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강남구 개포동 양재대로 478 판자촌

좀좀이 2019. 5. 2. 23:43
728x90

분당선 구룡역 1번 출구에 있는 불교 절인 심복사에서 나왔어요. 이제 그곳에 갈 때가 되었어요.


길을 건너 개포고등학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선릉로로 들어갔어요. 제가 걷고 있는 선릉로 인도 맞은편으로는 그 유명한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가 있었어요.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는 철거가 진행중이었어요. 뿌연 하늘을 더 뿌옇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어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개포동은 원래 별로 주목받던 동네가 아니었어요. 오죽하면 여기 별명이 '개도 포기한 동네'였어요.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개도 포기한 동네라고 악명 높았어요. 양재천을 접하고 있는 일부 민영 아파트들은 압구정 현대아파트보다도 비싼 가격을 자랑해 '개도 포니 타는 동네'라 불렸다고 하나, 1만 세대가 넘는 저층 주공 아파트들이 슬럼화되면서 개도 포기한 동네가 되었다고 해요. 더욱이 개포동은 교통도 엄청 나빴고, 노무현 시절 강남 대폭등 때도 엄청나게 조용했어요. 1km 채 떨어지지 않은 은마아파트는 천마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데도요. 양재천은 '님아, 그 강을 넘지 마오'였어요. 그러니 개도 포기한 동네란 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나 강남권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이 개도 포기하고 도망간 동네는 싹 바뀌고 있어요. 강남구 하나 믿고 분당선 하나 믿고 죽어라 버틴 개는 뼈를 갉아도 횡성한우 갈비뼈 갉아먹게 생겼어요. 개포동은 강남의 대규모 신도시라는 프레임으로 재탄생중이거든요. 개포동의 최대 강점은 바로 녹지가 가깝고 공기가 좋다는 점이에요. 중국발 미세먼지 폭격에 고령화 시대에 딱 어울리는 좋은 입지조건이라 할 수 있어요.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녹지와 맑은 공기가 가까운 곳을 선호하는 추세에요. 게다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 편의시설이 가까운 대도시로 더 몰리게 되며 인구 분포의 양극화가 발생해요. 현재 모든 대중교통이 강남으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강남과 어떻게든 지하철이든 버스든 연결해보려고 난리에요. 이것 때문에 앞으로 몇십 년간 강남은 서울의 핵심일 수 밖에 없어요. 이런 강남과의 접근성 좋고 공기 괜찮고 녹지도 있으니 현재 우리 사회 주거 선호 트랜드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이건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에요. 당연히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땅 잘 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기업에서 이걸 모를 리 없죠. 그래서 개포동은 이미 고급 아파트 건설의 각축장이 되었어요.


구룡마을이 유명해진 것도 사실 이것 때문이에요. 거기에서 타워팰리스가 보여서 빈부격차를 극단적으로 볼 수 있다느니 하는 건 별 의미없는 이야기구요. 그거 하나 갖고 기사가 폭증하고 사람들 관심이 어마어마해지지는 않아요. 서울 부촌 강남구 바로 지척에 있는 판자촌 같은 소리만으로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아요. 돈이 되는 뭔가가 있으니까 기사가 쏟아져나오고 사람들 관심도도 엄청 높아지는 거죠.


제가 걷는 길에는 입구 대문부터 삐까뻔쩍 무지 높은 래미안 블레스티지 아파트가 있었어요. 딱 봐도 부촌 티가 나는 아파트였어요. 선릉로 양쪽 아파트를 구경하며 걷다보니 대모산 자락에 있는 구룡마을 입구에 도착했어요.


구룡마을 입구


입구에서부터 벌써 눈으로 저 동네 시끄럽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일단 맨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는 것은 빨간색 천으로 만든 현수막에 노란 글씨로 적은 '임대가 웬말이냐? 분양 아니면 죽음을 달라!'였어요.


사진에서 왼쪽은 도선여객 종점이에요. 저 현수막 너머가 바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 양재대로 478 판자촌이었어요.


양재대로를 건너 대모산 입구에 있는 개포동 양재대로 478 판자촌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횡단보도는 없었어요. 지하 횡단보도로 들어가서 넘어가야 했어요. 지하 횡단보도로 들어갔어요. 으슥했어요. 이 지하 횡단보도도 구룡마을이 재개발 들어가면 공사해서 싹 바꿔버릴 것 같았어요. 휠체어는 아예 다닐 수 없고, 당연히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없었거든요. 현수막을 보니 카메라는 안 꺼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방에 집어넣었어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양재대로 478 판자촌 입구에 도착했어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반겨주는 것은 버스, 그리고 대학교 다닐 때 한총련 학생회가 시도 때도 없이 심심하면 틀어대던 노래였어요. 아마 꽃다지의 바위처럼이었을 거에요. 시험철이고 나발이고 교문 앞이고 도서관 앞이고 강의동 앞이고 뭐 자기들 마음대로 틀어대어서 정확히 모르지만 하여간 엄청 들었어요. 노래 자체는 단순하고 기억에 확 남는데 학생들은 방치하고 반미 타령이나 하면서 오히려 학습권 열심히 침해하는 한총련 학생회를 엄청 싫어했기 때문에 이 노래도 안 좋아했어요. 어쨌든 엄청나게 오랫동안 안 들었는데도 바로 어제 들은 것처럼 익숙했어요.


일단 입구는 조용히 지나갔어요. 입구에서 보면 여기가 그냥 허름한 집 몇 채 있는 농촌처럼 보였어요.


'내가 잘못 왔나? 아니면 사진이 과장된 거였던 건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평범한 농촌 풍경이었어요.


서울


'번화한 강남구에 농촌 풍경 있어서 사람들이 놀라는 건가?'


강남구


계속 길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어요. 입구쪽에 설치된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어요.





고철이 된 보일러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어요.


보일러


슬슬 판자집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판자집


고철이 수북히 쌓여 있었어요.


고철


계속 안쪽을 향해 걸어갔어요.






가게가 하나 나왔어요.


강남구 구멍가게


구룡마을 자치회 사무실이 등장했어요.


구룡마을 자치회 사무실


여기는 흰색 천 위에 붉은 글자로 '임대던 분양이던 빠른 개발 촉구'라고 적은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어요.


"아..."


흔히 달동네 사진이라고 검색해보면 나오는 단층 슬레이트 지붕 건물이 아니었어요.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판자촌이었어요.


구룡마을 판자촌


여기 있는 집들은 조금 전에 보고 온 송파구 장지 화훼마을보다 더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


강남구 개포동 양재대로 478 판자촌


계속 걸어갔어요.




공동화장실이 나왔어요.


공동화장실


공동화장실 옆으로 타워팰리스가 보였어요.


마을 옆에는 개울이 있었어요. 이 개울은 자연적인 개울이 아니라 일부러 파낸 물길 같았어요.


개포동


안쪽으로 걸어갈 수록 판자집이 더 많이 보였어요. 높이 자체가 낮고 방향이 안 맞아서 아까 입구 쪽에서 잘 안 보였던 것이었어요.






여기는 판자집 몇 채 모여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마을이었어요.


구룡마을 서울식품


이 판자집에는 '서울식품'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어요. '영업중'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었어요. 여기는 왠지 식당이나 술집 같았어요. 앞에 술병이 쌓여 있었거든요.


구룡마을 철학원


심지어 철학원도 있었어요.


래미안 블레스티지 아파트


산더미처럼 수북히 쌓인 연탄재 너머로 초고급 아파트인 래미안 블레스티지 아파트가 보였어요.


동네에서는 타워팰리스와 래미안 블레스티지 아파트가 아주 잘 보였어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구룡마을 판자촌 마을 안에는 미장원도 있었어요.


구룡마을 미장원


연탄가게도 있었어요. 연탄가게 이름은 삼천리 연탄이었어요.


구룡마을 연탄가게


도곡동 삼성 타워팰리스와 개포동 삼성 래미안 블레스티지 아파트는 여기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주 실컷 볼 수 있었어요.


강남구 구룡마을


구룡마을 주민


다시 뒤를 돌아보았어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양재대로 478 판자촌


서울 강남구 개포동 양재대로 478 판자촌


멀리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개포동 래미안 블레스티지는 저곳은 실재하는 환상이라고 이쪽으로 외치는 것 같았어요.



다시 윗쪽으로 올라갔어요.





판자집이 모여 있는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