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35 조지아 트빌리시 구시가지

좀좀이 2012. 7. 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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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얼굴 셋은 같은 호스텔에 머무르고 있는 에스토니아인들. 그리고 매우 낯선 처음 보는 여자는 아마 그 에스토니아인의 애인일 거였어요.


이것들 여기서 노가다 알바 뛰었나...


넷이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 있는데 온몸이 먼지투성이였어요. 하도 먼지를 뒤집어써서 몸에서 반짝이는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뿌연 덩어리들. 무슨 관광을 그리 험악하게 했길래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어서 이렇게 널부러져 앉아 있나 궁금했어요.


"물 꼭 사서 가! 위에 가게 없어!"


막노동 뛰다 잠깐 쉬는 인부들처럼 먼지 잔뜩 뒤집어쓰고 바닥에 주저앉아 물을 마구 들이키던 에스토니아인들이 우리를 보자 반갑게 인사하며 반드시 물을 사서 올라가라고 알려주었어요.


에스토니아 청년들의 조언대로 근처 가게에서 1.5리터 물을 한 통 사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달달달달 쾅쾅쾅쾅


"아놔..."


에스토니아 친구들이 왜 그렇게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는지 궁금했었는데 구시가지 탐방이 시작되자마자 알게 되었어요.


"이런 건 꼭 안 알려주어도 되는데..."


에스토니아 친구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이유는 다름 아닌 도로 공사 때문이었어요. 구시가지에서 소형 포크레인을 동원한 도로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그 구간은 온통 먼지투성이였어요. 문제는 이 구간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어느 방향으로 가든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야 했어요.




먼지투성이 구간을 지나 계속 올라갔어요. 길을 찾기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냥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되었거든요. 지도도 필요 없었어요.



"고지가 저기다!"


우리의 목표인 성이 보였어요.


"그런데 그 모스크처럼 생긴 건 어디 있다는 거지?"


성은 이제 조금만 올라가면 될 거 같은데 우리가 반드시 보기로 한 그 모스크 비슷하게 생긴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이 길을 걷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이 길은 그냥 평범하고 조용한 동네 길. 관광객도 없었어요. 그냥 한적해서 걷기는 좋았는데 문제는 우리가 가려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전망도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보아도 모스크처럼 생긴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분명히 우리가 여기에 오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 모스크 비슷한 것이 여기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둘어보아도 모스크 비슷하게 생긴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아니, 돔 자체가 보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성이 위에 보이기는 하는데 올라갈 방법이 없었어요. 길은 완벽히 막혀 있었어요.


"여기가 아닌가 보다."


길이 두 갈래 있었는데 우리가 간 길은 전혀 엉뚱한 길이었어요. 평범한 옛 트빌리시를 걸어보았다는 것 때문에 아무 소득 없이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기껏 힘들게 올라온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사실에 허탈했어요. 성은 코 앞이었으나 갈 방법은 아예 없었어요.


다시 내려가 먼지를 또 뒤집어쓰고 다른 길로 들어갔어요.



"여기다!"


저 둥글둥글한 돔을 찾았어요. 그게 드디어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저게 어떻게 보면 이 트빌리시 구시가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에요.



"이거 모스크인가?"


지도에는 분명히 이 근방에 모스크가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일단 돔으로 된 지붕이 왠지 모스크같아 보였어요.


"모스크 참 특이하게 생겼네."


보통 모스크라면 커다란 돔이 한 개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작은 돔이 여러 개 있었어요. 그러나 놀라지 않았어요. 모스크라고 해서 반드시 돔이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거든요. 모스크의 첨탑 - 미나렛이 안 보였지만, 그것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여기는 과거 소련이었으니까요.



"이거 모스크네!"


아무리 보아도 영락없는 모스크. 그래서 생각했어요.


아...여기가 원래 모스크인데 소련때 파괴되었구나!


이 생각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소련 시절, 종교를 탄압하며 모스크를 파괴하고, 극장이나 다른 용도로 바꾼 사례는 엄청나게 많아요. 아니, 제대로 남은 모스크가 오히려 얼마 없어요. 일부러 악의적으로 방치해서 자연적으로 사라지게 놔둔 경우도 있고, 아예 때려 부순 경우도 있어요.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노력을 한 경우가 엄청나게 없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리 보아도 이건 모스크였거든요. 게다가 지도를 보니 여기에 모스크가 있는 게 맞았어요.


모스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오오! 여기는 2층에 예배당이 있구나!"


1층은 별 거 없어보여서 2층으로 올라갔어요. 2층에 올라가는데 사람들이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당연히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당당히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어요.


"야! 나가!"


2층에 카메라를 들고 올라가자마자 입구에 있던 사람이 저를 쫓아냈어요. 그리고 그때 안을 얼핏 볼 수 있었어요.


이거 목욕탕이구나...


'함맘' Hammam 이라고 불리는 목욕탕이 이 주변에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그 목욕탕이었어요. 입구는 영락없는 모스크인데 내부는 함맘. 그리고 이게 모스크를 부수고 만든 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이게 소련때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여기 있던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에 저처럼 모스크인 줄 알고 들어가는 관광객이 간간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모스크 아니므로 만약 들어가고 싶다면 카메라는 절대 꺼내지 마세요. 안에 있는 사람들 마구 당황스러워 하고 화내요. 그리고 결국 저처럼 쫓겨나요.



길을 맞게 찾아왔어요. 이쪽에서는 성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었어요. 여기서 든 의문점.


저건 아무리 보아도 모스크인데 함맘이란 말이야...


그렇다면 대체 모스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모스크도 있기는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는지 입구를 찾지는 못했어요.



멀리 뒤에는 조지아 정교 교회가 보였어요. 왠지 성에 올라가면 저기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는 지금도 잘 몰라요. 하지만 구시가지에서는 정말 잘 보이는 교회에요.


다시 오르막길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으...더워!"


덥고 온몸은 땀과 먼지투성이. 친구 얼굴을 보니 짜증이 가득했어요. 그래도 간다!


이미 충분히 먼지를 많이 먹어서 배도 불렀고, 더위도 충분히 많이 먹어서 땀도 많이 나고 있었지만, 이곳을 두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그래서 이왕 온 김에 끝장을 보기로 했어요. 친구도 힘을 내었어요. 지금 힘을 내서 끝장을 보지 않으면 다음날 또 먼지와 더위를 많이 먹어야 하니까요.



드디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 바닥은 그래도 나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어요. 왠지 동굴을 통과하는 느낌이었어요.



성에 올라와 본 구시가지의 모습. 함맘과 모스크, 그리고 멀리 보이는 정체불명의 교회가 한 번에 보였어요. 성에 오면 당연히 교회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교회까지 가는 길은 없었어요. 저 교회에 한 번 가보고는 싶은데 대체 어떻게 물어보고 가야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일단은 포기했어요.



성 내부. 정말 조용했어요.



성 내부에는 교회가 있었어요.


"여기도 들어가볼까?"


하지만 문이 잠겨 있었어요.



성에서 내려다본 트빌리시 풍경.


"여기서 보니까 정말 다른데?"


성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전날 본 트빌리시의 풍경과는 전혀 달랐어요. 정말 '이런 모습도 있나' 싶었어요.



성 안에 있는 종. 왠지 정말 쳐보고 싶게 생겼어요.


종 옆으로 성벽을 기어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난간이 매우 좁고 높아서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기어올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저기 기어올라갈래?"

"아니, 싫어."


그래서 혼자 기어올라갔어요. 시작은 쉬웠으나 갈수록 어려워지는 난이도. 처음에는 조금 쉬웠으나 몇 개 올라가자마자 어려워져서 네 발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안전장치도 하나도 없고 난간 폭도 좁은데 카메라 가방 옆에 메고 올라가려니 매우 신경쓰이고 어려웠어요.


"옛날 병사들은 이런 걸 어떻게 기어올라갔지?"


정말 옛날 병사들은 발이 작았나? 난간 폭이 제가 올라가기에는 너무 좁았어요. 발 앞꿈치로만 밟고 올라가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까지 쓰며 올라가야 했는데, 저야 두 손이 비어서 두 손을 쓰며 올라가는데, 옛날에 만약 창과 방패를 들고 여기를 기어올라가고 내려와야 했다면 그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거에요.


"다 올라왔다!"


올라온 보람이 있었어요. 정말 올라간 보람이 있었어요. 원래는 올라가서 성벽을 한 바퀴 돌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고, 그저 위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 정도 할 수 있었는데, 이게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제가 조지아에서 찍은 사진 중 가장 조지아 냄새가 많이 나는 사진이에요. 한 가지 흠이라면 교회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



전날 보았던 트빌리시의 모습과는 비교가 안 되는 트빌리시의 모습.


"이 정도면 체스키 크룸로프 부럽지 않은데?"


체스키 크룸로프처럼 곡류가 흐르고 무언가 오래되었으면서 깔끔한 느낌이 있었어요. 물론 체스키 크룸로프처럼 확실히 굽은 곡류와 정돈된 느낌이 강한 동화 속 마을이라는 생각은 덜 들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충분히 아름답고 볼 가치가 있었어요. 정말 카프카스의 도시다운 느낌이 있었어요. 동화 속 마을보다는 설화 속 마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어요.


성벽에서 조심조심 기어내려와 다른 방향으로 가 보았어요.



다른 방향에서 본 트빌리시.


"이렇게 예쁜 도시라니!"


전날 왜 트빌리시 전경을 보겠다고 그 성당까지 기어올라갔는지 후회가 될 정도였어요. 차라리 여기를 두 번 올 걸...



"이건 무언가 참 많이 비슷한데?"

"그렇지? 이거 왠지 눈에 익단 말이야."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이거 비슷한 것을 어디에서 보았지?


한참 생각하다 무엇 때문에 비슷한 것을 보았다는 생각이 드는지 드디어 떠올랐어요.


"바쿠의 크즈 칼라스!"


이제 남은 것은 조국의 어머니상. 성에서 조국의 어머니상까지는 가는 길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대로 가는 길이 나와 있지도 않고, 그냥 조국의 어머니상 방향을 보고 그쪽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가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성벽을 뒤로 하고 계속 걸어갔어요.


"조국의 어머니상 갈 수 있는 거 맞긴 맞는 건가?"


아까 길을 잘못 들어가서 엉뚱한 곳에 갔기 때문에 이번도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다행히도 제대로 간 것이었어요.



이건 아니잖아...


아무리 어머니가 싫어도 그렇지, 이렇게 해 놓는 건 아니잖아...


주변에 정말 아무 것도 없었고, 그냥 뒷방에 방치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어머니면 그래도 최소한의 무언가는 해 주어야지, 이렇게 엉뚱한 구석에다가 처박아놓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았어요.


게다가 사진도 오직 저렇게밖에 찍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동상이 너무 큰데 동상 앞으로 가는 건 불가능.


"저러니 엄마가 뿔나지!"


직접 가서 보면 뒷모습만 보게 되는 그런 동상이었어요. 그저 멀리서만 앞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진짜 찬밥덩어리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당연하기는 하지만 동상 뒷모습만 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어요. 이날 저녁은 친구가 하도 '하차푸리' 먹고 싶다고 해서 한 번 먹으러 갔어요.



"이 맛이 아닌데..."


아르메니아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어요. 그냥 별로였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트빌리시에서 먹은 음식들은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트빌리시가 아닌 곳에서 먹은 것들이 정말 맛있었어요. 조지아식 만두인 킨칼리도 그랬고, 하차푸리도 그랬어요. 이상하게 맛없는 집만 골라서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트빌리시에서의 식사는 정말 불만족스러웠어요. 다른 지역에 비해 맛이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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