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울

나브루즈 바이람, 서울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

좀좀이 2018. 3. 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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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은 중앙아시아 및 이란, 터키에서 전통적인 설날에 해당하는 나브루즈 바이람이에요.


"아, 추워!"


올해는 설날이 상당히 늦게 있었고, 그러다보니 꽃샘추위도 상당히 늦게 찾아왔어요. 이제야 꽃샘추위래요. 예년 같았으면 개나리 피고 있어야할 때인데요.


요즘 간간이 튀르크 언어 및 그 지역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보니 문득 오늘이 나브루즈 바이람이라는 것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꽃샘추위로 추운 날씨에 싸리눈이 내리는 것을 보니 예전 우즈베키스탄 있었을 때가 떠올랐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온지 벌써 6년째이구요.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브루즈 바이람을 딱 한 번 보내보았어요. 2012년 3월 21일. 그날 상당히 추웠어요. 딱 2018년 3월 21일 의정부와 서울에 눈발이 날리던 것 같은 날씨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나브루즈 바이람이라는데 한겨울에 입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봄이라고 축제를 벌이고 있었어요. 이 당시에는 우즈베키스탄 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게 당연한 것인줄 알았어요. 나중에야 그해 나브루즈 바이람만 이상하게 매우 추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원래는 진짜 생명의 시작이자 봄의 시작이라고 날이 따뜻한데, 그해만 나브루즈 바이람에 무지 추웠대요.


이러니 안 나갈 수가 없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브루즈 바이람을 보냈던 적이 떠올랐어요. 여러 추억이 떠올랐어요. 진심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매우 사랑했어요. 우즈베크어를 공부하고 우즈베키스탄 문화를 공부하고 우즈베크인들의 언어, 문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했어요. 그리고 러시아 문화와 러시아어를 멀리하고 러시아어 공부할 시간에 타지크어를 공부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살면서 우즈베크어 하나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왜 러시아어를 모르냐고 하는 러시아인들 모습이 참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과 유사할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 모습에 알아도 무조건 러시아어에 대해서는 '니 즈나유, 니 나다'로 일관된 반응을 보였어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갈 때만 해도 러시아어를 조금 알고 있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돌아올 때 러시아어를 완벽히 다 까먹었어요. 아는 거라고는 니 나다 - 필요없어, 니 즈나유 - 몰라 뿐이었어요. 우즈벡 갈 때만 해도 청강으로 러시아어 수업도 듣고 해서 조금 알았는데요. 러시아어를 접할 기회가 많고 공부하려고 살짝만 마음먹었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인생에서 현지 가서 오히려 언어를 더 못하게 된 언어는 러시아어가 유일해요. 심지어 중국어조차 중국 여행하면서 조금 공부해서 그 이전보다 나아졌는데요.


그렇게 우즈베키스탄을 참 많이 사랑했지만,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 문화를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세계문화축제 같은 곳에 진열되는 우즈베키스탄 공예품 같은 것의 질은 나날이 낮아졌고, 우즈베키스탄 방송을 볼 수 있는 사이트는 제대로 열리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은 그 종류가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나브루즈 바이람은 아예 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0이었구요.


나브루즈 바이람에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를 가볼 생각은 아예 해보지 않았어요. 거기에 뭐 특별한 게 있겠나 싶었거든요.


눈이 오는 3월 21일의 하늘을 보며 결심했어요.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로 가보자.


작년에 외국 여행을 가지 않고 한국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더욱 우즈베키스탄이 그리워졌어요. 물론 작년에 외국 여행을 한 번도 안 간 이유는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궁금한 나라가 없었어요. 궁금한 나라가 아직 있기는 해요. 세네갈, 말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이요. 세네갈, 말리는 말리가 내전중이라 무기한 보류,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은 여행금지국가. 이러니 딱히 가보고 싶은 나라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궁금한 나라가 없었거든요. 뭔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 답을 확인해보러 여행을 가는데, 궁금한 것이 없으니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2017년을 얌전히 한국에서 쭉 있으니 우즈베키스탄 살 때가 간간이 그리워졌어요.


사실 당연히 뭐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거기를 몇 번을 가봤고, 그런 기사, 글 같은 것을 열심히 챙겨보았고, 심지어는 가서 물어보기까지 했지만 답은 '없다'였거든요.


광희동


역시 아무 것도 특별할 것이 없었어요. 싸리눈만 좍좍 내리고 있었어요.


중앙아시아 거리


애초에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실망할 것도 없었어요.


서울 나브루즈 바이람


우즈베키스탄 식당인 사마르칸트 식당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갔어요.


우즈베키스탄 전통 화덕


사진 오른편에 있는 것이 우즈베키스탄 전통 화덕인 '탄드르'에요.


'온 김에 오쉬랑 솜사나 먹고 가야겠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메뉴판을 보는 순간 이것저것 막 시켜서 먹어보고 싶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에는 시장 가서 이것저것 막 시켜먹었었거든요. 한국인들이 볶음밥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 기름밥인 '오쉬', 흥건한 국물의 쇼르바를 밥과 국으로 시킨 후, 반찬으로 또 뭐 하나 시켜서 한국식으로 먹었어요. 그러면 우즈베크인들이 저를 매우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의 주식인 빵 '논'은 안 시키고 이것저것 잔뜩 주문해서 희안하게 먹었으니까요. 국으로 쇼르바를 시켰기 때문에 차도 안 시켰어요. 그것도 우즈베크어로 주문해서요. 가끔 제게 직접 말을 거는 우즈베크인들도 있었고, 후식으로 먹으라고 과일을 조금 나누어주는 우즈베크인들도 있었어요. 물론 그렇게 먹어도 얼마 하지 않았어요.


솜사 2개, 만트, 오쉬, 양고기 카봅 2개를 주문했어요.


우즈베키스탄 음식 - 솜사


솜사는 잘라서 나왔어요. 이 모양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조금 비싼 솜사의 모양이었어요. 흔한 솜사는 정삼각형 모양이에요. 제가 있었을 때 이 솜사는 정삼각형 모양의 솜사보다 200숨 더 비쌌어요. 모양에서의 차이 뿐만 아니라 속에 들어간 고기에서도 차이가 있었어요. 정삼각형 솜사는 다진 고기가 들어갔고, 그보다 200숨 비싼 솜사는 잘게 자른 고기가 들어 있었어요. 그 200숨 비싼 솜사를 '탄드르 솜사'라고 부르곤 했어요. 이건 일반 솜사가 아니라 탄드르 솜사에 가까웠어요. 가격은 개당 3천원.


우즈베키스탄 음식 - 만트


이것은 만트. 양고기 만두에요. 피가 조금 질긴 편이고 크기가 주먹만해요.


'아...주문 망했다.'


솜사와 만트를 먹으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음식을 막 주문해서 먹었다 해도 혼자 먹을 때 이런 식으로 시키지는 않았어요. 생각해보니 밥에 국, 여기에 반찬까지 주문하는 경우는 저 혼자 먹을 때가 아니라 친구와 같이 시장에 가서 밥을 먹을 때였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저 혼자. 이건 솔직히 저한테 매우 많은 양이었어요. 그래도 다 먹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음식 - 오쉬


"이거 타슈켄트식인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전통빵인 논은 사마르칸트, 기름밥인 오쉬 (플롭)는 타슈켄트 것이 유명해요. 타슈켄트식의 가장 큰 특징은 다 섞어서 나온다는 점. 그리고 단맛을 내기 위해 건포도 같은 것을 집어넣어요. 한국 오쉬와 우즈베키스탄 오쉬의 결정적 차이로는 바로 당근 색깔 차이에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노란 당근을 집어넣고, 한국에서는 노란 당근이 없기 때문에 빨간 당근을 집어넣어요.


일찍 와서 그런지 우즈베키스탄에서 먹던 오쉬와 맛이 매우 비슷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음식 - 카봅


이것은 카봅 kabob. 케밥 맞아요. 우즈베키스탄의 시장에서 먹는 케밥 고기 크기는 이것보다는 조금 작아요. 물론 이렇게 큰 것도 있긴 한데, 그건 시장보다는 식당에서 팔아요.


"예전에 비해 위에 뿌리는 것이 화려해졌네?"


예전에는 양파만 뿌려주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위에 양파와 더불어 향채도 뿌려주었어요.


이것까지 다 먹으니 배가 터질 지경이었어요.


마침 식당에 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즈베크인 주인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었어요.


"오늘 나브루즈 바이람 맞죠?"

"예, 맞아요."

"수말락 드셨어요?"

"예."

"진짜요? 어떻게요?"

"우즈벡에서 들고 왔어요. 조금 맛볼래요?"

"?????"


수말락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브루즈 바이람때 먹는 음식이에요. 밀싹을 이용해 만든 음식으로, 맛은 갱엿과 비슷해요. 사실 식혜 및 엿 만드는 방법과 거의 똑같거든요.


수말락을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참 오래 걸려요. 그래서 수말락을 못 먹었을 거라 생각하고 물어본 것이었어요. 외국에 있는 한국인에게 설날에 떡국 못 먹었겠다고 말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먹었다고 했어요. 너무 놀라서 어버버 거리고 있자 식당 주인 아저씨께서 수말락을 찻잔에 조금 따라서 주셨어요.


우즈베키스탄 전통 음식 - 수말락


"이거 진짜 수말락이다!"


감동했어요. 오매불망 고향의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어요. 수말락은 저도 우즈베키스탄 체류 초기에만 먹어보았어요. 제가 2월에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3월에 나브루즈 바이람을 맞이했고, 그 나브루즈 바이람 전후로 얼마간만 시장에서 팔아서 맛보았거든요. 놀라웠어요. 진짜 수말락이었어요. 그렇게 조용히 한국의 우즈베크인들은 자기들끼리 나브루즈 바이람을 기념하고 있었어요.


그때 주방에서 우즈베크인이 나왔어요. 식당 주인 아저씨가 주방에서 나온 우즈베크인에게 제가 우즈베크어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카자흐인이에요?"

"아니요. 저 한국인이에요."


지금까지 일본인, 중국인, 위구르인 소리를 들어보았어요. 카자흐인이냐는 질문은 처음 들어보았어요. 제 민족 콜렉션에 카자흐인도 추가되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제게 우즈베크인이냐고 물어본 사람은 없어요. 이것은 정말 당연한 이야기인데, 한국인과 우즈베크인은 결정적으로 '눈'이 달라요. 그래서 제가 우즈베크인으로 오해받을 일은 전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에요.


수말락을 잘 얻어먹은 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한국 봄


서울 봄


밖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어요.


남산


인왕산


남산과 인왕산은 하얬어요.


참 재미있는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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