하여간 한국에서는 이제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어요. 초등학교 시절 괘도 걸어놓고 수업받는 것을 보는 것 같았어요. 요즘 한국은 어린이들도 PPT 만들고 있죠.


슬슬 씻고 나가야 했어요. 일정의 시작은 신주쿠역이었어요. 신주쿠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사쿠사역에서 긴자선을 타고 우에노역으로 간 후, JR로 갈아타서 신주쿠역으로 가야 했어요. TV를 보며 여러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웃는 동안 비가 그쳤어요.


2019년 8월 28일 아침 9시 44분. 숙소에서 나왔어요.


일본 아침 거리 풍경


아침 10시는 어느 나라나 조용한 시간일 거에요. 아이들은 학교 가 있고, 직장인들은 회사 가 있을 시간이니까요. 아침 장사를 하지 않는 가게라면 슬슬 가게 문을 열 준비를 시작하려는 때이구요.


일본여행


일본 여행기


아사쿠사 센소지에 도착했어요.


일본 도쿄 여행기


역시나 관광객이 많았어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센소지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日本 東京 旅行記


"오늘은 우리 안 가본 길로 가보자."


일정이 널널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길로 걸어가보기로 했어요.


일본 게이트볼


운동장에서 일본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게이트볼을 즐기고 계셨어요. 전날 내릴 비 때문에 자연적인 장애물인 물웅덩이가 여기 저기 생겨 있었어요.


"저거 어떻게 치는 거지?"


잠시 서서 게이트볼을 어떻게 치는지 구경했어요. 그러나 결국 게이트볼을 어떻게 치는지 보지 못했어요. 게임 진행이 매우 느렸거든요. 아무리 일정이 여유롭다고 해도 이것을 다 보고 서 있을 수는 없었어요. 그만큼 시간이 많이 남아돌지는 않았거든요. 어렴풋하게나마 신주쿠가 상당히 크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어요. 신주쿠 돌아다니려면 여유 시간이 조금은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발걸음을 옮겼어요.


"저거 설렁탕 한 그릇 아냐?"


일본 인력거


아침부터 관광객을 태운 인력거가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아사쿠사 센소지 근처에는 인력거가 여러 대 있었어요. 인력거 기사는 정말로 달려서 인력거를 끌었어요. 인력거 기사는 인력거에 사람을 태우고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고 있었어요.


'저건 일본어 잘 모르니까 무리다.'


인력거 체험은 가격이 저렴하지 않을 거에요. 제가 듣기로, 일본은 사람 손을 타는 것은 무조건 비싸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어요. 만약 한국에 저런 것이 있다면 이용료가 상당히 비쌀 거에요. 일본은 당연히 더 비싸겠죠. 게다가 인력거 투어를 제대로 즐기려면 인력거 기사가 이야기해주는 설명을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했어요. 인도의 릭샤,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존재하는 택시 같은 것이 아니라 인력거에 사람 태워서 돌아다니며 투어하는 것이었거든요. 아마 영어로 진행하는 인력거 기사도 있기는 할 거에요. 그러나 영어든 일본어든 외국어 설명을 듣는 것은 그 자체가 피곤한 일. 그래서 인력거는 그냥 바라만 봤어요.


아사쿠사역을 향해 계속 걸어갔어요.


"우리 아침 뭐 먹지?"

"아침?"

"그래도 뭔가 먹기는 해야 하잖아. 가면 점심일 건데."

"그러네."


아침은 간단히 대충 먹기로 했어요. 적당히 아침을 때운 후, 아사쿠사역으로 갔어요.


일본 도쿄 지하철 아사쿠사역


"긴자선은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야?"


일단 아사쿠사역 안으로 들어왔어요. 긴자선 타는 곳이 전혀 안 보였어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긴자선은 없었어요.


'일본 지하철 환승 참 고약하네.'


일본 여행 갔다온 사람, 일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 모두가 한결같이 일본이 한국보다 못한 것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지하철을 꼭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해요. 이건 워낙 유명해서 일본 가본 적 없는 사람들도 다 아는 이야기에요. 한국은 이명박 전 대통령님께서 서울 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대중교통 환승제를 실시하면서 대중교통이 혁명적으로 좋아졌어요. 초기에는 버스철이니 뭐니 하면서 욕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애용하고 있고, 서울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으로 널리 퍼져서 서민들의 대중교통비 부담을 크게 줄여주고 있어요. 반면 일본은 지하철 환승조차 매우 불편하게 되어 있어요. 대중교통에서는 진정한 극일을 이루어냈어요.


그렇게 악명 높은 지하철. 처음부터 쉽지 않았어요. 아사쿠사역 입구로 들어갔더니 긴자선 타는 곳이 아니었어요. 긴자선을 타기 위해서는 다른 입구로 가라고 나와 있었어요. 무턱대고 일단 들어간 다음에 적당히 환승 통로 찾아가면 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어요. 그냥 입구 자체가 달랐어요.


浅草駅 あさくさえき


입구를 찾았어요. 개찰구를 통과해 긴자선으로 갔어요.


Asakuta station, Ginza Line, Tokyo, Japan


긴자선을 타고 우에노역으로 갔어요.


上野駅


'잠깐만, 나 관광객이지?'


누가 봐도 저는 한국인. 관광객이었어요.


당신은 한국인입니다. 누가 봐도 관광객입니다. 당신은 관광객 티가 너무 많이 납니다. 이 날씨에 외투를 걸치고 있다는 것 자체부터 자신이 관광객이라는 사실을 너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은 관광객입니다.


'왜 지금까지 위축되어서 사진을 마구 찍을 생각을 안 했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날까지 사진을 별로 많이 찍지 않았어요.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사진기를 함부로 꺼내지 못하고 있었어요.


나 관광객이잖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관광객이었어요. 누가 봐도 저를 일본인이라 여기지 않을 거였어요.


왜 지금까지 사진을 안 찍고 있었지?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상황. 아무래도 너무 오랜만에 외국 여행 와서 감을 아예 잃어버린 모양이야. 예전의 좀좀이 시절을 망각해버렸어요. 나, 좀좀이야. 한 장이라도 더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귀국해서 여행기 열심히 쓰던 좀좀이라구!


Ueno station, Tokyo, Japan


그래도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사라지기를 기다린 후 우에노역 사진을 찍었어요.


일본 도쿄 우에노역


"여기는 뭐 이렇게 더워?"


사진을 찍은 후 든 생각은 딱 하나였어요. '여기 진짜 더럽게 덥다.'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훅 느껴졌어요. 전날 우에노역 왔을 때 그 느낌 그대로였어요.


일본 도쿄 우에노역 스테인드글라스


우에노역에서 신주쿠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JR 노선으로 갈아타야 했어요. 우에노역은 환승 표시가 잘 되어 있었어요. 환승 표시를 따라 걸어가자 JR 우에노역이 나왔어요. 바로 전날 봤던 그 우에노역 풍경이 펼쳐졌어요.


일본 도쿄 지하철 JR 노선


후텁지근하고 찐득거리는 우에노역 공기는 그대로였어요. 인간 체온이 더 뜨거운 열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어요.


'여기는 에어컨 안 틀어주나?'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었어요. 한국과 정반대였어요. 한국은 지하철역 들어가면 매우 시원해요. 우에노역은 정반대로 역 안으로 들어가면 더 뜨거웠어요. 숙소에서 아사쿠사역까지 걸어가며 쐰 공기보다 우에노역 안에서 쐬고 있는 공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고 습했어요. 땀이 줄줄 흐를 것 같았어요. 어서 이 후텁지근한 우에노역에서 제발 벗어나고 싶었어요.


'우에노역은 저주받은 곳이야.'


우에노역은 아사쿠사역보다도 더 덥고 습했어요. 아사쿠사역도 우에노역과 똑같이 덥고 습하다면 말을 안 해요. 아사쿠사역과 비교해도 우에노역이 압도적으로 뜨겁고 습했어요. 아사쿠사역은 그래도 바깥 공기와 비슷한 편이었어요. 우에노역은 말 그대로 한증막 사우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래도 받아들여야 했어요. 이건 현실이니까요. 대한민국 서울 지하철 기준으로 백날 천날 생각해봐야 답이 나올 것이 아니었어요.


JR 우에노역


2019년 8월 28일 오전 11시 11분. JR 우에노역 승강장에 도착했어요.


JR Ueno station JR 上野駅


"아, 살겠다!"


바깥 공기가 정말 상쾌했어요. 객관적으로 본다면 바깥 공기도 덥고 습한 공기였어요. 그러나 우에노역 내부가 하도 후텁지근해서 바깥 공기가 매우 시원하게 느껴졌어요.


우에노역 플랫폼


일본 도쿄 JR 우에노역 승강장


전철이 왔어요. 전철을 탔어요. 좌석이 있었어요. 의자에 앉았어요.


일본 도쿄 지하철


지하철 내부는 선선했어요. 대한민국 서울 지하철 약냉방칸 정도였어요.


우에노역에서 신주쿠역까지는 금방이었어요. 뜨거워진 몸이 조금 식나 싶었더니 신주쿠역 도착해서 지하철에서 내려야 했어요.


일본 도쿄 JR 신주쿠역


드디어 왔다, 신주쿠역!


신주쿠역. 新宿駅 しんじゅくえき. Shinjuku Station.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신주쿠역. 2011년에 세계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철도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지하철역. 하루 이용객이 315만명. 온갖 노선이 들어와서 혼잡에 혼란으로 악명높은 신주쿠역. 역사와 지하도 전체에 존재하는 출구만 해도 200여개.


신주쿠역은 이번에 2번째 오는 것이었어요. 2009년에 몰타 갈 때 일본 도쿄를 경유한 적이 있어요. 이때 일본항공 JAL 에서 제공해준 숙소에서 나와 잠깐 도쿄 시내로 간 적이 있어요. 이 당시 갔던 곳이 바로 신주쿠역이었어요. 신주쿠역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어요. 일본을 몇 번 가본 친구가 저를 신주쿠역 바깥으로 데려간 후, 알아서 각자 돌아다니다 만나자고 했거든요.


친구가 길을 잘 찾아서 나갔기 때문에 복잡하다는 것도 못 느꼈어요. 단지 사람이 참 많은 곳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스스로 신주쿠역에서 출구를 잘 찾아나가야 했어요.


trip to Tokyo, Japan


지하철에서 내려서 드디어 악명 높은 신주쿠역 역사 안으로 들어갔어요.


"사람 엄청 많네?"


일본 도쿄 신주쿠역 내부


사람이 많다. 출구도 많다. 게다가 나가는 것도 어렵다.


서울 지하철역보다 훨씬 더 혼잡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온갖 노선 다 모이는 신주쿠역인데, 일본 지하철역 특성상 자유로운 환승도 안 되었어요. 환승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신주쿠역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어요. 정신 잘 차리고 출구를 찾아야 했어요. 모든 신경을 다 출구 안내문 표지에 쏟아부었어요.


일본 지하철 치한 방지 만화 포스터


신주쿠역 벽에는 지하철 치한 방지 만화 포스터가 있었어요. 종이 한 장에 만화로 내용을 빽빽히 채워놨어요. 이것도 한국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한국은 만화를 잘 활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게다가 이렇게 종이 한 장에 뭔가 수두룩 빽빽하게 뭘 그리고 쓰지 않아요.


포스터에는 みんなの勇気と声で痴漢撲滅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모두의 용기와 목소리로 치한박멸'이라는 말이었어요. 한국이라면 저 문구를 크게 적고, 지하철 치한 신고 번호를 적어놓았을 거에요. 한국이었다면 저 문구를 그대로 사용한다 해도 저 문구를 표어처럼 적어놓고, '지하철 치한 신고는 1577-1234'라고 크게 적어놓고 관련 있는 그림 하나 간단히 그렸을 거에요. 이렇게 섬세하게 만화로 무슨 상황인지 일에서 백까지 다 설명하려 들지 않구요.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들고 잘 와닿는지는 개인 취향이에요. 이건 양국간 우열을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도쿄 여행기


열심히 길을 찾아 갔어요.


일본 도쿄 신주쿠역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나?


어려웠어요. 당장 제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가는 상황이었어요.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어요.


일본 동경


출구 안내 표지판을 봐도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안 되겠다. 역무원한테 물어보자."


일단 여기까지는 크게 틀리지 않고 잘 온 것 같았어요. 그러나 이제부터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하면 왠지 크게 헤맬 것 같았어요. 머리 속에 존재하는 신주쿠란 무슨 공원이 있고, 거기에 흡연구역이 있으며, 사방팔방으로 동시에 건널 수 있는 커다란 교차로 횡단보도가 있다는 것 뿐이었어요. 그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어요. 신주쿠역에서 한참 오른쪽으로 걸어갔더니 무슨 서점이 하나 있었고, 가서 '파우로 코에료노 렌킨슛사 아리마스까'라고 했더니 강철의 연금술사를 들고 와서 '파우로 코에료노 쇼세쯔 아루케미스토 아리마스까'라고 다시 물어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 일본어판을 구입했다는 것만 기억났어요. 어디가 어디였는지는 당연히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어요. 친구 따라서 졸졸 쫓아가기만 했으니까요. 저 스스로 길을 찾아서 나갔다 해도 2009년 일이니 10년 전 일이었어요. 기억해낼 것도 없었지만, 설령 기억해낼 것이 있다 해도 그렇게 자세히까지 기억날 리가 없었어요.


역무원을 찾아봤어요. 역무원이 있었어요. 다가가서 목적지를 보여준 후, 말했어요.


"저는 여기로 가고 싶습니다만..."


일본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어요. 이때 일본의 언어 문화가 참 크게 도움되었어요. 한국에서는 확실히 문장을 다 말하는 것이 예의에요. 그러나 일본에서는 확실히 말하지 않고 끝을 뭉개도 크게 실례가 되지 않아요. 사실 외국 나가서 굳이 어렵게 '저는 이곳에 가고 싶은데 여기를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여기로 어떻게 가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장황하게 말할 필요는 없어요. 지도나 주소 보여주고 '저 여기 가고 싶어요. 그런데...' 정도만 말해도 99%는 지금 길 헤매고 있어서 길 물어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로 다 알아요. 추가로 알아야할 말이라면 '걸어서' 정도 있겠네요. 간혹 택시 타고 가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역무원은 친절하게 어느 출구로 나가면 되는지, 그리고 그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줬어요. 역무원이 알려준대로 갔어요.


Shinjuku, Tokyo


출구로 나갔어요.


일본 도쿄 신주쿠


"이딴 건 안 맞아도 되는데..."


일본 뉴스에 나온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날 비 내릴 확률은 60%였어요. 일본 도착한 날인 8월 26일, 그 다음날인 8월 27일에도 8월 28일 일기예보는 강수확률 60%였어요. 일기예보는 딱 맞아떨어졌어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요. 모두가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길바닥은 아주 축축하게 젖어 있었어요. 정말 쓸 데 없이 일기예보가 잘 맞았어요.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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