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노원구 상계 재정비촉진지구 상계3,4동 주민센터 달동네 양지마을

좀좀이 2019. 6.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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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상계4동 달동네인 당현천 마을, 합동마을을 다녀온 후였어요. 서울 달동네에 대해 계속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달동네들에 대해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고 있었어요. 서울 달동네 역사는 꽤 긴 편이었어요. 아주 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어요. 그러나 본격적으로 '서울 달동네의 역사'라고 할 부분은 한국전쟁 이후부터였어요.


재미있는 점은 서울 각 구역별로 달동네 역사가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역사에 따라 달동네 모습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어요. 모든 달동네가 동시다발적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어요. 어떤 달동네는 정부가 강제이주시켜서 조성되었고, 어떤 달동네는 원래 있던 달동네 판자촌에 대해 정부가 주택을 개량하도록 지원해줘서 그대로 정착했고, 어떤 달동네는 철거 후 갈 곳 없어진 주민들이 또 새로이 조성한 곳이었어요.


이 중 노원구에 있는 달동네들은 정부가 강제이주시켜서 조성된 곳이에요. 그래서 서울 다른 지역에 있는 달동네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가장 큰 특징은 서울 도심 판자촌 주민들을 강제이주시켰기 때문에 구획정리가 상당히 잘 되어 있다는 것이었어요. 무턱대고 몰아낸 것이 아니라 토지를 불하해준다고 약속하고 사실상 강제로 이주시킨 것이다보니 토지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상당히 규칙적으로 땅을 분배해준 모습이 나타나요. 한 가구당 약 8~10평씩 분배해줬고, 4가구를 모아서 구획을 나눠줬다고 해요. 이 형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곳들이 있어요.


합동마을을 다녀온 후, 합동마을 인근에 있는 다른 달동네인 양지마을, 희망촌을 위성사진으로 살펴보았어요. 그리고 당고개역 주변인 상계 재정비촉진지구에 있는 달동네 전체 역사에 관한 자료도 찾아봤어요.


가장 궁금했던 것은 합동마을에서 가장 달동네처럼 생긴 곳은 합동마을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위성사진으로 보고 판단한 것과 실제 주민들이 합동마을이라 부르는 곳 위치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어요.


"아, 양지마을을 가야했었구나!"


노원구 상계4동 당고개역 주변에 있는 달동네 중 제가 진짜 가봐야 했던 곳은 바로 양지마을이었어요. 당고개역 인근 달동네 중 과거 형태가 온전히 잘 남아 있는 달동네는 양지마을과 희망촌이었어요. 양지마을과 희망촌 모두 상계 재정비 촉진지구에 있는 달동네에요. 양지마을은 상계뉴타운 1구역이고, 희망촌은 상계뉴타운 3구역이에요. 상계뉴타운 1구역은 재개발 절차를 순조롭게 밟아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상계뉴타운 3구역은 재개발을 포기했어요. 즉, 가장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지만 사라질 달동네는 양지마을이었어요.


2019년 6월 1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 재정비촉진지구 상계3,4동 주민센터 달동네 양지마을을 가기 위해 집에서 나왔어요. 15시 46분에 지하철 4호선 북쪽 종점인 당고개역에 도착했어요.


당고개역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도 역시 당현천마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당고개역 당현천마을


양지마을은 상계3,4동 주민센터가 있는 곳에 있어요. 그래서 지도를 보며 상계3,4동 주민센터로 갔어요.


상계3,4동 주민센터


상계3,4동 주민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양지마을이 나타났어요.


양지마을


양지마을 큰 길은 日자를 90도 회전시킨 모양이에요. 그래서 제일 서쪽 길부터 시작해서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고 나서 가운데에 있는 큰 길을 걸으며 둘러보기로 했어요. 위 사진은 양지마을 가운데에 있는 큰 길이에요.


양지마을 윗쪽으로 걸어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노원구 주거환경


길 입구부터 버려진 집이 있었어요.


상계4동


골목길을 바라보았어요.


상계4동 주민센터


낡고 오래된 집이 빽빽히 들어선 골목길 끝에 상계4동 주민센터가 보였어요.


노원구 양지마을


길가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어요.


"할머니, 여기 오래된 마을인가요?"


이렇게 대화를 시작했어요. 할머니께서는 예전에 이 근방 공장에서 일하셨다고 하셨어요. 공릉동에 집이 있었지만 차비 1000원 돈 아끼려고 여름에는 이쪽에서 비닐하우스에 박스 깔고 지내셨대요. 예전에는 여기가 다 논밭이었대요. 공장에서 일하실 때, 불암산쪽 집들에 빨래 널린 것 보며 비 올 지 보곤 하셨대요. 비 올 듯 한데 빨래 안 걷힌 거 보면 저 집 빨래 어쩌나 하셨대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양지마을 윗쪽을 향해 걸어갔어요.







양지마을 가운데 큰 길로 이어지는 골목길들이 직선으로 쭉 뻗어 있었어요. 이 골목길은 일단 양지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후 하나씩 들어가보기로 했어요.









양지마을은 수락산 자락에 있는 달동네에요. 길이 직선으로 곱게 뻗어 있다는 것은 길의 고저차가 꽤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서울 달동네


계단을 따라 올라가 골목 하나를 들어가봤어요.


달동네


담장 시멘트 벽은 미장이가 재주를 부려 무늬를 만들어 놓았어요.


양지마을 시멘트 벽


동네는 조용했어요. 간간이 사람 소리가 났어요.



버려진 집이 한 채 있었어요.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서울 노원구 주택


다시 사진을 찍으며 위로 올라갔어요.






슈퍼마켓이 있는 곳이 오르막길 꼭대기였어요.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어요.





서울 노원구 상계 재정비촉진지구 상계3,4동 주민센터 달동네 양지마을





버려진 집이 또 하나 있었어요.


노원구 상계4동


골목길에서 나와 다시 큰 길로 갔어요.


노원구 상계4동 양지마을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콜라 한 캔을 구입했어요. 주인분께 허락을 받고 가게 사진 한 장을 찍었어요.


양지마을 가게


밖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주인분께서 가게 밖으로 나오셨어요. 가게 주인분께 이 동네에 대해 여쭈어보았어요. 가게 주인분께서는 이 동네가 막 생겼을 때 오셨다고 하셨어요.


이 일대에 있는 달동네들 중 양지마을이 가장 먼저 생긴 달동네라고 하셨어요. 양지마을은 1967년 초에 생겼대요. 이후 희망촌이 생겼고, 합동마을은 나중에 생겼대요. 합동마을 자리는 원래 공동묘지였대요. 양지마을은 중계동 백사마을보다도 일찍 생긴 마을이래요. 백사마을도 1967년에 생겼지만 백사마을보다 양지마을이 보다 일찍 생겼대요. 백사마을도 양지마을이 생긴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생긴 곳이지만 조금 늦게 생긴 마을이래요.


처음 양지마을로 왔을 때, 여기는 허허벌판이었대요. 여기에 원래 있던 숲을 밀어 만든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횟가루로 사각형을 쳐놓고 4가구가 살라고 하면서 텐트 하나 줬대요. 이게 오늘날로 치면 '딱지'에 해당하는 거래요. 땅을 준다고 하며 서울 도심 청계천, 낙원동, 충무로 등지 판자촌 거주민들을 사실상 강제로 여기로 이주시킨 것이었대요. 초기에는 나무로 사각틀 세우고 위에 천막을 친 '체일'을 세우고 살다가 나중에 돈 벌어서 벽돌집을 지었대요. 정부에서 벽돌을 준 것이 아니라 각자 돈 벌어서 벽돌 사와서 집을 짓다보니 천막촌에서 벗어나는 데에 한참 걸렸대요.


여기 처음 이주한 사람들은 당연히 돈이 없었기 때문에 연탄도 없고 전기도 없어서 산에서 소나무 베어서 불 떼어가며 살았대요. 이때는 밤만 되면 진짜 깜깜했기 때문에 뒷산에서 호랑이 나온다고 말하곤 했대요.


인사를 드리고 다시 사진 찍으며 걷기 시작했어요.







상계 재정비촉진지구


'내가 조사한 거랑 맞구나.'


윗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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