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상계4동 4호선 당고개역 2번출구 당현천마을 안쪽으로 다시 들어가자 벽화가 보였어요.
여기도 벽화 마을 작업이 실시되어 있었어요.
골목길이 직선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고개역이 시원하게 잘 보였어요. 여기는 분명히 인위적으로 생긴 마을이었어요.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마을이었다면 골목길 전체가 이렇게 직선으로 쭉 뻗어있지는 않거든요. 큰 골목길과 작은 골목길이 거의 수직으로 교차하고 있었어요. 단순히 한 골목이 아니라 전부 다 그랬어요. 이런 형태는 처음부터 계획을 세워 만들었을 때 나타나요.
한 아저씨와 마주쳤어요. 아저씨께 인사드렸어요. 아저씨께서 뭐 하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취미가 사진 촬영인데 골목길 사진 찍으러 왔다고 했어요. 아저씨께서는 여기가 상당히 낙후된 곳이라고 말했어요. 여름철에는 벌레가 엄청나게 많고, 오래된 동네라서 여기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여럿 계시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사진 잘 찍으라고 하셨어요.
골목을 계속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어요.
여기는 상계뉴타운으로 재개발된다는 말이 계속 있어서 그냥 방치된 곳이었어요. 당고개역 바로 앞이라 큰 상권이 자리잡을만한 곳인데 이렇게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어요. 그리고 여기 사는 주민분들은 다른 달동네와 달리 사진을 잘 찍어가라고 하는 점이 신기했어요. 보통 달동네에 가면 사진 찍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고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나중에야 이 마을 이름이 '당현천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을 이름 유래는 당고개역 근처에 있는 하천인 당현천에서 왔어요. 지금은 당고개역에서 당현천이 보이지 않지만 과거에는 여기까지 당현천이 흘렀어요. 당현천마을은 과거 아주 조그맣게 몇 집 있는 동네였어요. 1966년 항공사진을 보면 가옥 몇 채가 있기는 해요. 1960년대 말 당고개역 쪽으로 서울 도심 판자촌 거주민들이 대거 강제이주당하며 현재와 같은 마을 및 가옥 배치 형태가 만들어졌어요.
여기 주민들은 여기를 당현천마을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상계4동이라고 부르고 있었어요. 마을 이름이 왜 사라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합동마을, 양지마을, 희망촌 이름은 남아 있지만 당현천 마을 이름은 안 남아 있거든요. 어쩌면 여기가 딱히 특정한 마을 이름이 없어서 당현천마을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소수 있었고, 주민들은 그냥 상계4동이라고만 불러왔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 점은 당현천마을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달동네 특징 중 하나인 4가구 32평 배분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1960년대 말 정부가 서울 도심 판자촌 거주민들을 서울 외곽으로 강제이주시킬 때, 4가구당 32평 정도씩 배분했어요. 1가구당 8~10평 정도 되요. 기록 및 실제 구획을 살펴보면 4가구용 토지로 32~40평 정도를 배분해주고 그걸 네 가구에 다시 나눠주었어요. 이 형태가 있는지 여부가 인위적 달동네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꽤 중요해요.
시간이 흐르면서 이 형태는 많이 사라졌어요. 4가구당 32~40여평 정도 분배된 흔적을 찾기 어려워요. 정확히 네 가구가 딱 들어가 있는 경우는 더더욱 없구요. 처음부터 도저히 못 살겠다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버린 경우도 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토지를 매입해 집을 넓히기도 하고 여러 집 구입해 큰 건물을 올리기도 했어요. 이런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런데 당현천마을은 이 형태가 확실하게 남아 있었어요.
깔끔하게 벽화가 그려진 골목이 있었어요.
나중에 '누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봤어요. 누삥은 roofing 에서 온 말이에요. 동네, 사람에 따라 누삥, 루삥, 루핑 등으로 불러요. 업계에서는 '루핑'이라고 하구요.
영어 단어 roofing 은 지붕 재료 또는 지붕 공사를 의미해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루핑'이라고 하면 지붕 재료라는 원래 의미보다는 루핑이란 방수칠을 한 지붕 재료를 말해요. 지붕을 올릴 때 방수칠이 된 자재를 올리고 그 위에 기와 등을 올려요. 옛날에는 아스팔트 같은 것을 바른 종이 비슷한 것을 루핑 재료로 사용했대요. 누삥만 올려서 살았다는 것은 기와 올릴 돈이 없어서 아스팔트나 콜타르를 바른 방수처리 된 것을 지붕에 올려놓고 그냥 살았다는 의미였어요. 의복에 비유하자면 속옷만 입고 사는 꼴이라고 보면 될 거에요.
큰 골목길이 아닌 골목길은 매우 좁았어요.
골목을 돌아다니며 한 가지 또 눈여겨봤던 점은 여기는 버려져서 폐가가 된 집은 안 보였다는 점이었어요. 달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버려져서 폐가가 된 집이 한 채는 꼭 있어요. 문부터 부서져 있어서 내부가 훤히 드러나 있고, 내부도 부서진 집이요. 심지어는 아예 벽 일부가 허물어진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당현천마을에서는 그런 집은 보이지 않았어요.
누가 화분에 바람개비를 심어놨어요.
당현천마을은 달동네라고 해도 될 지 안 될 지 애매했어요. 당고개역 주변만 놓고 본다면 여기는 달동네가 아니에요. 달동네 의미 속에는 지형적인 특징도 들어가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를 조금 넓게 본다면 여기는 확실히 고지대 맞았어요. 불암산과 수락산 자락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이었거든요.
'그게 중요한 거 아니잖아.'
중요한 것은 당현천마을이 달동네인지 여부가 아니었어요. 당현천마을은 1960년대 말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마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아주 잘 남아 있다는 것이 중요했어요. 한 구획이 32~40평 정도이고, 한 집이 8~10평 정도인 모습이 여기에는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심지어 한 구획에 4집이 모여 있는 곳도 있었어요. 돌아다니며 보면 잘 모르지만 위성사진을 보면 이 점이 확실하게 드러났어요.
'이제 슬슬 합동마을 가야겠다.'
서울 노원구 상계4동 4호선 당고개역 2번출구 당현천마을을 다 둘러보고 나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