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07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나바트

좀좀이 2012. 8. 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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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자 드디어 도시처럼 보이는 마을에 들어왔어요.




"이제 드디어 투르크메나바트인가?"


달리는 차 안에서 다시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어디에 세워줄까?"


택시 기사가 투르크메나바트의 어디에 세워주어야 하는지 물어보았어요. 우리는 별 고민 없이 기차역에 세워달라고 했어요. 일단 제 1 안은 투르크메나바트에서 야간 기차를 타고 아슈하바트로 넘어가는 것이었어요.



거리에 있는 전광판. 워낙 햇볕이 강해서인지 사진이 시커멓게 나온 것들이 많아요.



우즈베키스탄과는 확실히 무언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을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큰 도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기차표 산 후에 뭐 하지?'


기차표를 사면 여기에서 하루 종일 놀아야해요. 그런데 마땅히 할 게 전혀 없어 보였어요. 정말로 그냥 평범한 마을이었고, 거리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거리에 사람이 없는 것은 일요일이라서 그런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이 많고 적고를 떠나 마치 우리나라에서 일요일 한적한 읍내 거리를 차로 돌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



투르크멘바슈 은행 Türkmenbaşy Bank에요. 건물이 하얀 대리석으로 도배되어 있고 크기도 나름 큰 건물이었어요. 투르크멘바슈의 어원이 '투르크멘의 지도자' - 즉 니야조프를 뜻하는 것이니 어원을 음미하며 의역하면 '대통령 은행', 또는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은행'이 되요. 대통령 은행답게 건물이 다른 건물들보다 훨씬 잘 지어졌어요. 게다가 하얀색 대리석으로 도배해서 효과는 2배 이상이었어요. 겨울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한여름. 그래서 햇볕이 매우 강했고, 새하얀 대리석이 엄청난 햇볕을 엄청나게 반사하고 있었어요.



드디어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처음에는 친구나 저나 그냥 '보크잘 왔네'라고 이야기했어요. 투르크멘어에서 w는 v 발음이 나기도 하고 w 발음이 나기도 하는데, 기차역인 wokzal에서는 v 발음이어서 '보크잘'이에요.

"그런데 저거 영어만 아는 사람들이 읽으면 뭐라고 읽을 건가?"

"음..."


제가 친구에게 wokzal을 영어만 아는 사람들이 읽으면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 물어보았어요. 분명 희안한 발음이 나올 거 같았어요.


"워크젤?"

"워크잘 될 건가?"


워크잘!


왠지 입에 짝짝 달라붙는 발음이었어요. 저렇게 절대 안 읽고 '보크잘'이라고 읽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워크잘'이라는 발음이 훨씬 더 재미있었어요.


입구에는 택시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어요. 그러나 들어가는 것을 소매를 잡고 늘어지지는 않았어요. 택시 타라고 하는데 그냥 필요 없다고 하고 일단 역에 들어갔어요.


역에서 해야하는 일은 2개였어요. 첫 번째는 환전, 두 번째는 기차표 구입이었어요. 일단 매표소에 갔는데 매표소 창구마다 위에 뭐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매표소 위에 적힌 것을 우즈벡어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우즈벡어로 물어보았지만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어요. 결국 친구가 터키어로 물어보아서 매표소에 갔어요.


"오늘 아슈하바트행 기차표..."

"없어!"


직원이 친구 말 다 끝내기도 전에 없다고 딱 잘라 말했어요. 친구가 어이 없어서 다시 물어보았지만 표는 없다고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할 수 없지...예정대로 택시 타고 아슈하바트 들어가야지."

"몇 마나트 있어?"

"28마나트."


28마나트가 투르크메나바트에서 아슈하바트까지 택시 타고 가기에는 턱없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환전소를 찾는데 환전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경찰한테 물어보자."


타슈켄트에서 하던 대로 경찰에게 환전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친구가 터키어로 경찰에게 환전소 위치를 물어보자 기차역 매표소 옆 작은 창구를 가리켰어요. 확실히 우즈벡어보다 터키어가 훨씬 잘 통했어요. 투르크멘어와 터키어는 많이 비슷하거든요. 튀르크 어족에서 우즈벡어와 투르크멘어는 서로 문법이 많이 다른 편이구요.


환전소에 갔는데 당연히 문이 닫혀 있었어요. 우리 수중에 있는 마나트는 전부 다 해서 28마나트. 이것으로는 아슈하바트까지 택시는 고사하고 파라브 국경까지도 못 가요. 그래서 반드시 환전을 해야 했는데 역시나 환전소는 문을 닫았어요.


'또 일요일이 문제네.'


정말 이 상황에서 28마나트가 있다는 것이 정말 힘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28마나트 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되었어요. 머리 속에서는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의 악몽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려고 했어요. 그래도 플리트비체는 관광지여서 한참 걸어 올라가 호텔 환전소에서 환전이라도 했고, 일정에 쫓기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여기는 투르크메니스탄. 일요일에 어디 환전소가 있는지 알 수도 없었을 뿐더러 일정에 너무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아무리 정말 볼 게 없어 다른 곳 구경은 다 포기해도 하나도 아깝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투르크메니스탄이라 해도 일단 해야할 일이 있었거든요. 그 일을 끝내기 전까지는 시간이 촉박했어요. 공식적으로 팔리지 않는 교과서를 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충분해야 했어요. 게다가 배를 타고 투르크메니스탄을 나가야했기 때문에 최소한 마지막 이틀은 투르크멘바쉬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어요. 즉,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아슈하바트에 들어가야 했는데 기차는 없고, 환전소도 문을 닫은 난감한 상황이었어요. 아마 여기도 달러가 통용되지 않을까 싶기는 했지만 어쨌든 현지 화폐인 마나트가 고작 28마나트 밖에 없었기 때문에 투르크메나바트에서 숙소를 잡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이었어요. 간단히 말해서 그냥 아무 것도 안 되는 상황.


일단 기차역으로 나왔어요. 아슈하바트에서 노숙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아슈하바트로 가는 것이 중요했어요. 당연히 택시 기사들이 우리쪽으로 모여왔어요.


"아슈하바트 얼마에요?"

"1인당 20달러."


흥정을 하려 했지만 흥정이 되지 않았어요. 기차역에 기차표가 없는 것은 택시 기사들이 우리들보다 더 잘 알았겠죠. 게다가 이 가격은 크게 문제가 있는 가격도 아니었어요. 기차표를 사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차하면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어요. 국경에서 투르크메나바트까지 오는 택시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께 투르크메나바트에서 아슈하바트까지 얼마면 가냐고 여쭈어보자 한 사람당 20달러쯤 한다고 알려주셨어요.


사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문제는 기차표를 못 산 게 아니라 환전을 못 했다는 사실이었어요. 당연히 환율이 좋을 리는 없었지만 환전을 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20달러에 타기로 하고 환전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택시 기사는 '당연히' 환전상을 찾아왔어요. 환전상에게 환율을 물어보니 1달러가 2.8달러였어요. 그래서 여기서 일단 친구 50달러, 저 50달러 해서 100달러 환전하기로 했어요. 100달러 환전한다 해도 5~6 마나트 손해.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제 경험상 5~6 마나트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그런 액수에요. 아슈하바트에서 물 1.5리터 한 병이 1마나트에요.


흥정을 마치고 주변 사진을 찍으려는데 투르크멘인 둘이 제가 뭐라고 했어요.


"뭐?"


여기는 말로만 듣던 투르크메니스탄의 사진 촬영 금지구역인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 여러 곳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두 투르크메니스탄 사람이 제가 사진 찍는 거 보고 뭐라고 하자 사진 촬영 금지구역이라 사진 찍지 말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포토! 포토!"

"포토?"

"응!"

"너희들?"

"응!"


둘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어요.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어주고 보여주었더니 매우 만족해하며 제게 한 마디 했어요.


"이게 너의 첫 투르크메니스탄 친구들 사진이야."


생각보다는 일이 잘 풀릴 거 같은데?


아침 일을 생각하면 당연히 속이 쓰렸지만, 그냥 액땜했다 생각하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졌어요. 큰 규모의 사고는 당해본 적이 없지만 자잘한 사고라면 저도 지금까지 여행해오며 몇 번 당해보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초반에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투르크메니스탄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하자 무언가 일이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이 확 왔어요. 사람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하는 경우야 여행 하다 보면 간간이 있는 일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때는 왠지 뭔가 잘 될 거 같다는 느낌이 아무 이유 없이 느껴졌어요.


택시 기사는 여느 중앙아시아의 택시 기사처럼 더우니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밖에서는 절대 담배를 태워서는 안 되지만 안에서는 마음껏 태우라고 했어요. 택시 기사는 자동차 에어컨을 틀어주고 다른 손님을 끌고 오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어요.


차 안과 밖은 천지차이였어요. 안은 에어컨을 틀어놓아서 시원했는데, 밖은 말 그대로 불볕 더위.


이것은 '햇볕 쏟아지고'라는 표현으로 표현이 불가능해!


이미 '햇볕 쏟아지고'라는 표현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충분히 많이 써먹었어요. 한국이 아무리 더워도 우즈베키스탄 더운 거에 비하면 봄날씨이니까요. 그런데 여기는 우즈베키스탄보다 더 했어요. 쏟아지는 정도로는 이 햇볕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어요.


이것은 '햇볕 퍼붓고'라고 해야 해!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갔는데 이건 '햇볕 쏟아지고'가 아니라 '햇볕 퍼붓고' 수준이었어요. 정말 통에 물을 채워 마구 퍼붓듯 햇볕이 퍼붓고 있었어요. 건물이 너무 하얀 색이라서 사진은 자꾸 너무 어둡게 나왔어요. 인터넷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자료를 모을 때 백주대낮인데 매우 어둡게 나온 사진들을 종종 보았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있었어요. 그냥 찍으면 시커멓게 나왔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와서 처음에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얀 대리석으로 장식한 건물들이 아니라 바로 초록빛 투르크메니스탄 국기였어요. 오면서 본 것이라고는 황량한 벌판과 아무다리오 정도였어요. 그리고 투르크메나바트 들어와서는 드디어 하얀 대리석 건물들을 보았어요. 거리에 나무가 심어져 있고, 들판에 풀도 자라고 있었지만 모두 황량함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타슈켄트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아주 크게 자라 있고, 나무들도 많아서 여름에는 전체적으로 푸르른 도시에요. 타슈켄트도 덥지만 생각만큼 더위에 많이 노출되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나무들이 많아 그늘도 많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나무도 우즈베키스탄에 비하면 비리비리했어요. 국경에서부터 투르크메나바트까지 전체적으로 초록색이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록빛 국기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황량함 속에서 그 초록색이 눈에 확 들어왔거든요.


차에서 다른 손님들이 오기를 가만히 기다렸지만 다른 손님들이 오지 않았어요. 밖에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햇볕이 너무 강해서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얌전히 차 안에서 다른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둘이 80달러 어때요?"

"아까 20달러라고 했잖아요."


택시 기사가 차에 들어오더니 80달러를 불렀어요. 그래서 당연히 아까 20달러 부르지 않았냐고 따졌어요. 그러나 그 기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 우리에게 나머지 2명분 돈을 내고 지금 출발하자는 것이었어요. 중앙아시아 택시에서는 아주 흔한 광경이고, 한국과 차이를 보이는 점이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손님이 몇 명이든 처음부터 한 차 분의 가격을 불러요. 그리고 손님이 동의하면 바로 출발하죠. 하지만 중앙아시아는 일단 일반 승용차는 1/4의 가격을 불러요. 그리고 다른 손님을 기다리다 손님이 안 오면 한 차 분의 가격을 부르고 바로 가겠냐고 물어봐요.


'75달러를 부를까?'


가격을 깎느냐, 다른 곳을 하나 더 집어넣느냐...제 경험상 가격을 깎는 것보다 다른 곳 하나 집어넣는 것이 훨씬 쉬웠어요. 게다가 얼추 한 사람당 20달러라는 현지 택시기사의 말과 거의 비슷한 가격인 것으로 보아 잘 깎아봐야 75달러 정도였는데, 75달러를 낼 돈이 없었어요. 5달러 짜리 지폐와 10달러 짜리 지폐가 거의 없었거든요. 가격 흥정하며 써도 되기는 하지만, 지금 이런 경우처럼 소액을 환전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아낄 생각이었어요. 더욱이 얼마 거슬러달라고 하면 보나마나 현지화로 대충 계산해서 주거나, 아니면 낡은 달러 지폐를 줄 게 안 봐도 뻔했으니까요. 중앙아시아 여행에서 정말 최악은 낡은 달러 지폐에요. 같은 미국 달러라 하더라도 낡은 지폐는 아예 받아주지도 않아요. 즉 우리나라에서는 낡든 새 것이든 같은 달러인데 중앙아시아에서 낡은 지폐는 가치 없는 종이짝이고 새 것은 미국 달러에요. 이미 어떻게 일이 전개될지 뻔히 아는 것을 굳이 선택해 나중에 얼굴 붉힐 필요는 없었어요.


"대신 메르브 들렸다 가요."

"좋아요."


여기도 똑같았어요. 크게 깎을 거 아니라면 차라리 가격을 깎지 않고 중간에 관광지 한 곳 집어넣어서 흥정을 적당히 마치는 게 제일 쉬운 선택이었어요. 원래 메르브는 볼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속으로 '그딴 거는 갈 필요도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몇 개 관광지가 있기는 한데, 그나마 가볼만한 곳이라고 판단되는 곳은 오직 하나 - 다르바자 뿐이었어요. 다르바자는 우리나라에 최근에 몇십 년째 불타오르고 있는 불구덩이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그 외의 곳들은 전혀 가볼 가치가 없었어요. 정말 '그곳에 가 보았다'는 의미 정도일 뿐이죠. 많은 사진들과 설명을 읽어 보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 체류중이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올 것인데 거기를 가야할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메르브는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투르크메나바트에서 아슈하바트로 가는 길에 들릴 만한 곳이 오직 메르브 밖에 없었기 때문에 선택지도 없었어요.


택시 기사는 우리에게 선불로 20달러를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20달러를 먼저 내었어요. 이제 택시 기사에게 주어야 할 돈은 60달러.


택시 기사는 환전상에게 가서 20달러를 투르크메니스탄 마나트로 바꾼 후, 어떤 아주머니께 돈을 쥐어주고 차에 올라탔어요. 아주머니께 쥐어준 돈은 아마 주차비였던 것 같아요. 택시 기사는 택시에 타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어요. 밖에 경찰이 있었는데도 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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