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트빌리시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루스타벨리 Rustaveli 거리를 걸으며 서점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이것은 로버 호스텔 근처에 있는 성당이에요. 그냥 작은 성당인데 왠지 무언가 있어 보였어요. 유럽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기독교 역사가 매우 깊은 지역이라서 동네 조그만 성당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보다 훨씬 오래되고 볼 게 많은 경우가 많아요. 조지아도 유럽 국가 중 하나로 당연히 이 경우에 해당되요.
"응?"
그냥 웃고 말았어요.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우리가 처음 트빌리시를 방문한지 며칠이 되었다고 그새 국회의사당은 보수 작업에 들어갔어요.
이 건물을 잘 보면
이렇게 소련의 흔적을 어렴풋 볼 수 있답니다. 소련 시대 국장은 이미 지워져 있었어요.
이 지역 여행을 다니며 열심히 소련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지난 7박 35일과 관련이 있어요. 7박 35일 여행때 과거 우리의 적성국가 '동유럽'에서 소련과 폴란드, 동독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다 돌아다녔어요. 동독은 이제 서독에 흡수되어 그냥 '독일'이 되었고, 폴란드는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안 갔어요. 그리고 지금도 폴란드는 그다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구요. 어린 시절, 소련은 정말 늑대가 사는 고통의 국가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난 여행에서 구 소련 지역을 가보지 못한 것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이번 여행은 드디어 구 소련 지역. 비록 모스크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구 소련 지역이에요. 그래서 소련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것은 카슈베티 Kashveti 교회에요. 큰 길가에 있어서 찾기도 쉽고 가기도 쉬웠어요.
교회 주변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조지아 사람들은 정말 신앙심이 깊어 보였어요. 지나가다 교회가 보이면 성호를 긋고, 교회에 기도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어요. 그리고 교회가 먼 곳이 아니라 교회 근처에 와서 쉬어 가기도 하는 그런 생활 속의 한 공간이었어요.
교회를 둘러보는데 한 사제분께서 수돗물로 목을 축이고 계셨어요. 우리도 수돗물로 목을 축일까 다가가자 우리에게 와서 마시라고 하셨어요. 여행중 웬만해서는 수돗물을 절대 안 마시지만 아르메니아에서 이미 거리의 식수대 물을 충분히 많이 먹었고, 조지아는 아예 생수를 수출하는 나라라서 마음 놓고 마셨어요. 사제분께서는 우리가 마시기 좋게 병에 수돗물을 담아 건네 주셨고,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그 물을 시원하게 들이켰어요.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루스타벨리 거리를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저것은 뭐지?"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언덕 중턱에 있는 교회였어요. 친구에게 교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성당, 모스크 방문을 무지 싫어하고 오르막길 올라가는 걸 싫어하는 친구의 얼굴이 굳어졌어요.
"저기 오늘 갈 거야?"
"글쎄..."
친구는 '죽어도 가지 말자'는 표정을 지었어요. 생각해보니 굳이 오늘 갈 필요는 없을 거 같았어요. 어차피 트빌리시에서 5박을 하기로 했고, 이틀은 므츠헤타와 카즈베기 다녀오고, 오늘을 제외해도 이틀이 남아요. 오늘 굳이 가기 싫다는 친구를 억지로 끌고 가며 갈 필요는 없어 보였어요. 하루는 트빌리시 구시가지 보고, 정말로 일정이 비어버리는 남은 하루에 저기나 기어올라갔다 오면 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일단 그냥 지나쳤어요.
루스타벨리 거리에서 그나마 볼만한 건물. 우리가 갔을 때 루스타벨리 거리는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국회 건물은 수리를 시작했고, 론니플래닛에 우체국이 있는 곳이라고 나와있는 건물은 아예 리모델링에 들어갔어요.
루스타벨리 거리를 따라 걷다보니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본 기념품 시장이 나왔어요.
이것 저것 종류는 많은데 특별히 구입하고 싶은 것은 안 보였어요. 아니, 구입하고 싶은 게 있기는 했어요. 바로 칼. 하지만 칼은 국내 반입이 안 되므로 구입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가격도 비쌌구요. 게다가 함부로 만져보는 것은 당연히 안 되었어요. 뿔로 만든 술잔은 선물로 사가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짐으로 부칠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왠지 귀국해서 짐을 풀어보면 다 깨져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거리, 처음 와서 기차역 갈 때 다 봤던 거리야!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어요. 리모델링 들어가고 보수 들어간 건물들 제외하면 모두 전에 와서 급히 기차역 가며 본 것들이었어요. 그때는 우리가 루스타벨리 거리를 지나가는지조차 모르고 갔어요. 그때 '이런 별 볼 일 없는 거리도 이렇게 예쁜데 다른 거리는 얼마나 예쁠까?'라고 생각했는데 그 별 볼 일 없는 거리가 바로 루스타벨리 거리였어요. 다른 거리들은 정말 이보다 더 못해요.
이 사진들 역시 루스타벨리 거리에요. 나머지 거리는 정말 어디를 사진찍어야할 지 감이 안 올 정도로 볼 게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헌 책을 파는 상인들이 몰려 있는 지하 보도까지 갔는데 마땅히 살 책이 없었어요. 규모면에서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헌책방이 몰려 있는 지하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어요. 그냥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들께서 거리 가판을 차려놓은 수준이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여기에서 조지아어로 쓰인 조지아의 민담집과 영어로 쓰인 조지아의 민담집을 구할 수 있었어요. 이것도 못 구할 뻔 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영어를 아는 조지아인 아저씨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겨우 찾아 구입했어요.
간단히 저녁을 먹고 호스텔에 돌아왔는데 평소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친구가 나가서 걷자고 했어요. 그래서 츠민다 사메바 대성당 Tsminda Sameba Cathedral 에 가기로 했어요.
아제르바이잔이나 아르메니아나 밤이 되면 사람들이 모두 나와 밖에서 놀고 있었어요. 하지만 트빌리시의 밤은...그냥 평범한 밤이었어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고, 차만 빠르게 달리고 있을 뿐이었어요.
"이거 적응 안 되네..."
항상 사람들이 북적이는 밤을 보내다 갑자기 평범한 밤을 맞이하니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여기는 시차가 있어서 8시면 해가 저물었어요. 다른 곳에서 9시에 해가 저물던 것을 생각하고 돌아다니는데 '분명 밝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어둠이 내리깔렸어요.
츠민다 사메바 대성당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알고 간 것이 아니라 그냥 보이는대로 걷다보니 대통령 궁 앞을 지나 엉뚱한 동네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이때부터 친구는 계속 힘드니 돌아가면 안 되겠냐고 하기 시작했어요.
"너 여기 또 안 올 거 아니야!"
"꼭 그 성당 가야 해?"
돌아가자니 많이 왔고, 여기가 가기 조금 애매한 위치에 있어서 지금 돌아가면 다음에 여기까지 또 걸어와야 해요. 친구는 무조건 멀리서 보았으니 된 거 아니냐고 짜증을 내었고, 저는 그럴 거면 집에서 걸어서 세계속으로나 100번 돌려볼 것이지 여행은 뭣하러 왔냐고 화를 내었어요. 길이 어두컴컴해서 눈이 안 좋은 친구는 저를 계속 쫓아왔어요. 친구도 이만큼 왔으니 다음날 또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 것 같았어요.
이곳이 바로 트빌리시에서 가장 잘 보이고 가장 크고 화려한 츠민다 사메바 대성당이에요. 낮에 보아도 멋있지만 밤에 보면 더욱 멋있답니다.
이쪽은 입구에요. 여기는 정말 트빌리시 간다면 꼭 가볼만한 곳이에요. 정말로 아름답고 깨끗하고 커요.
내부 사진은 없어요. 친구가 그때 하도 피곤하다고 짜증을 내서 저도 화가 났고, 덕분에 사진도 안 찍고 대충 보고 나왔거든요. 지금도 가장 후회되는 일이에요. 그래도 참고 그냥 보았어야 했는데 저도 화가 나서 그냥 온 김에 대충 보고 가자고 했어요.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또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러나 그 '시간'은 생기지 않았어요. 갈 수 있기는 했는데 친구가 이날 제대로 학을 떼었는지 츠민다 사메바 대성당 가자고 하면 절대 안 가겠다고 했거든요.
성당을 보고 내려와서 호스텔로 돌아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