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부서진 집과 그 잔해, 그리고 쓰레기들. 정말 다행이라면 아직 봄이라 벌레가 많지는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날이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벌레가 엄청나게 들끓을 게 뻔했어요. 여기는 모기도 그냥 모기가 아니라 독한 아디다스 풀모기가 창궐할 곳이었어요. 이렇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 난방이 약간은 필요하기 때문이었어요.
멀쩡한 도자기 하나가 버려져 있었어요. 이건 누가 여기에 갖다 버린 건지, 아니면 철거된 지 얼마 안 된 집이어서인지 모르겠어요. 외부에 먼지가 별로 내려앉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렇게 버려진 지 오래된 도자기는 아니었어요.
이미 파괴되어 폐허가 된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하나 있었어요. 계단의 흔적이라 해야 정확할 거에요.
진짜로 아찔하네.
지금껏 여행다니며 정말 상태 안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 많이 봤다. 그래도 그건 나름대로 멀쩡한 집이었단 말이야. 아무리 이렇게 쓰레기 굴러다니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해도 그 사람들 나름대로 집은 제대로 지어놓고 살고 있었다고. 아무리 나무 작대기 몇 개 세워놓고 위에 비닐, 거적대기 씌워놨다고 해도 그건 날 따뜻한 동남아시아 같은 데니까 그런 거구. 여기는 겨울에 까딱하면 얼어죽을 수 있는 대한민국 서울이란 말이야. 그리고 아무리 거지같이 집을 지어놓고 사는 사람들이라 해도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었지, 이렇게 다 파괴하고 쓰레기 막 돌아다니는 곳에 대충 뭐 바람막이나 만들어놓고 살지는 않았어. 전세계에 쓰레기더미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어. 집인지 거적데기인지 분간 안 가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어. 그 동네 나름의 '집'을 지어놓고 사는 거랑 집 다 파괴된 자리에 대충 바람만 막아놓고 사는 거랑은 비교할 수 없어. 이건 '집 대 집'이 아니라 '집 대 폐허'잖아.
이 부서진 집들에 모두 사람들이 들어가 사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버려진 공가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걸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여기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어요.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65-74번지 달동네. 얼핏 보면 쓰레기 나뒹굴고 버려진 땅이었어요.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었어요.
오토바이 한 대가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며 들어왔어요. 할아버지 한 분이 오토바이에서 내리셨어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어요. 할아버지는 인사를 받으시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 이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65-74번지 달동네 안에 있는 집 하나로 들어가셨어요.
사람 사는 흔적을 찾은 게 아니었어요. 진짜 여기 사는 사람들과 마주쳤어요. 사람 사는 흔적은 이 근방 사는 사람들이 잠깐 놀고 있는 토지를 이용한 것을 여기 사람이 산다고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진짜로 여기 사는 사람들과 마주쳐버렸어요. 여기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어요.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어요.
자전거 한 대가 서 있었어요. 안장이 빠져 있었어요. 그거 말고는 멀쩡했어요. 제가 일부러 세워놓은 게 아니에요. 저렇게 서 있었어요.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자전거는 버려진 자전거라기 보다는 왠지 누가 일부러 세워놓고 못 훔쳐가게 안장만 뺀 것 아닌가 싶었어요.
뉴스에 보도된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65-74번지 내용은 충격적이었어요. 지덕사 땅 15000평이 소유권 문제로 철거만 되고 10년 넘게 방치중이고, 여기에 사람들이 쓰레기 투기까지 벌어지면서 완전 쓰레기산이 되어버렸어요. 석면이 뿜뿜하고 악취가 진동하고 날벌레가 창궐하는 땅. 실제 와서 보니 뉴스에 나온 충격적인 내용은 실제 와서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뉴스에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내용은 없었거든요.
사람이 살고 있는데 사람이 살고 있다는 뉴스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지 잘 모를 거에요. 여기는 버려진 땅, 잊혀진 사람들이 있는 곳. 야, 진짜 이건 과장이 아니다. 무슨 단체에서 자원봉사 나가면 우리 착한 일 했다고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신문 같은 거에라도 조그맣게 기사 낸단 말이야. 그딴 거 조차 없어. 그 사람들한테조차 지워진 동네란 말야. 이거 엄청 무서운 거라니까? 뉴스에 나오는 게 전부 옛날에 집을 철거했다, 쓰레기, 석면이 굴러다닌다 이딴 거 뿐이야. 기껏 나오는 게 방역작업 어쩌구 뿐이더라.
이제 윗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현수막이 매달려 있었어요.
개 짖는 소리가 들렸어요. 현수막 걸린 집에 개가 있었어요.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65번지 달동네. 사람이 살고 있어요.
여기도 달동네 벽화 프로젝트를 했었던 모양이에요.
즐거운 우리집.
푸른 풀 너머 해골 같은 연탄재.
윗쪽으로 계속 올라갔어요.
맨 꼭대기로 올라왔어요.
맨 꼭대기는 평범한 달동네였어요.
이곳에 오니 여기가 무슨 청담동 번화가처럼 보였어요. 타워팰리스 같았어요. 비아냥이 아니에요. 여긴 진짜로 일단 사람 사는 동네 모습이잖아요.
길을 따라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아래로 내려가며 계속 쓰레기산 쪽으로 길이 있나 살펴보았어요.
쓰레기산 쪽으로 가는 길은 다 철저히 막아놨어요.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공고문만 붙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