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29 조지아 트빌리시

좀좀이 2012. 6. 29.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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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씻고 체크아웃한 후 아브토바그잘로 향했어요. 친구 캐리어 바퀴를 응급수리 받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끌고 다닐 수는 없었어요. 이제 최대한 조심히 끌어야했기 때문에 당연히 시간은 더 많이 걸려요.


제가 머물렀던 엔보이 호스텔 Envoy Hostel에서 아브토바그잘로 가는 방법은 마슈토트 Mashtot 거리에서 100, 94, 13, 15, 267, 77번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에요.


다시 여기로 돌아왔어요. 이곳에서 예레반 여행이 시작되었고, 이제 마무리를 지을 시간.


입구에 택시 기사들이 몇 명 있기는 했지만 트빌리시 오르타짤라에 비하면 수도 적고 사람에게 들러붙는 힘도 약했어요. 택시 기사들로 벗어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아브토바그잘 안으로 들어갔어요.

벽에 붙어있는 시간표.

우리가 아브토바그잘에 도착한 시각은 8시 5분. 정말 간발의 차이로 차를 놓쳤어요. 덕분에 9시 차를 탈 때까지 멍하니 차를 기다려야 했어요. 여기도 보다시피 영어 따위란 없어요. 오직 아르메니아어와 러시아어 뿐이에요.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에 여행을 갈 계획이 있으시다면 키릴 문자는 외워서 가세요. 알고 모르고가 여행의 난이도를 꽤 크게 좌우해요.

이것이 우리가 타고 갈 차량.


표지판을 보니 조지아에서 온 차였어요. 그냥 서로 오고 가며 손님을 태워가는데 이 차는 그 시작을 조지아에서 했어요.


6시간 걸린다는데 이건 전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믿을 거라고는 닥치고 일찍 가는 것 뿐.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므로 그냥 닥치고 최대한 빨리 차에 타는 것이 낮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법이에요. 이 차 역시 안락함 따위는 카프카스 산중에 던져버린 차였어요. 가는 내내 머리가 제멋대로 흔들리고 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 차가 뒤뚱뒤뚱 달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저는 매우 잘 잤어요. 저는 웬만해서는 정말 잘 자거든요. 일어나서 개운하냐 몽롱하고 찌뿌둥하느냐를 떠나서 '잠자는 것' 그 자체는 잘 해요. 하지만 친구는 잠들려고 할 때 의자에 머리를 박아서 잠이 다 깨어버렸다고 했어요. 당연히 저는 깊게 잠들어서 친구가 머리를 박는줄 몰랐어요.


다시 도착한 국경. e-visa 종이를 여권과 함께 건네주자 직원이 여권에 도장을 찍어 돌려주었어요. e-visa가 인쇄된 A4용지는 돌려주지 않았어요. 출국심사는 매우 빨리 끝났어요.


이제 조지아 입국 심사. 기사 아저씨가 다른 승객들에게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라고 했어요. 아마 외국인이라 입국심사가 조지아인, 아르메니아인보다 오래걸리기 때문에 너무 늦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았어요.


입국심사대는 두 곳. 왼쪽은 그냥 평범한 사람. 오른쪽은 줄리아 로버츠 2. 그래서 일부러 왼쪽에 섰어요. 조지아 출국심사때 줄리아 로버츠 1에게 호되게 당했어요. 그게 불과 1주일 전 일이었어요. 줄리아 로버츠 1과 줄리아 로버츠 2는 서로 다르게 생겼지만 둘 다 어쨌든 줄리아 로버츠를 닮았어요. 지난번 괜히 줄리아 로버츠 1에게 갔다가 출국심사때 호되게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줄리아 로버츠 2를 피해가기로 했어요.


"여기로 와요."


너의 관심은 참 거부하고 싶구나


일부러 줄리아 로버츠 2를 피해 왼쪽의 특징 없는 직원쪽에 줄을 섰는데 줄리아 로버츠 2님께서 친히 우리를 불러주셨어요. 미녀한테 국경심사를 받고 나발이고 그저 별 일 없이 빨리 통과하고 싶었는데 우리의 너무나 예쁜 줄리아 로버츠 2님께서는 우리를 직접 불러서 자기에게 오라고까지 하셨어요. 정말 거부하고 싶은데 거부할 수도 없었어요. 제가 줄리아 로버츠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줄리아 로버츠 2를 피해갈 타당한 이유가 없었거든요.


내 이럴 줄 알았어!


역시나 우리의 줄리아 로버츠 2님께서는 우리에게 뭔 관심이 그리 많은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어요.


애정과 관심은 그렇게 표현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에게 애정과 관심이 있으면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하고 같이 차리도 한 잔 마시고 하다고 해야죠. 서로 편지나 메일 주고 받고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자고 연락처를 교환하구요.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관심의 표현 방법. 조지아에 얼마나 머물 거냐고 물어보아서 5일 머물고 한국에 돌아갈 거라고 했어요. 그러자 트빌리시에 간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당연히 트빌리시에 간 적이 있고, 비행기로 트빌리시 들어와서 아제르바이잔 갔다고 대답했어요. 돈은 어떻게 마련했고, 직업은 뭐고...별별 것을 다 꼬치꼬치 캐물었어요. 우리가 전부 다 대답하자 줄리아 로버츠 2는 우리들의 여권을 들고 옆 사무실로 들어갔어요.


잠시 후. 사무실에서 나와 우리에게 한국 어떻게 갈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친구가 다시 설명하려는데 친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후, 가방에서 비행기표를 꺼내서 보여주었어요. 직원은 비행기표를 꼼꼼히 읽어보더니 마지못해 통과시켜주었어요.


조지아의 줄리아 로버츠 1이나 줄리아 로버츠 2나 지지리 통과 안 시켜주는 것은 매한가지였어요. 당연히 제게 관심이 있을 리 없죠. 조지아를 무비자로 입국하게 된 것은 좋은데, 대신 엄청나게 까다롭게 굴더라구요. 그래도 한국인은 조지아 무비자 360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서 비자가 없다는 것 가지고 트집잡는 일은 없었어요.


오르타짤라에 도착해 밖으로 나왔어요. 택시기사들이 역시나 우리를 잡으려 했지만 가볍게 무시했어요.


"이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야기 마음껏 해도 되겠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르메니아 이야기를, 아르메니아에서는 아제르바이잔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서로 감정이 매우 극악으로 안 좋거든요. 그래서 우리 둘 다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어요. 이야기를 할 때에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르메니아를 '그 나라', 아르메니아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을 '그 나라'라고 간접적으로 지칭해서 대화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는 없어졌어요. 여기 이 나라, 조지아는 아제르바이잔과도, 아르메니아와도 사이가 괜찮은 나라거든요.


물론 조지아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이야기해서 된다는 것은 아니에요. 이 나라 사람들은 러시아와 감정이 안 좋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러시아를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지만, 조지아 입장에서 러시아와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처럼까지는 아니에요.


조지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로버 호스텔에 찾아가는 일. 트빌리시에서 어디에 머무를까 고민하다가 엔보이 호스텔에 트빌리시에 있는 로버 호스텔 광고를 보고 거기로 가기로 했어요. 오르타짤라가 좀 이상한 곳에 있어서 지난 번에 왔던 대로 버스 정거장에 갔는데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어요. 그래서 마슈르트카를 몇 대 그냥 보내고 기다리다가 결국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어요. 마슈르트카가 오자 무조건 지하철 역 가냐고 물어보았고, 지하철역 가는 마슈르트카가 있어서 그것을 타고 이사니 Isani 지하철 역으로 갔어요.


지하철을 타고 Tavisuplebis Moedani 역에서 내렸어요. 지도에 Freedom square는 있었지만 Liberty square는 없었어요. 게다가...


"바퀴 또 부서졌어!"


예레반에서 응급조치 받은 친구의 캐리어 바퀴가 트빌리시 와서 얼마 끌지도 못해 또 부서졌어요. 둘 다 캐리어 안에 책이 꽤 들어 있어서 무거웠어요. 손으로 들고 돌아다니기에는 매우 힘들었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방을 교대로 끌고 들며 한 시간을 헤매서 겨우 로버 호스텔을 찾았어요.


로버 호스텔의 장점은 세탁기를 무료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당연히 세제도 공짜. 아침 식사를 주지 않는 대신 주방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어요. 호스텔에서 아침밥을 주지 않는 것이 부정적 요인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세탁기를 마음껏 돌려도 된다는 것. 최소한 빨래를 위해서라도 한 번은 들어갈 가치가 있는 호스텔이었어요. 게다가 여름이기 때문에 옷을 이틀 연속으로 입는 것은 불가능. 빨래를 자주 하지 않아도 되는 겨울이라면 장점이 별로일 수도 있겠지만 빨래가 하루에만 몇 벌씩 쌓이는 여름에는 밥 보다는 공짜로 세탁기 돌리는 것이 10배 더 나아요. 트빌리시도 어마어마하게 덥거든요.


가는 방법은 지하철 Tavisuplebis Moedani에서 내려 푸르첼라제 Purceladze 거리로 들어가면 되요. 푸슈킨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있어요.


호스텔이 작고 아담한데, 세탁기를 마음껏 써도 되고 주방도 마음껏 써도 된다는 말에 5일치 돈을 결제했어요. 그리고 예레반의 헌책방 거리 같은 것이 있는지 주인 아주머니께 여쭈어 보았어요.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벼룩시장에 가보라고 알려주셨어요.


로버 호스텔 주소 : 14 Purceladze st. Tbilisi

전화번호 : 293 65 20


여기 호스텔은 주인 아주머니와 직원들이 영어를 매우 잘 해요. 단, 홈페이지가 매우 부실한 것이 흠이에요.


우리가 갔을 때에는 다행히 아직 성수기라고 하기는 애매한 7월 중순이었기 때문에 방이 있었어요. 그래서 예약하지 않고 갔는데도 방이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만약 이 호스텔에 방이 없었다면...정말 암담했을 거에요.


어쨌든 가장 중요한 숙소 잡는 일이 잘 풀렸어요. 캐리어가 고장난 것은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어요. 일단 공항까지만 가면 그 다음부터는 바퀴 부서진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일도 없었거든요. 트빌리시 지하철은 공항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숙소에서 지하철역까지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지만 가방을 들고 이동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백해무익할 뿐더러 아주 뜨거운 백주대낮에 할 짓은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가방을 방에 집어넣고 책을 구할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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