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09 투르크메니스탄 마리

좀좀이 2012. 8.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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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어야 정상일 것 같은 풍경 속에서 무언가 큰 게 나왔어요.


'설마 경마장인가?'



딱 보아도 동물과 관련된 시설임을 알 수 있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말 경주장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이 나라가 얼마나 말을 좋아하냐하면 비자 홀로그램에도 말이 그려져 있어요. 대충 그려진 게 아니라 잘 보면 눈까지 그려져 있어요. 게다가 제 고향에는 경마장이 있어서 경마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 알고 있었어요. 이 나라에서 야외에 있을 만한 거라면 말 경주장과 축구장 정도일텐데 축구장이 저렇게 생겼을 리는 없었어요.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말 경주장은 뭣하러 세웠지? 참 할 일 없는 나라네."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에 말 경주장을 세워놓았다고 생각하니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말 경주장 입구.


"응?"


Mary가 왜 적혀 있지?



Mary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도시 이름이에요. 원래 투르크멘어로 읽으면 '마르'. 그러나 라틴 문자로 'Mary'라서 '마리'라고 읽는 도시에요. '메리'라고 안 읽은 게 다행이기는 한데 워낙 잘못 읽는 방법이 많이 알려져서 저도 '마리'라고 쓰기는 해요. 중요한 것은 이 도시가 벌써 나왔다는 것이었어요.



말 경주장 앞을 지나 시간이 조금 더 가자 이번에는 항공 시설이 나타났어요.


"군사 비행장인가?"


고향에 공항이 있어서 비행 시설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었어요. 게다가 여기는 황량한 들판이기도 하니 군사 비행장 하나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어요. 오히려 첩첩산중에 비행 시설이 있다면 그게 더 놀라운 것이죠. 이런 드넓고 황량한 벌판에 활주로 있고 비행 시설 있는 거야 전혀 놀라울 것이 아니었어요.



"설마 지금 마르 온 거야?"


단순한 군사 비행장이 아니라 엄연한 공항이었고, 건물 위에는 'MARY AEROPORTY'라고 적혀 있었어요. '마르 아에로포르트'...진짜 마르 온 거야?


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커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멀리서도 어렴풋 보이는 대통령 사진. 니야조프 사진이 아니라 지금 대통령인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사진이었어요. '이렇게 황량한 곳에 공항이 왜 있나' 싶기도 했지만 김포 공항과 제주 공항이 특이한 경우인 것을 생각하면 그냥 놀랄 것 까지는 없었어요.



이제 마르 주에 들어온 건가?


마르 시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마을 같은 모습이 나오기 시작하자 마르 주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어요.






점점 도시 다운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설마 마르 시내에 들어온 건가?'


속으로 이 아저씨가 점심을 먹기 위해 일부러 마르에 온 거 아닌가 추측했어요. 시간을 보니 이제 점심을 먹을 때가 아니라 이미 점심을 먹을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지금까지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아슈하바트에 도착할 것을 생각하면 반드시 점심을 먹어야 했어요.



거리에서 보이는 건물. 이때는 이게 무엇인지 몰라서 무슨 이상한 것을 거리에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했어요. 이 나라를 다녀온 사람들이 하도 악평을 많이 남겨서 저런 거 하나쯤 거리에 있어도 그러려니 했어요.



"여기 어디에요?"

"마르."


아까 말 경주장은 마르 말 경주장이었고, 공항은 마르 공항이었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마르 시내였어요.



딱 보아도 무언가 있게 생긴 곳에 왔어요.


"잠깐 차 좀 세워주세요."


투르크메나바트에서 보지 못했던 신경 써서 제대로 꾸민 곳이 나왔어요. 그래서 잠깐 둘러보게 차를 세워달라고 했어요. 택시 기사는 알았다고 하고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녀오라고 했어요.


"뭔가 이상하긴 한데..."


이왕 왔으니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우리는 단 한 번도 Mary 에 가자는 말을 한 적이 없었어요. '마리'에 가자고 한 적도 없었고, '마르'에 가자고 한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기사가 알아서 우리를 마르에 데려다 주었어요. 일단 말하지도 않았는데 볼 것이 있는 마르에 데려다준 것은 고마웠어요. 하지만 무언가 좀 찜찜한 느낌이 없지 않았어요.


'구경이나 하고 보자.'



삐까뻔쩍한 도서관. 속에 책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 외관은 정말로 삐까뻔쩍했어요. 도서관 이름은 '마르 주립 도서관'. 안에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일단 아슈하바트에 가야 하는 데에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을 거같아서 말았어요. 책이 많을 거라 기대는 안 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서점에 책 없다는 글도 많이 읽었으니까요. 독립 후 책을 새로 찍어낸 것이 많지 않다면 도서관에 있는 책은 기껏해야 소련 시절 책 몇 권이겠죠.



여기도 어김 없이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어요.



사거리 중심에 서 있는 동상.



마르 주립 도서관이 있는 거리는 이렇게 생겼어요. 딱 봐도 투르크메나바트보다는 훨씬 신경써서 꾸민 티가 났어요.





저 황금빛 동상은 바로



그 유명한 사파르므라트 니야조프 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의 동상이에요. 그리고 동상이 들고 있는 책은 안 봐도 뻔하죠. 사파르므라트 니야조프 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이 알라로부터 영감을 받아 집필했다는 '루흐나마' - 즉 '영혼의 책'이에요.



여기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이 모스크였어요.



이 모스크는 핫지 구르반굴르 모스크 Hajji Gurbanguly Metjidi 에요. 하지만 모스크 앞 거대한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니야조프 전 대통령. 그냥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진이었어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니야조프 사후 니야조프의 우상화 작업을 중지시키고, 우상화 작업을 위해 사용된 사진과 동상들을 많이 치웠다고 하는데도 '니야조프 대통령은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 곁에 계십니다'.



모스크는 안에 구경하는 것은 대체로 무료이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일단 외관은 주변 화려한 건물보다도 더욱 눈에 띄는데, 그 내부는 어떨지 궁금해서 들어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이나 모스크 내부는 그저 실망스러울 뿐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모스크도 내부가 볼만 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중앙아시아 모스크에서 내부가 화려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거든요.



모스크 외부에는 비둘기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어요.



"우와!"


역시 돈이 넘치니 확실히 다르구나!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 적당히 온도를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에어컨을 아주 빵빵하게 틀어 놓았어요. 그래서 밖은 불지옥인데 안에 들어가자마자 시원했어요. 이 정도 규모의 모스크를 이렇게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에어컨을 장난 아니게 틀어야 할 텐데? 아무리 건조 기후라서 그늘이 시원하다고 해서 이 정도의 시원함이 문 앞까지 꽉 차 있기는 어려워요. 마치 한여름 아이스크림을 꺼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의 그 느낌이었어요. 나를 감싸는 시원한 바람. 이것만으로도 모스크 올 만 한데?




돈의 힘은 대단하구나!


정말 돈의 힘이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어요. 이 정도로 크고 화려하게 꾸미고 안을 시원하게 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요. 굳이 어렵게 견적 매길 필요도 없어요. 당장 전기세만 해도 엄청날 테니까요.


여기에서 흥미롭게 본 것은 입구에 가운이 여러 벌 걸려 있고, 기도를 하기 위해 들어간 사람들은 입구에서 가운을 골라 걸치고 들어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었어요. 지금까지 본 모스크들은 이런 가운이 없었어요. 반바지에 슬리퍼 질질 끌고 와서 우두하고 예배 드리는 사람들도 수없이 보아 왔어요. 한 모스크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모스크에서요. 아랍에서 본 모스크도 그랬고, 중앙아시아에서 본 모스크도 그랬고, 우리나라 이태원에서 본 모스크도 그랬어요. 그런데 여기는 모스크 입구에 가운을 비치해 두었고, 사람들이 입구에서 비치된 가운을 입고 들어와 예배를 드리고 있었어요. 어떤 이유 때문에 가운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장면.




이 남자가 입고 있는 초록빛을 띄는 회색빛 가운이 바로 모스크 입구에 비치된 가운이랍니다.



아...뜨거!


정말 몸을 다 부셔버릴 것 같은 햇볕. 사막의 풍화작용을 체험하는 듯한 더위. 모스크에서 나오니 엄청나게 더웠어요. 아까 차에서 내릴 때에도 불지옥이었는데, 시원한 모스크에 있다가 나오니 더 불지옥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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