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2019)

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 04 제주도 여행 준비

좀좀이 2019. 3. 23.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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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가서 무엇을 할 지 곰곰히 생각해보았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될 거에요. 어차피 제가 아는 곳 안에서 돌아다니는 거니까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내려가도 4박 5일 정도는 잘 놀 수 있어요. 무엇을 하고 놀 지는 별로 안 중요했어요. 설령 친구들이 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재워주는 것만 할 테니 그 전에 혼자 놀라고 해도 괜찮았어요. 애초에 막 멀리 시골 촌동네 가서 놀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신제주든 구제주든 어떻게든 될 거에요. 지금 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것보다 삼대악산이 캠핑하자고 해서 짐을 어떻게 싸야 할 지가 문제였어요.


제주도는 의정부보다는 따뜻해요. 바람이 불어서 기온만 믿고 갔다가는 혼쭐나기 딱 좋을 때이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얇은 외투를 걸치고 내려갈 계획이었어요. 짐이라고는 양말과 팬티, 세면도구, 노트북과 디지털 카메라만 들고 갈 계획이었어요. 이 정도면 백팩을 메고 하루종일 다녀도 별 무리 없어요. 그런데 삼대악산이 캠핑을 가자고 했어요. 이것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어요.


이 날씨에 캠핑하면 밤새 개고생이다. 준비 단단히 해 가야한다. 자칫 잘못 해서 캠핑 후 감기 걸렸다가는 정작 제일 중요한 제주시 24시간 카페 돌아다니는 것을 망친다. 삼대악산과의 캠핑을 무탈하게 넘기는 것이 이번 여행의 최대 관건이다.


캠핑을 잘 넘기는 방법은 간단했어요. 옷을 마구 껴입으면 어떻게든 되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도 없었어요.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에 짐 다 짊어지고 24시간 카페 돌아다니는 일정이 있었거든요. 짐을 늘려서는 안 되었어요. 최대한 줄여야 했어요. 국내 여행이니까 4박 5일이라 해도 짐을 많이 싸갈 필요 자체가 없어요. 이건 외국 여행과 달라요. 게다가 숙박은 모두 친구 집에서 신세지기로 했어요. 솔직히 양말, 팬티도 안 싸가도 되었어요. 제주도 가서 사버리면 되니까요. 어차피 양말, 팬티는 때 되면 다 신고 입다 버리게 되어 있어요. 미래에 살 걸 지금 미리 조금 사놓는다고 해서 문제될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캠핑을 잘 넘기려면 옷을 반드시 챙겨야 했어요.


'아...옷 어떻게 하지?'


머리를 굴렸어요. 짐을 죽어도 더 늘리면 안 되었어요. 그렇다고 옷을 추가로 안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옷을 더 안 가져갔다가는 캠핑할 때 밤새 한숨도 못 자고 혼자 밖에 나와 계속 토끼뜀을 하든가, 억지로 잤다가 다음날 감기 걸리든가 둘 중 하나였어요. 10도는 분명히 아무 것도 안 덮고 자기 매우 추운 온도였어요. 짐을 어떻게 꾸려야 하나 계속 고민했어요.


'얘가 거적대기라도 하나 주겠지?'


만약 제가 덮고 잘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무릎담요까지 챙겨가야 했어요. 무릎담요는 오직 캠핑할 때에만 사용할 게 뻔했어요. 이런 식으로 짐을 늘리면 안 되었어요. 이러면 바로 최악의 여행이 되는 것이었어요. 만에 하나, 삼대악산이 제게 덮을 거 아무 것도 안 주더라도 버티고 짐을 늘리지 않을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어요. 권장사항이 아니었어요. 의무사항이었어요.


최대한 가볍게 가려고 했어요. 봄에 입는 외투 걸치고 가방도 백팩 하나에 노트북, 카메라, 양말, 팬티, 세면도구만 딱 넣어서 갈 계획이었어요. 그러나 그 계획은 캠핑으로 인해 무산되었어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배낭 2개는 가져가야 했어요. 카메라를 가져간다면 옆으로 메는 가방을 가져갈 수 밖에 없어요. 안 그러면 불편해서 사진 제대로 못 찍어요. 사진 찍고 싶을 때마다 백팩 끈 한 쪽 벗어서 지퍼 열고 카메라 꺼내서 사진 찍고 다시 카메라 집어넣고 지퍼 닫고 가방 다시 메는 짓을 어떻게 해요.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가서 사진 찍을 게 아마 한 둘이 아닐 거에요. 왜냐하면 여행기 쓰기로 작정하고 가는 거였으니까요. 여기에 이 짓을 빈 가방도 아니고 짐으로 꽉 찬 가방을 매었다 풀었다 하는 건 최악이었어요.


욕심을 버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 모든 걸 다 가지려 욕심부리다가는 결국 제일 나쁜 걸 선택하게 돼.


캠핑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어요. 이건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이 날씨에 할 짓이 아니었어요. 이게 말이 좋아 캠핑이지, 솔직히 노숙이에요. 서울 지하철역 노숙자들이 박스로 집 짓고 거기 들어가서 자는 거랑 똑같아요. 노숙자들은 그래도 난방 조금 되는 지하도 들어가서 자지, 저는 찬 바람 직격으로 때리는 텐트 속에서 자야 해요. 내가 서울역 노숙자보다 더 불쌍하게 자야 해요.


하지만 삼대악산은 캠핑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어요. 소중한 휴가까지 써서 간다고 하고 있었어요. 서울로 출장올 때마다 꼭 저를 보고 가려고 하는 친구에요. 제가 매일 굶고 있을까봐 서울 와서 만나면 밥도 챙겨줘요.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떠올렸어요. 한겨울에 여행 안 해본 거 아니에요. 한겨울에도 여행 많이 해 봤어요. 딱 하루 - 삼대악산과 캠핑하는 그날밤만 유독 추울 거라는 게 문제였어요. 나머지 제가 활동할 시간에는 다 따뜻할 거였구요. 이걸 해결하는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어요. 사실 캠핑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방법은 알고 있었어요. 그거보다 더 최소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문제였던 것이었어요.


욕심을 던졌어요. 저는 혼자 모든 걸 다 가져야한다고 징징거릴 나이는 훨씬 지났으니까요. 어차피 새벽 예불 볼 거면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캠핑을 몇 시부터 할 지는 모르겠지만 해 떨어진 후에 하겠죠. 아마 8시쯤 텐트를 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버텨야 하는 시간은 고작 7시간. 진짜 길게 잡아야 8시간이었어요. 삼대악산이 저 때문에 억지로 시간낸 거 다 합치면 8시간보다는 훨씬 더 많을 거에요. 그까짓 8시간, 그냥 버티면 되요. 5도까지 떨어질 수 있어요. 5도면 안 얼어죽어요. 누워서 자기 힘든 온도이지, 움직이면 그냥저냥 있을만한 온도에요.


최악의 경우를 떠올려봅시다. 일정을 생각하면 8시간 중 몇 시간 눈 붙이기는 해야 합니다. 삼대악산에게 제게 줄 침낭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나도 안 어려웠어요. 신문이랑 비닐봉지나 챙겨오라고 해야죠. 바닥에 신문 깔고 그 위에 비닐봉지 깔면 어느 정도 단열이 되요. 위는 한겨울에 입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 갈 거에요. 봄 외투 따위 몰라요. 그냥 제일 두꺼운 거 입을 거에요. 재작년 2월 영하 20도 언저리까지 갔던 한파에도 잘 버텼던 그 패딩요. 털이 수북히 달린 모자도 그대로 달고 갈 거에요. 모자 쓰면 추위를 훨씬 덜 타요. 바지 속에 얇은 추리닝 하나 껴입으면 하체도 버틸 수 있어요. 영상 5도에서 잘 수 있어요. 발은 양말 두 개를 껴신고 자든가, 그도 안 되면 비닐봉지를 신고 그 위에 양말 신을 거에요. 이러면 잘 수 있어요.


답은 나왔어요. 제주도는 분명히 따스할 거에요. 그러나 의정부에서 한겨울에 입는 옷을 입고 갈 거에요. 사람들 모두가 저를 보고 관광객이라고 생각할 거에요. 그 이전에 김포공항 가는 길에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저건 날씨도 모르고 옷 껴입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한여름에 이렇게 껴입으면 뽕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너무 이른 초봄이니까요. 그냥 추위 많이 타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겠죠. 그 이전에 저한테 신경쓰지도 않을 거에요.


짐을 어떻게 꾸릴지 답이 나왔어요. 3월 1일에 배스킨라빈스31 신메뉴 먹고 집으로 돌아와 빨래 돌릴 거에요. 그거 마르면 그대로 입고 갈 거에요. 한겨울 옷 껴입고 갈 거에요. 배낭에는 양말, 팬티에 혹시 모르니 모자 하나 집어넣고 얇은 추리닝 바지 하나 넣을 거에요. 옆으로 메는 가방에는 노트북, 디지털 카메라를 집어넣을 거에요. 딱 이렇게 들고 갈 거에요.


짐을 어떻게 쌀 지 결정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2년간 푹 자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들었어요. 배터리를 다시 충전해야 했어요. 제 디지털 카메라인 후지필름 HS10은 AA사이즈 건전지 4개를 집어넣어야 해요. AA사이즈 충전지 4개를 집어넣고 방전시켰어요. 다른 충전지 4개는 충전기에 꽂아 충전시키기 시작했어요. 충전기가 충전지를 잘 인식하지 못했어요.


AA사이즈 배터리 충전기


이게 이 디지털 카메라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 닮다.


조금 짠했어요. HS10을 구입한 건 2010년이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디지털카메라는 여행 갈 때만 들고갔어요. 정말 정을 못 붙인 디지털 카메라였어요. 색감이 저와 전혀 안 맞았어요. 아니, 색감 특징을 아직까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이 디지털 카메라 전에 쓰던 디지털 카메라인 코닥 P880을 정말 좋아했어요. 코닥 P880 으로 사진을 찍으면 약간 노란빛이 낀 듯한 따스한 사진이 나왔어요. 그런데 이건 푸른색이 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빨간색과 초록색은 확실히 잘 살리는데 나머지 색을 보면 뭔가 창백해 보여서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저와 가장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카메라에요. 정작 제 여행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건 지금까지도 정을 붙이지 못한 HS10이었어요. 사실 색감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 외에 M모드에서 셔터스피드와 조리개가 같이 움직이는 것 때문에 더 정이 가지 않았어요. 이것보다 훨씬 오래되고 기능도 별로 없는 똑딱이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인 소니 W-1도 M모드에서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를 따로 설정 가능한데 이건 그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그게 제대로 안 되었거든요. 그래서 소니 W1은 밤하늘 별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이걸로는 못 찍어요. 그래서 더 싫고 정이 안 갔어요. 무겁고 크기도 하구요.


후지필름 HS10


카메라를 들고 바라보았어요. 전원 켜는 버튼에 미세한 문제가 있었어요. 많이 고생했어요. 저는 나중에 되팔지 않고 제 손으로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꽤 험하게 사용해요. 본체에 기스가 나든 말든, 먼지가 끼고 더러워지든 별 상관 안 해요. 언제 전원 켜는 버튼이 고장날 지 몰랐어요.


렌즈를 확인했어요.


HS10 렌즈


이거 사진 찍을 때 별 문제 없겠지?


렌즈 안에 먼지가 들어가 있었어요. 렌즈 속에 있는 먼지 같은 건 서비스센터 가서 렌즈 청소 받지 않는 한 답이 없어요. 그런데 렌즈 청소 받으려면 몇 만원 깨질 거에요. 그리고 이렇게 렌즈 속에 먼지가 들어가면 렌즈 안에서 빛이 산란되어서 사진이 엄청 지저분하게 나와요. 그건 참을 수 있었어요. 맨 앞에 있는 렌즈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렌즈 정중앙에 하얀색 얼룩이 있었어요. 이건 상당히 거슬렸어요. 사진 정중앙을 뿌옇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일단 방 안에서 대충 한 장 찍어보았어요. 그런 현상이 보이지는 않았어요.


진짜 정을 안 준 카메라. 그렇지만 저와 여행을 가장 많이 함께 한 카메라. 수많은 여행기가 바로 이 카메라를 통해 탄생했어요. 상태를 보니 이제 그만 쉬라고 해야 할 때가 거의 다 된 것 같았어요. 몇 만원 깨지는 거 감수하고 렌즈 청소도 받고 전원 버튼도 수리하든가, 다른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고 이건 이제 그만 쉬라고 하든가요. 이 여행이 이 카메라의 마지막 여정이 될 거라 어렴풋 짐작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가슴이 아렸어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카메라로 이번 여행을 버텨야 했어요. 이번 여행까지만 버텨주기를 바랬어요. 이 여행이 끝나면 카메라를 하나 새로 구입하든가 HS10을 수리맡기든가 할 거였어요. 아마 웬만하면 하나 새로 산다 하더라도 이건 수리를 맡기지 않을까 싶어요. 쉬게 하더라도 수리는 하고 쉬게 하려구요. 혹시 나중에 HS10을 다시 써보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카메라를 다시 카메라 가방에 집어넣은 후 노트북 앞에 앉았어요.


'아, 예멘 식당!'


제주도에 예멘 식당이 하나 있어요.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를 시끄럽게 했던 예멘 난민 제주도 무비자 입국 사태때 입국한 예멘인이 제주도에 예멘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을 차렸다고 했어요. 제주도에 갑자기 아랍인인 예멘인들이 돌아다니자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놀랐어요. 저도 고향이 제주도이고 친구들이 제주도 살기 때문에 몇몇 이야기를 들었어요.그래서 이번에 가서 시간이 된다면 제주도에 있는 예멘 식당 앞은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어요. '와르다 레스토랑'이라는 곳이었어요.


후기를 보니 후기가 괜찮았어요. 메뉴를 쭉 보았어요. 서울 이태원에 있는 예멘 식당에서 판매하는 '만디'가 없었어요. 대신 '파술리아'라는 붉은 콩죽 비슷하게 생긴 것과 '아그다 치킨'이라는 메뉴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먹는 건 캅사와 케밥 같은데 그건 먹어봤어요. 예멘식 캅사와 케밥은 아니지만 일단 먹어본 거였어요. 파술리아와 아그다 치킨은 제가 안 먹어본 것이었어요.


'여기 과연 아랍 음식 제대로 할 건가?'


서울이라면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어요. 서울에는 아랍인도 있고 무슬림도 꽤 있어서 중동 지역 음식에서 사용하는 향신료 같은 것을 구하기 그렇게 어렵지 않거든요. 그러나 이건 제주도였어요. 제주도에서 아랍 음식 고유의 맛과 향을 낼 수 있는 재료들을 과연 구할 수 있을까? 양고기 정도는 구할 수도 있을 거에요. 중국인 천지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중국 음식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와 아랍 음식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에는 차이가 있어요. 재료가 없다면 요리사도 별 수 없어요. 재료가 뭐 비슷하게 있어야 실력으로 맛을 비슷하게 내든가 하지, 아예 재료가 없으면 무슨 공기로 연금술하는 것도 아니고 뭔 수로 맛을 내요. 심마니 빙의해서 제주도 산천을 망태기 걸쳐메고 다 헤집고 다닐 것도 아니구요.


예멘 난민이 불쌍해서 적선하는 셈치고 갈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제 혓바닥은 소중하고 제 시간은 귀중하며 제 밥통은 유한하니까요. 일단 파술리아와 아그다 치킨은 안 먹어본 음식이었어요. 게다가 과연 제주도에서 아랍 음식 맛을 제대로 낼 수 있을지 정말 궁금했어요. 제주도는 식재료가 절대 풍부하지도 다양하지도 않거든요. 식재료가 풍부하고 다양한 곳은 시골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제주도가 무슨 국제적인 곳도 아니에요. 겉으로만 그럴싸하지, 그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다 관광업 종사자 외에 모든 한국인들에게 민폐덩어리였던 중국 단체 관광객 떼거지에요. 제주도는 섬이에요. 그렇다고 제주도가 거창한 '세계적인 섬'인 것도 아니에요. 국제적인 관광지가 아니라 사드 들어오기 전에는 인터넷에서 댓글로 종조 발견되던 비하 발언 '짱깨의 섬'이 현실이었어요. 인구 자체가 물류가 마구 발전할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구요. 제주시가 아니라 제주도 인구로 봐도 100만보다 턱없이 적어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공업지역이나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동임해공업지역처럼 공장이 많아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것도 아니에요. 아랍 음식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 구하기 무지 어려울 건 안 봐도 뻔했어요. 그런 곳에서 얼마나 아랍 음식다운 아랍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을지 직접 먹어보고 싶었어요.


어느덧 2월 27일 새벽 2시가 넘었어요.


"아, 잘 되었다."


새벽 2시가 넘어버린 것을 보고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끝내기로 했어요.


먼저 제주시에 있는 24시간 카페인 탐앤탐스 제주시청점, 탐앤탐스 신제주점, 엔제리너스 제주노형점에 하나씩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요. 24시간 카페를 가기 전에 이것부터 해야 했어요. 인터넷에 존재하는 무식하고 악질적인 놈들 글 믿고 24시간 카페 찾아갔다가 허탕친 적이 몇 번 되거든요. 블로그 키워드 늘리려고 24시간 카페도 아닌데 24시간 카페라고 막 적어놓는 망할 잡것 거지들 글에 속아서 한밤중에 난처해졌던 경험도 있고, 과거에는 24시간 영업했지만 더 이상 24시간 영업 안 하는 곳, 아예 카페가 없어져버린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건 꼭 해야 했어요. 진짜 24시간 카페인지 전화해서 확인해야 했어요. 가장 정확한 건 바로 이렇게 아주 야심한 시각 - 최소 자정 넘어서 직접 전화걸어 보는 것이에요. 모두 매일 24시간 영업한다는 대답을 받았어요. 이로써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 일정은 계획세웠던 것대로 확정되었어요.


이제 두 번째 중요한 것을 해야할 때가 되었어요. N26번이 새벽 3시 30분 즈음에 종로2가 버스 정류장을 지나가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어요. 이것저것 딴짓하다보니 3시 30분 경이 되었어요. N26번 운행 상황을 확인했어요. N26번 7259번 차를 타면 김포공항 가서 제주로 가는 이스타항공 첫 번째 비행기인 6시 20분 비행기 타는 데에 아무 문제 없었어요. 이거 다음 것까지 확인할까 하다 일단 눈을 붙였어요.


눈을 떴어요. 친구와 약속이 있었어요. 친구 차를 타고 같이 경기도 화성시 가서 여자 배구 경기를 보기로 했거든요. 씻고 집에서 나왔어요. 의정부역 가는 길에 삼양해수사우나에 전화했어요. 몇 시부터 문 여냐고 물어보았어요. 새벽 5시부터 문 연다고 했어요. 삼대악산에게 삼양해수사우나 새벽 5시부터 여니까 새벽 예불 보고 목욕탕 가면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전철을 타고 친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노량진으로 갔어요. 노량진으로 가는 길에 종각에서 잠깐 내렸어요. 구입해야 하는 것이 있었거든요.


듀얼 USB


구입을 그렇게 미루고 미루었던 샌디스크 울트라 듀얼 USB 3.0 128GB을 구입했어요. 샌디스크 울트라 듀얼 USB 3.0 128GB을 구입하자마자 다시 전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갔어요. 친구와 만나 친구 자동차를 탔어요.


이 친구도 저와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에요. 저와 이 친구와 복습의시간, 뭐라카네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저를 포함해 넷 다 고등학교 1학년때 한 반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어요. 반면 삼대악산은 고3때 저와 같은 반이 되어서 친구가 되었어요. 삼대악산은 저와 다른 중학교를 나왔고, 원래 자연반이라 모르던 애였어요. 그런데 고3때 삼대악산이 문과로 넘어오며 만나서 친해졌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삼대악산을 잘 몰라요.


친구 차를 타고 경기도 화성으로 가면서 잡담을 했어요.


"그런데 뭐 하다가 복습의시간은 차 엔진 부서졌대?"

"그거 딜러한테 속은 거야."

"대체 뭘 얼마나 험하게 운전한 거지? 차가 어지간해서는 엔진 고장 잘 안 나잖아. 오래 되면 문이나 에어컨 같은 게 맛가지. 웬만해서는 엔진 맛 안 가는데..."

"그러니까 중고차는 사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진짜 막 침수된 차 산 거 아냐?"

"정말 그럴 수도 있어. 완전 속은 거야. 그거 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엔진이 고장나."


복습의시간은 작년에 운전 면허를 취득한 후 바로 중고차를 구입했어요. 친구는 작년에 제주도 가서 복습의시간이 운전하는 중고차를 타봤대요. 복습의시간 운전은 미숙하다 못해 험했대요. 이 친구는 운전 정말 잘해요. 남들 밟는 수준으로 브레이크 밟아도 막 미안하다고 해요. 브레이크를 밟는지 안 밟는지도 모르게 고요하게 잘 운전해요. 이 친구 차 타다가 복습의시간 차 타면...


포르쉐 타다가 경운기 탄 기분이겠지.


아니, 그 전에 나 태우고 가다가 차 어디 긁어먹는 거 아니야?


예전에 정말 운전 험하게 하는 사람 차를 타본 적이 있어요. 급가속, 급제동, 급커브를 마구 해서 멀미했어요. 차를 오래 탄 것도 아니었어요. 아마 두어 시간 그 사람 차 타고 같이 일 보러 돌아다녔던가 했어요. 그런데 서울 시내 평평한 곳만 다니는데 멀미했어요. 자동차 멀미는 절대 안 하는데 그 사람 차를 탔을 때,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동차 멀미라는 것을 경험했어요. 이 세상에는 말이에요, 서울 시내 평탄한 길에서 운전하며 사람 멀미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과장이 아니라 진짜에요. 그런 차를 한 번 탄 후, 어지간해서는 운전 못 한다고 하지 않아요. 그 서울에서 사람 멀미하게 만들었던 그 차 정도만 아니면 일단 못하지는 않는 거에요.


그런데 차 엔진이 고장났다고?


복습의시간 얘도 막 급가속, 급제동, 급커브 마구 하는 거 아냐? 왠지 그럴 거 같았어요. 운전을 무지 험하게 할 거 같았어요. 저는 운전면허가 없어요. 그래서 자동차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자동차 엔진이 그렇게 쉽게 고장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요.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자잘한 고장이 발생하기는 하나, 엔진이 고장나서 수리 맡겨야할 정도까지 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게다가 복습의시간은 엔진 수리비로 200만원 깨졌대요. 이거 때문에 무서웠어요. 얼마나 똥차를 잘못 샀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딜러한테 속아서 똥차 사서 엔진 수리비 200만원 나온 건 아닐 거에요. 복습의시간도 엄청 과격하게 운전했겠죠.


그때 마침 복습의시간이 어머니께서 제가 복습의시간 집에서 신세지는 것을 허락해주셨다고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토요일에 오면 더 좋은데...금요일이나."

"그때 표 무지 비싸. 제일 싼 게 8만이더라."


이건 제가 구입한 표보다 6만원 정도 더 비쌌어요. 비행기표를 바꿀 수 없었어요. 6만원은 컸어요. 솔직히 8만원 내고 갈 거라면 아시아나 항공 평일 어정쩡한 시간을 노려볼 수 있어요. 이스타항공보다 아시아나항공이 더 좋아요. 음료수 한 잔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어요. 아시아나항공은 무려 음료수도 골라 마실 수 있어요. 단순히 물 한 컵 주는 수준을 넘어 음료수를 골라서 한 잔 마실 수 있다는 건 엄청나게 커요.


6만원이면 친구에게 숙박비 대신 제가 밥 산다고 해도 밥을 세 번 사줄 수 있는 돈이에요. 조금 괜찮은 거 먹는다 하면 두 번 사줄 수 있는 돈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 비행기표를 토요일로 옮길 수 없었어요. 고작 4박 5일 일정에서 6만원은 여행의 질을 확 바꿀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요. 한 끼당 5천원씩 더 쓴다고 하면 6만원이니까 12끼를 추가로 5천원 더 쓸 수 있거든요. 4박 5일 중 마지막날 제외하면 총 16끼, 여기에서 아침을 먹게 된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친구 집에서 얻어먹게 될 거니까 딱 12끼를 제 돈으로 해결해야 해요. 6만원은 4박5일 일정에서 정말로 큰 돈이었어요.


"너 유나이티드 아파트 재건축할 거라는 거 들었어?"

"뭐? 유나이티드? 거기?"


유나이티드 아파트 앞에 있는 국민연립주택 단지는 재개발 들어갔어요. 이제 유나이티드 아파트도 재건축 들어갈 거래요. 여러 추억이 있는 유나이티드 아파트. 제 친구들이 거기에서 살았었어요. 이제 거기도 재건축 들어갈 예정이래요. 친구가 제원아파트도 재건축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어요.


"진짜? 거기 엄청 크잖아. 장난 아니겠는데?"

"요즘 제주도 집값 장난 아냐. 재건축도 많이 하고 있구."


제주도는 급격히 바뀌고 있었어요. 만약 유나이티드 아파트와 제원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간다면 엄청날 거에요. 특히 제원아파트는 교통의 요지라 그 일대가 싹 바뀔 수도 있어요. 제원아파트도 추억이 많은 곳이었어요.


'이번 제주도 갔을 때 두 곳 다 보고 와야겠다.'


이번 여행 이후 언제 제주도를 또 갈 지 몰라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또 갔다올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확률이 매우 낮아요. 또 한동안 기약없이 제주도 안 갈 확률이 아주 높아요. 제주도는 바뀌고 있고, 유나이티드 아파트와 제원아파트까지 사라진다면 그쪽 동네는 아예 싹 다 바뀔 거에요. 제가 어렸을 적 기억은 거의 찾지 못할 수도 있어요. 언제 재개발이 시작될 지 모르겠지만 사라지기 전에 한 번 정도 더 보고 오고 싶어졌어요. 어차피 이쪽은 복습의시간 사는 곳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혼자 가볼 시간이 있을 거에요.


"제주도 집값 장난 아니야."

"대체 거기는 집값 왜 오르냐?"


아직도 이해가 안 되요. 제주도 집값은 대체 왜 오르는 걸까요. 제주도 들어와서 뭐 해먹고 살려고 육지에서 계속 제주도로 들어올까요. 제주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고등학생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극한의 노력중이고, 제주도 청년들은 일자리 없어서 공무원 준비하러 서울로 올라오고 있는데요.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밖에서 보면 변한 건 무비자 상륙이 가능해졌고, 중국인 관광객 떼거지가 폭증했다는 것 뿐이에요.


제주도 현실


위 사진이 국제자유도시 어쩌구 하는 제주도의 적나라한 현실이에요. 2019년 3월 10일 하루 종일 제주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노선을 보면 오사카/간사이 1회, 도쿄/나리타 1회, 방콕 1회 외에 전부 중국이에요. 제주도로 들어와 뭘로 돈 벌어먹고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요. 전부 중국인 관광객 상대하는 일 하러 왔을 리는 없을 거구요. 그리고 왜 집값이 폭등했는지 의문이에요. 이걸 다 중국 투기자본이 들어와 제대로 오지게 펌핑해놓은 것일 리는 없구요.


기업은행 대 흥국생명 배구 경기는 정말 치열했어요. 5세트 접전이었어요. 경기가 끝난 후, 친구 차를 타고 노량진에 도착했을 때 밤 11시였어요. 친구가 차 한 잔 마시고 가겠냐고 물어보았어요.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그러나 차 한 잔 마시면 도봉산에서 의정부역까지 걸어가야 했어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헤어져 바로 버스를 타고 종로5가로 가서 108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오니 2월 28일이었어요. 바로 잠들었어요.


점심 즈음 일어났어요. 심심해서 이스타항공 사이트에 접속했어요.


"어? 토요일 아침 6시 20분 표 4만원대에 나왔네?"


서울 김포공항에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표를 3월 3일 새벽 6시 20분 것에서 3월 2일 새벽 6시 20분 것으로 바꾸려면 추가로 25000원만 내면 되었어요.


25000원과 하루의 등가교환인가.


날씨를 검색해 보았어요. 토요일 오전은 맑고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어요. 이 비는 일요일에 그칠 예정이었어요.


"에라, 모르겠다."


비행기표를 3월 2일 새벽 6시 20분 비행기로 변경했어요. 그리고 바로 복습의시간에게 연락했어요. 비행기표를 3월 2일 새벽 6시 20분 표로 변경했는데 하룻밤 더 너네 집에서 신세질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복습의시간은 괜찮다고 했어요.


전날 충전기에 꽂아놓은 에네루프 AA사이즈 배터리 4개를 빼서 카메라에 끼웠어요.


"어? 뭐야?"


카메라에 넣자마자 바로 전원이 꺼져버렸어요.


'아...전원 스위치 드디어 고장나버린 건가?'


제일 최악의 시나리오. 카메라가 딱 오늘 고장나는 것이었어요. 카메라를 구입할 시간도 없었어요. 이러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야 해요.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보았어요. 카메라 모터가 웅웅 힘없이 돌아가는 소리만 났어요. 망했어요. 다른 배터리를 끼워봤어요. 다행히 이건 카메라 전원이 들어왔어요. 충전기가 고장났든 배터리가 고장났든 뭔가 고장났어요. 맨날 AA사이즈 배터리 4개씩 사서 끼울 수는 없었어요. 디지털카메라에 AA사이즈 일반 건전지를 끼우면 사진 몇 장 찍지도 못하거든요.


급히 충전기에 카메라에 집어넣었을 때 되었던 충전지를 다시 꽂았어요. 이 충전지 4개 수명과 용량이 얼마나 버텨줄지 미지수였어요. 만약 이것도 엉망이면 상당히 머리아파져요. 일단 모든 걸 운에 맞기고 인터넷에 접속했어요. AA사이즈 충전지와 충전기를 판매하는 곳을 찾아보았어요. 예전과 달리 AA사이즈 충전기 판매하는 곳에 별로 없었어요. 게다가 다 택배 배송이었어요. 다음날은 삼일절. 충전기는 당장 필요했어요. 배터리 고장인지 충전기 고장인지 정확히 몰랐어요. 그러나 확실한 건 둘 다 갈아치울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어요. 일반 가게에서 파는 게 있는지 찾아보았어요.


'이마트라면 팔 수도 있어!'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홈페이지에서는 AA사이즈 충전기와 충전지를 못 찾았어요. 이마트몰에 접속했어요. AA사이즈 충전기와 충전지를 검색해 보았어요. 딱 하나 있었어요.


'이거 배터리 3개 주는 거야, 4개 주는 거야?'


저는 4개가 필요했어요. 충전지도 같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사진상 보이는 것은 오직 3개 뿐이었어요. 게다가 제품 설명도 시원찮았어요. 이건 이마트에 전화해야만 했어요. 빨리 가서 사야 했어요. 만만한 곳은 이마트 창동점이었어요. 이마트 창동점은 제가 가기 편하거든요. 이마트 창동점에 전화했어요.


"저희 매장에 지금 그 상품은 없어요. 지금 내부 공사 예정이라 물건 빼고 있어요."


이마트 창동점이 내부 공사 예정이라 있는 물건도 빼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래, 거기는 리모델링할 때 훨씬 지났으니까.'


내부 공사 예정이라 있는 물건도 빼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바로 수긍해버렸어요. 이마트 창동점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마트에요. 그래서 무빙 워크가 없어요. 매장 자체도 매우 좁아요. 이마트 창동점은 리모델링할 때가 된 게 아니라 리모델링해야 할 때를 훨씬 지난 매장이에요. 그래서 바로 납득해버렸어요.


동선을 떠올려 보았어요. 의정부 근처 이마트는 이마트 창동점이 있어요. 나머지는 가기 멀거나 교통이 안 좋아요. 그렇다면 다음 전화를 걸어야할 곳은 이마트 신제주점이었어요. 여기는 노형로타리 근처에 있어요. 복습의시간 집에서 가깝지는 않지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요. 이마트 신제주점에 있다면 제주도 내려가서 이마트 신제주점으로 가면 되었어요. 복습의시간과 만나 놀러가기 전에 가도 되고, 놀러갔다 복습의시간 집으로 갈 때 들려도 되었어요.


이마트 신제주점으로 전화걸었어요. 제품명을 말하고 혹시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있다고 했어요. 배터리 몇 개 들어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전화기 너머로 직원 두 명이 포장된 충전기 속에 충전지가 3개 들어있는지 4개 들어있는지 살펴보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잠시 후, 4개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전화를 끊었어요. 웃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사투리 섞인 표준어였어요. 친구들과 대화할 때야 사투리도 쓰지만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 듣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제주도에 있는 이마트에 육지 사람이 전화해서 뭐 물어볼 리는 없으니 당연히 제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랬을 거에요. 제가 제주도 간다는 게 이때부터 실감나기 시작했어요. 내려가면 여기저기에서 아래아가 보일 거고, 사투리도 들릴 거에요. 시각적, 청각적으로 말이 달라졌음을 느끼게 될 거에요.


모든 게 있는 다이소에 가볼까?


제주시에 있는 이마트에 가는 것보다 지금 당장 AA 충전지와 충전기를 구입하는 게 훨씬 좋았어요. 모든 게 다 있는 다이소라면...거기로 가야 해. 거기 가면 분명히 있을 거야. 옷을 입고 다이소로 갔어요. 다이소 진열대에 AA사이즈 건전지는 보이는데 AA사이즈 충전지와 충전기는 보이지 않았어요. 직원에게 갔어요.


"여기 충전기 어디 있어요?"

"예? 어떤 충전기요?"

"AA사이즈 충전지 충전기요."

"어디에 쓰는 충전기요?"


야!


속으로 소리질렀어요. AA사이즈 충전지 충전기라고 했더니 어디에 쓰는 충전기라고 되물어보고 있었어요. 그것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요. 어이없었어요. 순간 제가 한국어를 잘못 말한 줄 알았어요. AA사이즈 충전지 충전기보고 어디에 쓰냐고 되물어보며 저를 바라보는 직원. 이걸 왜 못 알아듣지 싶었어요.


"AA사이즈 충전지 충전하는 데에 사용하는 충전기요!"

"아...잠시만요. 그런 제품이 있던가? 한 번 찾아볼께요."


직원이 어디론가 갔어요. 저도 따라갔어요. 직원은 제가 찾아본 곳에서 AA사이즈 충전지 충전기를 찾아보았어요. 당연히 못 찾았어요. 저도 꼼꼼히 거기에서 찾아봤거든요.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가서 AA사이즈 충전지 충전기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제가 질문한 직원의 질문을 받은 직원이 제게 그건 없다고 대답했어요. 허탕쳤어요.


'에이, 나온 김에 베스킨라빈스31 가서 시즌 메뉴 뭐 나왔는지나 봐야지.'


베스킨라빈스31로 갔어요. 어떤 메뉴가 있는지 보았어요. 놀랐어요. 2월 28일인데 3월 1일에 나와야 할 2019년 3월 이달의 맛 아이스크림인 베리 그래놀라가 판매중이었어요. 졸지에 얼리어답터가 되어버렸어요.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았어요. 원래는 다음날 베스킨라빈스31 2019년 3월 이달의 맛 아이스크림 먹으러 나갔다 와서 빨래를 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먹었으니 이제 집에 가자마자 빨래를 돌려도 되었어요. 3월 2일로 비행기표를 앞당기는 바람에 빨래를 못 하고 그냥 입던 거 입고 가야했어요. 하지만 절묘하게 제가 있는 동네 배스킨라빈스31 매장에서 2019년 3월 이달의 맛 아이스크림을 2월 28일에 출시하는 바람에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베리 그래놀라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맛이 괜찮았어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집으로 갔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탁기로 빨래를 돌렸어요.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는 동안 블로그에 올릴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어요. 5박 6일 일정으로 늘어났어요. 글 6개가 필요했어요.


'아...글 6개 도저히 다 못 쓰겠다.'


글 6개를 몰아쓰는 건 진짜 무리였어요. 적당히 쓰다가 세탁기가 멈추자 빨래를 널었어요.


'내일 밤 11시까지는 어떻게든 다 마르겠지.'


24시간 넘게 말리는 거니까 이건 어지간히 습하다 해도 마를 거에요. 이제 느긋하게 3월 1일 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어요. 글을 쓰다 인터넷하며 제주에서 어디 갈지 고민하다보니 저녁 8시가 넘었어요.


저녁 8시 반 쯤 삼대악산에게 연락했어요.


"너 나한테 빌려줄 침낭 없지?"

"글쎄. 성능 안 좋은 건 하나 있다."

"지금 외투 뭐 입고 가야 하나 고민중이다. 짐 자체를 양말, 팬티만 들고 갈 거라서."

"얇은 침낭 하나는 줄께. 핫팩 하나 하고."


삼대악산이 제게 얇은 침낭 하나 빌려주겠다고 했어요.


"침낭 막 얇냐? 설마 너랑 같이 살 때 바닥에 깔았던 거?"

"응."

"아 진짜?"


그게 몇 년 전 것인데 아직도 갖고 있는 거야?


삼대악산과 숭실대 근처에서 같이 살 때였어요. 삼대악산에게는 검은색 얇은 침낭이 하나 있었어요. 그걸 쫙 펴서 바닥에 까는 이불처럼 쓰곤 했어요. 그게 몇 년 전이야? 2009년 일이었어요. 설마 진짜 남아 있겠냐 싶었지만 남아 있다면 남아 있는 그 자체로 대단한 거였어요.


"오리털 패딩 입고 계속 돌아다니려면 무지 더울 거 같고 봄외투 하나 걸치고 가자니 캠핑할 때 추울 거 같고. 외투를 뭘 입고 가야 하나 고민중이다."

"오리털 입고 좀 얇은 거 하나 더 챙겨."

"그냥 오리털 외투 입고 돌아다녀야겠네. 외투 성능은 좋아. 영하 20도도 따뜻해."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였어요.


"문제는 영하 20도에 따뜻해서 영상 10도엔 뜨뜻하다는 게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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