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안으로 들어갔어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낮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릴텐데 이 시각에 오니 아주 휑하기 그지없었어요. 공항 오자마자 화장실로 갔어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는데 비행기 출발을 알리는 전광판이 있었어요. 화장실에서 나와 공항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했어요. 구경할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공항 내부에 있는 전광판 앞으로 갔어요.
"6시 5분 비행기도 있었어? 저건 진짜 내가 타고 온 거 꼭 타야겠네."
비행기 출발 전광판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6시 20분 이스타항공 김포-제주 비행기가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첫 번째 비행기인 줄 알았어요. 아니었어요. 뜬금없이 그것보다 무려 15분 전인 새벽 6시 5분에 아시아나항공 OZ8901 김포-제주 비행기가 있었어요. 아시아나 OZ8901편 김포-제주 항공기 다음이 제가 타고 갈 이스타항공 ZE201 김포-제주 항공기였어요.
새벽 6시대에도 비행기가 여러 대 있었어요. 6시 20분부터 5분마다 김포-제주 비행기가 있었어요. 6시 35분만 김포-제주 비행기가 없었어요. 새벽 6시대에 비행기가 총 14대 이륙 예정이었어요. 그 중 제주도 가는 비행기가 아닌 것은 오직 딱 하나 뿐이었어요. 새벽 6시 50분 아시아나항공 OZ8851 김포-대구 비행기였어요. 김포-제주 노선은 새벽 6시부터 시내버스보다 더 많이 날아다녀요.
전광판에 수속이 떴어요. 제가 타고 갈 이스타항공은 게이트 번호까지 나와 있었어요. 12번 게이트였어요. 제가 제주도 가는 입구는 이미 확정되어 있었어요.
'이제 수속해야겠다.'
김포공항 수속창구는 2층이에요. 오랜만에 온 김포공항이었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제주도 갔었을 때에도 김포공항 내부로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었거든요. 달라진 것이라면 기껏해야 흡연실이 공항 끄트머리로 밀려난 것 정도였어요. 예전에 왔을 때와 달라진 점을 찾아보았지만 못 찾았어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김포공항 2층으로 올라갔어요.
2층에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어요. 아직 수속 창구는 문을 열지 않았어요. 항공사 공통 무인 발권기계가 있었어요.
"기계로 표 뽑아보자."
비행기표 예약증을 출력해오지 않았어요. 제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카카오톡으로 날아온 예약 번호가 전부였어요. 기계에 예약 번호를 입력하자 좌석 지정을 할 수 있었어요. 가장 고민되는 순간이었어요. 비행기 창가석에 앉으면 항공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어요. 제주행 비행기 창가석 중 한쪽은 우리나라 서해안을 쭉 내려다보며 가고, 한쪽은 그렇지 못해요. 이건 제주도가 보일 때도 마찬가지에요. 서해안을 보며 내려가는 자리가 제주도 보기도 좋아요. 찍어야 했어요. A 아니면 F를 선택해야 했어요. 확률은 50%였어요.
A냐 F냐 그것이 문제로다.
마음은 A를 고르라 하고 있었어요. A학점과 F학점 둘 중 뭐 받겠냐고 하면 당연히 A학점이니까요. 머리는 대충 아무 거나 하나 찍으라 하고 있었어요. 답을 알고 선택하는 게 아니라 찍는 문제이니 고민할 필요 없다고 하고 있었어요. 신중히 판단해야 할 문제였어요. 공간지각능력을 발휘해 추리하기 시작했어요. 비행기 맨 앞을 기준으로 왼쪽은 A, 오른쪽은 F에요. 제주도 갈 때는 비행기 머리가 남쪽을 향해요. 그러므로 오른쪽과 왼쪽이 뒤바뀌어 있어요.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보았을 때 서해안을 볼 수 있는 좌석은 F석일 확률이 높았어요. 그렇게 되어야만 했어요.
F석을 골랐어요. 표가 나왔어요.
"어? 수하물 등록 어디 갔지?"
무인 발권기로 수속하고 표를 발권받았더니 수하물 등록이 아예 안 되어 있었어요. 저는 백팩 하나를 맡겨야 했어요. 들고 타도 아무 문제 없는 무게였지만 항공사 규정 때문에 기내 수하물은 무조건 가방 1개로 제한되어 있었어요. 가방은 2개이고 두 가방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옆으로 메는 가방과 백팩 모두 크기가 비슷해서 어느 한 쪽에 다른 하나를 꾸겨넣을 수 없었거든요. 무조건 하나는 부쳐야 하는데 무인 발권기에서 수하물 등록하는 것은 없었어요.
항공사 수속 창구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수속 창구가 열리기를 기다렸어요. 수속 창구에 직원이 들어왔어요. 바로 줄을 섰어요. 두 번째였어요. 직원들이 수속 업무 진행할 준비를 마치자 바로 수속 업무가 시작되었어요. 수속 창구 직원에게 갔어요.
"표 발권 받았는데 짐 부칠 거 있어요."
"짐 여기에 올려놓으세요."
백팩을 올려놓았어요. 2.5kg이었어요. 참 민망했어요. 이렇게 진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부쳐야 하다니요. 그리고 이따 나올 때 이 가방이 수하물에서 나오기를 또 기다려야 해요. 어쩔 수 없었어요. 비행기 탑승 규정상 한 사람당 가방 1개만 들고 탈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2.5kg에 노트북 가방 크기 정도인 백팩이라 해도 노트북 가방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부쳐야 했어요. 가방을 부쳤어요. 이제 몸이 아까보다 훨씬 많이 가벼워졌어요.
사람들이 계속 공항 안으로 들어왔어요. 공항은 점점 분주해지기 시작했어요.
'3층으로 가야지.'
제가 타고 갈 비행기는 이미 탑승게이트까지 다 나와 있었어요. 2층에서 있어봐야 할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3층 탑승장으로 올라가서 저 사람들이 다 몰려오기 전에 탑승 수속부터 빨리 받기로 했어요. 김포공항은 탑승수속을 마친 후 탑승구가 있는 공간이 넓어서 왔다갔다 하며 시간 때우기 좋거든요. 그냥 다 귀찮으면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사진 정리도 하고 글을 써도 되었어요.
새벽 5시. 탑승장도 아직 업무가 시작되지 않았어요. 김포공항 첫 비행기인 아시아나 항공 6시 5분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1시간 정도 남았어요. 이제 탑승장도 문을 열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김포공항은 잠이 덜 깨어 있었어요. 탑승장 앞에 앉아 업무가 시작되기를 기다렸어요. 앉아 있으니 심심했어요. 노트북을 꺼내서 글이라도 쓸까 잠깐 고민했지만 아시아나 항공 때문이라도 탑승장은 곧 문을 열 거였어요. 얌전히 자리에 앉아 탑승장 업무가 시작되기를 기다렸어요.
'벌써 졸리면 안 되는데...'
슬슬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긴장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아무리 전날 아주 늦게 일어났다고 해도 밤 새다 보면 이 시각 즈음에 잠이 솔솔 몰려오기 시작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정신이 아주 약간 몽롱해지려고 하는 것 외에는 멀쩡했어요. 어서 제주도 내려가고 싶었어요.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시간 보내는 것이 제일 괴롭거든요.
탑승장 업무가 시작되었어요. 바로 탑승장 입구를 통과했어요. 보안검색을 받았어요. 노트북이 있으니 바구니 하나 더 달라고 미리 말했어요. 공항 보안 검색은 한두 번 받아본 것이 아니니까요. 외국 갔던 건 둘째 치고 대학교 올라와서 매년 제주도에 내려갔었기 때문에 한때 1년에 최소 4번은 꼬박꼬박 공항에서 보안검색을 받았어요. 보안검색 받는 방법은 제가 대학교 입학했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보안검색대를 후딱 통과했어요.
"어? 이제 흡연실 없어졌네?"
마지막으로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갔을 때와 달라진 점은 딱 하나였어요. 김포공항에서 보안검색을 통과해 탑승장으로 들어서면 흡연실이 없어요. 그거 하나 달라져 있었어요. 공지를 보니 바뀐지 몇 달 되었어요. 이것이 국제선 청사도 해당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국내선이야 보안검색부터 탑승, 도착까지 얼마 안 걸리니 흡연실이 공항 외부에 있어도 괜찮지만 국제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빙그레 리치피치맛 우유 있나?"
공항 안에 있는 가게와 식당, 카페들조차 아직 문을 제대로 열지 않은 시각이었어요. 편의점이 있었어요. 빙그레 리치피치맛 우유를 마시고 싶었어요. 편의점으로 갔어요. 빙그레 리치피치맛 우유는 없었어요.
'도시락은 서서 먹으라는 건가?'
가볍게 아침이나 때울 겸 해서 편의점 도시락을 집어들었어요. 순간 이걸 앉아서 먹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다른 카페 좌석에 앉아 먹는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앉아서 먹을 곳이라고는 탑승구 앞에 있는 의자 뿐이었어요. 참 희안했어요. 국내 저가 항공사는 국내선에서 기내식을 안 준다지만 어차피 길어야 한 시간 타는 거라 먹을 것을 싸들고 타야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다고 편의점에서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 놓은 것도 아니었구요. 탑승구 앞 의자에 앉아 도시락 까먹는 건 민폐 행위가 되기 딱 좋아요. 대체 어디서 어떻게 먹으라고 파는 건지 궁금했어요.
제가 타고 갈 비행기는 이스타항공 ZE201 항공기였어요. 탑승구는 12번이었어요. 12번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았어요.
'시간 널널한데 글이나 쓰자.'
노트북을 꺼냈어요. 24시간 카페 간 글은 아까 카페에서 다 썼기 때문에 이번에는 종로2가에서 서울 N26번 심야버스를 타고 김포공항 간 이야기를 글로 써야 했어요.
'이거 쓸 말 왜 이렇게 많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쓸 말이 많지 않을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막상 쓰다보니 써야 할 게 꽤 있었어요. 제 글 보고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획득해야 했거든요. 특히 이건 심야시간에 관련된 정보였어요. 만약 제가 쓴 글 보고 따라했는데 제가 쓴 글 정보에 문제가 있어서 망한다면 그 사람은 제대로 열받을 거에요. 24시간 카페 돌아다닐 때 멍청하고 게으른 거지들이 아무 카페나 24시간 카페라고 적어놓은 글에 속아 낭패를 겪은 적이 있어요. 진심 열받았어요. 그나마 당시 다행이었던 것은 다른 24시간 카페를 가든가 조금 버텨서 의정부로 돌아가버리든가 하면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N26번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 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런 퇴로가 없어요. 만약 이게 잘못되면 꼭두새벽에 할증요금 내고 택시로 김포공항 가야 해요. 그래서 꽤 신중하게 글을 써야 했어요.
일단 N26번 버스를 타면 김포공항 근처 롯데몰이나 송정역 PC방에서 밤새지 않아도 되는 건 확실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해서 시간 잘 맞춰서 김포공항 도착했거든요. 쓰려고 하면 쓸 말이 많기는 했어요. 그러나 무조건 다 써도 안 되었어요. 넣을 내용은 넣고, 빼야할 내용은 빼야 했어요. 그렇게 신경써서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탑승해야 할 시간이 되었어요. 글을 다 쓰지 못했어요. 노트북을 덮었어요. 탑승구 앞에 앉아 있는데 비행기 놓치면 안 되니까요.
게이트에는 비행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어요. 버스를 타고 비행기까지 가야 했어요.
새벽 6시 6분. 비행기로 가는 버스를 탔어요.
버스는 비행기 탑승 계단 앞에 멈춰섰어요. 버스 밖으로 나왔어요. 축축하고 차가운 미세한 수분이 느껴졌어요. 연무가 뿌옇게 끼어 있었어요.
'진짜 다행이다.'
아침 첫 비행기를 예약했을 때 걱정되었던 것이 두 가지 있었어요. 첫 번째는 당연히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왔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N26번 심야버스를 타고 김포공항 첫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어요.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거든요. 처음 해보는 것이고 만약 삐끗할 경우 비행기표를 그냥 날릴 수 있었어요. 그 누구도 시도해봤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긴장이 되었어요.
두 번째는 바로 아침 비행기 결항이었어요. 아침에는 안개가 잘 껴요. 김포공항 하늘이 맑아도 제주 공항이 흐리고 안개 껴서 결항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 반대도 있구요. 이런 안개는 동이 트면 대체로 사라져요. 첫 비행기는 바로 안개 때문에 결항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어요. 저도 이걸 몇 번 당해봤어요. 가장 심하게 겪었던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어요.
때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해 늦가을. 모든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가 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가 제일 마지막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공항으로 집결했다. 심지어 툭하면 지각하던 애들도 제때 공항에 다 왔다. 정말 이른 아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첫 번째 비행기였다. 학생들이 이른 새벽에 공항에 집결한 이유는 바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다. 아침 이른 시각에 있는 비행기로 서울로 올라가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날 비행기가 첫 비행기가 결항해 버렸다. 공항에서 몇 시간 버텼다. 꼭두새벽에 일어났기 때문에 공항에서 잠깐 잠들었다. 큰일났다 싶어 눈을 떴는데 애들이 다 그대로 있었다. 정오가 되었다. 비행기는 멀쩡히 잘 다니고 있었지만 우리들이 탈 비행기는 결정되지 않아 계속 공항에 머무르고 있었다. 급식처럼 식권이 나왔다. 공항에서 갈비탕을 먹고 또 기다렸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비행기를 탔다. 그 덕분에 첫날 일정은 다 취소되었고, 숙소 도착하기도 전에 깜깜한 밤이 되었다.
만약 이때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 춘천 구경을 했을 거에요. 그러나 이 일정이 아침 비행기 결항으로 날아가면서 춘천은 우즈베키스탄 다녀온 후에야 제대로 가서 구경해봤어요. 이 고등학교 수학여행 첫 날 기억나는 것이라면 공항에서 오후 2시까지 버텨야 했다는 것, 그리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저 멀리 호수 너머 불빛 반짝이는 춘천 야경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보았다는 것 뿐이에요.
그랬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새벽 비행기 결항이 걱정되었어요. 다행히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어요. 김포공항에 뿌연 안개가 끼기는 했지만 비행기는 멀쩡히 이륙할 예정이었어요. 축축한 안개를 느끼며 고등학교 수학여행 갈 때가 계속 떠올랐어요. 남들 다 수학여행 떠나는 거 부러워하다 도내 고등학교 통틀어서 맨 마지막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어서 모두의 부러움을 받았던 것부터 시작해서 공항에서 비행기 뜨기만을 막연히 기다리던 그 순간, 그리고 시꺼먼 어둠 속에서 바라본 춘천의 야경까지요.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제 좌석으로 갔어요. 어떤 아가씨가 앉아 있었어요.
"실례지만 여기 제 자리인데요."
"예?"
제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그 사람은 제 앞좌석이 자기 자리인데 착각해 제 좌석에 앉아 있었어요. 제 자리에서 비켜달라고 부탁했어요. 제 좌석에 앉아서 창밖을 보았어요.
비행기에 사람들이 계속 탔어요.
"이 시각 비행기도 만석이네?"
좌석이 꽉 찼어요. 토요일 이른 아침 김포-제주 비행기는 다른 날 이른 아침 비행기보다 인기가 좋아요. 바로 제주도 내려가서 일정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대중교통으로 김포공항 가기 불편한데 과연 만석이 될까 싶었어요. 빈 자리가 여기저기 많을 줄 알았어요. 제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어요. 빈 좌석은 아예 없다시피 했어요. 성수기도 아니고 확실한 비수기인데도 탑승객이 매우 많았어요.
비행기가 이륙했어요.
비행기는 인천 국제공항 위로 날아갔어요. 여기에서 기수를 틀어 남쪽으로 쭉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인천공항 안 가본 지 꽤 되었네.'
2016년 중국 여행 다녀온 이후, 인천공항은 한 번도 안 갔어요. 외국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갈 일이 없었어요. 인천 국제공항도 제가 마지막으로 갔던 2016년에 비해 많이 바뀌었을 거에요.
드디어 어둠이 걷히고 동이 트기 시작했어요.
구름이 자욱하게 끼어 있었어요. 구름 때문에 서해안을 하나도 볼 수 없었어요.
아침 7시 20분. 제가 탄 비행기는 드디어 제주도 상공으로 들어왔어요.
"저거 비양도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섬 속의 섬. 바로 비양도였어요.
'진짜 오늘 비양도나 갈까?'
복습의시간은 아침에 자기 차를 타고 어디 놀러가자고 했어요. 어디 갈 지 딱히 정해놓은 곳은 없었어요. 교외로 나가서 같이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자고 했지만 딱 그 정도까지만 이야기를 했어요.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은 비양도가 있는 협재, 산방산이 있는 안덕, 대정 정도였어요. 안덕 쪽은 제주도 남서부 끝이라 복습의시간 집에서 거리가 꽤 되었어요. 가볍게 다녀오기에는 경치 좋고 길도 좋은 한림쪽이 나았어요.
제주도 하늘은 매우 흐렸어요. 구름 아래로 들어오자 하늘에서 붉은 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어요. 회색 구름만 자욱하게 껴 있었어요.
"한라산이다!"
제주도 살 때는 한라산을 질리도록 보았어요. 한라산 보는 건 정말 쉬운 일이거든요. 어지간히 날이 나쁘지 않은 이상 한라산은 매일 볼 수 있었어요. 제주도가 여기저기 개발되면서 바다는 아무 데에서나 다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하지만 개발이 계획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큰 길로 나가면 한라산은 쉽게 볼 수 있어요. 게다가 한라산과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곳은 해발고도 차이가 큰 편이고, 중산간 지역은 국립공원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보니 제주도 어디에서든 한라산 보는 건 매우 쉬워요. 제주도 가서 한라산을 못 보고 온다면 그건 정말 재수 지지리 없을 때 간 거에요. 제주도 갔는데 한라산을 못 보고 온다면 그건 제주도가 오지 말라고 한 거나 다름없어요.
공기가 하나도 깨끗하지 않아 보였어요.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거든요. 제주도 기온이 확실히 따스한 것 같았어요. 한라산 정상이 하얗지 않았거든요.
비행기가 계속 고도를 낮추었어요. 이제 옛날 제주시 외곽까지 진입했어요.
2019년 3월 2일 아침 7시 26분. 비행기가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했어요. 드디어 본격적인 제주도 일정이 시작되었어요.
비행기에서 내렸어요.
'아, 복습의시간이 전화하라고 했지!'
전날, 복습의시간이 제주도 내려오면 바로 전화하라고 했어요. 아침에 자기가 일찍 일어나서 공항으로 마중나오겠다고 했어요. 그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공항까지 잘도 오겠다고 했지만, 복습의시간은 일어날 수 있다고 했어요. 복습의시간에게 전화했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복습의시간 목소리. 자다가 깨어나 받은 목소리였어요.
"너 자고 있었냐?"
"응."
"나 제주도 도착했어."
"그래?"
"나올 수 있냐? 아니면 내가 버스 타고 남녕고 스타벅스로 가 있을테니까 거기로 오든가."
"아냐. 씻고 바로 나갈께."
"나 이제 비행기 내린다. 나 짐 찾고 나가서 다시 연락할께. 그때 나와."
"알았어."
중국 여행갈 때, 복습의시간이 상하이 공항으로 마중나왔어요. 그때 제 도착 시간보고 그 시간에 딱 맞춰서 공항으로 마중나왔다가 혼자 한 시간 기다렸어요. 저를 보고 왜 이제야 나왔냐고 마구 불평했어요. 저는 당연히 국제선인데 입국수속 밟고 짐 찾고 하면 한 시간 걸리는 건 보통 아니냐고 하면서 국제선 안 타본 사람처럼 왜 도착시간에 칼 같이 맞춰왔냐고 했어요.
이건 국내선. 입국수속 따위 없어요. 사실 국제선 타고 오는 사람 마중 나갈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입국수속이에요. 입국수속이 늦어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늦어지거든요. 여기에 국제선은 수하물도 많아서 수하물 찾는 데에도 시간 많이 걸리구요. 여기에 세관까지 있어요. 만약 국제선을 타고 오는 것이라면 도착 예정시간에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늦게 공항에 도착하는 게 서로에게 좋아요. 그렇지만 이건 국내선이라 짐만 찾아 나가면 되요. 수하물도 국제선에 비하면 별로 없는 편이에요. 제 수하물이 얼마나 빨리 나오느냐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였어요.
이제 고작 2.5kg 에 불과한 수하물을 찾아야 했어요. 수하물이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어요. 제 백팩이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조금 기다리자 제 백팩이 나왔어요. 백팩을 들고 나왔어요.
제주국제공항 밖으로 빠져나왔어요.
미지근하고 약간 축축한 공기가 느껴졌어요. 의정부, 서울에서 느끼는 것과 아예 다른 이 공기. 냄새부터 달랐어요. 소금기가 살짝 섞인 제주도 공기는 여름이 되면 사람들 피부를 빠르게 까맣게 태워버려요. 눈 앞에 있는 시원한 야자수. 기분이 묘했어요.
'내가 내 돈 들여서 제주도로 여행오다니...'
제가 제 돈 들여 제주도로 여행갈 일은 죽어도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주도에서 한두 해 살았던 것도 아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에 있는 집에 가야 해서 좋든 싫든 1년에 최소 한 번은 꼭 가야 했던 곳이었거든요. 남들에게 제주도란 여행 가는 곳이지만, 제게 제주도는 집에 가기 위해 가야만 하는 곳이었어요. 여행간다고 설레고 할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 누구도 회사 끝나고, 학교 끝나고 귀가한다고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중추신경부터 말초신경까지 짜르르하지는 않잖아요. 똑같아요. 집 가느라 제주도 가는 거라 그런 기분이 들 리 전혀 없었어요. 게다가 제주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거기에서 다녔고, 그 이후에도 몇 년 전까지 매해 집 가느라 제주도를 갔으니 어지간한 건 다 봤어요.
그런 제주도에 제 돈 들여 여행왔어요. 아직까지 제주도에 여행 때문에 내려왔다는 것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어요. 매년 항상 그래왔던 거였으니까요.
저 야자수도 신기할 것 하나 없었어요. 수도권에서는 진귀한 볼 거리일 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하나도 신기할 게 없었어요. 그래도 사진을 찍은 이유는 나중에 여행기 쓰려면 공항 사진 하나는 있어야 했거든요. 만약 여행기 쓸 생각 없었다면 아예 안 찍었을 거에요.
전화기를 꺼냈어요. 복습의시간이 제게 전화를 걸었는데 못 받은 것이 있었어요. 복습의시간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야, 너 왜 전화 안 받아?"
"전화 안 받으면 카톡을 보내라니까."
"너 지금 어디?"
"공항 나왔어. 도착장 제일 끝쪽. 그 공항 나가는 쪽으로. 게이트 5번."
"아...나 벌써 주차장에 차 주차시켜놨는데...알았어 거기로 갈께."
전화기 너머로 복습의시간이 내비게이션으로 검색 입력하는데 뭔가 또 이상하게 되는지 마구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전화를 껐어요. 그리고 카카오톡으로 '게이트5'라고 제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보내주었어요.
복습의시간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항에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어요.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 안 올 것 같기도 했어요. 조금 기다리자 복습의시간이 차를 끌고 왔어요.
"야, 너 전화 좀 받아."
차에 타자마자 복습의시간이 전화 좀 받으라고 한 마디 했어요. 저는 복습의시간한테 뭐 그렇게 빨리 출발했냐고 말했어요.
"너 차 괜찮아?"
"생명보험 가입하고 왔지?"
드디어 복습의시간 차를 타는구나.
친구가 복습의시간이 운전한 차를 탄 소감을 이야기해줬을 때 복습의시간이 면허 딴 지 얼마 안 된 초보니까 그런 거겠지 하고 웃어넘긴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생각이 달라진 결정적 사건이 있었어요. 바로 복습의시간 차 엔진이 고장나서 수리맡겼다는 것이었어요. 이게 대체 운전을 어떻게 했길래 자동차 엔진이 고장나나 싶었어요. 친구 말대로 완전 사기당해서 이상한 차를 샀을 수도 있어요. 사실상 사기를 당해서 이상한 차를 샀든, 복습의시간이 운전을 정말 못하는 것이든 어느 쪽이든 안 좋았어요.
복습의시간이 생명보험 가입하고 왔냐는 이야기는 농담이었어요. 그렇게 운전할 거면 지금 저를 태우고 운전중인 게 아니라 병원에 드러누워있었겠죠. 일단 제 예상보다는 매우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었어요. 창밖을 보았어요. 흐린 날씨. 그렇게 크게 바뀐 건 없어 보였어요. 공항 진입로에서 나와 신제주로 들어갔어요. 신제주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카페가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것이었어요.
남녕고 너머 스타벅스 앞까지 금방 도착했어요.
"주차 어디에 하지?"
"주차? 대충 이 근처에 차 대놓으면 안 돼? 여기 오래 있을 것도 아니잖아."
복습의시간이 차를 끌고 주차 자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야, 여기 차 왜 이렇게 많아?"
"제주도 차 엄청 많아졌어!"
"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너 언제 왔는데?"
"2년전인가?"
"그때에 비해 엄청 늘어났어. 주차 어디에 하지?"
스타벅스 근처에 주차장이 하나 있었어요. 빈 자리가 몇 곳 있었어요. 문제는 사설주차장. 주차요금을 따로 내야 했어요. 그래서 주차요금 내지 않고 주차할 만한 곳을 찾아보았어요. 주차할 자리가 아예 없었어요. 길가를 따라 차가 꽉 들어차 있었어요. 이쪽이 원래 사람들 많이 사는 동네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아예 빈 곳이 없었어요.
"와...차 장난 아니네?"
이건 서울에서 주차할 곳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어요. 빈 공간이 아예 없었거든요. 차로 스타벅스가 있는 건물 뒷쪽을 한 바퀴 뱅 돌았어요. 원래 넓은 길이 아닌데 양쪽으로 차가 꽉 들어차 있어서 길이 더 좁아졌어요. 간신히 자리 한 곳 찾아내었어요. 복습의시간이 주차를 시도했어요.
와자작
"어? 나 차 긁어먹었어?"
"어? 잠깐만. 내가 내려서 볼께."
차에서 내렸어요. 왜 와자작 소리가 났는지 살펴보았어요. 다행히 차를 긁어먹은 것은 아니었어요. 주먹만한 아스팔트 덩어리를 밟아서 그게 깨지며 난 소리였어요. 다시 차에 탔어요.
"차 안 긁어먹었어. 아스팔트 깨진 소리더라."
"진짜 안 긁혔어?"
"어. 아스팔트 조각 밟아서 그거 깨진 거였어."
그때였어요. 복습의시간이 주차하기 더 좋은 자리를 하나 찾아내었어요. 거기에 차를 대고 내렸어요.
"너 배 안 고파? 뭐 먹고 갈까?"
"아니. 스타벅스부터 가자."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달성하기로 마음먹은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제주도 한정 음료를 다 마셔보는 것이었어요. 스타벅스 제주도 한정 음료를 다 마시려면 하루에 최소 한 번은 스타벅스를 가야 했어요. 아직 복습의시간과 뭘 할 지 하나도 결정하지 않았지만, 이따 스타벅스 갈 짬이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조건 우선 스타벅스를 가서 제주도 한정 음료 하나를 먹고 나올 생각이었어요.
"여기도 맛있을 거 같지 않아?"
"아니."
이 동네는 잘 알아요. 이쪽에 맛집 없어요. 맛있을만한 곳도 없구요. 더욱이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어요. 문을 열어놓은 식당이 있기는 했지만 거기가 맛집일 리 없었어요. 일부러 인터넷을 찾아보고 조사할 필요조차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매우 잘 아는 동네였으니까요. 이쪽은 그냥 사람들 사는 동네에요. 이 근방에서 맛집을 찾는다면 최소 제원아파트 쪽으로 가야 했어요.
복습의시간은 계속 아침 먹어야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어요. 식당 문 열린 곳이 있으면 저기 괜찮지 않겠냐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나 저는 오직 스타벅스에 갈 생각 뿐이었어요. 그것만큼은 아주 확실히 정하고 왔어요. 복습의시간이 그렇게 배고픈 것 같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놀러갈 거라면 놀러간 곳에서 아침을 먹어도 되었어요. 그보다 먼저 당장 어디를 갈 지부터 결정해야 했어요.
"일단 스타벅스부터 가자. 내가 속 든든한 음료 하나 사줄께."
"어? 진짜?"
"차 태워주는데 그 정도는 사줘야지."
복습의시간을 데리고 스타벅스를 향해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저 데리러 자기 차 끌고 공항까지 왔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사줘야죠. 복습의시간에게 사줄 음료는 이미 정해놨어요. 배고프지는 않지만 아침을 먹어야 할 거 같아서 먹어야하지 않겠냐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럴 때 딱 어울리는 음료가 하나 있었거든요. 허기를 지우고 머리에 당 쫙 올려버리는 음료요.
"저 스타벅스 중국인 엄청 많을걸?"
"저기가?"
"저 호텔에 중국인 엄청 많이 머물러."
친구 말로는 베스트웨스턴 제주 호텔에 중국인이 많이 머물러서 그 호텔 1층에 있는 스타벅스 제주노형점에도 중국인이 많대요. 그래도 일단 갔어요.
아침 8시 21분. 스타벅스 제주노형점에 도착했어요. 사실 도착은 훨씬 일찍 했어요. 복습의시간이 주차할 곳 못 찾아서 다 와서 주차 자리 찾다가 늦어진 것이었어요.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어요.
매장 안에 들어가서 주문대 앞으로 갔어요.
'제주도 스타벅스 왔구나.'
스타벅스 메뉴판을 보는 순간 제주도 스타벅스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어요. 메뉴판에는 제주 한라봉 눈꽃 라떼, 제주 유자 그린 티, 제주 녹차 베이컨 치즈 베이글, 제주 말차샷 라떼, 제주 호지샷 크림 프라푸치노, 제주 말차샷 크림 프라푸치노, 제주 녹차 티라미수 아일랜드, 제주 호지샷 라떼, 제주 까망 라떼, 제주 흑돼지 초리조 먹물 샌드위치가 크게 걸려 있었어요. 다른 지역 스타벅스와 아예 달랐어요. 이 메뉴들 모두 제주도에서만 판매하는 제주 한정 메뉴였어요.
아무리 많은 스타벅스 제주 한정 메뉴들이 제게 혼란을 주려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이미 다 결정하고 왔거든요. 저는 제주 까망 라떼를 주문했어요. 그리고 복습의시간에게는 초콜릿 바나나 블렌디드를 사줬어요. 제주 까망 라떼는 스타벅스 제주도 한정 메뉴 중 독보적으로 가장 마셔보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초콜릿 바나나 블렌디드는 허기 지우고 머리로 당 쫙 올려버리고 양도 꽤 되는 음료에요. 그래서 저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스타벅스 제주 한정 메뉴들의 노력은 아무 소용 없었어요. 고민할 일이 단 하나도 없었어요.
음료를 받아들고 자리로 갔어요.
'샌드위치도 하나 먹을까?'
스타벅스 제주 한정 메뉴를 다 먹어보는 것은 절대 무리였어요. 그래서 목표를 제주 한정 음료로 딱 한정시켜버렸어요. 그렇지만 음료 외에 다른 것을 몇 가지 더 먹어보는 것 정도라면 부담없었어요. 다시 계산대로 갔어요. 제주 흑돼지 초리조 먹물 샌드위치 2개를 주문했어요.
"뭐 주문했어?"
"제주 흑돼지 초리조 먹물 샌드위치."
"샌드위치? 배고파?"
"아니. 그냥 먹어보게."
제주 흑돼지 초리조 먹물 샌드위치 2개를 받아왔어요. 복습의시간에게 하나 먹으라고 했어요.
"오, 이거 나 먹으라고?"
"어."
"고마워!"
사이좋게 음료와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어요. 제주 까망 라떼는 소보로 같았어요. 이건 확실히 잘 만들었어요. 애매한 건 바로 제주 흑돼지 초리조 먹물 샌드위치였어요. 맛이 괜찮기는 했지만, 과연 이 가격에 걸맞는 맛인가 생각하면 뭔가 애매했어요. 복습의시간과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은 '제주 흑돼지 초리조 먹물 샌드위치에 들어간 소세지는 맛있다. 그러나 맛에 비해 가격이 비싼 건 사실이다'였어요.
진짜 여행 온 게 실감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스타벅스에 간 적은 여러 번 있어. 한밤중에 간 적도 있고, 아침에 간 적도 있어.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스타벅스에 아침 먹으러 간 적 없어. 아침부터 스타벅스 가서 음료 빨아먹으며 샌드위치 구입해서 먹어본 적은 없었어. 이건 스타벅스에 한정한 게 아냐. 내 인생 통틀어서 우리나라에서 아침에 카페에서 식사한 적은 다 뒤져도 없을 거야. 게다가 이건 내 돈 주고 사먹는 것. 나 이런 것 해본 적 없어. 이런 걸 해볼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 정말 어색해. 뭔가 많이 이상해.
게다가 하필 지금 나와 같이 스타벅스에서 아침 먹고 있는 사람은 복습의시간이야! 그동안 복습의시간과 같이 어울리며 사이좋게 합작으로 만든 궁상 열전, 찌질 열전을 책으로 쓴다면 책 한 권 쓰고 또 한 권 써도 부족할 거야. 그런데 바로 그 복습의시간과 하나도 안 어울리게 서로 사이좋게 우아하게 스타벅스에서 아침식사라니! 이거 1인당 얼추 14000원짜리 아침식사야! 스타벅스는 둘째치고 아침 식사로 14000원 써본 역사가 없어! 이런 럭셔리한 아침을 복습의시간과? 꿈에서도 안 나올 일이 현실로 진행되고 있어!
사이좋게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베어먹고 음료를 쪽쪽 빨아마셨어요. 노트북을 켰어요. 이런 제 자신이 매우 이상했어요. 이른 아침 스타벅스에 와서 음료와 샌드위치를 주문해 아침을 해결하고 노트북을 켜서 글 쓰는 내 자신이 너무나 어색해 죽을 지경이었어요. 1년 365일, 10년 3650일 중 단 한 번도 없을 것 같은 일이었어요. 하필이면 이게 제주도였어요.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아침밥 먹는 건 집에서 먹는 게 당연했거든요.
"우리 오늘 어디 가지?"
"오일장 갈까? 2일이니까 장날이잖아."
"오일장? 그럴까?"
복습의시간 반응이 영 떨떠름했어요.
"거기 주차할 수 있을 건가?"
"거긴 벌써 차 막힐걸?"
"벌써? 9시도 안 되었는데?"
"야, 너가 할머니들 모르는구나? 할머니들 아침잠 없으셔서 8시부터 오일장 가신대니까."
제주도 도착한 지 2시간 채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제주도 주차 상황이 얼마나 지옥인지 이미 다 파악되었어요. 오일장 가면 주차 공간 찾는다고 30분 헤맬 거 같았어요. 오일장 가는 게 급한 것도 아니었구요. 제가 돌아가는 날은 3월 7일. 7일도 오일장이었어요. 계획대로 된다면 3월 7일 새벽에 24시간 카페를 다 둘러본 후 오일장을 갈 거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복습의시간과 당장 오일장을 갈 필요는 없었어요. 오일장은 장날만 되면 교통 정체로 악명 높은 곳이에요. 복습의시간 운전 실력에 주차 공간 찾는 것까지 고려하면 별로 안 좋은 선택지였어요.
"비양도나 갈까?"
"비양도?"
"한림 앞에 있잖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며 이야기했어요.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와야 했어요. 복습의시간이 밤에는 눈이 잘 안 보여서 운전 거의 안 하거든요. 산방산이 있는 안덕까지 갔다 온다면 저녁에나 돌아올 수 있었어요. 하필 날이 비가 올 것 같았어요. 실제 일기예보에도 오후부터는 비가 올 거라고 했어요. '올 수 있다'가 아니라 '올 거다'였어요. 만만한 건 한림항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비양도였어요.
"비양도 뭐 있어?"
"거기 뭐 오름 있고 그럴걸? 나도 안 가봤어."
"거기 아무 때나 갈 수 있어?"
"뱃시간을 모르겠네. 그런데 뱃시간 안 맞으면 그냥 그쪽에서 놀아도 재미있지 않을 건가? 거기 바다 예쁘잖아."
"그렇지! 아, 재미있겠는데?"
오전 9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노트북을 껐어요. 이제 나가야 했어요. 뱃시간 잘 맞으면 비양도 가는 거고, 안 그러면 적당히 한림, 협제, 곽지 쪽에서 놀다 제주시로 돌아오기로 했어요.
스타벅스에서 나왔어요. 다시 복습의시간 차를 탔어요.
"야, 오른쪽 좀 봐줄래?"
"오른쪽?"
"어. 오른쪽 닿나 안 닿나 좀 봐주라."
복습의시간은 계속 오른쪽을 봐달라고 했어요.
'얘 진짜 운전 할 줄 아는 거 맞아?'
복습의시간이 차를 사고 운전한 지 6개월은 넘었을 거에요. 그런데 차가 영 시원하게 앞으로 나가지 못했어요. 일단 다른 길로 커브를 틀어 진입해야 하면 무조건 어버버버였어요. 바로 어제 면허를 딴 사람 같았어요. 단순히 좁은 길에 차가 주차가 많이 되어 있고 큰 길은 차가 쌩쌩 달려서가 아니었어요. 진짜로 혼자 어떻게 운전하고 다니나 의문이 들었어요.
"제주도 뭐 이렇게 차 많아졌냐? 진짜 많네."
"다 차 끌고 다니잖아. 운전도 완전 무개념으로 하는 사람 엄청 많아."
"렌트카는? 아직도 육지 사람들 렌트카 끌고 와서 개판으로 운전하냐?"
"아 진짜, 렌트카 최악이야."
제주도에 와서 렌트카 타고 다니는 것까지는 좋아요. 문제는 기본적으로 여행 오면 나사 하나는 무조건 다 빠지게 되어 있는데, 이걸 자동차 핸들 잡고 나사 열 개 푸르고 다니는 놈들이 참 많다는 거에요. 심지어는 면허 막 딴 후 제주도로 와서 렌트카 빌려 운전 연습하는 인간들도 있어요. 엉망은 개판이 되었고, 개판은 지옥이 되었어요. 이게 제주도 자동차 도로 상황이었어요. 제주도 온 지 몇 시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견적 다 나왔어요.
제주도 스타벅스에서 맞이한 아침도 매우 어색한 상황인데 도로 상황을 보니 더 어색해졌어요. 차가 별로 없는 토요일 아침부터 이미 엉망이었어요. 그냥 할 말이 없었어요. 아무리 제가 자동차 운전하고 다니니 않는다지만, 이건 보면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서울의 도로 상황에 비해서도 엉망 개판 난장판이었어요. 예전에는 서울 가면 차 많다고 했는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어요.
복습의시간 입에 훈족 폭군 아틸라가 빙의할까 말까하고 있었어요. 그 경계선을 왔다갔다하고 있었어요. 신제주를 빠져나와 한림을 향해 가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야, 복습의시간 차 어때?"
"아직까지는 괜찮아."
일단 전에 친구가 이야기해줬던 복습의시간이 운전하는 차량 탑승 소감에 비해서는 안전하게 잘 가고 있었어요. 그것보다는요. 신호등이란 신호등은 죄다 걸리고 있었고, 하느님께서 모범운전했다고 표창장 내려줄 정도로 아주 발발발 가고 있었어요. 내비게이션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어요. 괜찮았어요. 일단은 문제없이 한림을 향해 가고 있었거든요.
어떻게 꾸역꾸역 한림쪽까지 왔어요.
도저히 참다 못해 복습의시간에게 한 마디 했어요.
"야, 너 원래 이렇게 운전해?"
냉정히 말해서 지금 복습의시간 운전 연습하는 차에 같이 올라탄 건지, 아니면 진짜 복습의시간이 운전을 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되었어요. 안전운전하기 위해 서행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운전 못 해서 빌빌 기어가는 것 같았어요. 계속 오른쪽 봐달라고 하니 더 불안했어요. 브레이크와 악셀러레이터는 살살 밟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운전 면허 어제 딴 사람 같았어요.
"아니. 너 타서 살살 운전하는 거."
"너 평소에 어떻게 운전하는데?"
"브레이크 막 밟고 하지."
"야, 차라리 그렇게 운전해. 이게 더 불안하잖아!"
거친 운전, 순한 운전 문제가 아니었어요. 저를 배려하기 위해 살살 운전하는 건 좋아요. 문제는 살살 운전하는 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이게 오늘 면허 딴 거 같다는 거였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불안감은 없었어요. 대신 목적지에 잘 도착하고, 집까지 잘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일단 원하는 곳 근처까지는 가는데 거기에서부터 차선 변경 못 하고 그냥 강제 직진 당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복습의시간이 운전하는 게 조금 바뀌었어요. 브레이크와 악셀러레이터를 조금 더 거칠게 밟고 핸들을 보다 야성적으로 꺾기 시작했어요. 그게 더 안심되었어요.
길가에 무덤이 보였어요. 제주도는 여기저기 무덤이 많아요. 육지와 달리 산이고 들이고 여기저기 있어요. 그래서 택지 개발한다고 하면 이런 무덤 이장 문제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에요. 여기저기 무덤이 있다보니 무덤을 봐도 무덤덤해요. 육지에서는 무덤을 보기만 해도 귀신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무덤이 공동묘지나 산에 있으니까요.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거라 그럴 거에요. 그렇지만 제주도에서는 도처에 있는 게 무덤이라 무덤만 봐서는 딱히 귀신 같은 무서운 것을 떠올리며 무서워하게 되지 않아요.
지금이야 제주시 여기저기 많이 개발되어 아무 데에서나 다 무덤이 쉽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여기저기 밭, 과수원이 있었어요. 밭과 과수원이 여기저기 있다 보니 무덤도 여기저기 있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무덤만 보고 무서워했던 적은 없어요. 그냥 무덤이구나 했어요. 한림쪽은 아직 예전 제주시 지역만큼 개발이 많이 안 되어서 이렇게 무덤이 큰 길가에 있었어요.
"야, 우리 저기에서 밥 먹을까?"
"너 많이 배고파?"
"아니."
칼국수 집 하나가 보였어요. 사람들이 몰려서 줄을 서 있었어요. 복습의시간은 아침으로 칼국수 먹고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어요. 지금 배고프냐고 물어보았어요. 아니라고 했어요. 스타벅스에서 아침을 먹었으니 벌써 배고플 리 없었어요.
"그러면 이따 비양도 보고 와서 보자."
"칼국수 별로?"
"어."
칼국수는 원래 안 즐겨먹는 음식. 게다가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에 음료 먹고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더 생각이 없었어요.
"이따 비양도 나와서 먹을 곳 없으면 저기 가게."
"그러자. 다른 곳 괜찮아보이는 곳 있으면 거기 가고."
일단 점심을 먹을 식당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하나 찾아놨어요. 사실 그 식당을 갈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저는 칼국수를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그리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다 관광객들이었어요. 이건 오랜 기간 제주도에 살면서 생긴 습관 같은 것이었어요. 관광객이 몰리면 자연스럽게 피하는 거요. 한림에서 놀다가 맛있어보이는 곳 찾으면 거기 가고, 못 찾으면 그냥 저 줄 서 있는 식당 가서 점심 먹기로 했어요.
아침 10시 7분. 드디어 한림항에 도착했어요. 한림항에는 주차할 곳이 아주 많았어요. 복습의시간은 차를 여유롭게 주차시켰어요.
"이제 선착장 가자."
"선착장 어디?"
"그냥 항구 따라가다 사람 보이면 물어보자."
항구를 따라 걸어갔어요. 인부들이 보였어요.
"비양도 가는 배 선착장 어디에요?"
"완전 잘못 오셨네요. 거기는 여기서 저쪽으로 한참 가야 해요."
아저씨 한 분께 여쭈어보자 저와 복습의시간이 비양도 가는 배 선착장을 한참 넘어왔다고 알려주셨어요.
"아, 어딘지 알겠다. 아까 그 칼국수집 쪽인가 보네."
"거기 멀잖아?"
차를 타고 갈 지, 아니면 걸어갈지 고민되었어요. 비양도는 무조건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 옆의 섬. 뱃시간이 중요했어요. 저와 복습의시간은 비양도 가는 뱃시간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차를 타고 가자니 복습의시간이 주차할 곳을 찾는 게 문제였어요. 아까 스타벅스에서처럼 주차할 곳 못 찾으면 또 한참 헤매야 했거든요.
"차 타고 가자. 거기 가면 주차할 곳 있겠지."
복습의시간이 자기 차 타고 가자고 했어요. 목숨을 걸고 비양도에 가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자고 했어요.
저와 친구가 온 곳은 한림 화물항이었어요. 비양도 가는 항구가 아니었어요. 한림 화물항도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컸어요. 한림은 예전부터 제주도에서 큰 지역이었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 정말 오래 전에는 제주시 오일장보다 한림 오일장이 더 컸다는 말도 있었어요.
한림은 관광산업도 일찍부터 발달한 곳이에요. 언젠가부터 제주도 여행 트렌드가 덜 알려진 곳 찾아가기로 바뀌면서 명성이 예전에 비해 조금 낮아지기는 했지만요. 한림공원, 협재굴, 쌍용굴에 해안가도 정말 아름다워요. 해수욕장도 협재해수욕장, 금능해수욕장 등이 있구요. 협재해수욕장, 금능해수욕장은 학교에서 단체로 바닷가 물놀이 가러 잘 가는 곳이었어요. 이 해수욕장 중 특히 협재해수욕장은 사람들이 많이 가서 물놀이 익사 사고도 거의 매년 꼭 일어나는 해수욕장 중 하나였어요.
복습의시간이 차를 주차시킨 곳으로 돌아갔어요. 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요.
"저기 차 세울 데 많다."
내비게이션에서 한림항 선착장이라고 나온 곳 근처에 차 세우기 좋은 널찍한 자리가 있었어요. 차를 세우고 비양도 가는 배 선착장으로 갔어요.
차를 세우고 한림항 비양도행 도선 대합실로 갔어요.
한림항 비양도행 도선 대합실 입구에는 운항 시간표 및 요금표가 붙어 있었어요.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가는 배는 9시, 12시, 14시, 16시에 있었어요. 비양도에서 한림항으로 오는 배는 9시 16분, 12시 16분, 14시 16분, 16시 16분에 있었어요.
왕복 요금은 성인 9000원, 제주도민 8000원, 아이 5000원이었고, 비양도민은 무료였어요.
'시간 애매한데...'
아침 10시 20분이었어요. 비양도를 가려면 정오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비양도 다 보는 데에 얼마나 걸릴 지 몰랐어요. 비양도 다녀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어요. 2시간은 열심히 걷기만 했을 때 걸릴 시간일 거에요. 복습의시간과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면 시간이 적게 걸리지는 않을 거였어요. 올레길 따라 걷는 게 아니라 길이란 길은 다 쑤시고 다니며 돌아다닐 생각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