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우즈베키스탄에 라틴 문자가 정착이 안 되는 이유

좀좀이 2012. 8. 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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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는 우즈벡어와 러시아어에요.


일상 생활에서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면 크게 불편할 것 없어요. 이 나라는 지금도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거든요. 외교-정치적인 부분 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관계도 러시아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이 나라 사람들은 러시아에 몇 달 간 무비자로 방문해서 일을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러시아인들도 많이 살구요.


그 다음으로는 우즈벡어. 우즈벡어는 우즈베키스탄의 국어에요. 우즈벡어를 할 수 있다면 역시나 크게 불편할 것은 없어요. 단, 러시아인들은 우즈벡어 몰라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러시아인들은 우즈벡어를 아예 모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에요. 그리고 소수민족들은 우즈벡어 잘 하지는 못하구요.


러시아어야 러시아어이고, 이 글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문자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에요.


우즈벡어는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가 있어요.


출처 : http://www.omniglot.com/writing/uzbek.htm


이것은 우즈벡어 키릴 문자



그리고 이것은 우즈벡어 라틴 문자




우즈벡어 문자와 관련된 글은 아주 예전에 한 번 올린 적이 있어요. http://zomzom.tistory.com/183


일단 지금도 우즈벡인들은 라틴 문자를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물론 라틴 문자를 보급하려고 꾸준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노력하고 있지만 제가 여기를 떠날 때까지 절대 정착될 일은 없다고 봐요.


처음 우즈베키스탄에 왔을 때, 그것에 대해 단순히 러시아어의 영향이 강해서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변했어요. 물론 러시아어의 영향이 강하고, 러시아로 일하러 갔다 오는 사람도 많은 등 사회적으로 러시아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근원적으로 우즈벡인들이 라틴 문자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저 역시 라틴 문자로 적힌 우즈벡어를 읽기 싫기 때문이죠. 저는 러시아어와는 별 관계 없어요. 저 역시 여기 있는 동안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러시아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도 '즈드라스부이쩨'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공부도 안 하고 있구요.


제가 생각한 우즈벡인들이 라틴 문자를 싫어하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상한 라틴 문자 정서법'이에요.


일단 점. o',g'는 한 문자이고, '역점'이라는 것이 또 존재해요. 모음 뒤에 작은 따옴표가 붙으면 그 모음을 길게, 자음 뒤에 작은 따옴표가 붙으면 끊어서 읽어 주는 걸 역점이라고 하는데, 이게 은근히 은근히 신경 긁어요. 키릴에서는 ъ로 써 주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는데, 라틴에서는 그냥 작은 따옴표에요. 원칙적으로는 방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쓸 때 누가 그거 신경쓰나요.


두 번째는 한 개 자음을 두 개의 라틴 문자로 나타내는 것. ch, sh가 있어요. 이것 역시 마찬가지. 키릴에서는 ч, ш로 쓰던 건데 라틴에서는 두 개의 문자를 써서 나타내요. '이게 뭐 별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거에요. 하지만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한글을 가지고 갑자기 이렇게 쓴다고 해보세요. 예를 들어 ㅊ를 ㅈㅎ로 쓴다고 해보죠. 앞으로 '기차'를 '깆하'로 쓰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엄청나게 짜증낼 거에요. 왜 멀쩡히 있는 ㅊ 대신 ㅈㅎ로 바꾸어서 저렇게 띨띨하게 쓰냐구요. 우즈벡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에요.


그 외에도 몇 가지 라틴 문자로 넘어오며 더 불편해진 것이 있어요. 그러니 라틴 문자를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죠. 당장 저 역시 라틴 문자로 적힌 우즈벡어를 읽으려고 하면 짜증이 나는데요. 키릴보다 라틴이 훨씬 편하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많은 시간에 걸쳐 라틴 문자를 훈련받은 저 역시 이렇게 느끼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오죽할까요. 저 뿐만이 아니라 우즈벡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은 다 우즈벡어 라틴 문자를 싫어해요.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글자 새로 외울 필요 없다고 좋아하지만,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 둘 다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우즈벡어를 라틴 문자로 쓰는 것을 싫어한답니다.


올해 우즈베키스탄에서 매우 중요한 소설인 'Cho'lpon'의 'Kecha va Kunduz'라는 소설이 드디어 라틴 문자로 출간되었어요.


하지만 다른 튀르크 언어들이 라틴 문자가 잘 정착한 것에 비해 우즈벡어 라틴 문자 정서법이 잘 정착하기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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