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절반 본 건가?'
당연히 아니었어요. 아직도 절반 채 못 봤어요.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은 지구관이 총 6층, 일본관이 총 3층이에요. 특별전 하나 본 것을 합치면 총 10층을 관람해야 절반 본 것이었어요. 아직도 관람해야 하는 층이 매우 많이 남아 있었어요. 몇 시인지 확인했어요. 이제 거의 오후 4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지하 3층을 휙휙 둘러보는 데에 한 시간 걸렸어요. 벌써 과학관에서 보낸 시간이 2시간이었어요.
'이거 예상이랑 완전 벗어나는데?'
여행 일정을 계획할 때였어요.
"일본 가면 당연히 일본에서 제일 큰 과학박물관도 가봐야지! 한국이 일본 얼마나 따라잡았나 봐보자!"
한국이 일본을 얼마나 많이 따라잡았는지 보기 위해 제일 좋은 곳 중 하나가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이라고 판단했어요. 가면 일본 과학 기술 같은 것을 직접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일본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걸 또 단시간에 따라잡은 한국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여기에 현재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어느 정도인지 한 번에 다 볼 수 있는 공간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을 꼭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박물관이 커봐야 2시간이지.'
이 당시 제 예상 관람시간은 총 2시간이었어요. 2시간이면 아주 충분할 거라 예상했어요. 박물관 중 2시간 걸리는 곳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거든요. 더욱이 외국 나가서 박물관 2시간 보는 것은 더욱 어려워요. 설명을 일일이 다 읽을 외국어 실력도 있어야 하고, 그 설명을 보고 뭔가 와닿는 게 있어야 박물관 보는 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요. 안 그러면 그냥 휙휙 지나가며 보기 때문에 2시간 정도 걸릴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크지 않은 이상요. 처음에는 신기해서 관람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나중에는 봐도 다 그게 그거고 감흥도 별로 없어서 휙휙 보기 때문에 3층짜리 박물관이든 5층짜리 박물관이든 2시간이면 아주 충분한 편이에요.
그런데 벌써 2시간을 국립과학박물관 안에서 보냈어요. 그 2시간 동안 전체의 절반도 못 본 상태. 예상을 크게 벗어났어요. 이날 일정이 오직 우에노 공원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시간에 쫓길 일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이 박물관 다 보고 나서 지척에 있는 다른 박물관들 보는 건 이미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 만약 다른 박물관도 보려면 당장 여기에서 나가야 했어요. 그러나 여기를 아직 절반 채 보지 못했는데 나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래도 이제 더 놀랄 건 없겠지.'
더 이상 지하 전시실 같은 굉장한 것은 없지 않을까 싶었어요. 공룡 화석 모형 잔뜩 모아놓은 곳 정도의 위압감을 주는 곳은 아마 지하에 있는 것 하나 뿐일 거에요. 그렇게 추측했어요. 놀랄 만한 것은 다 나왔는데 이제 또 무슨 전시물로 사람 더 놀라게 할까 기대되지 않았어요. 이제 지상 전시실은 별 생각 없이 대충 둘러봐도 아무 문제 없는 곳일 거라 추측했어요. 사실 아무리 감흥이 있다고 해도 너무 지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구요. 2시간 동안 박물관 안을 돌아다녀서 다리가 아팠거든요.
'이거 편하게 여행하자고 온 건데...'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을 일정에 집어넣으면서 오늘 일정은 아주 널널함의 극치라고 생각했어요. 그깟 박물관 하나 보는 것이었으니까요. 널널하고 느긋하게 박물관 관람하며 휴식 같은 여행을 할 계획이었어요. 애초에 이번 일본 여행 계획은 하나도 힘들지 않게 계획했어요. 전투적으로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거든요. 그 이전에 도쿄 여행 중 어디를 가고 싶은지 떠오르는 곳이 별로 없었고, 여행 계획 세우는 과정에서 제가 알아본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강행군해야 하는 일정 자체가 안 들어갔어요. 도시간 이동도 없고 어차피 도쿄에서 5박 6일 계속 머무를 건데 힘들게 일정 짜서 뭐하나 싶었구요.
하지만 예상과 전혀 달랐어요. 이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은 크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아직도 더 남아 있었어요.
일본어 모르면 재미없게 볼 곳이 아니었어요. 이건 일본어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얼마나 제대로 다니면서 똑바로 공부했는지를 요구하는 박물관이었어요. 지금까지 여행 중 가본 박물관과는 아예 달랐어요.
"빨리 들어가자."
지상 1층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어요.
인류의 진화.
이런 거야 보면 그냥 알 수 있어요. 보나마나 제일 왼쪽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죠. 이 정도는 무난한 수준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이 정도 전시해놓은 곳은 여러 곳 있어요. 게다가 저것들은 다 모형이구요.
"진짜 예쁘게 잘 전시해놨다!"
산호 전시를 매우 예쁘게 잘 전시해놨어요. 저 좁은 공간에 산호를 참 많이 갖다놨어요. 좁은 공간에 많은 산호를 배치하려고 신경 정말 많이 쓴 것이 보였어요. 산호 하나하나 다 주목받을 수 있게 신경써서 배치해놨어요. 만약 둥글넙적한 것은 둥글넙적한 것끼리, 뾰족뾰족한 것은 뾰족뾰족한 것끼리 모아놨다면 커다란 몇 개 군으로만 눈에 들어왔을 거에요. 이것들을 적당히 섞어줘서 모두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줬어요.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뒤죽박죽 섞어서 배치해놓지는 않았구요.
뭔가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것 같으면서 전체를 이루는 하나하나가 모두 주목받을 수 있는 배치였어요. 비슷한 것을 전부 묶어서 배치해 놓는 방법, 일렬로 쫙 늘여서 배치하는 방법보다 훨씬 좋아 보였어요.
"얘들은 천장도 가만히 안 놔두네?"
천장에는 거대한 바다 생물 모형이 잔뜩 매달려 있었어요. 천장에 거대한 바다 생물 모형을 매달아놔서 아쿠아리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어요. 머리 위에 저렇게 바다 생물 모형을 매달아놔서 아쿠아리움 분위기를 만들어낼 생각을 해냈다는 것이 참 대단했어요. 당연히 여기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 여럿 있었어요. 최대한 아쿠아리움 풍경을 연출해보려고 노력해놨거든요.
'축소 지향적을 떠나서 저거 다 펼쳐놓으면 공간 안 남아나겠다.'
축소지향적 일본인. 정말 많이 들어본 말이에요. 한국에서 일본 문화를 설명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문구에요. 이것도 축소지향적 일본인 성향이 드러난 거라고 해석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나 그 이전에 저렇게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을 벽면에 일렬로 쫙 붙여놓으면 전시 공간이 매우 부족할 거에요.
여백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부족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저렇게 한 것인지, 일본인들이 여백을 원래 별로 안 좋아해서 저렇게 한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천장조차 여백이 없었어요. 벽면은 당연히 전시물로 꽉 차 있었구요.
다행히 여기는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소파가 마련되어 있었어요. 다리가 아파서 소파에 앉았어요.
"여기도 천장까지 다 활용했어!"
아...일본에서 여백의 미란 죄악인 겁니까.
여기도 천장까지 섬세하게 신경썼어요. 천장에도 적재적소에 전시물을 배치해놨어요. 천장에 매달아놨으니 전시물보다는 장식이라고 해야겠죠. 분위기를 정말 숲 같은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설치한 장식물요. 전후좌우 모두 전시물인 수준이 아니라 전후좌우에 천장까지 전시물이 보이는 상황. 일단 굉장했어요. 이렇게 공간을 최대한 낭비하지 않고 활용하라고 한 노력만큼은 진짜 일어서서 손바닥에 멍이 들 때까지 박수쳐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기억할 것이 있다.
나 벌써 2시간 동안 박물관 돌아다녔다고!
이게 매우 중요했어요. 2시간 동안 박물관을 돌아다녔어요. 적당히 얼레벌레 돌아다닌 것도 아니었어요. 전시물 하나하나 보면 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전시물을 신경써서 관람했어요. 전시 기술 같은 것도 꽤 배울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집중하며 본 게 2시간. 휴식이 필요했어요. 뇌가 쉬어야할 때가 되었어요. 그런데 여기는 사방팔방, 심지어는 천장까지도 전시물이었어요. 뇌가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어요.
여백의 미에 익숙한 한국인인 제게 이 상황은 정보과잉이었어요. 뇌에서 과부하 걸렸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왔어요. 박물관 측에서는 아마 동선을 일본관 본 후에 한 번 쉬고, 지하 3개 층 전시실 보고 한 번 쉬고, 그 다음 지상관 3개 층 전시실 3개 층 보고 가라는 의도를 갖고 전시물을 배치했을 거에요. 박물관 구조를 보면 실제 이렇거든요. 3개층 보고 한 번씩 쉬는 타임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저는 특별전 보고 넘어와서 바로 4개 층째 돌고 있는 상황. 여백의 미가 없었기 때문에 정보과잉으로 인한 뇌의 과부하에 걸릴 수 밖에 없었어요. 얌전히 앉아서 수업 듣는 대학교 전공 수업 강의도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연속으로 하면 학생들 피곤해서 나가떨어져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 몸까지 써야 했어요.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라 직접 걸어서 돌아다녀야 했으니까요. 10분이라도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해야 다음 관람이 재미있을텐데 그럴 시간조차 주지 않는 전시물 배치였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대로 여백도 주고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노력한 전시물 배치였어요.
여기도 전시물이냐!
눈 좀 쉬려고 찾은 것이 나무. 이건 그냥 배경 만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인 줄 알았어요. 당연히 이런 공간을 활용 안 할 일본이 아니었어요. 여기에도 전시물을 배치해놨어요. 무시하려고 해도 무지 신경쓰였어요.
참 꼼꼼하게 전시물을 배치해놨어요. 이쯤 가면 '축소 지향적 일본인'이라는 말이 일본인들이 축소하고 싶어서 축소하고 공간에 꽉꽉 우겨넣는 게 아니라 진짜 공간 없다보니 억지로 머리 굴려서 최대한 우겨넣다보니 그렇게 된 거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될 지경이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야...
진짜 부러워.
대체 뭔 깡으로 일본 따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거냐? 미친 거 아냐?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정말 부러웠어요. 속으로 욕이 나왔어요.
야, 전장에 나가라고 할 거면 최소한 총이랑 총알은 주고 나가라고 해야 할 거 아냐? 무슨 2차세계대전 소련군 우라돌격이냐? 네 명한테 총 한 자루 주고 일단 맨손으로 달려가다 죽은놈 총 주워서 돌격하라는 거야?
반일? 그래, 좋아. 그런데 우리도 이런 거 하나는 만들어놓은 다음에 반일하고 극일하자고 떠들어야 되는 거 아냐?
단순히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이 한국에 있는 모든 박물관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고 우수한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연인들도 많이 보여!
이게 진짜 심각한 문제였어요.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으로 데이트하러 온 연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과학박물관이 대체 뭐가 있을까요. 더 문제인 것은 이 도쿄 과학박물관 입장료는 620엔. 제가 아침밥으로 사먹은 편의점 도시락 가격이 498엔이었어요. 이런 박물관 하나 제대로 잘 세우면 자연스럽게 국민들 지적 수준이 높아질 수 있어요. 그래서 과거 서구 열강들이 박물관을 멋지게 꾸미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던 거구요. 단순히 과학 매니아만 오는 게 아니라 연인들이 데이트하러 온다는 것은 그만큼 인재가 탄생할 수 있는 확률을 상당히 많이 끌어올린다는 것을 의미해요.
정부 주도의 예술 지원 사업 따위 다 집어치우고 관련 공공기관 예산 및 관련 공공기관 근로자들 임금 대폭 삭감하고 구조조정한 후 이런 굉장한 박물관 하나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한국 발전에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창의력도 뭘 주고 새롭게 써보라고 해야 창의력이죠. 전시도 전시지만 연인들이 데이트하러 와서 돌아다니는 것이 크게 신경쓰였어요. 이게 바로 국력 차이라는 게 느껴졌구요. 이런 박물관은 문화예술 산업 발전을 위한 토목공사에 해당해요. 문화예술산업에서 SOC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모조품이든 진품이든을 떠나서 이 정도 대규모 전시를 하는 박물관, 그리고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로 선택해 갈 수 있는 전시물 배치와 대중교통 접근성은 상당히 중요해요. 국민들에게 일본에 대항해 싸우라고 선동할 거라면 국민들에게 싸울 무기 한 개는 들려줘야죠. 군인을 전장으로 보내는데 최소한 총과 총알은 들려보내줘야 하고, 총에 총알을 장전시키고 총을 발사하는 방법은 알려주고 싸우라고 해야죠.
그라데이션!
'일본인들 그라데이션 참 좋아하나보네.'
곤충을 아주 수두룩 빡빡하게 전시해놨어요.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빽빽하게 곤충 표본을 전시해 놓으면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놨다는 것이었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전시물 배치에 그라데이션을 꽤 많이 신경쓴 것을 계속 봐왔어요. 곤충 전시를 보자 일본인들이 그라데이션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곤충 전시조차 그라데이션을 만드려고 노력해놓은 것을 보면요.
2층 전시실로 올라갔어요.
여기는 일본어를 모르면 머리를 조금 많이 써야 하는 전시실이었어요. 전파, 통신 쪽 전시물이 많았거든요.
여기는 적당히 둘러봤어요.
'여기에서 느낀 거 솔직히 글로 쓰면 아마 욕 엄청 먹겠지?'
씁쓸했어요. 저도 알아요. 여행기에 '일본 별 거 아니다!' 이렇게 적어놔야 한국인들이 좋아할 거에요. 최대한 일본을 욕하고 이상한 나라고 형편없는 나라라고 적어놔야 보는 한국인들이 매우 기뻐하겠죠. 그런데 아닌 건 아니잖아요. 이게 설령 전설의 일본 버블 경제때 뿅하고 생긴 거라 해도 좋아요. 어쨌든 한국에 있는 박물관들보다 훨씬 엄청난 게 있고, 남녀노소 다양한 일반인들이 와서 구경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좋은 게 있고 우리나라도 허튼 곳에 예산 낭비할 게 아니라 이런 거 따라잡아야 한다고 하면 분명히 욕먹을 거에요. 욕 안 먹으려면 최대한 여기 형편없고 거지같은 곳이라고 폄훼해야 할 거에요. 그런 현실이 참 씁쓸했어요.
가뜩이나 씁쓸한 기분에 여행기를 대체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되어 심란한데 더 심란하게 만드는 것이 등장했어요.
한국인들 99.999999999%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갑자기 근대화되고 선진국이 되었다고 알고 있을 거에요. 미국 페리 제독이 몰고 온 흑선이 대포 몇 방 발사하자 일본인들이 훈도시에 오줌 지리며 벌벌 떨었고, 그때부터 개화해야 하는지 쇄국해야 하는지 놓고 서로 상투 잡고 일본도 휘두르며 싸웠다고 상상할 거구요. 메이지 유신만 아니었다면 일본은 한국보다 열등한 나라로 머물렀을 거라고 추측할 거에요. 한국 국사 교과서가 그따위로 가르쳐주니까요.
그러나 실제로는 임진왜란 때 이미 국력은 역전된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일본은 전국시대에 이미 네덜란드 상인들과 교류하고 있었거든요. 일본 역사를 대충 훑어보면 '난학'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요. 난학이란 일본 에도 시대 - 도쿠가와 막부 시절 당시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에 들어온 유럽의 학문, 기술, 문화 등을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에요.
사실 우리가 국사 배운 것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뭔가 상당히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어요.
유럽인들이 일본한테 조총만 팔아먹었을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조총에 조선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리고 조총은 일본이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니라 당시 제한적으로 교역하던 서양인들로부터 구입한 것이라는 것까지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길 수 밖에 없어요. 과연 서양인들이 일본에 조총만 팔아먹으려 했겠냐는 거죠. 그 당시가 무슨 지적재산권이니 하는 개념이 있을 때도 아닌데요. 이것저것 다 팔아먹었을 거에요.
우리는 국사 시간때 대놓고 메이지 유신 전까지 일본은 조선보다 열등하고 미개했다고 세뇌당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대해 한국인들이 더욱 격분하는 것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한국인들이 보면 어리둥절하고 전혀 이해 못 할 전시물이었어요.
맨날 '왜 조선시대 유물, 유적은 통일신라, 고려보다 형편없어요?'라고 원초적으로 느낀 것을 질문하면 '그건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다 약탈해갔기 때문이란다'라고 핑계대기 바빠요. 삐까뻔쩍한 백제 금동대향로, 신라 금관, 고려 청자 보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가면 나오는 것이 온통 휴지로도 못 쓸 서적과 종이쪼가리 뿐이에요. 고려 청자는 지저분한 설명 없어도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는데 그놈의 조선 달항아리 백자는 지저분한 설명 잔뜩 붙이고 어떻게든 감성으로 승부보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고려 청자에 비해 열등한 걸 숨길 수 없어요. 무슨 과학적으로 그 흰색이 알베도 100%에 근접한다든가 전체 곡률이 너무나도 일정하다든가 하는 설명도 없구요. 그래서 원초적으로 발생하는 질문인 '대체 조선시대 유물은 왜 그 이전 시대 유물들보다 형편없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돌아오는 대답은 기껏해야 일본인들이 약탈해갔다는 말 뿐이에요.
과연 그럴까요.
그 말이 진짜여서 정말로 일제강점기때 다 털려갔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 유물이 있어야 할 거에요. 그런데 없어요. 아무리 다 털려갔다 해도 국내에 어떻게든 흔적이라도 남아 있기 마련인데 그것도 없어요. 진지하게 의심을 가져볼 부분이에요.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지속된 전쟁이에요. 이 시기부터 시작해서 한국과 일본의 유물을 비교해보면 매우 재미있어요. 이상해도 한참 이상할 거에요. 분명히 국사 교육 받은 것에 의하면 조선이 일본에 비해 우위라고 배우는데 말이에요.
"뭔 소쿠리를 갖다 놨어?"
라디오 옆에 금속 소쿠리가 있었어요.
"아!"
소쿠리를 덮자 라디오에서 지글거리는 소리만 났어요. 소쿠리를 벗기자 다시 방송이 맑은 소리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금속이 전파 방해를 일으키는 걸 체험해보라고 만들어 놓은 거구나.'
제 앞에서 이것을 만들어본 사람들 모두 이게 대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았어요. 전부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갔거든요. 이것은 금속이 전파 방해를 일으키는 것을 체험해보라고 만들어놓은 것이었어요. 이것은 아이큐 테스트급의 난이도가 있었어요.
지상 3층 전시실로 올라갔어요.
"으악!"
이쯤 가면 이렇게 전시해놓을 생각을 한 인간이 인간 맞나 싶을 지경. 아니, 그 이전에 이렇게까지 전시물을 모을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기겁할 정도.
공룡은 뼈다귀 모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했다.
그런데 이 박제들은 또 뭐야?
그리고 이거 왜 이렇게 많아?
할 말을 잃어버렸어요. 지상 2층은 조금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상 3층은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상 3층 전시실은 굉장하다는 말로 표현이 다 안 될 정도였어요. '그래도 너네도 사람이니까 지상 3층 전시실 정도는 적당히 꾸며놨겠지'라는 예상은 완전 박살나버렸어요. 머리가 멍해지다 못해 이제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휴식 따위란 허용하지 않았어요.
대체 이것들 다 어떻게 모은 거야?
진지하게 이거 전시 담당자가 '제발 전시물 좀 그만 들여와!'라고 절규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벽면은 조류 박제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어요.
조류 전시도 그라데이션이냐!
큰 새와 작은 새의 조화. 큰 새에서 작은 새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각 효과를 노린 것 같았어요.
전시실에는 위에 올라가서 볼 수 있게 관람대가 마련되어 있었어요. 지하 1층 공룡 화석 전시실과 비슷했어요.
'진짜 볼 게 끝이 없네.'
체력, 정신력 모두 엄청나게 소비시키고 있었어요.
축소 지향적 일본인? 이걸 이렇게 우겨넣지 않고 한국처럼 널찍널찍하게 여백의 미 살려가며 배치했다가는 지구관이 6층이 아니라 15층 되었을 건데?
박물관이 오후 5시에 문 닫으니 관람객들은 슬슬 나갈 준비 하라고 하는 방송이 나왔어요. 오후 4시 30분이 넘었어요.
지상 3층 전시실에서 나왔어요.
'이제 지구관 다 봤네.'
멀리 도쿄 스카이트리 타워가 보였어요. 2019년 8월 27일 16시 33분. 지구관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탈출할 자격을 획득했어요. 하나도 빠뜨린 것 없이 관람을 다 끝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