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36 조지아 트빌리시

좀좀이 2012. 7. 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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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단계에서의 실수.


저는 여행 계획을 칼 같이 짜지 않아요. 그쪽에 소질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어차피 빡빡하고 칼같이 짜봐야 실제 여행할 때 더 피곤하게 된다는 것을 여행을 해보며 깨달았거든요. 어차피 계획대로 다 되지 않는 게 여행이다보니 그냥 적당히 대충 짜는 편이에요. 오히려 칼같이 짜서 다녀봐야 그 일정 따르려고 스트레스 받고, 그 일정대로 안 되는 경우도 태반이거든요. 그래서 일정을 칼 같이 짜지 않는 대신, 여분의 시간을 조금 넣어 놓아요. 만약 시간이 부족하면 가져다 쓸 수 있게 여분의 시간을 만들어 놓는 것이죠. 이 여행 계획을 짤 때 여분의 시간을 하루 주었어요. 아무래도 국경을 5번 넘어야하기 때문에 한 번 정도는 문제가 터질 거 같아 여분 시간을 하루 주고, 그 이상으로 여분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다른 일정을 좀 더 빡빡하게 만들고 시간을 끌어쓰거나, 아니면 몇몇 일정은 포기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일정을 의외로 훌륭하게 잘 소화해냈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으로 넘어갈 때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어떻게 잘 해결해서 원래 일정에 맞추는 데에 성공했고, 그 상태로 트빌리시까지 들어왔어요.


하지만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은 힘든 일이어서 카즈베기 일정을 빼고 보니 여분의 시간 하루에 카즈베기 포기함으로서 생긴 시간이 하루 더 생겼어요.


"할 게 없네."


일정을 다 끝냈지만 아직 완전한 이틀, 그리고 출국일 비행기가 오후에 있었기 때문에 반나절이 남아 있었어요. 즉 남은 일정은 2.5일. 하지만 할 게 없었어요. 갔던 곳 의미없이 또 가기에는 날이 더웠고, 그렇다고 호스텔에서 하루종일 뒹굴거리자니 그것은 시간과 돈이 아까웠어요. 무언가 다른 곳에 가보고 싶기는 했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올 곳이 마땅찮았어요.


"므츠헤타나 다시 다녀올까?"


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괜찮은 생각 같지는 않았어요.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실행으로 옮길 정도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게다가 므츠헤타를 다녀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또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므츠헤타를 허겁지겁 대충 본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가고 싶다는 아쉬움이 별로 없었어요. 아쉬움이라면 오히려 한밤중에 므츠헤타에 있어보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거야 당일치기로 가서 해결될 문제는 당연히 아니었구요.


모두가 나간 후, 지도를 펼쳐 보았어요.


"우리가 안 가본 곳이 있기는 한가?"


당연히 많죠. 단지 가야한다고 확 끌리는 곳이 없을 뿐.


그래서 걷기 시작했어요. 무슨 공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공원을 찾아 걸어갔어요.












처음에는 날이 맑았는데 갈수록 구름이 끼기 시작했어요. 구름이 끼어서 햇볕은 약해져 덜 덥기는 했어요.



저건 아무리 봐도 벌 서고 있는 동상. 그래도 저렇게 해 놓은 것은 조국의 어머니상보다는 훨씬 나은 처우...일까요? 아무리 보아도 벌 받는 모습이라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벌 서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어쨌든 목표한 곳에 왔기 때문에 공원으로 내려가 돌아보려고 했으나...


투둑 투두둑


쏴아아아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일단 비를 피하기 위해 버스 정거장 아래로 들어갔어요.


"이거 금방 그칠 비인가?"


하지만 금방 그치고 안 그치고를 떠나 돌아다닐 의욕이 싸악 없어져 버렸어요. 게다가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리는데 참 이 지역스럽게 배수 시설이 안좋아 거리는 이미 물난리.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저나 친구나 비 속에서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거든요. 특히 저는 하늘에서 눈이든 비든 간에 뭔가 떨어지는 날씨 속에서는 절대 돌아다니지 않아요.


그래서 마슈르트카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나름 비를 피한다고 했지만 비에 흠뻑 젖어서 돌아왔어요. 돌아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 숙소에서 하늘만 바라보았어요.


저녁때가 되어서 비가 그치자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어요.



식당에 가서 시킨 것은 킨칼리.


역시나 그 맛이 아니다...


바투미에서 먹었던 육즙 풍부한 그 킨칼리가 아니었어요. 왠지 미리 만들어서 냉동실에 보관한 것을 그냥 전자레인지에 집어넣어 해동해 준 맛이었어요. 그래서 대충 먹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에서는 에스토니아 애들이 수박을 사와서 먹고 있었어요. 우리가 돌아오자 우리에게 수박을 같이 먹자고 해서 수박을 먹으며 잡담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다음날. 역시나 느긋하게 밖에 나와 돌아다니려고 하는데 숙소 근처에 '국회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게 국회도서관이었어?"


'국회도서관'이라고 하면 왠지 커다랗고 화려한 건물일 거라 생각해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이 진짜 국회도서관이었어요. 일단 들어가보려고 하는데 경찰이 다른 건물에 있는 어느 사무실에서 출입증을 만들어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경찰이 알려준 건물로 갔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안 되고, 오늘 여권을 맡기면 내일 오후에나 출입증이 나온다고 했어요.


우리 내일 오후에 떠나!


여권을 맡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 시간이 많이 남아 호스텔에서 어떻게 할 줄 몰라하고 있었는데 왜 그때 여기에 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우리의 자료수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련을 구성한 15개 공화국의 헌법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헌법을 구할 방법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다 있다고 했어요. 반드시 들어가야 했지만 들어갈 방법이 전혀 없었어요.


호스텔에 돌아와 그날 리셉션을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직원이 '왜 지금까지 거기에 가지 않았냐'고 뭐라고 했어요. 우리가 숙소에 오래 머물고 있었고, 빈들대고 있었던 것도 당연히 이 직원이 알고 있었거든요. 이 직원을 이날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이미 한 번 만나 인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도 그게 국회도서관인줄 몰랐어요."


그 건물이 진짜 국회 도서관처럼 생겼다면 아마 호기심에서라도 한 번 들어가 보았을 거에요. 하지만 트빌리시 시내에서 흔히 보이는 건물들 가운데 약간 좋게 생긴 수준이었어요. 호스텔에서 루스타벨리 거리까지 가는 길에서 그런 건물이 있다고 해서 특별히 신경쓰이게 생기지를 않았어요.


우리가 거기에 국회도서관이 있는 줄 몰랐다고 이야기하자 그 직원은 다른 손님에게 잠깐 여기 좀 봐달라고 하고 자기와 같이 가자고 했어요. 직원은 경찰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경찰은 역시나 같은 대답을 했어요. 직원은 도서관 앞에 가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 보자고 했어요.


니노 진쯔벨라슈빌리와의 만남


도서관 건물은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책이 있는 도서관이 아닌 다른 건물 앞에서 앉아 누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때 금발의 청순한 소녀가 도서관에서 나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어요. 어느 정도 청순하고 예뻤냐하면 담배를 태우는데 추파츕스 사탕을 빨아먹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그 정도로 매우 청순하고 예쁜 긴 금발 곱슬머리를 가진 조지아 미녀가 담배를 태우러 나왔고, 직원이 그 소녀에게 우리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을 했어요. 그러자 그 소녀는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 소녀의 이름은 니노. 이때까지는 성을 몰랐어요. 이 소녀의 도움으로 일단 도서관 안에 들어가는 데 까지는 성공했어요. 일단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소련 시절 헌법을 원한다고 하자 사서는 일단 찾아보겠다고 했어요. 여기는 개인이 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서에게 무슨 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사서가 가져다주는 시스템. 직원 아가씨는 자기도 예전 대학교 다닐 때에는 여기에 종종 들어왔고, 돈이 모이면 독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하며 도서관에 있는 책이 무엇이 있나 뒤적였어요.


잠시 후. 사서가 와서 무슨 소련 시절 헌법 책들이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오늘은 자료 복사가 안 되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에 오라고 했어요.


직원은 니노의 전화번호를 받아 우리에게 건네주며 내일 아침 9시에 도서관 앞에서 셋이 만나면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니노와 직원과 헤어져 마지막으로 트빌리시 거리를 걸었어요.







돌아가는 길에 저녁으로 먹을 생각으로 수박을 한 통 사 갔어요. 당연히 둘이서 먹기에는 너무 컸고, 다른 손님들과 리셉션 직원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어요. 확실히 매우 나라라서 수박도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달았어요.


다음날. 이날 만큼은 정말 일찍 일어났어요. 니노와의 약속이 있었거든요.


니노는 약속한 9시보다 30분 늦게 왔어요. 니노는 우리와 대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우리들 모두 서로와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니노는 영어를 몰랐고, 우리들은 러시아어를 몰랐거든요. 니노가 혼자 도서관에 들어가 자료를 복사해 왔어요. 아쉽게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은 아니었어요. 니노가 구해온 헌법은 소련의 연방 헌법의 러시아어 버전과 조지아어 버전이었어요.


니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스빠씨바' 하나 뿐이었어요. 니노와 헤어져 호스텔로 돌아왔는데 무언가 아쉬웠어요. 마침 주인 아주머니께서 계셔서 주인 아주머니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니노에게 전화 한 통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한국 가면 선물을 보내주고 싶은데 우리는 러시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니노에게 그걸 물어볼 능력이 안 되요. 니노에게 주소 좀 알려달라고 전화 한 통 해주실 수 없으신가요.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니노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와 이름을 알려주셨어요. 그제서야 알게 되었어요. 니노의 이름은 '니노 진쯔벨라슈빌리'.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진쯔벨라슈빌리의 '쯔'가 조지아어에만 있는 발음으로 발음하기 어려운 발음이라고 추가 설명까지 해 주셨어요.


이제 돌아갈 시간. 전철로 트빌리시 국제 공항까지 갈 수 있었지만, 친구의 캐리어가 아주 고장났기 때문에 택시 서비스를 이용해 공항으로 갔어요.


"여기서 기념품 사야하는구나!"


저는 이때 조지아 라리를 깨끗이 다 써서 그저 구경만 해야 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트빌리시 여행 팁을 알게 되었어요.


트빌리시 곳곳에서 기념품을 팔기는 팔아요. 하지만 의외로 다양하지는 않아요. 질이 특별히 좋아보이는 것도 많지 않구요. 만약 트빌리시를 돌아다니며 만족스러운 선물을 찾지 못해서 실망했다면 전철 타고 공항 가세요. 공항 들어가는 데에 아무 제약 없어요. 그리고 공항에 있는 기념품점에서 파는 기념품들이 종류도 다양하고 질도 괜찮은 편이에요. 단, 가격은 조금 센 편이에요. 트빌리시에서 시내를 둘러보다 정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못 찾았다면 공항에 가 보세요. 여기에서도 만족스러운 기념품이 없다면 그냥 포기하세요. 공항까지 뒤졌는데도 만족스러운 기념품이 안 보인다면 트빌리시에서 구할 방법이 없다고 보셔도 되요.


돌아오는 길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없었어요.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환승하는데 단기 선교를 다녀와 한국으로 귀국하는 한국인 무리가 많이 보였고, 아타튀르크 공항이 중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허브 공항으로 성장하며 비행기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늦은 시각까지 바글대고 있다는 것 정도? 게다가 이번에는 환승 시간도 짧아 공항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어요.


참고로 아타튀르크 공항 면세점은 정말 매력적이지 못하기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해요. 면세점인데 가격이 착하지 않아서 면세점에서 사야할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그래도 여기에서 부모님께 선물로 드릴 터키 과자인 '로쿰'을 사고 음료수 하나 사서 멍하니 시간을 죽였어요.


진짜 돌아가는 건가...


왠지 허무했어요. 그리고 예전 여행들과는 달리 기분과 느낌이 너무 이상했어요. 예전에는 정말 여행 일정을 아주 빡빡하게 해서 다녔어요. 일정을 잘 짠 게 아니라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그 절정은 당연히 '7박 35일'. 이때는 정말 눈 뜰 때마다 국가와 언어가 바뀌었어요. 이때 실제 간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무조건 야간이동이었기 때문에 전날과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정말 거의 없었어요. '겨울강행군'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이번에는 예레반에서도 푹 쉬고, 트빌리시에서도 푹 쉬었어요. 바쿠에서도 바쿠만 돌아다녔구요. 예전 여행들은 마칠 때 지난 여정들이 머리 속에서 확확 지나가는데, 이번 여행은 돌아가는데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오히려, 이제 여행이 시작된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로 몸이 여행에 적합하게 되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자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어요. 이렇게 여행에 적합한 몸상태가 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당연히 일정이 널널했기 때문. 간단히 말해서 '와! 여행 시작이다!'라고 몸은 느끼는데 현실은 '이제 곧 귀국입니다'였어요.


아타튀르크 공항은 출국장에서만 보안검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는 게이트 앞에서 보안검색을 다시 한 번 하는데, 여기에서도 똑같이 액체류 반입 금지라는 것 정도가 눈에 띄었어요. 면세점에서 산 액체류는 반드시 면세점 봉지에 잘 담아서 보안검색을 받아야지, 안 그러면 바로 폐기 또는 압수였어요.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 그냥 깊이 잤어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구나. 그리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반드시 아제르바이잔어, 조지아어와 아르메니아어를 열심히 공부해 이 지역에 다시 여행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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