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룰 내용은 우즈베크어 라틴 알파벳 개정안 발표의 주요 내용 및 전망이에요.
2018년 11월 6일, 우즈베키스탄 통신사인 UZA (O'ZA, O'zbekiston Milliy axborot agentligi)는 타슈켄트 국립 알리셰르 나보이 우즈벡 언어 문학 대학교에서 열린 회의에서 우즈베크어 라틴 알파벳 개정안에 대해 최종 개정안이 확정되었다고 보도했어요. 이 최종 개정안은 아직 법적 효력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우즈베크어 라틴 알파벳 개혁 확정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우즈베크어 라틴 알파벳 개혁 확정'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를 통과해야 하고, 여러 일반 대중매체를 통해 전국적으로 널리 공포되어야 하거든요. 아직은 정확히 말하자면 '개정 권유안' 상태이지만, 최종안은 확정된 상태이고, 이것으로 개정할지 정부의 결정 여부만 남은 상태에요.
아래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우즈베크어 알파벳이에요.
먼저 우즈베크어 키릴 문자는 다음과 같아요.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는 다음과 같아요.
출처 : http://www.omniglot.com/writing/uzbek.htm
예전에 우즈베크어 문자 개혁과 관련된 글을 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어요.
(관련글)
우즈베키스탄에 라틴 문자가 정착이 안 되는 이유 - http://zomzom.tistory.com/381
실패한 우즈베키스탄 문자개혁 - 우즈베크인들은 Sirk를 어떻게 읽을까요? - http://zomzom.tistory.com/619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독립 이후 자국어인 아제르바이잔어와 투르크멘어에 대한 라틴 문자로의 문자 개혁을 실시해 성공시켰어요. 그렇지만 우즈베키스탄은 문자 개혁을 라틴 문자로의 문자 개혁을 실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고 평가해도 무방한 상황이에요.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정부의 의지' 차이라 할 수 있어요.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문자 개혁 실시 후, 라틴 문자 정착을 위해 그에 맞추어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갔어요. 그에 비해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크어 문자를 키릴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 문자 개혁을 단행하기는 했지만, 이를 정착시키는 노력은 매우 지지부진했어요. 좋게 표현하면 '점진적'인 것이고, 냉정히 이야기하면 '알아서 되겠지' 수준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도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어 문자 상황은 혼돈 상태에요. 요즘은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있었던 2012년보다는 라틴 문자를 많이 사용한다고 해요. 특히 어린 연령층에서는 우즈베크어를 키릴 문자보다 라틴 문자로 알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지금도 키릴 문자로 된 우즈베크어를 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방송, 언론 모두 여전히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그냥 일반 민영 방송사도 아니고 국영 방송사에서도 여전히 키릴 문자로 된 우즈베크어가 계속 등장하고 있어요.
저는 2012년 이후 우즈베키스탄에 가본 적이 없어요. 제가 있었던 2012년보다는 우즈베크어를 라틴 문자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기는 했을 거에요. 국영 언론사에서 어떤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가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가 그 나라 문자 상황이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라 할 수 있어요. 공식 매체에서 여전히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가 제대로 정착 못 했다는 의미니까요.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는 정부의 의지 결여로 인해 정착도 제대로 못 되었을 뿐더러,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시스템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요. 이 문제는 많은 우즈베크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문제에요.
현재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아요.
1. 작은 따옴표 사용 문제
-> 우즈베크어에는 O‘, G‘ 가 있어요. O‘ 는 하나의 모음, G‘ 는 하나의 자음이에요. 즉, o 와 o' 는 다른 문자이며 다른 발음이라는 것이에요. 문제는 이것을 타이핑할 때에는 따로 입력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거의 모두가 귀찮으니까 작은 따옴표를 이용해 표기하곤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작은 따옴표끼리 모여 자기 멋대로 방향이 바뀌는 일이 발생하곤 해요.
-> 우즈베크어에는 Tutuq belisi 라는 것이 있어요. 이것은 작은 따옴표로 표기해요. 모음 뒤에 붙으면 장모음이 되고, 자음 뒤에 오면 끊어서 발음해야 해요. 이것은 아랍어의 흔적으로, 현대 우즈베크어에서는 자음으로 사용되었을 경우 성문폐쇄음, 모음 뒤에 오면 장모음화로 발음되고 있어요. 이 또한 모두가 작은 따옴표를 이용해 썼어요.
2. 키릴 문자 1문자가 라틴 문자 2문자로 표기되는 경우
-> 키릴 문자 ш 는 sh, ч 는 ch 로 바뀌었어요. 문제는 sh, ch 모두 우즈베크어에서 상당히 많이 쓰이는 자음이라는 점이에요. '상당히' 수준이 아니라 '무진장' 수준으로 많이 쓰여요. 그래서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sh, ch 는 가독성을 엄청나게 떨어뜨려요. 더욱이 키릴 문자에서 한 글자로 쓰던 것을 라틴 문자로 바뀌면서 두 글자로 써야 하니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더욱 불편할 수 밖에 없어요. (우즈베크어를 공부하면 꼭 한 번씩 겪는 현상이에요)
3. c 는 안 쓰는데 ch 는 있다.
->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를 보면 c는 아예 안 써요. 그렇지만 ch가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c가 존재해야만 해요.
뉴스 기사에 나온 내용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요.
2018년 5월 15일 확정된 '라틴 문자를 기초로 한 우즈베크어 알파벳의 통용과 개정에 관한 운동 계획'에 의거하여 올해 말까지 우즈베크어 알파벳 개정안이 확정되고, 통과되어야 하게 되었대요. 이를 위해 10월 22일 타슈켄트 국립 우즈베크 언어 문학 대학교에서 '라틴 문자를 기초로 한 우즈베크어 문자의 통용 및 개정에 대한 문제'라는 학술 회의가 실시되었어요.
이 학술 회의에서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개정안에 대해 세 그룹이 존재했다고 해요.
첫 번째 그룹은 문자 개정을 최소화하자는 그룹이었어요. 우즈베크어 알파벳 중 O‘, G‘ 입력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 문자를 표현하기 위한 부호 (‘) 대신 새로운 부호를 개발하는 선에서 개정을 최소화하자고 주장했어요. O‘, G‘ 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먼저 o, g 를 입력한 후 alt-0145 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 불편하니 아예 새로운 부호를 하나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그것 외에는 건드리지 말구요.
두 번째 그룹은 O‘, G‘ 와 더불어 Ch, Sh 도 개정해야 한다는 그룹이었어요. 현행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표기법에 대한 불만은 O‘, G‘ 뿐만 아니라 Ch, Sh 까지 포함하고 있어요. O‘, G‘, Ch, Sh 가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가독성 및 필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우즈베크어 키릴 문자가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보다 아직까지도 널리 이용되는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이 안 배우려고 해서, 또는 정부가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에요. O‘, G‘, Ch, Sh - 이 네 글자 때문에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가 우즈베크어 키릴 문자에 비해 가독성, 필기 모두 엄청나게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두 번째 그룹은 이 문제의 네 알파벳 O‘, G‘, Ch, Sh 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세 번째 그룹은 최대한 바꾸자는 그룹이었어요. O‘, G‘, Ch, Sh 는 물론이고, Ĵ, ı, ö, ü 도 추가하자고 주장했어요. 우즈베크어를 제외한 다른 튀르크어 알파벳 모음을 보면 쌍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튀르크어는 모음 조화가 있기 때문이에요. 표준 우즈베크어에는 모음 조화가 없어요. 소련 시절, 표준 우즈베크어를 정립할 때 모음 조화가 없는 아랍어와 이란어의 영향을 크게 받아 모음조화가 사라진 사마르칸트 지역 사르트 방언을 기준으로 삼았거든요. 하지만 실제 우즈베크인들도 우즈베크어를 발음할 때 어느 정도 모음조화를 하기는 해요. 단지 문자에 없기 때문에 이를 아예 인식하지 못할 뿐이죠.
(세 번째 그룹 주장과 별개로, 실제 우즈베크어 발음을 들어보면 o', i 는 한 글자로 표기되나 실제 발음은 하나가 아니에요. o'는 최소 '오', '우', i 는 '으', '이' 로 발음되요.)
각 그룹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있었어요.
먼저 문자 개혁을 최소화하자는 그룹은 이번에 또 바꾸면 지금까지 라틴 문자를 익힌 세대들의 노력은 무엇이 되고, 새로이 등장할 문해력 문제는 어떻게 할 거냐고 주장했어요. 더 나아가 지금까지 현재 라틴 문자로 출간한 서적 및 발행물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했구요.
(제가 어렸을 적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한국어 표기법 대개정이 있었어요. 바로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꾼 것이었죠. 이때 기존에 존재하던 모든 책이 헐값에 떨이처리되고 새로 출간되어야 했어요. 또한 한동안 '읍니다'로 쓰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했구요. 그래서 이들의 주장도 납득이 가요.)
네 글자만 바꾸자고 주장한 그룹은 현행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O‘, G‘, Ch, Sh 글자이므로 이것만 교정해도 충분하나, 새로운 철자를 도입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문제로 인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최대한 바꾸자고 주장한 그룹은 바꿀 것이라면 완벽한 문자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구요. 문자 개혁이란 한 번 바꾸면 전사회적으로 고쳐야할 것이 한둘이 아니니 아예 할 때 확실히 하자는 것이었죠.
결정권자들은 문자 개정을 최소화하자는 그룹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해요. 왜냐하면 현재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문제는 단순히 O‘, G‘ 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CH, SH 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거든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1. 우즈베크인들은 1발음 1문자로 교육받았어요.
2. ch, sh 는 영어 표기에는 적합한 방식일지 모르지만, 우즈베크어 표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에요.
3. ch, sh 는 영어식으로 읽었을 때에는 우즈베크어 발음과 일치하나, 그 외 - 예를 들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방식으로 읽으면 전혀 다른 소리가 되요.
4. 우즈베크어에는 c가 없어요. 그러나 ch 가 존재하기 때문에 c가 불필요하게 존재해야만 해요.
5. ch, sh 는 우즈베크어가 영어보다 3~5배 더 많이 사용해요. 즉, 영어에서는 ch, sh가 가독성과 필기에서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으나, 우즈베크어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일단 최소한 O‘, G‘, Ch, Sh - 이 네 문자 만큼은 수정해야 한다고 1차 결론을 내렸대요.
그 다음 최대한 바꿔야 한다는 그룹 주장에 대한 반문이 제기되었어요. 반문은 다음과 같아요.
1. 우즈베크어는 다른 튀르크 언어들과 달라요.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국적 사람들 중 우즈베크어를 사용하는 사람 중에는 큽착 튀르크어 화자에 속하는 카자흐인도 있고, 오우즈 튀르크어 화자에 속하는 투르크멘인도 있고, 카를룩 튀르크어 화자에 속하는 위구르인도 있어요. 게다가 우즈베크인들 사이에도 여러 방언이 존재하며, 이 방언에 따라 우즈베크어 발음 차이가 존재해요. 다른 튀르크어와 비교할 때, 우즈베크어에만 우즈베크어 문자 o 로 표기되는 독특한 발음이 있어요. 현대 표음 문자는 모든 방언 속에서 어느 정도 중립적이어야 해요. 여기에서 하나의 질문을 도출할 수 있어요. 문자는 오직 소리를 가능한 한 최대로 반영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와 더불어 민족 정체성, 단일성 강화에 이바지해야 하지 않나요?
2. 현대에 들어와서 우즈베크인들은 x 와 h 발음을 구분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있어요. 그런데 현재 Ў, У, И (o', u, i) 로 표기되는 발음을 다시 두 종류로 구분하라고 하면 정자법에 맞게 글을 쓰는 능력이 더 엉망이 되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우즈베크어에서 x 와 h 발음은 분명 다른 발음이기는 해요. 우즈베크인들에게 각각 하나씩 발음해 보라고 하면 분명히 다른 소리로 발음해요.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씩 발음해보라고 할 때이고, 실제 우즈베크인들 사이에서 x 와 h 발음 구분은 거의 무의미해져가고 있어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x 와 h 발음이 비슷해져서 이 두 알파벳의 차이는 어원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 봐도 될 정도에요. 그래서 x 와 h를 구분하는 것에 불만인 우즈베크인들도 꽤 있어요. 그런데 지금껏 - 소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o', u, i 에 대한 새로운 개념인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를 구분하라고 하면 더 난리가 날 수 있어요. 실제 발음에서는 그런 구분이 존재할지 모르겠으나, 아예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둘을 구분하지 않아왔으니까요.)
3. 만약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을 구분하게 한다면, 교육 현장에 있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을 정확히 구분하고 발음할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런데 똑같은 단어도 다양한 발음으로 발음하는 교사들이 과연 I ı 와 İ i, Ŏ ŏ 와 Ö ö, U u 와 Ü ü 차이를 동일하게 느끼고 구분할 수 있을까요?
4.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가 더 복잡해진다면, 자신의 문해력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많은 어른들이 자녀들을 우즈베크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다른 언어 - 특히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학교로 보내려 할 가능성도 많아요. 이 경우 모국어에 대한 태도를 더 나쁜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중앙아시아 및 카프카스 지역은 국어로 정해진 언어로 가르치는 학교와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따로 있어요. 이는 러시아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타타르어로 가르치는 학교라든가 사하어로 가르치는 학교 등이 있어요. 원칙적으로 자신의 모어로 가르치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어 있어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겠지만,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있었던 2012년만 해도 우즈베크인들이 '보다 잘 배우기 위해' 모어가 우즈베크어이지만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흔했어요. 소련 시절, 러시아어 우대 정책의 유산이죠. 교사의 질 및 교육 시스템 같은 모든 것이 러시아어 학교가 현지어 학교보다 더 나았기 때문에 모어 상관없이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러시아어 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흔했고, 이는 구소련 지역에서 국어가 널리 확산되는 것에 엄청난 장애물로 작용했어요.)
5. 정부 기관에서 새로운 알파벳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해 버린다면, 공식 표기법 지정이 미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6. 만약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을 구분하게 된다면, 이는 단순히 정자법 상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즈베크어 문법까지 뜯어고쳐야 하는 문제로 일이 엄청나게 커져 버려요. 대표적으로, 우즈베크어에서는 동사의 기본 명사 형태 (사전에 실리는 형태)을 만들 때 어간 뒤에 일관되게 -moq 을 붙여요.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을 구분할 경우 경음 단어는 -moq (ўқимоқ, турмоқ, бормоқ), 유음 단어는 -mak (сузмак, тузмак, узмак) 를 써야 해요. 이런 문법 재정립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요?
7.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구분 개념을 도입할 경우, 모든 단어를 이에 맞게 정리하고 사전까지 편찬해야 해요. 만약 이를 구분하려 한다면 수많은 방언과 변이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정리해야 하나요?
8. 만약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구분까지 도입한다면 진짜로 기존 모든 서적 및 발간물을 싹 다 갈아엎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엄청난 문제가 등장해요. 이는 어떻게 할 건가요?
(비록 모두가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어 문자 개혁은 실패라 해도 될 정도로 아직까지 혼돈 상태라 하지만,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에요.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로 많은 책을 발간했어요. 단지 적극적으로 강제성 있는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거의 안 하다시피 했던 것 뿐이에요. 이 노력의 결핍 때문에 아직도 우즈베크어는 표기가 혼돈 상태구요. 1995년 이후 라틴 문자 보급을 위해 펼쳐온 모든 노력을 뒤엎고 새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해요. 게다가 정부가 과연 이번에는 강력하게 밀어붙일지도 의문이구요.)
결론적으로, 만약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을 구분하는 새로운 라틴 문자 체계를 도입하게 된다면 이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해요. (우즈베크어는 1929년 9모음 체계 문자 개혁을 실시했지만, 1934년에 모음 3개를 제외시키는 문자개혁을 다시 한 번 단행했어요. 경음 o', u, i 와 유음 o', u, i 을 구분하는 문자 체계는 1929년 문자 체계로의 회귀를 의미해요) 이렇게 될 경우 새로운 큰 혼란을 야기할 수 밖에 없어요.
이렇게 해서 일단 O‘, G‘, Ch, Sh 만 수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먼저 ch 와 sh 표기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어요. 둘을 표기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은 방법들이 있어요.
Ch – Çç Ćć Ĉĉ Čč;
Sh – Şş Śś Ŝŝ Šš
여기에서 ch 는 ç로, sh 는 ş 로 표기하는 방안이 선택되었어요. Çç, Şş 로 표기할 경우 읽고 쓰기 편한데다, 이 두 문자는 1929년부터 1940년까지, 그리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에 포함되어 있던 문자였거든요.
그리고 O‘ 와 G‘ 를 표기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어요. 둘을 표기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은 방법들이 있어요.
O‘ – Ŏŏ Ôô Ǒǒ Õõ Öö Ōō Óó
G‘ – Ğğ Ĝĝ Ġġ Ǧǧ Ģģ Ḡḡ Ǵǵ
Ŏŏ – Ğğ 은 편하고, 현재 필기 상황에 가장 가까워요. 또한 안드로이드 제품에서 지원도 잘 되는 문자구요.
Ōō – Ḡḡ 는 현재 필기 형태에 가까워요. 문제는 Ḡḡ 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유니코드 (alt+숫자 조합)를 이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이는 인쇄 업무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해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Ḡḡ 가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구요.
Ôô – Ĝĝ 는 특히 Ôô 가 뭔가 어설퍼보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견해가 많았대요.
Ǒǒ – Ǧǧ 는 모양 자체가 눈을 피곤하게 하는 것 같아서 가장 나쁘고, 이 문자를 지원해주는 입력 수단도 별로 없어요.
Óó – Ǵǵ 는 현재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모양과 가장 가까워요. 게다가 우즈베크어와 가까운 카자흐어, 카라칼팍어 라틴 문자에도 포함되어 있어요. 문제는 Ǵǵ 였어요. 안드로이드 제품에서 Ǵǵ 입력을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와 별개로, 글자 위에 찍는 점이 강세 표기처럼 보인다는 문제도 있었어요. 게다가 이 점 방향을 잘못 찍으면 엄청 웃겨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었어요.
(점 방향을 잘못 찍어서 웃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우즈베크인들에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인 이유가 있어요. '우즈베키스탄'이 우즈베크어로는 O'zbekiston 이거든요. O' 를 Ó 로 정할 경우, 점 방향을 잘못 찍으면 Ózbekiston 이 Òzbekiston 으로 - 즉 국명이 엉터리로 적혀 버리는 거에요. '한국'을 '안국'으로 잘못 적어놓은 것을 보았을 때 우리들의 심정이 어떨지를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결론적으로 O', G' 는 Ŏ – Ğ 로 바꾸기로 결정했어요.
이로써 일단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표기법 중 만악의 근원이자 모두에게 원망의 대상이었던 네 문자 - O', G', CH, SH 는 Ó, Ǵ, Ç, Ş 로 바꾸기로 확정되었어요.
이 외에 논의된 것으로는 ng 발음과 라틴 문자 c 철자 문제가 있었어요.
ng 발음
우즈베크어에는 ng 발음이 있어요.
ng 발음은 1993년 라틴 문자에는 존재했지만 1995년 개정안에서는 사라졌어요. 이 ng 발음 표기법에 대해서는 전부터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어요. ng 표기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쪽에서는 ӈ (ŋ) 을 사용해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가까운 사례로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어에서는 ng 발음을 표기하는 ň 이 존재해요.
그렇지만 우즈베크어의 ng 발음은 다른 언어 ng 발음과 차이가 있어요. ng 뒤에 아무 것도 오지 않거나 자음이 올 경우에는 분명히 우리가 아는 ng (응) 소리가 나요. 그러나 ng 뒤에 모음이 올 경우, g 발음이 그대로 살아있어요. 예를 들어 kelmang 발음은 '켈망' 이지만, menga 발음은 '멩가' 라는 거에요. 그래서 ng 소리에 해당하는 철자를 추가하는 것은 부결되었어요.
C 철자 문제
또 한 가지 다른 문제는 바로 C 철자 문제였어요. 다른 외국어 - 특히 영어에서는 c 철자를 상당히 많이 써요. 하지만 우즈베크어에서 c 철자는 ch 를 표기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에요. 그래서 C 철자를 처리하는 것 또한 문제였어요.
C 철자 처리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이 있었어요.
먼저 러시아어 ц 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자는 의견이었어요. 그러나 이건 바로 부결되었어요. 일단 ц 는 러시아어 자음이지 우즈베크어 자음이 아니거든요. 더욱이 우즈베크인들은 ц 를 s 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굳이 ц 를 표기하기 위해 c 를 놔둬야 할 이유는 없었어요.
(한국어에 비유하자면 일본어 ざ 단을 표기하기 위해 반치음 표기를 살리자는 주장에 대해 바로 부결해버렸다는 것과 같아요)
그 외에 기존 ch 발음의 유성음 발음 ж (우즈베크어 jo'ja 의 j 등)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이 발음은 원래 j 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j 표기가 비어요. 여기에 다른 발음인 ж (러시아어 журнал jurnal 등의 j) 를 집어넣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이 경우는 우즈베크어 사용 지역과 인접한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른 튀르크 언어에서도 이 두 발음 모두 j 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결되었어요.
그리하여 라틴 문자 C 철자는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표기에서 없애버리기로 결정되었어요.
이렇게 해서 라틴 문자 개정안 최종본이 확정되었어요. 아래가 우즈베크어 라틴 알파벳 최종 개정안이에요.
출처 : http://www.uza.uz/oz/society/lotin-yezuviga-asoslangan-zbek-alifbosi-a-ida-ishchi-guru-ni-06-11-2018
또한 이 회의에서 자판 배열에서 ç 는 c 자리에, ş 는 w 자리에 배치하기로 했어요. ŏ 와 ğ 는 [, ] 자리에 배치시킬 수 있구요.
저는 이 기사 내용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어요. 완벽히 바꾸자고 주장한 그룹은 강성 범튀르크 민족주의자 진영 아닐까 싶었어요. 모음조화 및 jo'ja 의 j 와 jurnal 의 j 발음 분화 같은 것을 보면 왠지 터키와 연관된 범튀르크 민족주의자 진영에서 주장한 것 같아보였어요. 아마 모음조화를 반영하자는 주장과 j 의 분리 주장은 세 번째 그룹이 주장한 내용일 거에요.
특히 모음 조화 반영에 대한 반박 부분을 보며 이 주장에 얼마나 사람들이 기겁했는지 장면이 그려졌어요. 적당히 쓰기 좋게 개선하자고 했더니 표기 체계 수준을 뛰어넘어 아예 언어 전체를 바꿔버리자고 나왔으니까요. 만약 최대한 바꾸자는 사람들의 주장이 채택되었다면 무수히 많은 우즈베크인들이 뒷목 잡았을 거에요. 우리나라 언어 상황에 비유하자면, ㄹ 을 L 과 R 발음에 맞추어서 두 글자로, ㄱ, ㄷ, ㅂ, ㅈ 를 어두에서의 소리와 어중에서의 소리, 어말에서의 소리에 따라 글자를 더 만들고 합치자는 주장이 채택되어 표기법 전체가 싸그리 바뀌과 이로 인해 문법까지 바뀌는 상황이라 보면 되거든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모든 한국인들이 졸지에 정서법 및 문해력이 바닥을 기게 될 거고, 한글로 표기되는 모든 걸 다 갈아엎어야 할 거에요.
sh 와 ch 를 각각 ş, ç - 이렇게 한 문자로 표기하는 것, 그리고 o' 와 g' 를 ŏ 와 ğ 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잘 했다고 봐요. 진작에 이렇게 해야 했어요. sh, ch 때문에 가독성 및 입력, 필기가 엄청나게 불편했거든요. o', g' 는 그 누구도 원래 쓰라고 하던 o', g' 로 쓰지 않았어요. 저만 귀찮아서 안 쓴 게 아니라 우즈베크인들조차도 그냥 작은 따옴표로 표기하곤 했어요. 이것 역시 원래는 키릴 문자로 ў, ғ 로 표기하던 문자였어요. 정부의 의지와 실행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이기는 했지만, 그 '의지와 실행력 문제'를 떠나서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는 우즈베크어 키릴 문자에 비해 훨씬 사용하기 불편했어요.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불편했어요.
진작에 처음부터 이렇게 라틴 문자를 만들어서 보급했다면 우즈베키스탄에서 라틴 문자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사용되고 있었을 거에요.
단,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어요.
우즈베키스탄은 지금까지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보급을 그렇게 강력히 추진하지 않았어요. 문자 개혁을 했다면 강제력을 동원해서 빨리 정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인간은 문자를 처음 배울 때에는 하나씩 구분해서 익히고 한 글자 한 글자 신경써서 읽고 쓰지만, 오래 쓰다보면 강력한 습관이 되어 쓰던 문자를 쓰던 대로 계속 사용해요. 멀리 갈 것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꾼지 이제 20년도 넘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읍니다'로 쓰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강력히 '습니다'로 쓰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구요. 단순히 이런 맞춤법 문제를 떠나 '글자' 그 자체를 바꿀 경우, 저항은 이와 비교할 수 없게 심해요. 우리 일상에서 밥 먹는 시간보다 글자를 보고 읽고 쓰는 시간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즉, 문자 개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히 강제로 대중에게 새로운 문자를 적응시키는 수밖에 없어요. 점진적으로 서서히 해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추진해야 하구요. 대중의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를 최대한 빨리 싹 다 새로운 문자로 교체해서 억지로라도 그 새로운 문자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만 새로운 문자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널리 사용될 수 있어요. 여기에는 단순히 출판물, 언론매체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소한 길거리 간판조차도 다 손대야 해요.
이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면 평소 밥 먹을 때 쓰던 손이 아니라 반대쪽 손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고 상상해보면 되요. 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평소 사용하던 손이 아니라 반대쪽 손을 사용해 음식을 먹는 연습을 무지 많이 하는 수 밖에 없어요. 당연히 누가 강제로 시키지 않는다면 얼마 안 가 그동안 해왔고 편한 방법인 원래 먹을 떄 사용하던 손을 이용해 먹는 방식으로 돌아가겠죠. 이것과 똑같아요. 아니, 이것보다 문자 개혁은 더 심해요.
최종 개정안 자체는 매우 좋아요. 그러나 이것으로 라틴 문자를 개정하기로 정부가 결정한다면 지금껏 라틴 문자가 정착하도록 해왔던 방식이 아니라 정말 강력하고 강제력 있으며 매우 빠르게 개정된 라틴 문자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점진적이니 차차 같은 소리 하다가는 오히려 그나마 사용되어 왔던 기존 라틴 문자에 새로운 표기법까지 뒤섞여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표기법은 더욱 혼란에 빠질 거에요. 그렇게 된다면 우즈베크인들은 과거보다 더 강력히 우즈베크어 표기 방식으로 키릴 문자를 사용하려 들 거구요.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정말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어 라틴 문자 개정이 확정되고 성공적으로 잘 정착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