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프링글스 Xtreme

좀좀이 2012. 8. 22.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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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가끔 프링글스 사 먹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단 한 번도 프링글스를 사 먹은 적이 없었어요.


이유는 가격. 프링글스 큰 통이 10750숨이에요. 제 아무리 암시장 환율로 계산해도 4달러가 넘는 가격. 이래서 프링글스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사 먹을 엄두도 못 내었어요.


먹고 싶으면 한 번 사 먹고 말지, 뭘 엄두도 못낸다느니 호들갑 떤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텐데


콜라 1.5리터 6개가 큰 마트 가면 18000숨이에요.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가 18000숨이구요.

괜찮은 식당에서 밥 먹는 게 얼추 12000숨이고

시장에서 밥 사 먹으면 4000숨이면 먹어요.


프링글스 한 통 사 먹으면 전기구이 통닭 반 마리가 파닥파닥 날아가는 것이고, 콜라 1.5리터 3개를 들이 마시는 셈이에요.


그래서 다른 나라 갔을 때에는 사 먹더라도 절대 우즈벡에서는 프링글스를 안 사먹던 나날의 연속. 그런데




콜라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프링글스 Xtreme'라는 것이 있었어요.


"이거 처음 보는 맛인데?"


게다가 아주 맵다고 겉에 당당히 써 놓았어요. 물론 저는 절대 안 믿어요. 서양인들이 아무리 과자에 맵다고 별 짓을 다 하고 그려놓아도 먹어보면 안 매워요. 그냥 적당히 맛있는 맛.


그렇게 몇 번을 당해도 이놈의 쓸 데 없는 도전정신은 사그라들 줄 몰랐어요. 꼭 맵다고 하는 과자는 먹어보고 '뭐야? 이거 완전 별로잖아? 비빔면 먹으면 석달 열흘 속쓰리다고 할 놈들이네'라고 피식 웃어보아야 해요. 그래서 콜라 1.5리터 6개와 이걸 사왔어요.


집에 오자마자 당연히 땀범벅. 후딱 샤워를 했어요. 진짜 낮에 나갔으면 죽었음. 밤이라고 기온 좀 떨어져서 나갔는데도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되니 땀방울 뚝뚝뚝. 거기다 집에 오는 길에 비닐봉지 찢어져서 콜라 6개를 품에 안고 왔어요.


샤워를 하고 새로 구입한 콜라를 한 잔 따르고 이 과자에 도전했어요.




봉지를 뜯자마자 올라오는 식초 냄새.


"우엑!"


생긴 건 멀쩡한데...아니, 지극히 평범한 감자칩인데 뜯자마자 올라오는 식초 냄새. 아 망했네...


이미 한 입 먹어보기도 전에 모든 건 결정되어 있었어요. 프링글스 식초&소금맛보다 살짝 연한 식초 냄새가 진동했어요.


'아..이거 어쩌지?'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한 개를 입에 집어넣었어요.


"으컥컥컥 캑캑캑!"


식도를 간지럽히는 식초의 향기. 맵기는 매웠어요.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프링글스 중 가장 매웠고, 다른 맵다고 하는 과자들과 비해서도 이건 최상위권. 하지만


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빡침은 어쩔 거니?


친구가 사와서 저는 한 조각만 시식하는 거라면 뭐 괜찮아요. 하지만 이건 제가 사왔고, 저 혼자 다 먹어치워야하는 과자. 한 조각 먹자마자 식초 냄새 때문에 기침이 나올 거 같았어요. 시큼한 걸 좋아한다면 모르겠지만 저는 신 거 먹는 걸 엄청 싫어해요. 특히 식초 냄새라면 질색이에요. 제가 아주 혐오하는 음식이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진 밥이고 다른 하나는 식초에요. 식초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질색이에요. 찹쌀 넣고 질게 지은 밥에 식초 냄새 풀풀 풍기는 반찬 주면 바로 우웩.


버리고 싶었지만


이건 전기구이 치킨 반 마리이자 콜라 1.5리터 3통이다.


평범한 감자칩 맛이라도 나면 그럭저럭 어떻게 먹어보겠는데 이건 완전 타바스코 핫소스 맛. 대체 감자칩인데 감자칩 맛은 다 어디로 도망간 거야? 억지로 하나 하나 쉬지 않고 먹는데 단전에서부터 빡침이 뒤통수까지 올라올 겨를도 없었어요. 하나 먹고 으컥컥 캑캑캑 삼키고 다시 하나 입에 집어넣고 으컥컥 캑캑캑...열받고 빡친다고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내가 지금 타바스코 핫소스 덩어리를 씹어먹는 거야, 감자칩을 먹는 거야. 분간도 안 되었어요.


먹다가 콜라를 마셨어요.


"우오옷! 콜라 대박 맛있어! 콜라 짱! 콜라 대박!"


한국에서 양념 치킨 먹다가 마시는 콜라. 바로 딱 그 맛이었어요. 마치 양념 치킨을 뜯다가 콜라 한 모금 마시는 기분이었어요. 여기 와서 그렇게 양념 치킨이 먹고 싶었어요. 대체 며칠을 양념 치킨을 그리워하며 늦은 밤 쓸쓸히 콜라만 마셔대었던가. 그런데 이걸 먹고 콜라를 마시니 꿈에 그리던 오매불망 양념 치킨의 향기가 입에서, 코로 느껴졌어요. 아아 고마워요. 이 과자 콜라 맛을 업글해주고 양념 치킨 때문에 생긴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어 주는구나!


이때부터


으컥컥 캑캑캑

으적으적

꿀꺽

우오오! 양념치킨!


다시 


으컥컥 캑캑캑

으적으적

꿀꺽

우오오! 양념치킨!


이것의 무한 반복.


한 번에 여러 개씩 입에 우겨넣었으면 빨리 먹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어요. 도저히 식도를 자꾸 건드려대는 식초 냄새 때문에 1개 이상 넣을 수가 없었어요. 1개는 기침까지는 안 나왔지만, 2개를 입에 집어넣으면 기침이 나올 거 같았거든요.


프링글스 꽤 좋아하는데 제발 줄어들기를 바라며 억지로 먹은 건 이게 처음이었어요. 식초&소금맛은 제가 산 게 아니라 제외. 그런데 대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다 먹고 나자 그제서야 열받음과 빡침이 뒤통수에 도착했어요. 정말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 하나로 먹었어요. 마치 집에 굴러다니는 반찬을 보고 '이건 오늘 다 먹어치워야 한다!'는 자취생의 사명감을 가지고 먹듯 먹었거든요.


결론 : 이 과자는 콜라를 맛있게 마시게 해주는 과자임.


그리고 여담인데...이 글이 제 블로그 400번째 글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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