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말로 많이 더웠어요. 뉴스에서는 스포츠 중계하듯 더위 신기록 갱신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어요. 과연 대구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여부에 시선이 쏠린 듯한 모습이었어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방이 뜨겁다고 생각했어요. 방 온도는 빠르게 치솟았어요. 에어컨으로 간간이 방 온도를 식혔지만 소용 없었어요. 스마트폰으로 의정부 날씨를 확인했어요. 의정부는 38도까지 올라갈 거라고 나오고 있었어요.
"이런 기온을 한국에서 보다니!"
38도. 예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여름을 보낼 때, 그리고 한여름에 외국 여행을 갔을 때나 접할 수 있는 기온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기온을 접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어요. 당연히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대구, 밀양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사는 곳은 의정부. 주로 돌아다니는 곳은 서울. 의정부와 서울에서는 절대 못 올라갈 기온이라 여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었어요.
"타슈켄트 시절 떠오르네."
이 더위가 반갑고 신났어요. 타슈켄트에서 지내며 우즈베크어 공부하던 시절이 그립곤 한데, 그 당시 겪었던 더위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절대 접할 수 없는 더위였거든요. 이 더위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제게는 반갑고 신나는 기온이었어요. 타슈켄트에서 겪었던 그 여름이 떠올라서요. 그때 타슈켄트는 비공식적으로 50도까지 치솟았었어요. 제일 더웠던 날, 공식적으로 40도였어요. 시내에 있던 현재 기온을 알려주는 온도계는 50도를 알려주고 있었구요.
"밖에 나가서 돌아다녀야지."
일부러 밖으로 나왔어요. 확실히 지금까지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열기였어요. 다행히 습도는 별로 높지 않아서 살짝 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괜히 지하철 한 정거장을 걸어간 후,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왔어요. 의정부보다 서울이 더 덥다고 했거든요.
서울 종로5가로 오니 확실히 의정부보다 더 더웠어요. 그래도 아주 헥헥거릴 정도로 덥지는 않았어요. 그늘은 시원했고, 문을 열고 에어컨을 빵빵 틀어대는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시원한 바람이 잠시 열기를 식혀주었거든요.
"광장시장 쪽으로 해서 종각 가야겠다."
광장시장으로 갔어요. 확실히 응달이라 대로보다는 선선했어요. 광장시장을 지나 종로4가쪽으로 걸어갔어요. 평소에는 대로로 걸어갔지만, 이날은 이렇게 더운 날 골목길 풍경은 어떤지 보고 싶어서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골목길에는 시계방이 몰려 있었어요. 예지동 시계골목이었어요. 이 길은 제가 거의 안 가본 곳이었어요. 가본 적이 몇 번 있기는 하지만 굳이 이 좁은 골목을 걸어야할 이유는 없었거든요. 시계골목 가게들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태였어요.
"어? 여기 왠 냉면집이 있지?"
규모가 조금 되는 냉면집이 하나 있었어요. 입구는 길거리 풍경과 묘하게 안 어울렸어요.
'더운데 냉면이나 먹을까?'
오래된 가게라고 팻말에 적혀 있었어요. 옆쪽을 보았어요.
'원조 냉면 옛날집'이라 적힌 네온사인 간판이 붙어 있었어요. 옆쪽에서 보니 확실히 오래되어 보였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벽에는 메뉴판이 붙어 있었어요.
물냉면, 회 비빔냉면, 고기 비빔냉면 모두 10000원이었어요. 곱빼기도 있었어요. 곱빼기 가격은 12000원이었어요. 저는 고기 비빔냉면을 주문했어요.
결제는 선불이었어요. 카드 결제가 되어서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주자 결제를 하고 카드와 영수증을 갖다주었어요. 그리고나서 컵에 뜨뜻한 육수를 따라주었어요.
육수는 사골 국물 비슷한 맛이었어요. 그냥 홀짝거리며 마시기 좋았어요.
냉면이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조금 기다리자 고기 비빔냉면이 나왔어요.
직원이 가위로 면을 잘라주냐고 물어보았어요. 가위로 잘라달라고 했어요. 직원은 두 번 면을 가위질해서 사리를 4등분으로 잘라주었어요.
반찬은 무채 뿐이었어요.
이거 안 달고 맛있다!
고명은 계란, 오이, 배, 얇은 고기 조각이었어요.
매운맛은 적당했어요.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매운맛은 확실히 느껴졌어요. 딱 입만 가볍게 얼얼한 정도였어요.
매운맛을 제외한 나머지 맛은 강하지 않은 편이었어요. 특히 별로 달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식당 음식이 나날이 달아지고, 비빔냉면도 예외가 아니라 이게 설탕에 비벼먹는 건지 냉면을 먹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가게들도 간간이 있는데 여기는 단맛이 약했어요. 단맛을 내는 건 배가 담당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반찬으로 달랑 나온 무채와 냉면이 꽤 잘 어울렸어요. 맛이 슴슴해서 맛이 강한 반찬이 나왔으면 냉면맛이 엉망으로 느껴졌을 거에요. 딱 무채가 맞았어요.
전체적으로 보면 고전적인 느낌이 강한 비빔냉면이었어요. 지나치게 맵고 단 함흥냉면이 싫으신 분들은 여기 냉면이 입에 맞을 거에요. 저는 매우 맛있게 잘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